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시우보(虎視牛步) -- >
10[대원인터내셔널 3조 배럴로 추정되는 유전발견] 대원인터내셔널 측과 베네수엘라 정부의 공동 발표에 따르면, 대원 인터내셔널은 베네수엘라에서 단일유전으로는 세계 최대인 3조 배럴로 추정되는 유전을 발견했다고 한다. 대원인터내셔널의 오코리노강 유전 발견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 국민으로서는 가슴을 뛰게 하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남한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광대한 면적에 매장되어 있는 원유가 비록 중질유로 가치는 좀 떨어지지만, 3~5달러만 더 들이면 경질유로 변화시킬 수 있어, 지금과 같은 고유가 시대에는 충분히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다고, 대원인터내셔널 측은 설명한다. 자세한 소식은 추가 자료가 들어오는 대로 상세히 전하겠다.
한 건을 한 것은 한 것이고, 우리는 호시우보(虎視牛步) 즉 호랑이의 예리한 눈으로 전면을 직시하며, 황소걸음처럼 오늘도 뚜벅뚜벅, 미래 세계 제1의 기업을 일구기 위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느리지만 오늘도 힘차게 전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 상백 사장은 바로 오스트레일리아로 출국해, 네임켈리와의 협상에 돌입한 상태다.
기업은 이렇게 잘 나가는데, 내가 탄 차내에서는 정희가 시종 불안한 얼굴로 좌불안석이다. 이를 보고 있노라니 나마저도 기분이 심란해지는 듯해, 그녀의 기분 전환을 위해, 엉뚱한 것을 묻는다.
"원전이는 누굴 닮은 것 같아?"
"나는 자기."
"나는 당신을 닮은 것 같은데?"
"핏...! 아직 두상도 제대로 여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 더 커봐야 알지."
"그런가? 그런데, 요즘 오빠는 뭐하고 있지? 동생 약혼식에도 안 오고 말이야."
"그게........ 발을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어."
"뭐 하다가? 또 술 먹고 그런 것 아니야?"
"교통사고래."
"그 정도 사건이면 진즉 나한테 연락했어야지."
"염치가 없다고 알리지 말래서........."
"알았다, 알았어. 지금도 백수야?"
"아니야!"
가재는 게 편이라고 내 말에 펄쩍 뛰는 정희다.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안마시술소를 2개나 차려 지금은 잘 나가고 있어."
"흥, 자기나 장모님을 위해 준 돈을 엉뚱한 사람이 전부 가져다 썼군."
"아무튼 누가 써도 우리 식군데 아무려면 어때?"
"알았다. 그만 하자. 어때 마음이 좀 진정 됐어?"
"핏, 자기의 말에 흥분을 했더니 불안한 마음이 좀 가시기는 했지만.........."
"잘 될 거야. 우리 어머니 그렇게 모진 사람도 못돼. 손자까지 안고 가는데 이제 와서 어쩌겠어. 안 그래?"
"자기 말대로 됐으면 좋겠다."
"걱정 말라고 내 말대로 될 테니.........!"
나는 가슴까지 두드리며 호언장담을 한다.
"조용히 해. 아기 깨겠어."
나의 요란한 소리에, 새로 들인 유모의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들 녀석을 힐긋 보며 정희가 하는 말이다. 유모라고 해서 옛날 마냥 젖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정희가 하루 종일 아기를 보느라고 힘들어 해서, 교대로 보아주는 아주머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튼 이럭저럭 청주에 도착해 어머니 집을 찾아가니 집 앞에는 할머니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어느새 칠흑 같던 머리는 하얗게 서리가 내렸고, 피부는 닭살 모양 쪼글쪼글해 졌다.
어릴 때 나를 업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잘도 놀러 다니시던 여인은 간곳없고, 팔십 노구만이 장손을 기다리느라 아픈 허리를 두드리고 계신다.
"할머니!"
"오~! 우리 맏 상주...........!"
나의 부름에 그제야 나를 발견하신 할머니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시려 하나 생각과 같이 몸이 잘 움직여주지 않는지, 허둥대기만 하신다.
"할머니, 잘 계셨어요?"
내가 부둥켜안자 키가 더 줄어들어 이제는 가슴팍에 밖에 안 차는 할머니가 반가운 기색에서 갑자기 노여운 기색으로 돌변하더니 나를 떠민다.
"너는 저리 가, 녀석아! 우리 손자며느리부터 안아봐야지."
할머니의 말에 뻘즘이 서 있던 정희가 감격한 얼굴로 할머니에게 달려든다.
"할머니..........!"
"그래, 그래! 어여 들어가자! 우리 증손자를 위해서 네 시어미가 수수팥떡이며 온갖 것을 다해놓고 기다린단다."
눈물이 글썽글썽하는 정희의 등을 토닥이는 한편 마음의 부담마저 덜어주려 애쓰는 할머니다.
"할아버지는 요?"
"너 오는지 본다고 나갔는데, 못 만난 겨?"
"네."
"이 영감탱이가 또 어디 가서 아침부터 막걸리 타령이나 하고 있는 거 아녀?"
"그럴 리가 있겠어요? 길이 엇갈렸나보지요."
"그 영감탱이는 상관 말고 어여 들어가자. 배들 고프지는 않니? 하얀 쌀밥이랑, 미역국이랑 전부 끓여 놨다. 어여 들어가자."
"네, 할머니!"
정희의 손을 꼭 잡고 계속 빨리 집으로 들어가자고 재촉하는 할머니시다. 그런 할머니가 돌연 고개를 돌려 묻는다.
"우리 증손은? 늙으면 이래서 빨리 죽어야 뎌. 증손자 본다고 이렇게 마중을 나와 놓고서는 그새 깜빡하니.......... 정신머리 하고는.......... 에이......... 쯧쯧...........!"
"저기 안겨 있잖아요."
"어디.........?"
"할머니, 여기요."
나는 유모의 품에 안겨 있는 놈을, 밭에서 무 뽑듯 쑥 뽑아 올려 할머니에게 보여준다.
"아이고, 고놈! 잘도 생겼다. 장차 장군감이야!"
"에이, 그깟 장군보다는 요새는 기업의 회장이 났습니다. 할머니!"
'낫기는 뭐가 나?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 놈을...........
"하하하..........! 하긴 그렀네요."
우리가 웃으며 떠들다보니 어느새 집의 현관 앞에 도착했다.
활짝 열린 현관 안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슬리퍼를 신은 채 나와 계신다.
"어서 오너라! 우리 며늘아기!"
아버지의 정희에 대한 대대적인(?) 환영에 잠시 아버지를 째려보던 어머니가 한 마디 한다.
"오느라고 고생들 많이 했다. 그런데 어째 손자 놈은 안 보이는 겨?"
"여기 있잖아요"
나는 다시 넘겨주었던 아들 녀석을 뽑아내(?) 어머니 품에 안겨드린다.
"어디 보자~! 오~! 그놈 참, 잘도 생겼다! 까꿍!"
한참 손자를 어르시던 어머니가 정희가 보고 말한다.
"아무튼 고생 많이 했다. 이렇게 손자까지 안고 온 마당에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니. 물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니? 지나간 일은 다 잠시의 시련이었다고 생각하고, 잊어라. 맺힌 것이 있으면 오늘부로 전부 풀고. 나도 이제 너를 우리 집 정식 맏며느리로 인정할 테니.........!"
"어머니, 고마워요! 흑흑흑..........!"
어머니에게 달려들어 흐느끼는 정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어머니가 말한다.
"고맙긴 뭐가 고마워? 다 내가 몹쓸 짓 많이 했지."
"아니 예요. 이렇게라도 저를 받아들여주시니 정말 고마워요. 평생을 아버지 어머니 잘 봉양하고 효도하며 살게요."
"말이라도 고맙다. 요즘 것들은 저희들 밖에 모르는 세상이 돼나서, 빈말이라도 그런 말들 입에 올리는 법이 없단다."
"잘할게요, 정말 잘 할게요, 어머니! 흑흑흑........!"
"그만 진정하고 어서 들어가자. 내 손자 녀석 돌상을 봐놨으니, 이 녀석이 뭘 집는지 보고 싶다. 연필을 집으면 공부를 잘 할 것이고, 돈을 집으면 잘 살 것이며, 실을 집으면 오래 살 팔자로다. 어떠니? 아이 이름이 원전이라고? 원전이는 뭘 집을 것 같아?"
"저는 어머니 연필을 집을 것 같아요. 저이를 닮았으면 공부는 잘 할 거잖아요?"
"그래, 그건 네 말이 맞다. 저 녀석은 욕심 사납게도 연필과 돈을 동시에 집었다 만은......?"
고부간에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대청마루에 둘러앉아 있다. 이미 잘 차려진 돌상을 앞에 두고.
"얘야, 태민이 에미야!"
"네, 어머니!"
갑자기 할머니가 어머니를 부르신다.
"돌잔치상도 중요하지만 저 아이들 배 안 고프겠니? 지금 이 시간에 도착하려면 새벽에 길을 나섰을 텐데."
"그도 그렇군요. 우선 밥 한 술씩 뜨고 하자."
"아니 예요. 어머니 샌드위치 만들어서 우유랑 한 잔씩 하고 왔더니, 그렇게 배 안 고픈데요. 자기도 그렇지?"
"나도 별로 배는 안 고프지만, 커피는 마시고 싶군."
"그럼, 차 한 잔씩 하고, 아이 잔치 상을 보자."
"네, 어머니!"
잽싸게 주방으로 달려가는 정희다. 우리 식구치고 커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푹푹 찌는 더위에 냉커피를 만들어 맛있게 먹고 있자니, 이제야 동생들 생각이 난다.
"동생들은 요?"
"전부 학교에 갔지. 어디에 갔겠니?"
"오늘 내가 쉬어서 일요일인 줄 착각했네요."
"며늘아기야!"
어머니가 정희를 부르신다.
"네, 어머니!"
'며늘아기' 소리에 반가운 낯으로 신속히 대답하는 정희다.
"나 몰래 시누이, 시동생들 용돈을 주는 모양인데, 너무 많이 주진 마라. 돈 귀한 줄을 알아야지, 흔전만전 쓰고 다니면 안 돼."
"네, 어머니! 그냥 어디 가서 창피 안 당할 정도만 주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다면 야 문제가 없지만 말이다. 자 이제 커피도 다 마셨으니, 이 녀석이 뭘 집는지 볼까?"
어머니는 유모에게서 받아든 이래로 아직도 원전이를 품에 꼭 안고서 돌잔치상이 차려진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원전이를 잔치상 앞에 내려놓는다. 그러자 할머니 품에 안길 때부터 잠에서 깨어나 두리번거리던 녀석이, 호기심에 기어가 상 위에 있는 것을 집는데, 하필 돈이다.
"제 애비마냥 사업을 아주 크게 하려나 보다."
"그러게요."
못처럼 군입을 떼신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가 동의하는 찰나에, 녀석이 또 하나를 집는데, 연필이다.
"우와..........! 우기 애기 공부도 잘 할라나 보다."
공부를 잘 못하는 자격지심으로 제일 기뻐하는 정희다.
"제 애비 닮았으면 아마 공부는 잘 할게다."
"그럼요, 어머님!"
어머니의 말에 금방 맞장구를 치는 정희다.
녀석이 두 개를 집고 사방을 두리번거리자 그제야 원전이를 번쩍 안아드는 어머니시다. 이후 우리는 이른 점심 겸해서 쇠고기 미역국에 흰 쌀밥을 말아 한 그릇씩 먹고, 어쩌다보니 사업이야기로 접어든다. 내가 먼저 묻는다.
"어머니! 지금도 가든하고 예식장하고 계신 거죠?"
"응, 왜?"
"잘 되는 거예요?"
"그럭저럭 된다 만은, 처음 같지는 않다."
"그곳에 아파트를 지으면 분양이 잘 될 것 같은데, 어머니 생각은 어떠세요?"
"글쎄다. 네가 그렇다면 그렇겠지만, 그렇게 되면 내 소일거리가 없잖니?"
"제 생각은 말이 예요. 그 넓은 땅에는 대단위 아파트를 짓고, 정, 어머니 하실 일이 필요하시면, 교외에 다시 땅을 사서 예식장을 최신식으로 짓는 것은 어때요? 예식장 관리야 전부 남에게 맡기고, 오가며 잘하고 있는지, 감독이나 하시면 편할 것 같은데?"
"그래, 한 번 생각해보자. 너무 갑작스런 일이 돼놔서."
"그렇게 하는 방향으로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래."
"아버지는 고물상을 다시 교외로 옮기셨다면서요?"
"그래, 그곳에 2,000세대가 넘는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좀 비싸게 팔아먹고, 지금은 남쪽 외곽으로 옮겨 하고 있지."
"경기는 어때요?"
"괜찮아. 큰돈은 못 벌어도, 웬만한 사업, 안 부러울 정도는 된다."
"이제 그만두시고, 쉬시는 것은 어때요?"
"아니야. 사람은 자고로 일거리가 있어야, 건강하고, 시간도 잘 가는 법이야."
"그럼, 알아서 하세요."
"그런데, 너, 옛날에 종합세 내가 내준 것은 안 갚는 거냐? 아무리 부자지간이라도 돈거래는 확실하게 해야지?"
"아~ 그게 언적 얘긴데, 이제 와서 달라고 하시면........."
"소위 재벌이아는 놈이 더 하군. 나도 양보 못하니, 서울 올라가거든 이자 쳐서 전부 내놔."
"알았어요. 드리면 될 것 아니 예요."
"하하하......... 그래, 요긴하게 쓰마."
"에이........ ~ 괜히 내려왔잖아!"
"뭐야..........?"
"하하하..........!"
"호호호..........!"
우리 식구들이 이렇게 웃고 떠들다보니 시간이 어언 오후 2시다. 그 중에서도 정희가 유독 제일 말이 많다.
처음 올 때와는 달리 시어머니의 인정을 받았다는 기쁨에, 이 얘기 저 얘기, 쉴 새 없이 재잘거리고 있는 정희다. 나는 그런 정희를 재촉해 일찌감치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우리가 서울로 출발을 하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진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장마가 다시 시작되는 모양이다.
---------------------------------------============================ 작품 후기 ============================오늘은 바람이 무척 불더군요.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부디 좋은 일만 가득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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