< -- 대망의 80년 대 -- >
9그리고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업무 인수인계를 마친 대원엔지니어링의 마르조 쿠르치 사장과의 면담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이란 국영석유공사에서 대금 미수금 문제로 만나자고 하여 쿠르치 사장이 출국하는 바람에 불발되었다. 이란이 한국에도 일부나마 석유 수출을 재개한다는 통보로 보아 좋은 소식을 가져오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이 실장이 보고하길 실리콘 밸리 내에 적당한 매물과 내가 지시한 세 명의 인물에 대해서도 접촉이 있었다고 보고한다. 이에 나는 그들을 3일 후에 그곳에서 보자고 하라고 하고 출국 준비를 한다.
그 외에도 슐츠나 아이아코카도 그곳으로 오도록 지시를 한다. 그리고 금번 샌프란시스코에 나를 수행할 인물로는 정 비서실장, 이 기획실장, 강동운 자금담당 전무, 세 명의 비서 즉 정 윤희 양과 라니아 양 그리고 전기용 비서, 이 밖에도 지난번에 언질을 준 조엘 엥걸 정보통신연구소 소장, 물류유통분야의 사장 조지프 콜린슨을 지목하고 이들에게도 출국 준비를 갖추도록 지시한다. 삼일 후. 그러니까 80년 1월 18일, 정오에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편으로 나는 출국한다.
12시간 비행 끝에 우리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내리니, 16시간의 시차로 저녁 8시인데 이곳 날짜로는 하루 전인 17일이다. 죽어라 고생을 하고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도 오히려 날짜가 뒤로 가 있으니 판타직한 생경한 느낌이다.
공항에는 늦은 시간인데도 도착시간을 알려주어서인지 대원실업의 미국 현지법인 지사장 박헌도 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는다. 늦은 시간이라 우리는 곧 바로 박 지사장이 잡아놓은 샌프란시스코 시내 호텔로 직행한다.
호텔에 여장을 푼 나는 잠이 오지 않아 애를 먹는다. 왜냐하면 기내에서 나오는 기내식만 먹고는 내내 잠만 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이 함께 잡은 방 즉 라니아와 정 윤희 양이 함께 묶는 방에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다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내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한다. 이튿날 오전 9시 우리는 정보원의 안내로 매물로 나왔다는 대규모 목장으로 향한다.
U.
S.
고속도로 280번을 타고 30분 정도를 달리다가, 101번 주립도로로 진입해 다시 20여분을 더 달리니 한적한 농촌의 풍경이 펼쳐진다. 가끔 어느 기업의 연구소 간판도 보이나 대부분이 아직은 과수원 아니면 목장 등 목가적인 풍경 일색이다.
우리가 목표로 한 목장에 도착한 것은 그러고서도 15분 정도를 더 달려서다. 남북으로 제법 높이 솟은 구릉 사이로 드넓은 평원에 목초지가 펼쳐져 있는데 겨울이라 메마른 풀만이 우리를 반긴다.
그 목초지 정 중앙에 대규모 축사와 사람이 사는 붉은 벽돌로 지은 이층집이 서 있다. 우리 일행의 차량이 목초 밭 사이로 난 길을 뚫고 빠른 속도로 내달리니, 주인인 듯한 사람이 우리의 출현에 나와 본다.
우리 일행의 차량이 도착하자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과 그의 아내인 듯한 뚱뚱한 중년 여인이 우리 일행의 차 쪽으로 다가온다. 이에 사전에 접촉이 있었던 듯 차에서 내린 정보원과 박헌도 지사장이 두 부부를 만나 악수와 손에 키스까지 하며 인사를 나눈다.
서로 수인사가 끝나자 박 지사장이 나를 돌아보며 말한다.
"우리 그룹의 회장님 되십니다. 거래 당사자가 직접 왔으니 오늘 아예 결정을 지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글쎄요. 나야 뭐 그렇게 급한 것은 없으니 천천히 팔아도 됩니다만, 정 내 조건 대로 사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말하는 모양새가 목장주가 아니라 어디서 부동산 중개업자로 굴러먹은 양 아주 노련하다. 나는 싱긋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내 소개를 한다.
"한국 대원그룹의 회장 강 태민입니다. 제가 척보기에 비가 자주 안와서 인지 대지가 메마르고 척박해서 목장부지로는 부적당해 보이는데, 웬만하면 우리에게 일괄 파시지 그러십니까?"
"톰 루이스입니다. 그런데 댁이 이 목장 전부를 일괄 매입하겠다는 말입니까? 나와 만난 저 사람들은 일부분만 매입할 의사를 비치던데.........?"
목장주가 내 손을 잡으며 의아한 투로 묻는다.
"가격만 맞으면 전체를 못살 것도 없지요. 제곱미터 당 4달러를 달라셨다 고요? 이게 전부 몇 제곱미터나 합니까?"
"2백만 제곱미터요. 총 8백만 달러만 내시면 내 두 말 않고 당장이라도 팔리다."
"모든 매물에는 에누리라는 것이 있으니 평방미터 당 3달러에 파시오, 그러면 대금은 아예 일시불로 드리리다."
나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바로 돌아서는 목장주다. 그래서 결국 그와 밀고 당기는 흥정 끝에 제곱미터 당 3.5달러에 2백만 제곱미터를 일시불 지불 조건으로 일괄 매입하기로 결론을 낸다. 그리고 나머지 부차적인 것은 국제법 전문 변호사인 전기용 비서에게 처리케 한다. 아무튼 이것을 우리 개념 식으로 평당으로 환산하니 대략 65만 평이 조금 넘는 규모다.
나는 구체적인 계약서를 작성하는 전 비서를 내버려두고, 나머지 일행과 목장의 전경을 둘러보며 의견을 나눈다. 내가 먼저 내 의사를 밝힌다.
"내 생각은 말이요. 이곳 미국에서 살면서 연구를 원하는 전 분야의 연구원들을 여기에 모두 거주시키고 싶소. 그래서 말인데 연구실은 한 10층 규모로 대단위로 짓고, 나머지 땅은 연구원들의 가족들 공간으로 아예 이층집을 지어, 살림을 하게 하는 방향으로 운영을 했으면 좋겠소. 그래도 아직은 많은 터가 남을 터이니, 그곳은 이대로 물론 가축 수는 줄여야겠지만 목장도 운영하고, 조경도 그럴 듯하게 하여 사원들의 휴양지로 쓰는 방안도 괜찮을 것 같소. 내 듣기로 이곳은 12월부터 3월까지만 조금 비가 내리고, 나머지는 사시사철 온화하다니, 연구소와 휴양지로는 적격 아니겠소? 정보통신연구소장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내 의견이?"
나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조엘 엥겔이 말한다.
"다 좋은데 대규모 휴양시설은 곤란할 것 같습니다. 대규모 휴양시설이 들어서면 아무래도 시끄러워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아무래도 연구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습니다."
"흐흠.........! 그 말도 일리가 있군요. 그럼, 임원들의 휴양지 정도로 건립하는 방안은 괜찮겠죠?"
"네, 회장님! 그 정도도 안 된다고 제가 반대하면 다른 임원들의 공적이 될 테니 찬성해야죠."
"하하하.........!"
조엘 엥걸의 말에 모두 웃음을 짓는 가운데 내가 다른 사람들의 의사를 묻는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럼 제약 공장은 이곳에 안 짓는 것입니까?"
정 비서실장의 물음에 내가 답한다.
"아무래도 공장이 들어서면 소음이 생길 것이고, 연구에 지장이 생길 듯하니 부근에 산업단지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곳을 일부 매입해 제약 공장을 짓는 방향으로 합시다."
내 대답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데 이 기획실장이 질문을 한다.
"그럼, 국내 연구실이 많이 남을 텐데 이 부분은 어찌 처리할 계획이신지요?"
"많이 비겠지요. 그래서 내 생각은 아예 연구실로 사용하려 했던 것은 전부 임대를 주고, 국내연구소는 별도로 한적한 곳에 지었으면 합니다. 그 후보지로는 서울에서도 멀지 않은 경기도 고양 군 정도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내 머리에는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 개발이 진행될 일산 신도시가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미리 그곳에 대단위 땅을 미리 매입해 연구실 마을로 쓰다가, 80배의 차익을 거두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은 있으나 전적으로 나서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이것이 흐뭇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상한 생각이 든다. 벌써 내 주위에는 예스맨만 포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일종의 두려움이다.
내 생각이 항상 옳다면 문제될 것이 없으나, 나도 사람인 이상 어찌 실수가 없겠는가? 내가 그르다고 생각할 때는 과감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다른 방안을 제시할 사람이 많아야 올바른 기업인데 말이다. 아무튼 나는 이 부분에 대헤서는 나중에 생각을 좀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나는 시선을 돌려 금번에 물류유통 사장으로 임명된 조지프 콜린슨 사장을 바라보며 직설적으로 묻는다.
"콜린슨 사장님은 어떻습니까? 내 견해가 적절해 보입니까?"
"저도 이 땅에 연구소와 가족들의 주거 공간, 약간의 임원들의 휴식 공간을 짓겠다는 것은 훌륭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훌륭하게 지어 놓은 시설을 남에게 주고 다시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일종의 재원 낭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제가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국내에 연구소를 다시 짓겠다는 발상은 우리 임원들도 대놓고 반대는 하지 않지만, 충분히 의혹을 가질 것으로 생각하고, 이렇게 말하고는 주변 인물들을 하나, 하나 돌아보며 말을 시작한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미국처럼 그렇게 아직 안정된 국가가 아닙니다. 올해나 내년에도 20~30%에 이르는 인플레이션이 진행될 것이고, 그만큼 땅값도 크게 오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유 자금을 은행에 예치해두는 것보다는 부동산을 매입해 굴리면 은행이자 보다 더 큰 시세 차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볼 때 가장 땅값이 크게 오를 만한 곳 즉 수도권 주변 지역을 미리 매입해 그곳에 연구소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곳의 땅값도 20년 후에는 어마어마하게 뛰어 오를 것으로 저는 예측하고 있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비로소 이해가 되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는 일행들이다. 이렇게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모든 계약이 종료되었는지 전 비서관과 정 윤희 양이 목장 주와 함께 집에서 나온다.
나는 그들 내외와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흔들어 사의를 표하고는 이곳을 떠난다. 오늘 정오에 샌프란시스코 호텔에서 슐츠와 아이아코카와의 면담 일정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내가 지목한 세 사람과도 차례로 이들에 이어 면담이 예정되어 있어 바삐 서두르는 것이다. * * *다시 호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니 슐츠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나는 그를 내방으로 불러들여 반갑게 서로 악수를 하고 대화를 나눈다.
"요새 미국의 동향은 어떻습니까?"
"이란 인질사건으로 조야가 시끄럽지요."
"해결의 기미는 안 보입니까?"
"서로 너무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태라 쉽게 타협을 이루지는 못할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흐흠, 큰 일 이군요."
여기서 우리의 대화에 나오는 인질사건의 개요를 잠깐 설명하고 넘어가면 이렇다.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은 1979년 11월부터 1981년 1월까지 미국인 50여명이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인질로 억류되어 있던 사건이다.
미국에서는 이란 인질사건(Iran hostage crisis)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팔레비 독재 왕정의 친미 노선과 그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오래 전부터 이란 국민 저변에 반미 감정을 확산시키고 있었는데,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정이 타도되고 호메이니의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되자, 마침내 반미 감정이 표출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란 과격파 학생 시위대의 테헤란 미 대사관 난입·점거 사태에서 발단된, 이 사건의 원인은 이란인의 반미감정이지만, 여기에 '이슬람 원점으로의 회귀'라는 대의명분을 내건 혁명 세력의 상징적 의미로서의, 미국에 대한 부정과 그에 대한 미국의 명예 고수 의지가 충돌함으로써 증폭되었다.
결과적으로 444일 만에 알제리의 중재로 해결된 이 사건은 미국과 이슬람권에 큰 여파를 미친 일대 사건이었다.
"실리콘 밸리에 연구소를 짓는 다고 가신 일은 어찌 되었습니까?"
"잘 해결되어 2제곱키로 미터의 땅에 연구소와 가족들의 거주지는 물론 본 그룹 임원들의 일부 휴양시설도 짓기로 했습니다."
"잘 되었군요."
슐츠 또한 임원들의 휴양시설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이는지 아주 흐뭇해한다.
"미국의 경기 동향은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오일 파동으로 경기가 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죠. 그래서 점차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흐흠..........! 우리와 같은 개발도상국가로서는 큰일이로군요. 미국이 기침만 해도 감기에 걸린다는 한국이니, 이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해야겠군요."
"단단히 대비를 해두는 것이 여러모로 보아 손해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금번에 물류유통분야에 새롭게 진출하면서 텍스트론시스템스 회장과 몇 번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헬기의 국내 조립문제와 경항공기의 조립 건으로 요. 그러나 아직 뚜렷한 결론을 이끌어내진 못했지만 조만간 결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조지프 콜린슨 사장도 함께 왔는데 같이 만나 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저 혼자 단독으로 그와 만나 몇 가지 물어볼 것도 있고 하니, 대화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때는 이미 아이아코카 사장이 왔다는 통보를 라니아 양이 하고 간 다음이라 슐츠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두 분이 별도로 만나시고 나는 자동차 총괄사장을 만나보기로 하지요."
"네!"
내 말에 자리에서 일어서는 슐츠다. 둘은 다시 악수를 나누며 헤어지고, 바로 아이아코카 사장이 들어온다.
"반갑습니다. 회장님!"
거물답게 나를 보자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아이아코카다. 그의 생각 저변에는 아무래도 동양의 작은 나라 회장보다는 미국의 3대 자동차 메이커 사장이라는 데서 오는 우월의식이 있는 듯하다.
"동감입니다."
같이 맞잡고 손을 흔들기도 잠시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내가 묻는다.
"회사 상태는 어떻습니까?"
"아직은 어렵습니다만 내년이면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K-2 자동차 조립은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네, 당연히 잘 되고 있지요. 수출에는 이상이 없겠습니까?"
"아무래도 오일 쇼크로 인해 지갑들을 닫는 추세이니 소형차가 메리트가 있는 것은 사실이죠. 그래서 말인데요. 내가 비밀리에 제작하는 중형차가 타격을 입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만?"
"예상보다야 조금 덜 나가겠지만 서로 수요층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일정부분 타격은 있을 것으로 저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중형 하나만 가지고 시장에 덤비는 것보다는, 소형과 중형의 조합이면 판매에도 유리할 테고, 결국 총합을 보면 더 파이가 커지지 않겠습니까?"
"그 부분은 회장님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회사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대화를 나누다보니, 너무 무미건조해 나는 그를 식당으로 데려가, 함께 오찬을 하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 작품 후기 ============================새 정부 들어와서 장관 청문회 과정에서 모 장관이 일산에 땅을 미리 샀는데, 토지공사에서 그것을 평당 9만원에 매입하는 바람에 80배의 차익을 올렸다는 기사를 본 일이 있습니다.
역으로 계산을 해보면 평당 채 1200원이 못 되는 돈에 구입을 한 것이죠.
오늘도 많은 님들의 성원에 감사드리고요!
^^늘 즐겁고 유쾌한 일상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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