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78화 (78/135)

< -- 호시우보(虎視牛步) -- >

6 나는 기자들의 등살에 결국 정희에게로 가지 못하고 회사로 출근해 업무를 보아야 했다. 그리고 훗날이지만 아들 녀석의 이름은 정희가 철학관에 가서 이름을 받아왔는데, '원전' 이라는 이름은 살렸지만, 한자가 바뀌었다.

'전(電)'을 '전(典)'으로 바꾸어 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원전의 발전 방식을 가지고 어느 기자의 예측대로, 미국에서 압력을 가해와 숨 가쁜 외교전이 벌써 두 달째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카터 정부는 발전소 건설을 직접적으로 웨스팅하우스사에 주라는 말은 못하고, 중수로 형을 경수로 형으로 바꾸라는 압력을 꾸준히 가해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대로 중수로 형은 핵폭탄 제조의 위험성이 너무 크다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우리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미국 측에서는 전가의 보도인 미군철수 문제를 다시 거론하며 정부를 곤혹스럽게 한다.

그 전에 미군철수 문제가 어떻게 타결되었느냐 하면,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선거 공약으로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한반도에서 미군을 완전 철수 시키겠다는 공언을 했다. 그 결과 일차로 어느 정도의 미군을 철수하긴 했으나, 작년도 즉 78년에 카터가 2박3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며 잠정 보류키로 한 것을, 다시 거론하고 나온 것이다.

박 대통령의 입장으로서는 핵무장도 중요하지만 당장 미군이 철수한다면, 북괴의 위협에 맞설 수 없다 판단하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핵무장은 미래의 일이지만 미군철수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격이니, 어찌 고민스럽지 않겠는가.

두 달여의 뜨거운 외교전 끝에 내려진 결론은, 한국 정부의 대외적인 신뢰문제도 있으니 한 번 발표한 시공업체는 바꾸지 않되, 중수로 형을 경수로 형으로 바꾸어 시공키로 했다. 대신 미국 측에서는 설계에서부터 최종 감리까지 모든 것을 관여하기 위해, 벡텔 본사에서 기술용역 인원을 파견하기로 하고, 그 보수를 대원에서 지급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줄 달리기가 이어졌는데, 미국 측은 웨스팅하우스를 밀었고, 한국 정부에서는 그래도 우호적인 벡텔이 선정되기를 바랐다. 결국 큰 건을 양보한 우리 정부의 승리로 끝나 벡텔 본사에서 상당수의 인원이 파견 나오기로 최종 결정된 것이다.

이외에도 우리 정부는 중수로 형을 포기하는 대신, 원료의 자급자족을 위해 농축우라늄 공장을 한국에 건설하는 것을 용인 받고, 그 주관사로는 역시 대원이 선정되었다. 대신 지분율은 정부 51%, 대원 49%로 최종 확정이 되었다.

이러고 나서야 원전 건설이 본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건설비가 더 드는 경수로 형이기 때문에, 우리 측에서는 정부에 추가 비용을 청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최종 원전 3기 건설가로 2조3천억 원이 책정되어 본래대로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말이 2조3천억이지, 지금도 엄청난 돈인데, 당시로서는 가히 상상도 잘 안가는 천문학적 숫자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로써 대원이 중후장대한 분야에서 대내외적으로 그 이름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면, 그동안 철저한 준비를 갖추고 5만대의 시제품을 마련해 발매에 들어간 워크맨은, 경박단소한 분야에서 그 이미지를 한 번 더 업그레이드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대원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한국의 이미지 또한 한 단계 상승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개발국가로 알려졌던 한국에서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발매가 시작된 일본은 물론 미국 조야까지 들썩일 정도로 그 파급력이 엄청났다.

뿐만 아니라 발매 후 세 달이 지나, 먼저 발매를 시작한 일본과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대원은 그 여세를 몰아 유럽까지 상륙했다. 그러자 이제는 유럽에서도 대원은 물론 한국의 이미지 개선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됐다. 곧 걸어 다니는 홍보사절이 워크맨이다. 그러나 워크맨이 처음부터 이렇게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먼저 발매를 시작한 일본과 미국에 엄청난 광고비를 쏟아 부어 TV는 물론 라디오, 신문에 이르기 까지 융단폭격을 하듯 전 매체에 광고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전자분야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 시장과 미디어로부터 혹평을 들어야 했고, 첫 달은 월 5천 대도 판매치를 못했다. 그러나 일단 사서 사용해본 사람들로부터 스테레오 성능이 우수하고, 품질도 썩 괜찮은 데다,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휴대의 용이성까지 거론되며, 이들이 입소문을 타고 들불 번지듯 번지기 시작하자, 다음 달 부터는 문제가 달라졌다. 당시의 일본 물가로도 결코 작은 돈이라 할 수 없는, 3만3천 엔에 발매를 시작했음에도 주문량이 폭주를 해, 월 5만대의 시제품이 금방 동이 날 정도였다.

거기에 워크맨(WALK MAN)이라는 말은 일본식 조어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사운드 어바웃(SOUND ABOUT)이라 등록돼 출시된 워크맨이, 큰 호평을 받아 점점 인기몰이를 해가는 중이다. 그러니 이를 생산하는 전자공장은 3교대 풀로 생산라인을 가동해도 물량이 부족해 쩔쩔매기 시작했다. 당시의 환율을 감안해 미국에서는 단돈 99달러로 발매가 시작되자 당시 국민소득이 12,000불에 이르렀던 미국인들로서는 결코 큰돈이 아니었기 때문에, 점차 유행을 타고 너도나도 하나씩 장만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는 긴급히 라인을 두 배로 증설하는 한편 생산직 사원도 이에 맞추어 긴급히 충원해야 했다.

이것이 인기를 업고 유럽까지 상륙하자 거기에서도 생산라인을 또 두 배로 확장하고, 맞추어 직원을 배증시켜도 여전히 폭주하는 주문량을 미처 다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한국에서는 99,000원에 발매되었지만, 당시 간신히 일인당 국민소득 1,000 달러에 턱걸이 하는 한국 국민들의 실정으로서는, 아직 선뜻 구매하기에는 고가품이라 수요가 그렇게 많지 않음에도 그랬다.

아무튼 우리가 월 20만 대의 공급 물량에서 증설을 멈추자, 미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일본 업체들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원 역사에는 이 몫이 모두 돌아가야 할 소니를 필두로 마쓰시타 전기라든지 주변업체들이 유사품을 들고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욕심을 더 부리지 않고 다음 단계의 제품을 개발하도록 GE나 IBM 연구진에 의뢰를 한다.

즉 기존의 워크맨의 카세트 기능에 녹음기능과 더불어 라디오 수신까지 가능한 제품을 똑같은 크기에 집어넣도록 요구를 한 것이다. 미래의 일이지만 이 제품은 그 후, 이년 후에 출시가 되어 약간씩 시들어가기 시작하는 워크맨을 위시한 우리의 전자부분의 효자상품 군중의 하나가 된다.

이 제품 외에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 칼라TV방송이 전면적으로 실시될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전자사업부에서 흑백TV뿐만 아니라 칼라TV도 같이 만들도록 지시를 한다. 그러나 이 제품을 제작하려니 기술도 기술이지만, 벌써 이 부분에 대한 원천기술이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의 선발주자로 최초로 라디오와 흑백, 칼라TV를 만들어낸 미국의 RCA라는 전자회사와 기술제휴를 체결하기로 하고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최초의 텔레비전을 발명한 기업답게 많은 이윤을 남겨 미국의 NBC방송을 인수하고, 랜덤 출판사니, 랜트카 분야 등을 공격적으로 사들인 까닭에, 자금난에 부딪힌 그들은 나의 그들에 대한 자사 지분 인수를 요구한다. 할 수 없이 나는 2억 달러를 투자해 지분 20%를 소유하고 나서야, 그들의 전매특허인 라디오 및 전 부문의 TV 외에도 그들의 축음기까지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결과적으로 이 또한 RCA의 최첨단 기술에 우리의 값싼 노동력이 결합되자, 전 세계를 제패하는 우리의 또 하나의 주력 제품군 중의 하나가 된다. 여기에 RCA의 기술제휴로 부설된 전자시계 공장, 또 일본의 니콘기업과의 기술 제휴로 지은 카메라 공장까지 가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전자부분은 단숨에 종업원 3만 명을 거느리는 거대 기업이 되었지만, 기존의 아남반도체가 소유하고 있던 화양동 공장은, 더 이상 확장할 수가 없어서 용지난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나는 대체 후보지 물색에 나선다.

그 일환으로 나는 우리 전용공단이 조성되고 있는 충남 당진을 향해 출발한다. 잘 닦인 고속도로를 달려, 수원에서 화성으로 접어드니 비포장 1차선 도로가 내 몸을 고단하게 한다.

아니 엉덩이가 아파 몸살이 날 지경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픔을 참고 한창 공단이 조성중인 당진에 도착하니, 강한 바닷바람 속에 각종 공사장비와 연신 오가는 대형트럭으로 인해, 먼지와 소음이 만만치 않다. 그래도 한편에 조립식으로 짓고 있는 자동차 전용 공장의 일부를 보니 가슴이 뿌듯하다.

자동차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 더 언급하자면, 나는 아이아코카에게 K-2라는 암호명으로 준중형의 외관에 전륜구동, 고효율의 연비를 채택한 우수한 품질의 소형차 개발을 지시해 놓은 상태다. 그래서 조만간 그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아무래도 염분이 가미된 바닷바람이나, 중국이 가까워 봄이면 나타날 황사 등이 전자 공장에는 치명적일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전자공장의 부지로는 다른 곳으로 물색할 생각을 굳힌다. 그래서 대안으로 현 화양동 부지를 더 확장할 수 있는지, 또 기 조성된 공단을 이용할 생각으로, 부평과 청주산업단지가 우선 머리에 떠오른다. 이에 나는 수행한 비서실장과 기획실장에게 3곳의 부지를 알아보도록 한다.

여기서 나는 기왕에 길을 나선 김에 조선소가 위치한 경남 거제도를 향해 차를 몰도록 지시한다. 그러나 막상 지시를 하고나니 우리나라 최남단까지 갈 것을 생각하니 아득하다. 내심 헬기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이 부분에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항공기는 아니더라도 헬기 정도는 어느 회사에서든지 기술 이전을 해주어 조립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나는 곧바로 기획실장에게 헬기의 기술 제휴 건과 생산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그 과정에서 내 전용 헬기 1대를 구입하는 방안도 알아보라고 지시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옥포조선소를 향해 출발한다.

* * *막상 답답한 내륙에만 있다가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광활한 바닷가로 오니 우선은 가슴부터 탁 트여 시원한 느낌이다. 우리의 출현 소식을 듣고 황급히 마중 나온 갈색머리에 파란 눈의 이국인사장과 한국인 부사장을 보니 비로소 사업장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안내 속에 전경을 둘러본다. 우리 대원조선소가 노르웨이의 아커야즈사와 영국의 캠멜 레어드사와 각각 25%와 12%의 지분을 주고 설립되었다는 것은 이야기 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 특별히 우호적이었던 레어드사의 사장 캠멜 레어드 3세를 우리는 오랫동안 공을 들여 전격적으로 대원-아커야즈 조선소의 사장으로 영입할 수 있었다. 그는 캠멜 레어드 사장직도 아직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수시로 양국을 오가며 현재 조선소 발전에 당당히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의 말로는 조만간 영국 조선소에서는 손을 떼고, 한국의 대원조선에만 전념한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크다. 안내는 아무래도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캠멜 레어드 3세보다는 한국인 부사장 손 춘경 씨가 전담하다시피 한다. 그런데 손 춘경 씨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해군 쓰리 스타(three star) 제독 출신으로, 우리가 장래의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영입한 인물답게, 행동과 말에서 벌써 절도가 있고 용의주도하다.

"회장님! 저 옆에 우리와 나란히 붙어있는 회사가 대우조선해양으로 작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그들에게 약간의 도움도 받지만 치열한 경쟁상대인 것만은 틀림없죠."

그의 말을 받아 내가 묻는다.

"100만 톤 도크는 내년 말이나 되어야 완공된다면서요?"

"그렇습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즉 발상을 달리하는 방법인데요. 무슨 물체든지 그것을 보면 여기서 좀 더 개량할 여지는 없는지? 크기를 좀 더 크게, 아니 줄여본다.

기능을 몇 가지 더 추가시키거나 없애 단순화 시켜본다. 뭐 이런 식으로 사물을 가끔 다른 관점에서 보아 보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배를 만드는 것도 그렇습니다.

꼭 배는 도크 안에서 건조해야 하는가? 물론 도크 내에는 물이 차있어서 완성된 배가 스스로나 큰 예인선에 의해 바다로 나가기 쉽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런 문제라면 옛날 원시적인 물체의 한 이동방법과 같이 굴대를 이용해 배를 미끄러뜨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오늘날과 같이 기계문명이 발달한 요즈음에는 원시인마냥 통나무를 사용할 필요가 없고, 가공한 거대한 샤프트에, 가능하다면 베어링까지 장착하고 모터까지 구동한다면, 꼭 도크를 고집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이 말입니다."

"신선한 발상입니다. 회장님! 꼭 한 번 시현해 보겠습니다."

손 춘경 부사장의 말과 달리 레어드 3세는 나의 말을 통역을 통해 전해 듣고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이렇게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아집에 의해 고정관념의 틀에 박힐 수 있으므로 그 점은 주의를 요한다.

아무튼 나의 말은 실제로 현대중공업에서 채용해 실현한 방법이기도 해, 큰 무리 없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어 나는 그들의 안내로 작업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건조 현장의 인부들을 격려하고, 때로 그들의 애로사항도 경청한다. 그래서 즉석에서 가능한 것은 들어주기도 하고 불가능한 것은 딱 잘라 거절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모처럼 회장의 나들이에 아무 것도 그들에게 베풀지 않고 돌아갈 수가 없어서, 회식비로 금일봉을 내놓고, 다음날 일찌감치 중공업과 정유공장이 위치한 동해안의 온산으로 출발한다.

------------============================ 작품 후기 ============================이것저것 자료조사를 하다보니 이번 한 회 쓰는데 6시간이 걸렸네요.

그런데도 헬기에 대해 입에 맞는 자료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헬기에 대해 좋은 정보를 가지고 계신 분이 올려주신다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종 세트를 주신다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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