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76화 (76/135)

< -- 호시우보(虎視牛步) -- >

5원자력발전소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1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일본으로 출국한 X-man(소니 침투요원 암호명)들의 활약도 아직은 기대난망인 상태로 정희와 나의 약혼식 날짜가 다가온 것이다.

일요일이라 모두 쉬지만 내가 초청한 사장단들만은 나의 약혼식에 와야 하니 제대로 쉬지를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내가 좀 미안하다.

아무튼 이날 아침 일찍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는 대뜸 정희를 바꿔달란다.

나는 정희를 불러 전화기를 넘겨준다. 둘의 통화 내용을 들어보자.

"아버님 정희예요. 잘 들리세요."

"그래 잘 들린다. 며늘아기야. 오늘 네 시어미가 갑자기 아파 약혼식에는 참석 못하지만 아무튼 축하한다."

"감사해요. 아버님! 흑흑흑..........!"

"오늘 같이 기쁜 날 울기는 왜 우니?"

"아버님이 저를 인정해주셔서 너무 감격해서요."

"하하하........!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단다. 더 더군다나 내 손주도 회임중이라니 인정 안 할 도리가 없지."

"아무튼 아버님, 감사해요!"

"그래, 그래. 약혼식 잘 치르고, 대신 시동생들은 일찍 도착할 게다. 그리고 사돈 내외분께는 면목 없다고 안부도 좀 전해주고.........."

"네, 아버님! 어머님 빨리 나으시길 기원한다고 전해주시고요. 아버님도 건강하세요."

"그래, 그래. 조만간 자리 마련해서 만나보도록 하자."

"네, 아버님! 너무, 너무 감사해요!"

"그래, 그럼. 이만 끊는다."

"네, 아버님!"

"흑흑흑............!"

전화를 끊은 정희가 갑자기 그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낀다. 내가 놀라 다가가 묻는다.

"왜? 아버지가 안 좋은 말이라도 했어?"

"그게 아니고.......... 나를 며늘아기로 불러주시며, 어머님이 편찮아서 못 올라오신다고 굉장히 미안해하시는데, 내가 감격해서 울지 않고 배길 수가 있어?"

"하하하..........! 난 또 뭔 일이라고.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울어도 좋으니, 더 울던지?"

나의 말에 정희가 풀쩍 뛰어올라 내 목에 손을 두르고 대롱대롱 매달리며 말한다.

"자기는 정말 못 됐어. 사람을 놀리기나 하고. 그런데 시동생들도 온 다는데..........?"

"그 촌놈들이 집이나 잘 찾아올라나 모르겠네."

"가만히 보면 자기는 다 좋은데, 동생들한테는 너무 무관심한 것 같더라."

"아직 학생들이라 뭐라 할 여지도 없고, 자기말 대로 그런 면도 없진 않지."

"알면 됐네요. 앞으로는 동생들한테 좀 더 관심 좀 가져."

"알았다. 알았어. 그만 내려와라. 나 목 아프다."

"언제는 이렇게 백날을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더니.........?"

"다 그런 거야.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하고, 나온 후의 마음이 틀린 것과 같이."

"잘났어요. 정말! 메롱~이다."

말을 끝내고 저만치 달아나는 정희를 보며 나는 그냥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다. * * *식은 점심시간을 맞추어 12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장소는 내가 사는 집에서 그냥 조촐하게 하기로 했다. 물론 조촐하게 한다고 해서 아주 초라할 정도는 아니다.

호텔의 주방장을 불러 요즘 말로 하면 가든파티를 하는데, 음식은 뷔페식으로 나오고, 5인조 실내악단도 불러 나름 운치를 살렸다.

아무튼 11시 쯤 되니 두 여 비서인 정 윤희 양과 라니아 양이 먼저 도착한다.

집안으로 들어온 두 여자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정희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축하해요, 언니!"

"저도요. 많이, 많이!"

나이 어린 정희가 어째서 언니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여인의 축하에 발그레 해진 얼굴로 감사를 표하는 정희다.

"고마워요, 두 분!"

"어제 꿈은 잘 꾸었어요?"

정 윤희 양의 물음에 정희가 답변한다.

"잘 모르겠어요. 막상 약혼식을 올린다고 생각하니 너무 긴장도 되고, 너무 기쁘기도 해서, 제대로 잠을 못 잤어요."

"아무튼 부러워요, 언니!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고마워요."

라니아의 말에 다시 한 번 감사를 표시하는 정희다.

이때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세 명이 불쑥 안으로 들어온다.

"축하해요. 오빠, 언니!"

여동생이다. 인물도 반반하고 어디 모난데 없이 후덕한 성품이라 내가 아끼는 동생이자, 남자들 셋에 유일한 여자이기도 한 녀석의 축하에, 정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한다.

"고마워요. 오는데 고생은 하지 않았어요?"

"언니가 터미널까지 차 보내줘서 고생안하고 이렇게 바로 찾아왔잖아요."

확실히 많이 변한 정희다. 내가 회사에 지시해 총무부에서 신차를 몇 대 사겠다고 품의가 올라왔길래, 나는 그전 우리 사업이 초창기일 때, 중고 외제차를 다른 용도로 돌린 사실을 기억해내고, 그 차를 대신 두 대(경호요원 포함) 내주었다.

그랬더니 어느새 그 중 하나를 동생들 터미널 도착시간에 맞추어, 데려오게 한 모양이다.

"축하해요, 형수님!"

"저도요. 형수님, 축하해요."

이제 중학교 삼 학년인 동생과, 중일인 막내의 축하인사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갑자기 달려들어, 그들 들을 껴안으며 말하는 정희다.

"고마워요, 도련님들! 앞으로 이 형수가 잘 할 테니 날 믿고 기다려줘요."

"형수님, 그런데........... 어째 더 예뻐지셨어요?"

중 삼인 놈의 말에 살짝 얼굴을 붉힌 정희가 말한다.

"배불떼기가 뭐가 예쁘다고........?"

"내 말이 거짓말이냐? 우리 형수님 더 예뻐지셨지? 막내야."

"응, 아주 예뻐!"

순둥이들의 말에 정희가 말한다.

"뭔가 요구사항이 있는 것 아니 예요?"

"엄마가 예전부터 짜다는 것은 형수님도 아시잖아요? 나만해도 그래요. 형님이 잘나가는 대기업 회장이라는 것을 선생님들은 물론 학생들도 다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하다못해 짜장면 한 그릇 사달라고 해도 못 사주니, 내가 얼마나 창피하겠어요?"

"그건, 그렇네요. 내가 형님 몰래 용돈 좀 보태줄 테니, 짜장면 정도는 이제 가볍게 서줘도 돼요."

이때 내가 웃으며 끼어든다.

"얘들 버릇없어지니 그러면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요. 돈 벌어서 다 뭐하게요. 도련님들도 최소한의 사회적 체면은 유지하게 해줘야 되잖아요."

갑자기 도끼눈을 하고 달려드는 정희 때문에 나는 황당한 웃음을 짓고 말한다.

"얘들 버릇없어지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그 정도는 제가 가볍게 책임지죠."

"알았다. 알았어. 그만하자."

오늘 같은 날 더 입씨름하기도 싫어서 종전을 선언하는 나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말없이 한쪽 구석에 있는 여동생에게 내가 묻는 말이다.

"어머니 손에 밥 얻어먹는 처지에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으셨나보죠. 못가는 대신 축하한다고 전해주라던데?"

"알았다. 일절만 하자. 더 이야기 해봐야 피곤하니."

여기까지 말을 하고 뒤를 돌아보니 둘째 남동생 놈이 뭐가 즐거운지 피식피식 웃고 있다. 괜히 심통이 난 내가 갑자기 묻는다.

"요즘 공부는 잘 하고 있냐?"

"그럭저럭 반에서 10등 안에는 들어요."

"그 정도 실력 갖고는 명문대가기는 어림없는데?"

"형이 있잖아요. 형 밑에서 심부름이라도 하면 월급이야 주겠지요, 뭐?"

"하하하..........! 이놈들아, 내 밑에 있으려면 수십 대의 일의 경쟁을 뚫고 들어와야 돼. 그럴 자신 있어?"

"그냥은 안 되고요?"

중 삼인 놈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한다.

"막상 너희들을 내가 우리 그룹에 입사를 시켜줬다 하자, 그런데 동료들이나 위의 상사는 전부 똑똑한데, 너희들만 상사가 뭔 말을 하는지, 동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말귀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견디겠니?"

"에이, 설마 그럴 라고요?"

"허허.........! 이놈들 보게. 안 그렇게 될 것 같아? 아무튼 공부 열심히 해야 돼. 형이 왜 너희들을 한 번도 서울에 불러 올려 회사 구경도 안 시켜주고 하는 줄 알아? 너희들이 그런 마음을 먹을 까봐, 그러는 거야. 최소한도의 실력은 있어야, 내 밑에서 하다못해 심부름이라도 할 줄 알라고, 다들 알았지?"

"알았어요, 형님!"

막내가 씩씩하게 대답한다. 그런데 셋째 남동생 놈은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머리만 긁적이고 있다. 그런 그들을 보고 내가 말한다.

"언제 내가 자리 한 번 마련해서 회사 구경도 시켜주고, 어떻게 생활해야 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 좀 하자."

"네, 형님!"

이때 화사한 한복을 입으신 장모님과 모처럼 양복 한 벌을 얻어 입으신 장인어른이 이층에서 내려와 합류한다.

"몸은 좀 어떠세요? 장인어른!"

"괜찮다. 고 혈압이라나 뭐라는데, 처방한 약을 먹으니 많이 좋아졌어."

"다행이군요. 역시 우리 장모님은 멋쟁이이십니다."

"그렇게 봐주니 고맙군. 그런데 청주에서 부모님은 안 올라오시나?"

"갑자기 어머니가 몸이 편찮아서 병원에 입원했대요. 아버님은 병간하시느라 못 오시고요."

"저런, 하필 오늘.........."

다 알면서 그런지, 어쩐지는 몰라도, 내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춰주시는 장모님이시다.

"너희들 인사 안 해?"

"안녕 하세요?"

내가 동생들을 보고 채근하자 일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는 동생들이다. 한동네 살아 다 아는 처지지만 그래도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노릇. 인사를 안 할 정도로 그렇게 버릇없는 동생들은 아니고, 미처 우리가 이야기를 하니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아무튼 우리가 이렇게 가족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점차 시간이 되어가는 지 사장단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들과 서로 축하의 인사를 주고받다보니 어느덧 예정 시간이 다 되어 식이 진행된다.

총무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약혼식은 대원그룹의 사장단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전자반도체 사장 김 양수 씨의 축사에 이어, 정희와 나의 소감 한 마디씩이 발표된다. 그리고 이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예물교환식이 이어진다. 5인조 악단의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나는 3부 다이아몬드가 박힌 18K반지를 정희의 손가락에 끼어주고, 정희 역시 나와 똑 같은 3부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 손가락에 끼워주는 것으로 실제적인 약혼식은 끝났다.

이어 참석한 사람끼리 가든파티가 열려, 서로 술과 안주를 권하며 즐겁게 담소를 나눈다. 그러다가 누구의 제의인지 몰라도 오늘의 주인공인 약혼녀의 노래를 들어보자고 해서, 마냥 사양하던 정희도 할 수 없이 노래를 한 곡 부른다. 나는 그녀가 노래를 부르기도 전에 또 슬픈 노래를 부르는 줄 알고 가슴부터 덜컥 내려앉는데, 그래도 분위기는 아는지,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그럭저럭 불러서 장내의 갈수갈채를 받는다.

이어 나도 억지로 노래를 시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노래 한 곡을 했는데, 나훈아의 애정이 꽃피던 시절을 불렀다. 그런데 가사가 말미에 이상해져서 개사를 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 가사를 조금 옮겨보면 이렇다.

첫사랑 만나던 그날 얼굴을 붉히면서철없이 매달리며 꿈꾸던 사랑의 시절활짝 핀 백합처럼 우리 사랑 꽃필 때아~ 아~ 아~ 아~ 다시 찾은 첫사랑(원 가사: 떠나버린 첫사랑)생각이 납니다. 애정이 꽃피던 시절이후 분위기는 자동적으로 장기자랑 순서가 되어 너도나도 노래 한 곡씩을 뽑는데, 대기업의 사장쯤 되면 대부분 노래도 잘 한다.

그만큼 모임에 자주 참석해야 되니, 18번지 하나씩은 다 있고, 음치도 수없는 연습으로 그 곡만은 잘 부르게 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유독 전자반도체 사장 김 사장만은 정말 음치로 음정박자가 전혀 안 맞는 바람에, 사람들이 더 즐거워하며 많은 박수를 보내주기도 한다. 아무리 즐거운 연회도 끝나지 않는 잔치 없다고 마침내 모두 술이 얼큰하게 오르자 나는 그만 끝낼 것을 제의하여 마무리를 짓는다. 그래도 약간 긴장되었던 약혼식이 끝나고 정희를 데리고 어디로 여행이나 갈까하다가, 너무 피곤해 하는 것 같아, 그냥 집에서 나머지 시간을 푹 쉬기로 했다.

대신 내 경호원들의 일부가 내 동생들을 데리고 우리 회사를 구경시켜주고, 저녁 늦게 집까지 데려다주는 고생들을 했다. 그날 저녁이다.

갑자기 이 주찬 기획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일본에 갔던 일이 성공리에 끝났다는 희소식을 알려온다. 나는 즉시 그 자리에서 지시한다.

'이번 거사(?)에 참가한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1계급 특진을 시키고, 특별보너스로 300만 원씩을 하사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 지시를 받은 이 실장도 자기 일처럼 기분이 좋아 전화를 끊는다.

----------------------------------============================ 작품 후기 ============================오늘부터 다시 일등시위 연재를 재개합니다.

너무 저조한 조회수에 한동안 갈등했으나,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은 저의 초기 작품으로 조아라 문피아의 양 싸이트에서, 총 4만 명 정도는 읽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니 안 본 사람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물론 아직 안 보신 분도 많이 계시겠지만........ 아무튼 이제 다시 시작했으니 완결까지 달립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리며, 매사에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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