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69화 (69/135)

< -- 세계를 향한 꿈 -- >

8

대답을 막상 해놓고는 끝내,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는 정 윤희 양이다.

"저 역시 당당히 응하겠어요. 정희 씨만 허락 한다면."

"두 분 다 그렇단 말이죠? 그럼, 오늘 밤 두 분이 함께 회장님을 모시세요. 저는 보다시피 배가 불러서 이제 곤란하거든 요"

말을 하며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배를 계속해서 쓰다듬는 정희다.

"그것이 정희 씨, 아니 사모님의 뜻 이예요? 아니면 회장님의 뜻 이예요?"

"호호호..........!"

라니아의 당찬 말에 정희의 웃음이 한동안 들리고 이어서 그의 음성마저 들려온다.

"제 뜻 이예요. 아직 회장님께는 의사를 물어보지 못 했어요. 하지만 열 여자 싫어하는 남자 봤어요? 아마도 OK하겠지요. 물론 겉으로는 내숭을 떠느라고 내 앞에서는 사양하는 척 하겠지만 말 이예요."

"보기보다 사모님은 엄청 대단한 분이시네요."

"무슨 뜻이죠?"

정 윤희 양의 말에 정희가 급히 묻는다.

"제게 만약 우선권이 주어졌다면 사모님과 같이, 내 남자를 전적으로 나눌 의향은 고사하고, 아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거라, 드리는 말씀이니 오해는 마세요."

"호호호.........! 저도 여자예요. 저라고 속이 안 쓰릴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요번에 회장님께서 나를 찾기 위해 먼 이국땅까지 오셨잖아요. 그때 나는 회장님의 나에 대한 사랑이 진정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절실히 깨달았죠. 그래서 제 딴에는 곰곰이 생각했죠. 이런 내 사랑을 위해, 나는 해줄 것이 무엇인가?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의 누구를 붙들고 물어도, 저와 회장님과는 안 어울린다고 답할 거예요. 이렇게 잘난 서방을 위해 못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 그이의 사업에 도움이 되면서 말이죠."

"사실 지금 처지에서 회장님에게 남부러울 것이 별로 없을 거예요. 회사를 더 키우는 것 외에는 말이죠. 그래도 제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딱 하나는 있더라고요. 바로 여자 문제예요. 보다시피 저는 이제 배불뚝이가 되었고, 이제 더는 그이를 모시지 못해요. 그렇다고 저이보고 매일 밤을 참으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물론 다른 방법도 있겠지요. 하지만 실제 여자와 자는 것만 하겠어요? 그래서 제가 오늘 두 분을 모시려고 했고, 두 분 대답을 속 시원히 들었으니, 두 분 다 이제 더는 사양 말고, 마음껏 우리 그이를 위해 주세요."

"또 오면서 이런 얘기도 했어요. 만 약 회장님이 다른 여자를 보아 자식을 얻게 된다면, 그 아이도 내 아이로 생각해, 우리 둘의 호적에 올림은 물론, 훗날 재산상속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한 점 불리함이 없도록, 제가 하겠다고 먼저 말 했어요. 이만하면 오늘 밤 당장이라도 두 분이 모실만 하잖아요? 어때요? 의향이 있나요?"

끝내 도발(?)을 멈추지 않는 정희다. 정희가 이렇게 당차게 나오니, 두 여자가 이제는 주저가 되는 모양이다. 내 귀에 그녀들의 대답소리가 한동안 들려오지 않는다. 때는 이 때다. 나는 욕실 문을 박차고 나간다. 그리고 소리 지른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다 들었어?"

나의고함에도 빙그레 웃으며 묻는 정희다.

두 여자는 아까의 당당하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나의 출현에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

"그럼, 다 들리지. 내가 귀머거리냐?"

"어때 내 말이?"

"너 지금, 당사자를 앞에 앉혀놓고 돼지 접붙이는 것도 아니고? 호불호를 이야기 하라는 거야? 아무리 좋은 말도 예의가 있는 거야?"

"그래도 좋긴 하지?"

여전히 빙글거리며 묻는 정희다.

"하하하.........! 참, 내 어이가 없어서..........! 좋아도 이건 방법이 틀렸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비슷한 언질만 주고 당사자에게 맡겨둬야 되는 것 아니야?"

"끝내, 싫다는 말은 않네. 쳇.........! 내가 자리 비켜 줄까?"

"당신, 정말........ 너무 오버하는 것 아냐?"

"어차피 그리 될 거면, 질질 끌 필요가 뭐 있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내가 대신 깎아줄 참인데.........."

"내 참, 말이나 못해야지. 윤 정희 씨! 언제부터 그렇게 말이 늘었냐?"

"자기와 계속 붙어 다니다 보니까."

"사람 정말, 할 말 없게 만드네."

나는 툴툴거리며 방안으로 쑥 들어간다.

"봤지요? 저이도 싫어하는 모양새는 아니죠? 이참에 꽉 잡아요. 내가 전적으로 응원해 줄 테니까."

정희의 성원(?)에 뜨악한 표정을 짓는 둘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둘을 보며, 정희가 입을 가리고 호호 웃는다. 그러던 중 라니아가 식은 찻잔을 입에 대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을 한다. 모종의 결심을 했는지 입매가 굳게 물려있고, 결기가 느껴지는 표정이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씀 고마웠고요.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좋겠어요. 회장님을 좋아하는 마음이야 진실이지만, 방법 면에서는 회장님의 말씀대로 좀 생각해볼 여지가 있네요."

인사를 꾸벅하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라니아다. 정 윤희 양도 따라서 목례를 건네고 함께 이층으로 향한다.

* * *이튿날.

회사에서 마주한 우리 셋은 어제의 이야기 때문에 서로 얼굴 보기가 껄끄럽다. 그렇지만 한 실내에서 움직이는 사람들끼리 안 보고 살수도 없는 문제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나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에 종내는 화기애애해진다.

"어제의 말 진담이었어요?"

내가 라이나에게 묻는 말이다.

"그럼, 그런 말을 농담으로 하는 여자도 있어요?"

"하하하.........! 물론 아니겠지만, 두 분이 나를 그렇게 까지 생각하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너무 뜻밖이라 제가 당황해서 묻는 것입니다 만?"

"회장님은 너무 짓 굳으세요. 그런 것을 숙녀에게 확인까지 하시다니요."

정윤희 양의 가세에 나는 말을 더 이을 수가 없다.

"회장님 저 오늘 생일인데, 술 한 잔 사주시겠어요?"

계속되는 정 윤희 양의 공세(?)다.

아무래도 생일이 아닌 것 같다. 물론 총무과에 신상카드를 확인해보면 금방 알 일이지만, 여기서 그것을 확인한다는 것은, 정말 센스 없는 놈으로 몰리기 딱 좋은 분위기다.

"그래요?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죠."

"저도 동석하면 안 되나요?"

이제 라니아도 한 다리 걸친다.

"그 말은 정 대리에게 묻는 것이 옳을 것 같군요?"

나의 말에 라니아의 시선이 정 양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눈짓으로 그 의중을 묻는다.

약간 망설이던 정 양이 대답한다.

"못 할 것도 없지요. 언니가 알아서 하세요."

처음으로 정 양이 한 살 많은 라니아에게 언니 소리를 한다.

"호호호........! 그럼, 염치불구하고 참석하기로 하죠."

이때 기획실의 이 실장이 들어와 우리의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끝났다.

"회장님이 보유하고 계신 대원건설의 주식이 너무 적은 것 같아서, 꾸준히 증시를 주시해오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 결과 처음 8,000원에 개장이 되었지만, 나오는 매물이 없어서 며칠 동안 상한가 행진을 계속 하더니, 지금은 15,000원 선에서 보합세로 돌아섰습니다.

증시라는 것이 항상 오름만 있는 것이 아니니, 저는 이쯤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보고, 지분 매입을 더 할 의향이 계시면, 얼마 정도의 선에서, 몇 주를 구입할까, 궁금해서 여쭙는 것입니다 만?"

"1만 원 이하로 떨어지면 매입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보죠. 지금은 너무 과열이고 내년쯤이면 경기하강과 함께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예측되는데.......... 한 35%까지 지분율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하죠. 다른 특이 동향은 없습니까?"

"아무래도 싸이펨에서 발주 받은 이란에서 파키스탄까지의 송유관 공사가 불안 불안합니다. 이란 정정이 급격하게 소용돌이치는 데다, 원유 금수조치까지 취했으니........ 싸이펨에서 들려오는 정보로는 이란으로부터 공사대금을 못 받고 있는 실정 같습니다.

현재 싸이펨이 우리에게 기성분에 대한 결재는 착실하게 하고 있으나......... 언제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몰라서 말입니다. 아무튼 심히 우려되는 상황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주베일 항만공사로 인해 우리가 싸이펨에 지불할 것도 있지 않은 가요?"

"다음 달이면 공사가 끝나 준공이니, 잔금 정도만 조금 남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물리면 우리만 손해가 아닐까 해서요."

"앞으로 이란과 싸이펨에 정보력을 집중하는 한이 있더라도, 수시로 그들의 동향을 파악해,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처법도 잊지 말고 준비해두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기획실장이 꾸벅 인사를 하고 물러나려는데, 옆에 서서 우리들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던 비서실장이 이어서 말을 한다.

"조엘 엘걸 센터장이 삼일 후면 한국에 온다는데 처우는 어떻게 할 것이며, 숙소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지침을 내려주셨으면 해서요."

"음......... 우선 이사급 대우를 해주는 것으로 하되, 직함은 R&D센터장으로 하고, 우리 호텔에 여분이 많을 테니, 특실 정도를 배정해 매일 묶는 것으로 하죠."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런데 혼자 오는 것입니까?"

"본인과 뜻을 같이 하는 연구원들과 쿠퍼 박사가 추천한 퇴직 요원이 일부 합류해, 금번에 10명 정도가 함께 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족은 요?"

"일단은 자신들만 오나, 한국에서 살만하다고 생각되면 가족들도 오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답니다."

"선진국인 미국에서 살다가 우리나라에서 살려면 아무래도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겁니다. 그들 모두가 가족까지 모셔올 수 있도록 그들의 대우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런데, 회장님?"

"말씀하세요."

"일단은 그들을 호텔에 체류시키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럴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지금 우리 사옥의 공실률이 엄청나니, 빈 사무실의 일부를 아예 호텔처럼 꾸며 연구원들이 거주에 별 신경 쓰지 않고 연구에만 전념케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좋은 방안이니 적극 검토해서 그렇게 하는 방향으로 하죠."

"네, 회장님!"

"또 다른 특별한 일은 없나요?"

나의 물음에 비서실장이 계속해서 답변을 한다.

"박헌도 미주 지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아이아코카 자동차 총괄사장이 요구하길 하루라도 빨리 미국 현지법인의 설립을 마쳐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군요. 프랑스 푸조와의 협상 루머가 있어서라는 보고였습니다."

"그 쪽 일은 신 사장과 이 실장이 협의해서 보다 빠르게 진척시키세요."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비행기 내에서 회장님께서 물었던 은마아파트 내의 다섯 가구는, 여전히 비어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총무부장의 말로는 때때로 청소도 해두었다니, 당장 누가 입주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혹시 몇 동 몇 호인지는 아시나요?"

"네, 여기 있습니다."

미리 대비를 했는지 상의주머니에서 내 소유의 아파트 동, 호수가 적힌 메모지를 꺼내 내게 주는 용의주도한 비서실장이다. 나는 그것을 받아 아무렇게나 바지뒷주머니에 구겨 넣는다. 그런 나를 보고 희미한 미소를 띤 정 실장의 말이 이어진다.

"회장님의 취향에는 맞을지 모르겠으나, 대충의 기본 설비는 모두 갖추어 놓은 것으로 압니다. 침대며 TV, 조리시설, 여타 등등해서 바로 살림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구색을 갖춰놓았다는 총무부장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이 인사를 총무부장에도 전해주시고요."

"네, 회장님!"

* * *오늘 업무는 특별한 것이 없어서 정 윤희 양과의 약속 시간도 있고 해서 일찍 퇴근을 한다. 퇴근하기 전 나는 정희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좀 늦는다고 전화를 한다.

왜 늦느냐고 꼬치꼬치 물을 줄 알았더니, 너무 늦지나 말라고 하며 술을 마시게 되면 저녁을 먹고 먹던지, 그럴 처지가 못 되면 안주라도 많이 챙겨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녀가 그렇게 까지 나오는데 거짓말하기도 뭐해서 나는 정 윤희 양이 오늘 생일이라, 좀 늦을 것이라는 언질만 준다.

이 말에 그녀의 대답이 걸작이다. 아예 오늘 들어오지 말라는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어서, 크게 웃고는 전화를 끊고 만다.

아무튼 나는 라니아 까지 셋이 함께 회사를 나선다. 나는 곧 기사에게 명해 삼청각으로 향하도록 한다.

두 비서를 데리고 근사한 곳에 가서 제대로 식사 한 번 한 기억이 없어, 이번에는 정 윤희 양의 생일이라고도 하니, 미리 예약을 한 것이다. 이윽고 우리 일행이 삼청각에 도착하니 지배인이 직접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곧 어느 하나의 별관으로 안내한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별로다.

낮에는 주로 식사 손님을 받고, 저녁에는 완전 요정으로 돌변하는 곳인데, 영화배우 뺨치는 두 아가씨와 동행을 하니, 매상이 줄 것을 예견한 때문이리라.

아무튼 우리는 그곳에서 지배인이 추천하는 네 개의 메뉴 중 하나를 고르는데, 정 윤희 양이 콕 집어 '수청수라상'을 주문해주길 원한다.

오늘의 주인공이니 나는 그녀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어, 그녀의 소원대로 그 메뉴를 주문한다. ------------------============================ 작품 후기 ============================어제 과음을 했더니 아주 힘들군요.

늦었지만 한 편 올립니다!

^^즐거운 3월 달이 되길 기원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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