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83화 (83/135)

< -- 대망의 80년 대 -- >

1서울로 돌아온 나는 그 이튿날 기획실장을 불러들여 비서실장과 함께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내가 기획실장에게 묻는다.

"싸이펨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지난번에 보고 드린 대로 이탈리아 정부에 구제 금융을 신청한 상태이나 현재로서는 기대난망입니다. 그들이 잘 나갈 때는 '이탈리아의 자존심이니 뭐니 해서 추켜세우더니, 지금 와서는 서로 공 떠넘기기 바쁜 모양새입니다.

이탈리아의 정정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정당이 없고, 전부 고만고만한 정당들이 연립을 해서 집권을 하다 보니, 툭 하면 정정 불안이 야기되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70년 초부터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이 계속해서 이어지다보니, 노동자의 해고를 엄격히 규제하는 노동법이 제정되고, 국민의 연금과 보건복지에 해마다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 결과로 해마다 10% 이상의 재정적자가 발생하고, 이것이 계속 누적되고 있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뿐만 아니라 붉은 여단이라는 단체가 출현해, 하루에도 정치 암살이 이루어지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정정이 혼탁하고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러니 누가 선뜻 나서서 구제 금융을 베풀 것이며, 이를 추진하겠습니까? 다 정치인들은 어디 가나 표만 의식하지 동이나, 서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합니다.

"이탈리아 정부의 상황은 알겠는데 혹시 다른 기업에서, 인수 의사를 밝히는 곳은 없습니까?"

"근래 들어 벡텔과 테크닙에서 관심은 표시하고 있으나, 선뜻 손을 내밀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로서는 인수해봐야 중복되는 분야가 많으니 별 이익이 없는데다, 인수하려면 그 채무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니, 아마 별 메리트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대로 싸이펨이 영원히 사라져 줬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그들이 벌여놓은 일거리와 고용한 인원을 생각하면 단순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탈리아 정부와 비슷한 처지지요. 그러는 동안 싸이펨은 은행이자에, 계속 적자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니 큰 문제지요."

우리가 이렇게 회의를 하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전화가 온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싸이펨의 마르조 쿠르치 사장으로부터 온 전화다.

간만의 전화니 처음에는 이런저런 안부 인사를 나누고, 그 다음은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우리 그룹의 동정을 묻는다. 그래서 내가 답변하길 요즘 이곳저곳 투자를 많이 했더니 허리가 휠 정도라고 엄살을 파운다. 그래도 쿠르치 사장은 말을 이어가다가 끝내는 싸이펨을 인수할 의사가 없느냐고 묻는다. 이에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어렵다고 빼다가 얼마면 인수가 가능하냐고 묻는다.

그의 답이 주저 없이 12억 달러란다. 그만한 돈은 없다고 답하고, 나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는다. 그러고 나서 채 5분도 안 되어 쿠르치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는데, 우선은 채무를 승계하는 조건으로 2억 달러를 투자해 기업을 정상화 시키고 나머지는 시간 여유를 갖고 지불하는 방법 아니 투자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다. 그렇다면 인수할 의향이 있으니, 나는 실사부터 하자고 덤빈다.

결국 그쪽의 답은 우선 계약금조로 2000만 불을 지불하면 실사에 응하겠단다. 이에 내가 동의하자, 싸이펨 인수는 급물결을 타게 되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랭킹 세계 3위 업체를 인수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좋은데, 이제는 당장 자금이 걱정이다. 그래서 내가 기획실장에게 묻는다.

"지난번에 내가 지시한 인터내셔널의 분리 및 상장을 검토해보라는 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분리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익이나 상장은 당장은 어렵겠습니다. 오일 파동이후 장세가 거의 반 토막이 나서, 증시를 통한 자금 조달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흐흠..........! 투자할 곳은 많은데, 아주 곤란하군!"

나의 한숨에 기획실장이 받는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바로는 지금 한창 유가가 30달러로 돈을 벌고 있는 인터내셔널의 이익금과 여타 이익을 내고 있는 전자, 무역, 중공업, 해운, 의류 등의 상장되지 않은 기업의 유보금을 다른 사업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훗날 여론의 질타를 받는 소위 문어발식 경영이군."

나 혼자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나 못들은 사람은 없다. 그래도 이 시대에는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대이니 뭐라 할 사람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없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라도 싸이펨의 인수대금과 베네수엘라 유전의 투자 자금 그리고 호주의 투자 자본을 마련해보세요."

"네, 회장님!"

기획실장의 힘찬 대답을 들으면서도 뭔가 씁쓸하지만 어쩌겠나, 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연 20% 가까이 되는 살인적인 이자를 물고 또 차입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판에 헬기를 산다는 것은 안 될 말이다.

나는 기획실장에게 말하길 '당분간 헬기를 생산할 수 있는 합작 법인을 여유를 갖고 물색해보고, 내 자가용 헬기는 추후 좀 더 여력이 생겼을 때 다시 거론하자'며 이 문제를 정리하고 넘어간다. 이후 그들을 돌려보내고 나는 혼자 멍하니 창밖을 한동안 내려다본다.

하늘에서는 장마기간이라 그런지 연일 빗줄기가 쏟아진다. 비오는 날의 거리 풍경이야 뻔하지만, 나의 망막은 무심히 그런 풍경에 잔상을 맺고 있다.

* * *어느덧 팔월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벌써 말일이 가깝다. 9월1일이면 군대 때문에 미루었던 학업을 계속 해야 한다.

2학년 2학기로 복학을 하는 것이다. 복학을 하면 아무래도 사업에 지장이 있겠지만 큰 지장은 없으리라 본다.

우리 과 전공 교수님들은 대부분 우리 그룹 해당 계열사에 고문으로 위촉되어, 한 달에 한 번씩 자문에나 응하고, 고문료로 꼬박 월 50만 원을 받아 가신다. 그러니 아는 처지에 학점을 짜게 주어 과락을 시킬 수도 없고, 나 또한 이런 교수님들의 처지를 잘 알아 그룹 내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자주 학교에 얼굴을 비칠 생각이다. 아무튼 개학도 가까워 오는데, 그간 싸이펨과는 모든 실사가 끝나, 그들의 총부채 6억7천5백만 달러와 전 종업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2억 불을 주고 인수를 했다.

물론 단서 조항에 향후 5년 간 총 10억 달러를 더 투자하여 싸이펨을 정상화시킨다는 조항이 있지만, 나는 이것은 액세서리로 본다. 그 안에 정상화를 시키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지만, 저 쪽은 이 투자를 통해 부채를 갚으면 이자가 덜 나가도 덜 나가니까, 갚으라고 종용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방법은 아예 우리의 대원-싸이펨 엔지니어링과 합병을 할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엔지니어링이 좀 부실화 되겠지만 그 정도는 소화내리라고 본다.

그 후, 나는 이를 증시에 상장해 더욱 덩치를 키울 생각이다. 아무튼 이것은 현 시점에서의 내 생각이고 장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니, 그때 그 때 상황을 봐서 처리할 생각이다.

어떻게 되었던 우리가 싸이펨을 인수한 것은 기정사실이니, 외신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식으로 보도를 했다. 내 입장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표현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니 어쩌겠는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지.

또 한 가지 개학 전 뉴스로서는 호주의 링크에너지와의 투자양해각서 교환 건을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소위 말하는 MOU라는 것인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첫째: 대원 그룹은 1980년부터 향후 5년간에 걸쳐 총 50억 달러(호주달러)를 링크에너지와의 합작법인에 투자한다.

첫 해에는 5억 달러, 중간은 매해 년도 10억 달러, 마지막 해에는 15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다. 단 향 후 20년 내에(2,000년 까지) 대원그룹 측은 셰일 오일과 가스를 생산할 수 있는 충분한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상호간의 지분은 링크에너지 51%, 대원그룹 49%를 소유한다. 단 소유지분은 링크에너지 사측이 실사한 만큼의 광물을 담보할 수 없거나, 대원그룹 측의 투자 지연, 셰일 층의 기술 미확보 시, 상대는 이의를 제기하여 계약을 파기하거나, 소유지분을 재조정할 수가 있다.

셋째: 위의 조항은 대원그룹이 1979년 12월 31일 자정까지 5천만 달러를 링크에너지 사에 입금하는 것으로 계약이 자동 성립하는 것으로 본다. 불이행 시는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 자동 파기된다.

단 지연 귀책사유로 인한 위약금으로, 대원그룹은 링크에너지 사에 1천만 달러를 지급해야 한다. 어떻게 되었든 MOU라도 위약금까지 있으니,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위의 사항을 보아 알 수 있듯이, 나는 시간을 좀 벌었고, 링크 에너지는 위약금까지 설정되었으니, 크게 후회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향후 내게 기대도 하지 않았던 어마어마한 부를 안겨 줄은 당시 나 뿐만 아니라, 그룹 내의 관계자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링크 에너지 사측도 어느 정도 예측은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훗날 실제로 보도된 어느 일간지의 기사의 일부분을 미리 읽어보기로 하자.

자원 부자나라인 호주에서 초대형 석유 유전이 또 다시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

연초 현지 언론들은 자원 전문 개발회사인 링크에너지 사와 대원인터내셔널의 합작법인이 호주 남부 아르카링가 베이즌 지역에서 최대 20조 호주달러(한화: 2경3000조원) 가치의 초대형 셰일유전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셰일오일은 지구의 퇴적암층인 셰일 층에 존재하는 오일로, 채취를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채산성을 맞추기 어려워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하다가, 2000년대 들어 수압파쇄 기술로 채취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유전의 매장량은 최대 2330억 배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호주 전체 석유 매장량을 초과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크다. 향후 이것이 제대로 개발된다면, 세계 산유국 순위에서도 호주가 베네수엘라를 제치고 2위에 등극함은 물론, 석유메이저 순위에서도 대원인터내셔널이 수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또한 양국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 * * 개학을 하고도 한 달이 훌쩍 지나, 어언 10월이다. 나는 변함없이 바쁜 가운데에서도 오늘은 짬을 내어 전화를 건다.

술 한 잔 하자는 전화다. 이런 전화라면 의당히 기분이 좋아야 되는데, 기분이 영 찝찝하다.

내 기업이 안 망하고 살아남고, 내 밑의 20만이 넘는 종업원들을 먹여 살리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핑계를 대지만, 찜찜한 기분만은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 약속을 한 나는 일찌감치 오늘은 회사 일을 파하고 초저녁부터 대원각으로 향한다.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던 전 보안사령관이 나를 반갑게 맞는다.

"어서 오시게,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술 한 잔 하자고 이 바쁜 사람을 다 불러냈지?"

"가을이 되니 그냥 마음이 싱숭생숭해서요."

"하하하..........! 젊은 사람이 별 소리를 다 하누만. 이보게, 노 사단장! 뭘 그렇게 삐쭈름이 서있나?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가?"

"할 말은 자네가 다 하고 있는데, 내가 뭘 거기서 참견하나? 사업은 여전 하시죠?"

내게 깍듯이 경어를 사용하는 노 사단장이다.

"사업이라는 게 매일 그렇지요. 수십만 명 먹여 살리자니 매일 하는 일 없이 바쁩니다."

"이봐 자네보다는 훨씬 낫잖은가? 젊은 사람이 수십만 명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다니 말이야."

전 사령관의 말에 노 사단장은 가타부타 말없이 웃기만 한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럴까?"

내가 앞장을 서서 예약된 방으로 찾아들어간다. 잠시 후, 지배인이 나와서 인사를 하고 주문을 받아간다.

곧 간단한 주안상과 함께 양주가 들어오고, 이어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 셋도 들어온다. 오늘이 두 번째이지만 안면이 있다고 누가 지정하지 않아도 다 제 짝을 찾아간다.

내 파트너인 계향이 올백으로 빗어 올린 머리를 다시 빗어 넘기며 화사한 웃음으로 인사를 한다.

"회장님, 왜 이렇게 뜸하셨어요? 회장님 기다리느라고 제 목이 반쯤은 더 빠졌을 걸요?"

"사업이 바쁘다 보니 그랬다. 별일 없고?"

"네, 회장님 기다리다 눈 튀어 나온 일 외에는 큰일이 없네요."

"그만 하고, 술이나 한 잔 따라봐라!"

"네!"

내 말에 새초롬이 술을 따르는 계향이다. 우리가 이러는 동안 둘도 왁자지껄 떠들며 각자의 잔에 잔이 채워진다.

"다들 한 잔씩 받았으면 건배 한 번 하지."

전 사령관의 말에 따라 모두 잔을 치켜든다.

"건배사는 각하의 무궁한 안녕을 위해.........."

그 말에 섬칫하여 내 몸이 나도 모르게 부르르 떨린다.

"강 회장, 왜 그러나? 어디 아픈가?"

"이런 자리까지 와서 각하를 들먹이니 거부감이 들어서 그런 것 아닌가? 우리와 달리 민간인 아닌가?"

"그래요?"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어제 저녁에 깜박 잊고 보일러를 안틀고 잤더니 감기 기운이 있는 모양입니다."

얼결에 대충 둘러대고 있는 나다.

"에이, 감기야 술 잔뜩 먹고 기분 좋게 자면, 그 이튿날이면 거뜬한 것 아니오? 젊은 사람이..........!"

"됐습니다. 건배하시죠."

"좋아요! 그럼, 우리 셋의 건전한 성 생활을 위하여.........!"

"위하여!"

전 사령관의 건배사에 아가씨들이 키득거리고 우리는 스트레이트로 단숨에 잠을 비운다. 이렇게 술이 대여섯 순번 들어가자 전 사령관과 나는 얼굴이 붉어지고, 노 사단장은 오히려 얼굴이 더욱 창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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