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를 향한 꿈 -- >
7공항에 내려 시간을 보니 오후 3시다.
마중 나온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나는 곧장 한남동 자택으로 향한다. 물론 내 승용차에는 정희가 동승하고 있다.
정 비서실장을 비롯한 두 여비서는 부재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황을 파악한다고 곧장 회사로 들어간 상태다. 나는 비행기 내에서 말을 하려다 못한 두 비서에 대한 이야기를 할 타이밍을 잡기 위해 자꾸 정희의 눈치를 본다.
이러니 아무리 눈치가 둔한 사람이라도 눈치를 챌 것이다. 정희가 계속되는 나의 이상한 행동에 묻는다.
"자기 무슨 걱정 있어? 지난번에도 무슨 말을 할 듯 하다말고."
"아니, 그런 게 있어........."
막상 정희가 물으니 그냥 얼버무리는 나다. 멍석 깔아놓으면 하던 짓도 못한다고 딱 내가 그 짝이다.
"뭔데, 숨기지 말고 다 얘기해봐. 내 다 이해해 줄 테니."
이것이 나에게 무엇을 알아내기 위해 꼬시는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말을 하는 것인지, 도대체 헛갈린다. 표정만으로는 진심인 것 같은데, 섣불리 얘기했다가 괜한 오해나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나는 결심하고 입을 연다.
"사실은 말이야........"
내가 마을 하다 또 멈칫하자, 재촉하는 정희다.
"계속 얘기 해봐."
"먼저 나한테 약속해."
"뭔 내용인지 알아야 약속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야."
"내 말에 오해 없기로."
"글쎄, 뭔 얘기인지 하기나 해봐."
"약속한 거지?"
"응, 약속할게. 이번에 나는 절실히 깨달았거든. 자기가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을. 그런데 내가 뭘 오해하고 자시고 할께 있어. 자기가 삼첩, 사첩을 거느리고 있다 해도 다 이해할 테니까. 이번 기회에 다 얘기해봐. 대신 정식 결혼 상대는 나라는 점. 그리고 그 여자들 사이에 아이가 있다 해도, 다 당신과 나 사이의 호적에 올려주고, 나중에 또 재산상속문제에 있어서도 하등 차별을 두지 않을 생각이야. 다 내 자식과 같이 자기가 공평하게 나누어줬으면 해. 그렇지만, 단 한 가지 자기가 명심할 것은, 절대 그 여자들을 한 집에는 들이지마. 아무래도 눈에 띄면 막상 이해한다고 해도, 속이 편치는 않을 테니까."
정희가 이렇게 까지 생각하고 있는지는 나도 정말 몰랐다. 정희가 이렇게 까지 이야기 하는데, 못할 이야기가 뭔가. 나는 아주 흐뭇한 마음과 시선으로 그녀에게 말한다.
"사실은 말이야. 내가 군대가 있는 동안에 한남동 자택이 비어 있었잖아?"
"그야 그렇지."
"그래서 내가 두 여비서를 내가 군대 있는 동안만 들어와서 살게 했어, 둘 다 자신들의 집이 없고, 여관이나 셋방을 전전해서 말이야."
"그런데?"
"그게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자기가 알면 불쾌할 것 같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호호호........! 자기 왜 그래? 별걸 다 가지고 고민을 하고 있네. 내가 좀 전에 말했지. 몇 명은 더 데리고 살아도 아무 말 않는다고. 당신과 그녀들 사이에 낳은 자식도 다 호적에 올려준다는 말 못 들었어. 이것은 내 진심이니, 절대 이에 대해서 더 의심하고, 나를 떠보지는 마. 대신 다른 집에다 살림을 차려줘. 아예 다툼이 없게."
"그 말 진심이지?"
"그럼, 내가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들어. 그리고 앞으로가 문제인데, 내가 벌써 임신 7개월 하고도 반이 넘었거든. 앞으로는 당신과 잘 수가 없을 거야? 어떻게 처리할 거야?"
"으응........? 그런 문제가 있었군."
"자기가 입으로 해주면 안 될까?"
"물론 가능해, 안 해봤지만,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아. 문제는 당신이 그것으로 만족을 하느냐는 것이지. 어때? 만족할 수 있겠어?"
"만족하도록 노력해야지."
"호호호.........! 나야 좋지만, 그러다가 당신이 나 원망하는 것 아니야? 욕구를 제대로 못 풀었다고?"
"그래서? 다른 여자를 보라는 거야, 마라는 거야?"
"셋 이하는 내가 허락할 게. 더 이상은 안 돼!"
정희의 그 말에 나는 정희를 다시 한 번 쳐다보고, 그녀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당신 진짜,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소리야?"
"어느 여자치고 사내가 시앗 본다는데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어. 하지만 나는 이번에 절실히 당신의 사랑을 깨달았어, 그런 이상은 당신의 나에 대한 사랑을 앞으로는 추호도 의심 안 해. 그러면 되는 거지. 몇 명 더 있다고 뭐가 문제야. 이 나이에 대기업 회장을 하는 사람은 아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 외에는, 유사 이래 없을 거야. 나는 당신이 자랑스럽고, 이만한 것을 이루고, 지키고, 더 나아가 키우기 위해서는, 너무 계집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봐. 나 한 여자에 연연하지 말고, 다른 여자하고도 관계 해. 대신 너무 정도를 벗어나지는 마. 이미 당신은 한국인 누구나 알아보는 공인이야. 절대로 가십거리가 되지는 말란 얘기야.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곧 당신의 사업과도 직결되는 이야기니 명심하고. 됐어?"
쪽!
"당신 생각하는 게 너무 예쁘다!"
나는 정희의 입에 기습 뽀뽀를 하며 너무나 넓은 그녀의 흉금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더는 망설이지 않고 주저없이 말을 꺼낸다.
"당신이 출산을 하기 전에 약혼이라도 해놓고 싶은데, 당신 의사는 어때?"
"결혼은 당신 나이에 너무 이르지?"
그러고 보니 올해 내 나이가 23인가? 빠르긴 너무 빠르다. 내 말이 이어진다.
"일단 약혼을 하고, 혼인신고는 하는 것으로 하지. 아이가 출생을 하면 바로 주민등록에 올려야 하니까. 하지만 결혼은 좀 늦추자고. 어느 정도 우리가 나이가 들었을 때, 아주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약속할 테니까."
"당신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나는 동의해. 그런데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어쩔 거야?"
"내 생각으로는 이층에 함께 모시고 살았으면 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나야 좋지만, 당신이 불편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약간의 불편이야 있겠지만 감수해야지. 그나마 2층에 거주하실 거니까, 큰 불편은 없을 거야."
"그건 당신의사에 맡기겠어. 그런데 문제는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야? 특히 어머니가 문제시지. 정말 나를 끝끝내 인정 안한다면 문제가 복잡해지는데..........."
이 말 끝에 갑자기 안색이 흐려지는 정희다.
"그 문제는 전적으로 나에게 맡겨. 어떻게 하든 내가 다 좋게 해결할 테니까. 여기서 단 하나 당신이 명심할 건, 지난번과 같이 어머니의 부당한 일처리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숨기지 말고 꼭 나에게 얘기를 해야 돼. 그래야 내가 어떻게 하든 대처를 할 것 아니야."
"알았어. 그 문제는 꼭 당신의 뜻에 따라, 그렇게 처리할 게."
우리의 대화가 이쯤에 이르러 우리는 자택에 도착한다. 회사에서 연락을 받았는지 가정부 아주머니가 달려 나오고, 비번인 경호원들까지 모두 나와 나를 반긴다.
나는 그들과 일일이 손을 맞잡고 그간의 수고를 치하하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 * *그날 저녁 무렵.
정희가 가정부 아주머니를 도와 저녁준비를 하고 있고, 나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다. 그런데 두 여비서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야 퇴근을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녀들은 정 실장과 상의를 통해 전부터 이층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층으로 안 가고, 이곳으로 오는지 그 연유를 모르겠다. 그 전에 둘과 정희와는 나의 소개로 서로 인사를 나눈 처지다. 그래서 아직 서먹서먹하긴 해도 전혀 모르는 사이는 아니다.
이때 정 윤희 양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정희 씨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
"안 그래도 이층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부르려던 참이었어요."
정희가 하는 말이다.
"저......... 사실 회장님과 저희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니, 오해는 말았으면 하고........"
"오면서 차안에서 그이로부터 둘의 사정 얘기를 다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부르려던 참이었어요. 아주머니 죄송하지만 차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해도 되지만, 대화 좀 나눠야 되겠어서요."
"아이고, 말씀만 하세요. 언제든지 차쯤이야, 대령해 올립지요. 더한 것도 마찬가지고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정부 아주머니에게 정희를 소개시켜줘서, 나와 정희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아주머니의 답변이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저는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지만, 임신한 후로는 딱 끊었습니다. 대신 유자차를 좀 부탁해요. 두 분은?"
"저는 커피요."
"저도요."
"곧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아주머니의 시원한 답변 소리가 들려오고 이어 효과음처럼 달가닥거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하던 얘기 계속할까요? 오면서 회장님이 두 분 얘기를 제 면전에서 하는데 아주 칭찬이 자자하시더라고요. 일 잘 한다고요. 내 앞에서 두 분 칭찬을 하니, 좀 속은 상했어도 어쩌겠어요.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도 아니고, 일 잘 하고 있다는데........ 그런데 내 단도직입적으로 두 분께 물어볼까요? 두 분 다 회장님 좋아 하시죠? 아니 사랑하시죠? 여자에게는 육감이라는 게 있으니, 거짓말 할 생각 말고, 아주 이 자리에서 솔직히 한 번 말씀해 보세요."
내가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지어내기 까지 하는 정희다. 게다가 느닷없이 돌 직구를 날리니, 두 여자가 엄청 놀랐으리라는 것은 안 봐도 상상이 간다.
"네, 저.........! 사실 회장님 좋아하고 있어요."
"저도요."
정 윤희 양의 말에 이어 라니아의 대답이다.
"확실하게 묻죠? 회사 공인으로서의 회장님을 좋아하는 거예요? 아니면 개인감정으로 좋아하는 거예요?"
"둘 다 예요.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한 점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정 윤희 양이다.
"라니아 양은 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터 아주 많이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한국에 머무를 이유가 없죠. 어디가도 이보다 조금 못하거나 비슷한 대우를 받을 자신 있거든요. 저는 첫눈에 반했다고나 할까요. 돈 많죠. 핸썸하죠. 나이 어리죠. 어리지만 직원들을 다루는 것을 보면 50먹은 중년들도 쩔쩔 맬 정도로 노련해요. 정희 씨는 옆에서 못 느꼈어요?"
한 번 말을 시작하자 거침없이 막 쏟아내는 라니아 양이다.
"저도 간혹 이 사람 나이가 몇 인가? 다시 쳐다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죠."
"동감하니 이야기하기가 편해졌네요. 이런 사람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정 대리도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회장님을 사랑하고 있을 걸요?"
말끝에 그렇지 않느냐고 눈까지 찡긋해가며 묻는 라니아다.
라니아의 동의를 구하는 말에 고개를 끄떡이던 정 윤희양이다.
"호호호.........! 아주 좋군요. 두 분 다 우리 회장님을 좋아한 다라? 그렇다면 아주 까놓고 묻죠?"
차가 나왔어도 모두 흥분 상태라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 바람에 멀쩡한 차만 싸늘히 식어가고, 가정부 아주머니는 예상외의 심각한 이야기가 오가자 자리를 피한지 오래다. 나 또한 샤워를 끝냈지만 이 분위기에서 불쑥 나갈 수도 없어, 팔자에도 없는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만약에 말 이예요? 회장님이 오늘밤이라도 당장 자자고 하면 두 분은 어쩌시겠어요? 솔직하게 한 번 답변해보세요."
점입가경이다. 정희에게 이런 면모가 있는지 오늘 비로소 처음 알았다. 하긴 저런 강단도 있으니, 미국 까지 달아나고, 나를 시험도 해보았을 테지만........
"저는, 저는........ 응하겠어요."
---------------------============================ 작품 후기 ============================오늘이 2월의 마지막 날이군요.
오는 삼 월에는 즐거운 일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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