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시우보(虎視牛步) -- >
4내가 회의를 마치고 회의실에서 나오니 집에서 정희로부터 전화가 왔다는 말을 전해준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내가 집에 전화를 거니 아무도 안 받다가 한참 후에 전화를 받는데, 들어보니 가정부 아주머니다.
내가 무슨 일로 정희가 집을 비웠느냐 물었더니, 서울대학 병원에 갔다한다. 깜짝 놀란 내가 부랴부랴 새로 비서관이 된 전 기용(전 법무팀 소속으로 국제법 전공 변호사, 일어 영어 능통)씨를 서울대학 병원에 급파해 그 연유를 알아보게 한다.
그가 떠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집을 경호하는 사람들의 경호 차량은 있어도 정희와 장인 장모가 이용할 차 한 대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이런 면에서는 내가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곧 비서실장에게 지시해 그녀와 가족이 함께 탈 수 있는 차와 그녀를 경호할 사람들이 탈 차도 함께 알아보도록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지시에도 금방 두 가지 문제점이 있음을 깨닫는다. 사적인 일을 가지고, 공적인 일을 처리해야할 비서실장에게 지시를 했다는 것은, 내가 또한 잘못하고 있다는 점아고, 또 하나는 아직 정희를 경호할 경호 병력이, 내 지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충원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곧 이를 시정할 결심을 하고 가사 일을 전담 처리할 집사 개념의 비서관도 함께 충원할 생각을 한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정도로 해서 전적으로 집안을 돌보고, 집안 일만 처리할 비서관 채용을 곧 총무부에 전화를 걸어 선발하도록 한다.
생각난 김에 여자 경호원 충원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부장으로 승진한 강길남 제1 경호팀장을 불러 알아본다. 그 결과는 인맥을 통해 알아보나, 쉽지 않아 여전히 충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거듭 죄송함을 표할 뿐이다.
인맥을 통해 알면 그 사람의 성품이나 근태까지 알 수 있어 좋으나, 공채를 통해서라도 뽑아야 했지 않나 생각하니 참으로 답답함을 느낀다. 하긴 그런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니 경호가 천직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온다.
생각난 김에 나는 전 보안사령관에게 전화를 건다. 지난번 내 경호원들을 충원할 때도 도움을 받아, 톡톡히 재미를 본 기억이 있어 그를 떠올린 것이다.
"여보세요."
역시 이제는 더 무게를 잡는 그의 목소리다. 완전히 중저음으로 깔리는 목소리다.
"대원그룹입니다."
"아~! 강 회장! 무슨 일로..........?"
"한동안 격조했습니다. 오늘 술 한 잔 할까요?"
"또 무슨 용건이 있는 모양이지 요?"
"꼭 무슨 용건이 있어야 술 한 잔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술좌석에서 말씀드리기로 하죠."
"그런데, 강 회장! 나 무척 서운하단 말이오."
"무슨 말씀이신지.........?"
"군대를 가면 간다, 제대를 하면 한다고 전화라도 한 통화했으면, 그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 아니오. 청와대 작전차장보를 아주 물로 본 것이오?"
"아......... 그런 것은 아니고, 정당하게 군복무를 마치고 싶어서 그랬다가 오히려 전국적으로 망신살만 뻗쳤습니다."
"하하하.........! 망신은 망신이지요. 대기업 회장이라는 사람이 맞아서 제대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오? 하하하..........!"
즐거운 듯이 계속 웃는 그의 웃음에 전화상이라도 무안함을 감추지 못한 내가 얼른 화제를 전환한다.
"보안사령관이면 군내 영향력이 막강하겠는데요?"
"어디 강 회장의 영향력만 하겠습니까? 강 회장이야말로 툭하면 대통령과 독대로 만사를 해결하는 양반인데......... 그런 면으로 보면 강 회장이 참으로 무서운 분이기도 하죠."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시고........ 이따 7시에 삼청각에서 뵙시다."
"나랑 노 씨랑은 항상 동행인 것은 알고 계시죠."
"함께 준비하도록 예약을 해놓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퇴근 후에 봅시다."
"네, 끊습니다."
이 통화로 인해 나는 그날 거금(?)을 써야했고, 대신 전직 청와대 경호관 출신의 여경호원 한 명을 소개 받을 수 있었다. 한 숙자라는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사직을 했으나, 삼년 출산 후 복직을 원했지만, 티오가 꽉 찬 관계로 차일피일 복직이 미루어진 상태의 사람을 내가 소개받은 것이다.
나는 한 숙자 경호원을 통해 시차는 있으나 같은 처지의 여경호원 두 명을 더 소개받아 우선 아쉬운 대로 정희의 경호에 착수를 할 수 있었다. 추후 6명을 공채로 더 뽑아 3명 1개 팀으로, 12시간 맞교대에 한 팀은 하루를 완전히 쉴 수 있는 편제를 완비할 생각인 것이다.
그 전에 전 기용 비서로부터 온 전화에 의하면 정희의 문제가 아니라, 장인이 뒷골이 심하게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갔던 것이고, 결과는 혈압이 상당히 높으니, 주의를 요한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 * *이튿날 오후.
쿠웨이트에서 급거 귀국한 이 상백 씨가 오자마자 우리는 고리원자력발전소 입찰 건에 대한 회의를 연다.
그 전에 우리 그룹의 수주전담팀이 이에 대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1년의 시차를 두고 3기를 연속 건설할 예정으로, 이번 입찰에서 3기를 일괄 발주하여 한 업체가 맡긴다는 정부방침을 전해 듣고, 우리는 더욱 커진 파이에 긴장감 속에 회의를 열고 있는 것이다. 먼저 이 주찬 기획실장이 정부에서 공고한 이번 공사의 내역을 설명한다.
"정부의 이번 원자력발전소 건설 공고 내용을 보면, 고리2호기는 발전설비용량 65만kw, 3,4호기는 각각 95만kw의 설비용량에, 1년 단위로 순차적으로 착공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에는 캐나다원자력공사는 물론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사도 입찰 자격을 주어, 참가가 확실시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가 컨소시엄을 형성해서 참여하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물론 기초토목 분야나 일부의 건설부분을 국내 업체가 맡겠지만 심히 우려스러운 상황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흐흠.........! 문제가 간단치가 않겠군요."
"그렇습니다. 캐나다원자력공사는 자신들이 개발한 핵연료로도 쓰일 수 있는 가압중수로형을 들고 나올 테고,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는 가압경수로형으로, 여기에 우리까지 참여하니 문제가 복잡합니다. "
나의 말에 이 실장이 확신에 찬 어조로 답한다.
"가격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핵연료의 냉각재로 중수(重水)를 쓰느냐, 경수(輕水)를 쓰느냐에 따라 핵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도 달렸으니, 문제가 결코 간단치만은 않군요."
이상백 사장의 말에 모두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나 결코 밝은 표정들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말한다.
"언제나 입찰 건은 제로섬 게임이니, 수주를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천당과 지옥의 차이만큼 희비가 엇갈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입니다만, 그들 중 하나와 교섭을 해서 컨소시엄을 형성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확률적으로 2:1로 줄어들게 되고, 또한 플러스알파가 있으니 아무래도 수주하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비서실장의 물음에 내가 곧 대답한다.
"원자로 분야와 터빈발전기 분야를 나누고 거기에 건설을 또 한분야로 나눌 수 있고 심하게 나누면, 발전소의 설계 및 공사관리 등 기술용역 부분까지 넷으로 쪼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어느 회사는 원자로 부분을 어느 회사는 터빈발전기 분야 등으로 사전에 공사 범위를 정하고,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입찰하는 방식은 어떠냐는 것이죠."
"그 방법도 일리가 있으나 마감 시한이 있는데 쉽게 타협이 되겠습니까?"
비서실장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래도 일단은 타진은 한 번 해보죠."
나의 말을 이 사장이 받는다.
"그럼, 우리는 어느 분야를 맡을 복안이십니까?"
"당연히 원자로 부분을 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 부분은 서로 양보를 하지 않으려 들 테니, 협상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장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여 찬성을 하며 고뇌한다.
"그래도 일단 한 번은 시도나 해봅시다. 이 협상 주체는 아무래도 이 사장님은 견적에 관여해야 하니 바쁠 테고, 이 실장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한 번 해보시죠."
"네, 알겠습니다."
내 말에 이 실장이 곧 바로 대답을 하자 나는 이번에는 이 사장을 보고 말한다.
"견적 내용을 분야별로 내는 것은 가능하죠?"
"원래 견적을 내다보면 이 부분이 얼마, 이 부분이 얼마 해서, 최종적으로 모두를 취합하는 것이니, 문제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이 실장은 캐나다원자력공사와 웨스팅하우스 양쪽 모두와 협상을 해보시죠."
"네!"
이렇게 일단 우리는 협의를 끝내고 각자의 맡은 업무로 돌아간다. 내가 막 회의를 끝내고 나오는데 작고 가녀린 체구에 가는 금테 안경을 낀 사람이 황급히 회장실로 들어온다. 척 보니 전자반도체를 맡고 있는 김 양수 사장이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 네. 미국 GE에서 초소형카세트를 개발했다고 항공편으로 부쳐왔는데, 문제가 좀 있습니다."
"일단 어디 좀 봅시다."
내 말에 가방을 열어 이중 삼중으로 포장한 카세트를 꺼내 보이는 김 사장이다.
내가 그 물건을 척 보니, 사진으로만 본 최초의 워크맨 크기에다, 워크맨처럼 투박하다.
"흐흠..........! 일단 크기는 이만하면 되었는데, 무슨 문제랍니까?"
"여기에 사용할 헤드셋이 성능이 결코 좋은 상태가 아니랍니다."
"그럼, 정말 문제 아닙니까? 스트레오 음향이 좋아야, 이 기기도 살아나는 것인데......... 가만.........."
말을 하던 내가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어서 잠시 멈추고 생각을 하다가,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김 사장에게 다시 묻는다.
"이 제품을 더 줄일 수는 없답니까?"
"자기네들로서는 최선을 다한 작품이라고........."
"하긴 미국 놈들이 중후장대한 것은 잘 만들어도 경박단소한 문제로 들어가면 걔네들이 좀 골치가 아프죠."
"네, 그렇습니다."
"일단은 그래도 크기도 좀 더 줄여보라고 하고, 헤드셋의 성능도 향상시키라고 종용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의 지시를 받고 바로 물러가는 김 사장이다. 물론 그 제품은 내 책상에 그대로 놔둔 상태다.
그가 나가자마자 나는 이 주찬 기획실장을 급히 호출한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나의 부름에 급히 달려왔는지 호흡이 불규칙하다.
"일본 전자 회사 소니아시죠?"
"물론 알지요."
그의 대답에 나는 책상에 있는 카세트테이프를 보여주며 말한다.
"내가 듣기로 거기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제품이 헤드셋 상태가 결코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소니에 우리의 정보요원 중에서도 유능한 사람을 파견해, 이 분야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고 싶군요. 가능하겠습니까?"
"회장님의 명이라면 바로 행해야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상명하복 체계에서 길들여진 사람답게 곧 바로 긍정적인 답을 쏟아내나, 내가 보기에는 문제가 있는 발언이다.
"그런 식으로는 곤란하죠. 만약 섣불리 덤볐다가 이 일이 들키기라도 하면, 국제적인 망신은 고사하고, 우리 그룹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힐 텐데..........."
"아무리 제가 그렇게 말했기로서니 설마, 그 정도 예상도 않고 덤벼들겠습니까.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최악의 경우 자폭을 해 시체가 산산조각이 나도, 꼬리를 달진 않습니다. 그 정도 능력 밖에 안 되는 놈들이라면, 제가 데리고 쓰지를 않죠. 모르긴 몰라도 벌써 해고했을 겁니다."
역린을 건드려서 인지 얼굴까지 붉히며 유난히 말이 많은 이 실장이다.
"믿고 맡기겠습니다. 한 번 해보시죠."
"네, 알겠습니다."
바로 돌아나가려는 이 실장을 붙들고 내가 말한다.
"이를 진두지휘하려면 아무래도 발전소 협상 건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발전소 협상 건은 비서실장에게 맡기는 것으로 하죠."
"네."
대답과 동시에 바로 돌아서 나가는 이 실장이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곧 비서실장을 불러 원자력발전소 협상 건에 대해, 전권을 주어 일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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