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시우보(虎視牛步) -- >
3나는 사무실로 출근을 하면서 청주 부모님 집으로 전화를 건다.
마침 여동생이 받는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학교를 가지 않아 다행이다.
어머니가 받았으면 좀 껄끄러웠을 건인데. 나는 동생에게 아버지를 바꾸어 달라고 한다.
"전화 바꿨다."
"아버지 저 태민이예요."
"알고 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 요새는 전화도 자주 안 하더니."
"저 일 주일 후 그러니까 3월 15일날 정희와 약혼하려고 합니다."
"뭐? 그 아이는 미국 가지 않았어?"
정희를 미국에서 데려온 후로 한 번도 집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아 이런 내용이 오가고 있다.
"얼마 전에 제가 데려왔어요. 참석하실 거예요?"
"네 엄마와 상의해보마."
"알았어요. 건강하세요. 끊습니다."
"너도 몸 잘 챙기고."
"네!"
전화 끊어진 음이 들려오자 나는 바로 전화를 끊는다. 더 이상 길게 이야기해봐야 키는 어머니가 지니고 계시기 때문에 서로 사족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아는 부자지간이기 때문이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나는 위성전화로 대원인터내셔날의 사장 이 상백 씨에게 전화를 걸어, 원자력발전소 견적 건 때문에 그러니 곧 귀국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전한다. 이 사장은 군말 없이 알았다하고 전화를 끊는다.
서로 할 이야기는 귀국 후에 하기로 하고.
이어 나는 비서진을 통해 대원해운의 조 원식 사장을 호출하도록 한다. 그리고 기획실장과 비서실장도 불러 조선소 문제와 공단조성 문제를 토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잠시 후 대원해운의 조 원식 사장이 그 중후한 몸집을 이끌고 나타나는 것으로 내가 부른 사람은 전부 모였다.
나는 이들과 소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차를 마시며 환담을 하던 내가 본격적인 사업이야기로 들어간다.
"어제 대통령을 면담한 결과 경남 거제도의 옥포조선소를 우리가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자 청했습니다. 먼저 조 사장님께 묻겠습니다. 우리 해운의 지금까지의 선복량이 얼마나 됩니까?"
"컨테이너선이 12만 TEU, 유조선은 원유 운반선이 16만 톤 3척, 정유운반선은 26만톤 한 척, 16만 톤급 2척을 소유해, 총108만 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8만 톤(DWT) 파나맥스선(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6~8만 톤급)급 3척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과잉입니까? 부족합니까?"
"지금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선박으로는 자체 물량을 소화하기도 바쁩니다. 오히려 부족한 편이지요. 벌크선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그러나 요사이 오일쇼크로 인해 물동량이 줄어드는 추세이므로 더 이상의 확충을 자제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흐흠.........! 그래요? 내 생각인데 말이요. 더 성장하려면 불황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가 마침 옥포조선소를 인수하게 되었으니, 거기에 일감을 주는 의미에서라도 30만 톤급 유조선 3척, 8만 톤급 컨테이너선 5척을 발주하려는데 조 사장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좀 과한 것 같습니다만?"
"아니오. 나는 오히려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소. 배를 금방 하루아침에 뚝딱 만드는 것도 아니고, 만드는 시일을 생각하면 더 발주를 해도 상관은 없으나, 이는 소경 제 닭 잡아먹기 식이니 그만큼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회장님! 우리가 유조선을 만들 역량이 됩니까?"
"그래서 나는 차제에 외국사와 합작투자를 할 생각이오. 세계 최대 기술을 자진 조선사와 우리의 저렴한 노동력이 결합된다면 당연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것이니, 투자하는 쪽도 메리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해서 나는 이 쪽 분야에 대해서 조 사장님이 앞으로 적극적으로 알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것으로 조선에 대한 대충의 결론이 났다. 그러나 이야기의 연속성을 위해 추후 조선 문제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아예 이 자라에서 언급하면 이렇다.
이후 우리는 이 주찬 기획실장과 정부의 상공부장관과 계속 협의를 진행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첫째: 정부는 81년 완공 예정인 100만 톤급 건조 능력을 확충하기 위해, 현재 830억이 투자된 옥포조선소(제3조선공사) 확장 공사 계획을, 계속해서 정부의 책임 하에 진행한다. 둘째: 대원조선은 향후 300억을 더 투자하여 조선을 활성화 시키되, 자금이 부족할 시는 정부의 국책은행을 동원해 최대 50% 까지 융자를 해준다.
단 자사의 노력이 먼저 이행되어야 한다. 셋째; 기존 조선공사의 장비와 함께 인원 전체를 대원조선에서 일괄 인수, 승계해야 한다.
위의 내용을 보아서 알 수 있듯이 불황의 늪에 빠져든 조선소를 더욱 확장하려니, 아니 1년 만 공사를 늦추어도 추가비용 및 손실비용이 지금까지 투자된 비용과 맞먹어, 계륵으로 전락한 옥포조선소를 우리가 인수하는 대신에, 정부에서는 많은 특혜를 주었다. 이렇게 조선소가 예상보다 훨씬 좋게 결론이 나는 동안 조 사장을 중심으로 한, 외국과의 선박건조기술에 대한 제휴사도 결정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곳으로 하나는 노르웨이의 아커야즈 사와 영국의 캠멜 레어드 사다. 아커야즈는 유럽 제2의 조선사로 1841년 설립되었으며, 노르웨이, 프랑스 등에 18개 조선소 및 52개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 문사답게 대형 크루즈선과 쇄빙선 제작이 주력사업 분야다.
또 하나의 합작사 캠멜 레어드(Cammell Laird)는 19~20세기 영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조선사로, 20세기 중후반 조선 산업의 중심이 유럽에서 일본으로 이동하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1829년부터 1947년까지 1천100개가 넘는 대형 선박을 건조하며 대공황에서도 살아남은 명문이다. 하지만 미래의 이야기지만 이 명문의 조선사도 일감이 떨어지며 1990년대 야드(선박 건조장) 문을 닫는다. 하지만 이 회사는 요즘 다시 풍력사업과 원자력 사업으로 다시 기사회생하고 있는 저력 있는 회사다.
아무튼 나는 이 두 회사와 각각 25%와 12%의 지분을 주고 합작사를 설립한다. 상호는 대원아커야즈 조선소로 하되, 투자비용은 각각 우리가 500억(기존 조선공사 장비 및 여타 자산포함), 아커야즈가 125억, 캠멜 레어드가 60억을 투자해 함께 세계 선박건조시장에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선 그룹에서 발주한 컨네이너선과 유조선을 제작하는 것으로 사업을 개시한다. 이어 우리는 공단 조성문제에 대한 논의에 들어간다.
"내가 대통령께 우리 전용 공단으로 전라도의 한 곳을 개발해달라고 추천을 했으나, 제 마음 속으로는 군산을 추천하고 싶었습니다. 군산이 어떠한지 기획실장은 한 번 알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군산이 일제 때 개항된 항구로 항구 기능으로는 그런대로 쓸만하나 문제는 공업용수 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주변에 큰 댐이 없으니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나도 곰곰이 생각해보나 맞는 말이다.
"그럼, 추천할 만한 곳이라도 있습니까?"
"제가 볼 때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마땅한 항구가 없고, 목포가 항구 기능으로는 괜찮으나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기획실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긴다. 결국 이 문제도 정부와 협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 곳은 의외로 충남 당진이었다.
훗날 한보철강이 들어서서 유명한 곳이다. 부근에는 삽교천방조제가 곧 완공되어 공업용수를 받을 수도 있고,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신라와 당나라가 교역했던 항구이니, 항구로서의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다 할 것이다.
나는 이곳이 국가에서 공단으로 지정되자마자 서해대교의 필요성을 역설해, 정부로부터 그 타당성 검토 승낙까지 받았다. 그리고 항구의 확충도 언급했으나, 당장은 예산 상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곳 공단부지가 국가로부터 수용되어 건설공사가 시작되자마자 공단의 일부가 조성되는 대로 자동차 공장부터 짓도록 명령했다. ----------------------------============================ 작품 후기 ============================오늘은 좀 짧습니다.
3.1절 하루 쉬고 계속 되는 강행군에 요새 무척 피곤하군요.
넓은 마음으로 양해하옵시길.........!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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