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시우보(虎視牛步) -- >
6일본에서 가져온(?) 헤드셋 기술을 전자의 김 양수 사장에게 넘겨주고, 고품질의 작품을 만들어내라고 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아무래도 외관이 너무 투박하다. 그래서 나는 애플컴퓨터의 잡스를 떠올리고, 그에게 좀 더 얇으면서도, 사각의 끝부분이 좀 더 라운딩 처리가 되도록, 디자인 의뢰를 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제품을 생산할 예정으로 샘플을 뽑으라 했더니, 이제는 금형이 말썽이다.
미국 GE에서 금형도 항공편으로 부쳐왔는데, 샘플만 만들 작정으로 양산을 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SS41 이라는 재질로 금형을 만드는 바람에, 금방 금형이 파손되겠다는 김 사장의 보고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 다시 좋은 재질로 금형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려다가, 순간적으로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국내 산업체 중 금형기술이 뛰어난 곳을 알아보고, 그 곳에 금형제작 의뢰를 하도록 지시한다.
그 결과는 오일 후에 나타났는데, 오리엔트 시계라는 사명을 가진 시계전문 생산 업체였다.
강 영준 씨가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회사로 59년도에 창립되어 시계 외길 인생을 걷는, 정말 한 우물만 파는 회사였는데, 그 회사 내에 전문적인 금형부서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 일단 부품 하나에 대한 금형제작을 시키도록 했다.
그 결과는 D11 이라는 상위 재질로 제대로 만들어 왔는데, 타공 실험을 해보니 절단면조차도 아주 깨끗이 양호하게 나왔다. 그래서 나는 전량을 그 회사에 금형 제작을 의뢰하고,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만들어 줄 것을 주문했다.
내가 이렇게 워크맨의 양산 체제를 갖추어 가는 동안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협상은 여전히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서로 원자로부분 시공을 맡겠다며, 어느 누구도 한 치의 양보를 않는 것이다. 이제 입찰 마감일은 불과 1주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렇다.
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인터내셔날의 이 사장과 정 비서실장 그리고 이 기획실장을 불러 회의를 개최한다.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우리 단독으로 응찰하되, 가압중수로형으로 할 것이냐, 경수로형으로 할 것이냐를 자체적으로 결정해, 응찰하는 것으로 합시다."
나의 말에 이 사장이 발언을 한다.
"벡텔의 협조를 얻는다면 두 가지 다 시공은 가능하나, 각각 일장일단이 다 있습니다. 경수로 형은 경수 즉 양성자 하나인 보통 물을 사용하므로, 원전 가동에 꼭 필요한 물을 얻는 비용이 쌉니다.
반면에 중수로 형은 문자 그대로 중성자 하나가 더 있어 보통 물보다 무게가 1.2배 더 나갑니다. 그런데 이 중수를 만드는 기술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 중 수 한 컵 값이 고급 위스키 한 잔 값과 맞먹습니다."
잠시 호흡을 고른 이 사장의 말이 이어진다.
"그 대신에 중수로 형은 농축할 필요가 없는 천연우라늄을 사용하므로 우라늄은 보다 싸게 구할 수 있고, 핵연료 교체 시에 가동을 멈추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경수로형 보다는 배가 많은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가 있어, 보다 쉽게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원전 건설비가 보다 저렴합니다. 이에 비해 경수로 형은 싸게 물을 얻을 수 있는 반면에 3.2%정도의 농축된 우라늄을 써야하므로, 연료 자체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농축하는 데는 이 또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원자력발전소를 가지고 있다 해도,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는 기술이 없으면 선진국에서 반드시 사와야 합니다.
반면에 제일 안전하기는 합니다."
전문분야로 들어가니 머리 나쁜 사람은 헷갈리기 딱 좋을 정도로 장황한 이 사장의 발언이다. 그래서 내가 정리를 한다.
"쉽게 정리하죠. 중수로 형은 원전 건설비가 싸다. 핵폭탄을 보다 쉽게 만들 수 있다. 핵연료 교체가 쉽다. 반면에 물(중수) 값이 비싸다. 안전도 면에서 떨어진다. 경수로 형은 이와 반대로 생각하면 딱 맞겠군요. 제 생각입니다만 단순 비교를 해도 중수로 형으로 가는 것이 옳을 것 같군요."
"제 생각도 회장님 생각과 동일합니다."
비서실장이 찬성하고 이 실장 또한 찬동하고 나선다. 묵묵히 셋의 이야기를 듣던 이 사장도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의한다.
"그럼, 최종 견적은 중수로 형으로 오퍼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시죠."
이렇게 해서 대원 그룹 단독으로 응찰하였고, 중수로 형으로 견적을 내어, 마감 시한 하루 전에 제출을 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프랑스의 프라마톰 사도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밝혀져 우리를 더욱 긴장시킨다. 아무튼 우리의 최종 입찰가는 3기 통틀어 1조7천억 원이다.
* * *그로부터 한 달 후. 원전 건설을 주관하는 주무부서인 동력자원부 대 회의실.
세계적인 대형 프로젝트이다 보니, 세계 유수의 통신사는 물론 입찰에 응한 미국, 프랑스, 캐나다의 외신 가자들, 여기에 국내 기자들 까지 가세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한쪽 구석에서, 우리도 발표를 할 주무 장관의 출현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시간은 벌써 발표 예정 시간인 10시 30분을 훌쩍 지나 근 50분이 다 되어 가고 있는데, 발표가 지연되고 있어, 우리를 더욱 초조케 한다.
그 중에서 유독 나는 더욱 초조하다. 오늘 새벽에 정희가 산통이 있어, 가까운 산부인과에 입원을 시켜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발표를 보고 산부인과로 직행하려 했더니, 남의 사정과는 아랑곳없이 지연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초조한 마음에 무의식중에 주머니로 손이 간다. 지금은 담배를 안 피우지만 전생의 버릇대로 담배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오래된 습관이 고치기 어렵다는 반증이리라. 그런데 마침 장내가 조용해진다. 동자부 장관이 출현한 것이다.
그의 출현에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이 꿀꺽 넘어간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사장, 정 비서실장, 이 실장 모두 긴장한 빛이 뚜렷하다.
"대통령의 재가 과정에서 조금 문제가 있어서, 발표가 지연된 점, 우선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럼 고리 원전 2,3,4호기를 시공할 업체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여기서 말을 끊고 장내를 한 번 휘둘러본 동자부 장관이 괜히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손에 든 내용물을 읽어간다.
"고리 원자력발전소, 2,3,4호기를 시공할 업체로는, 가압중수로 형을 택해 입찰에 참가한, 최종 입찰가 1조7천억 원을 써낸 업체입니다."
긴장을 유도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장내를 휘둘러보는 동자부 장관이다.
"대원그룹의 대원인터내셔날이 고리 2,3,4호기의 시공업체로, 최종 선정되었음을 알려드리면서, 이상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관계자나 기자 분들의 추가 질문은 사양하겠습니다."
정말 누가 붙들고 질문이라도 할세라 총총히 사라지는 동자부 장관이다. 한 순간 멍했던 우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서로 껴안고, 환성을 지르며 기뻐한다. 와중에 카메라 플래쉬는 쏟아지고 벌써부터 마이크를 들이대는 놈(?)도 있다.
"당당히 세계 유수의 기업을 물리치고, 월성1호기에 이어 금번에는 고리원전 3기도 수주하게 되었는데, 그 소감을 한 말씀 해주시죠. 강 회장님!"
"너무 감격해서, 지금 말이, 잘........ 안 나옵니다. 잠시 후에........ 하겠습니다. 양해하십시오."
나는 정말 감격으로 흥분해서 종전의 말도 띄엄띄엄 해야 했다. 잠시 후 내가 진정된 것을 눈치 챈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외국으로 국부가 유출되지 않게 되어 천만다행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그 점에 대해서는 매우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국민 여러분께서도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같이 축하해주시고, 저희들은 최선을 다해 안전하면서도, 최 품질의 원전을 기필코 완공해, 전력난으로 고생하시는 국민께, 전력으로 보답 드리겠습니다."
"말씀도 잘 하시는데 원래 타고나셨습니까?"
나는 쓸데없는 질문에 짜증이 났지만 애써 웃으며 답변을 한다.
"제가 바쁩니다. 다음 질문 하실 분 안 계시면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만요. 강 회장님! 금번 입찰에 뒤늦게 뛰어든 프랑스의 프라마톰 사는 핵연료의 농축기술을 이전한다는 조건을 달아, 값이 조금 비싸도 이곳으로 선정해야하지 않을 까로, 정부를 끝까지 곤혹스럽게 했는데, 대원에서도 그럴만한 기술이 있으며, 있다면 의향이 있는 지요?"
"처음 듣는 소식이라 생각을 좀 해보아야겠습니다."
"농축 기술은 있습니까?"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기자다.
"지금 현재로서는 무어라고 답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양해하십시오."
"대원에서 금번 입찰에 성공한 것은 발표에도 나왔듯이 가압중수로 형입니다. 이를 두고 월성1호기 때부터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말썽이 많았는데, 금번에도 그럴 소지가 다분합니다.
벌써부터 외신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제안한 경수로 형이 채택되지 않으면, 당사국간에 핵확산 문제로 외교마찰이 예상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런 부분은 제가 고민할 게 아니라, 정부의 주무부서에서 대응해야할 사안이라 봅니다. 다만 우리 그룹에서는 중수로 형이, 여러 면을 비교해 보아도 한국 실정에 알맞기 때문에, 중수로 형으로 결정을 하고 입찰에 응했을 뿐입니다."
"중수로 형은 값은 싸지만, 안전하지가 않지 않습니까?"
이 자는 원자력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갖고 질문하는 자다. 하기야, 여기에 취재를 올 기자정도라면, 기초적인 상식은 다 알고 왔을 것이다. 나의 답변이 이어진다.
"사실이 그렇지만, 우리는 중수로 형이라도, 안전에 최우선을 둔 건설을 할 것입니다. 답이 되었습니까?"
"네!"
이 때다.
한 여성이 나를 에워싼 기자들을 뚫고 들어오느라고 애를 먹고 있다. 이를 눈치 챈, 내 경호원 한 명이 그를 내 앞까지 데리고 들어온다. 정희를 전담 경호하고 있는 한 숙자 팀장이다.
"헉헉.......!
회장님......... 아들........ 아들을 낳으셨습니다."
"네?"
내가 반가운 소식에 잠시 멍 하는 사이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져 들어온다.
"설마 강 회장께서 벌써 자손을 본 것은 아니겠지요?"
"사모님이 낳으신 겁니까?"
"언제 결혼은 하셨습니까?"
내가 너무 당혹해 대답도 못하고 있는데, 옆에 서있던 비서실장이 나 대신 대답을 한다.
"회장님의 아들이 아니라, 제 아내가 오늘 산통이 있어서 입원을 했는데, 제가 너무 초조하게 구니까, 발표장이라도 상관없으니,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알리라는 지시를 회장님이 내리셔서........ 아무튼 공교롭게도, 지금 소식이 온 모양입니다. 하하하.........!"
"그런데 왜 땀은 삐질, 삐질 흘리십니까?"
"말 그대로면 정말 부하직원들을 무척 아끼는 강 회장님이지만, 아무래도 둘러대는 느낌이 강하게 옵니다만..........?"
"강 회장님의 아들이 맞죠?"
"확실하죠?"
정 비서실장의 임기응변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의 질문은 집요하다.
"오늘 드릴 말씀은 다 드린 것 같으니, 다음에 뵙죠. 우리도 서둘러 대책마련에 착수해야 하니까요."
"비켜주세요!"
"비키세요!"
나의 즉석 기자회견이 끝났음을 안 경호팀이 일제히 나를 감싸며 길을 틔우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내 차를 따라 붙는 기자들의 차량이 무척 많다. 나는 바로 병원으로 직행할 수 없음을 직감하면서도 내심은 즐겁다. 아무튼 무사히 순산했다는 소식(?)에.
"엉?"
나는 바로 앞좌석에 동승하고 있는 한 숙자 탐장에게 묻는다.
"산모는 무사합니까?"
"초산치고는 큰 산통도 없이 무사히 낳으셨습니다. 병원 측에 따르면 산모의 건강도 양호한 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요, 뭘? 소식을 들으니 이번 원전도 저희가 수주했나본데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고맙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 보신 아드님이 복덩이 인가 봅니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아버님께 큰 기쁨을 안겨드렸으니..........."
"그러고 보니, 그렀네요."
한 팀장에게 그렇게 답변을 하고 나서, 갑자기 아들 이름을 지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이름을 짓는데 우선 떠오르는 이름이 '복덩이' '복남이' '복출이'
'에이 이것들은 너무 촌스럽다.'
그래서 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이 그놈이 태어나자마자 원전공사를 수주했으니, '원전'이다.
"그래, 이 놈 이름은 이 시간부터 강 원전이다"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는 말이다.
"하하하.............!"
나의 말에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하는 측근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