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61화 (61/135)

< -- 위기를 기회로 -- >

9내가 기자회견을 마치고 압구정동의 그룹 사옥에 도착하니, 25층 전체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압구정동에 사옥은 물론 호텔과 백화점이 준공되어, 전 사원이 사옥에 입주하는 것은 물론 호텔과 백화점도 영업을 개시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런 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사원 어느 하나 퇴근하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반증에, 나는 고단한 가운데에서도 흐뭇한 마음으로 현관 앞에서 내린다.

나의 예고된 출현에 각 계열사의 사장단이 횡으로 늘어서서 나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가, 일제히 내게 정중한 인사를 올린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나는 손을 번쩍 치켜들어 그들의 인사에 답례를 하고는, 차례로 각 계열사의 사장들과 악수를 나누며 간만의 해후를 반긴다. 간단한 상견례가 끝나자 나는 빠른 걸음으로 현관의 계단을 오른다.

현관 정문에는 오순의 경비대장이 정복차림으로 나를 맞아 거수경례를 붙인다. 나는 그 경비대장에게도 다가가 손을 잡아주며, '수고 한다'는 말로 그를 치하한 후, 회전문을 들어서니, 각 계열사의 상무급 이상 간부들이 열을 지어 서 있다가, 일제히 내게 정중한 인사를 올린다.

나는 그들 또한 일일이 한 사람씩 손을 잡아주며 격려해주고는,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25층에 위치한 회장실로 직행한다. 회장실에는 아직 퇴근을 하지 않은 정윤희 대리와 라니아 대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나를 맞는다.

나는 커피를 부탁해 한 잔 마시며, 서울의 밤풍경을 내려다본다. 강북은 불빛이 가득한데, 강남은 아직 20만의 인구만 살아서 인지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다.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두 실장이 회장실로 들어온다.

"오늘 확대간부 회의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비서실장의 진언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오늘은 제가 너무 피곤하니 4일 시무식 겸 해서 하는 것으로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정 실장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두 명의 실장에게도 차를 내오도록 주문한다. 그리고 나는 커다란 소파로 가서 털썩 주저앉는다. 그러고 나니 이제 본격적으로 피곤이 몰려오는지 금방 온몸이 나른해진다. 긴장했던 것이 풀리는 모양이다.

나는 자꾸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고 있다가, 서둘러 퇴근 준비를 한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잠시 눈을 붙인 내가 좀 나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자마자,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욕실로 샤워를 하러가다가, 깜짝 놀라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두 여자가 내 집으로 떠들며 들어오고 있는 까닭이다. 내 비서인 정 윤희 양과 라니아 양이다.

'이게 뭔 일........?'

'아하.........!'

나는 두 여자를 보고나서야 비로소 그녀들에게 이집에서 살아도 좋다고 허락한 사실이 떠오르는 것이다. 연유는 이렇다.

갑자기 한국으로 들어와 살집이 마땅치 않았던 라니아는 여관이나 때로 호텔방을 전전한다는 소식을 비서실장이 들었다. 그래서 비서실장이 내게 빈집을 그냥 두는 것보다는 그녀가 들어와서 살면 어떠냐는 제의를 한다. 내가 생각해도 빈집을 그냥 버려두는 것보다는 부하직원이 들어와 살면 나을 것 같아, 이를 허락한다.

그 바람에 라니아 양이 여기서 살게 된 것이다. 정 윤희 양 또한 사정이 비슷한 케이스다.

그녀 역시 부친이 직업 외교관이다 보니, 외국을 떠도는 날이 많아 자연히 한국에는 거처할 집 한 채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셋방을 전전하며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라니아 양의 내 집 입주가 거론되면서 자연히 그녀의 문제도 함께 거론되어, 그녀 또한 내 지시로 들어와 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내가 군 생활 하느라고 집에 제대로 들어온 적이 없으니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그녀들을 오늘 보고나서야 비로소 생각이 난 것이다. 나는 그들이 각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사이, 서둘러 욕실로 들어가 간단하게 샤워를 끝내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간단한 라운드 티와 청바지로 갈아입고 주방으로 향한다.

"저녁 맛있게 되었어요. 어서 앉으세요."

가정부 아주머니의 따스한 웃음과 함께 내가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옷을 갈아입은 두 여인도 건너편 식탁에 마주 앉는다.

"안 씻어요?"

"식사는 혼자보다 여럿이 먹어야 맛있잖아요? 우리는 회장님의 맛난 저녁을 위해 일부러 안 씻고 앉았는데, 그런 핀잔을 주시면 우리가 무안하잖아요."

정 윤희 양의 대답에 나는 그저 피식 웃고 만다. 그런데 핀잔이 핀잔을 부른 것일까?

"저는 회장님이 함께 퇴근하실 줄 알았어요?"

라니아 양의 핀잔에 내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사실 두 분이 내 집에서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오늘 두 분을 보고 생각이 났으니 다행이지 큰 실례를 범했을 번했습니다. 아무튼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어머 세상에......... 회장님은 우리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나 봐요?"

정윤희 양의 말에 내가 답변을 한다.

"고단한 군 생활을 하느라고 다른 곳에는 미처 염두를 굴릴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 정답이겠지요. 아무튼 혼자 쓸쓸하게 식사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군요."

"쳇, 우리 처지가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거 였었어요?"

정 윤희 양의 계속되는 투정에 나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수저를 들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런데 내가 이제 집으로 돌아오게 되니 문제가 있다. 이제 경호원도 나를 따라 상주근무를 하게 될 텐데, 그러다보면 그녀들과 수시로 마주치게 될 것 아닌가? 전에 나는 그들도 방 한 칸을 주어 피곤한 사람은 때로 쉬기도 하면서 근무하게 끔 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을 하니, 아무래도 나도 불편하고 해서, 이층의 방을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문제는 내일 아니 내일부터는 신정 연휴에 들어가는 관계로 4일 출근해서 정 실장과 상의하기로 하고 우선 나는 식사에 열중한다.

나는 군대의 버릇대로 빠른 속도로 식사를 끝내고 거실에 있는 TV를 튼다. 이제 막 9시 뉴스가 시작되었는지 온통 내 기자회견 장면과 함께 대원그룹의 이야기뿐이다.

내용이야 이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TV에서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고 지켜본다. 그러다가 나와 그룹의 이야기가 끝나고, 미국과 중공의 수교 소식으로 넘어가자, 나는 TV를 끄고 내방으로 돌아온다. 벌렁 침대에 몸을 던져 팔베개를 하고 누우니 갑자기 정희 생각이 난다.

'그런데, 이놈의 가시나는 왜 보름 전부터 소식이 없지? 내가 그동안 너무 분주해 저를 못 챙겼기로 서니, 저도 나에게 안부 전화 한 통 없이 왜 이 모양이야?'

나는 툴툴거리며 그녀의 이모네 집에 전화를 걸려다가 만다. 너무 늦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회사 생각을 하다가 급속히 몰려오는 수마에 의해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다.

* * *이튿날 아침.

모처럼 나는 늦잠을 잤다. 오늘이 79년 1월1일로 새해 첫날이라, 관공서는 물론 우리 그룹 전체도 3일까지 쉰다.

이 당시에는 이중과세를 방지할 목적으로 음력설은 아예 공휴일로 지정도 되지 않았고, 신정만 3일간의 휴무를 맞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음력설을 세었고, 공무원이나 주변의 몇 몇 사람만이 정부 시책에 호응해 신정 설을 세었다. 우리 집도 당연히 음력설을 센다.

내가 눈을 퍼뜩 떠 시간을 보니 벌써 아침 10시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간다.

내 방에는 TV가 없는 까닭이다. 방 안에 텔레비전이 있으면 아무래도 이를 시청하게 되고, 관성에 의해 이 채널 저 채널 돌리게 되는 까닭에, 애초부터 놓지를 않았다.

아무튼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트니 궁금한 나와 그룹의 소식은 없고 온통 오락프로그램 일색이다. 실망한 나는 욕실로 가, 양치와 세면을 하고 간단하게 샤워까지 한다. 그리고 곧 바로 정희 이모네 집에 다이얼을 돌린다. 그런데 이상한 멘트가 나온다.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결번이오니.........."

어쩌고 저쩌고 하길래 나는 내가 번호를 잘못 돌렸다고 생각하고, 끼르륵 거리는 다이얼을 다시 돌린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다. 혹시나 해서 한 번을 더 그렇게 하고 나니,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조짐에 내 기분이 급속히 가라앉는다. 나는 잠시 창밖을 내다보며 멍하니 생각하다가 급히 거실로 돌아와, 다시 전화기를 돌린다.

청주에 있는 정희네 집이다. 혹시 신정이라 그곳에 내려갔을 확률이 크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로 결번으로 나온다. 비로소 나는 무언가 사단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하고, 내 심장이 급격히 뛰기 시작한다.

약간 떨리는 손으로 나는 다시 청주 어머니께 전화를 건다. 여동생이 받았다가 마침 어머니가 집에 계셨던지 곧바로 바꾸어준다.

"나요. 어머니!"

"그래 방송 잘 보았다. 그 동안 애썼다. 어디 몸 축난 데는 없고."

"네. 어머니 아버지도 평안하시지요?"

"그래, 우리야 항상 너무 건강해서 탈이지. 그런데 너희 회사는 신정에 안 쉬는 것이냐? 쉬면 내려오지 않고?"

"그것보다 어머니 정희소식 모르세요?"

"아니, 게가 왜? 회사에 오늘 출근도 않았더냐?"

"오늘 우리도 쉬어요.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이모네 집이고, 정희네 집이 모두 결번으로 나오니, 어머니는 그 까닭을 알 것이라고 생각해서요."

"내가 그 까닭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니?"

아주 냉정하게 나오시는 어머니다. 평소 이럴 분이 아닌데, 그러는 것이 아무래도 더욱 수상쩍다.

"내 곧 내려갈게요. 어머니도 오늘은 쉬시죠?"

"오늘 하루만 쉰다."

"알았어요. 제가 곧 내려갈 테니 어디 가지 마시고 기다리세요."

"알았다. 조심해 내려오고."

"네."

내가 전화를 끝내고 뒤가 이상한 느낌이라 돌아보니, 두 여인이 내 통화하는 것을 모두 엿듣고 있다. 내가 갑자기 뒤돌아보자 화들짝 놀라 자신들의 방으로 튀어간다.

나는 그녀들을 질책할 새도 없이 오늘의 근무인 석 대식 팀장을 불러 청주행을 재촉한다. * * *내가 청주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내가 평소 좋아하던 만두를 빚어놓고, 기다리고 계신다.

서로 간단히 안부를 묻는 것이 끝나자마자 어머니는 곧 바로 주방으로 들어가셔서 만둣국을 끓이신다. 설에 떡국을 끓이지만 떡 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식습관 때문에, 만두만 퍼주시는 어머니시다 보니, 아예 만둣국을 끓이시는 것이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가 등 뒤에서 묻는다.

"어머니 정말 정희 소식 모르세요?"

"네가 여기까지 내려와 묻기까지 하니 언제까지 숨길 얘기도 아니고, 걔들 식구 전부 보름 전에 이민 갔다."

"네..........?"

잠시 너무 놀라 멍 때린다. 그러다가 깨어나 급히 묻는다.

"어디로요?"

"아마 미국으로 간다는 것 같지."

"어머니가 보냈지요?"

나는 평소 정희의 행실로 보아 절대 그녀 자의로는 이민을 가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으로 단정적으로 묻는다.

"한 달 전인가? 하루는 정희 어머니께서 내게 상의를 하러 오셨더라? 애가 임신 육 개월이 가까워지니, 점점 표시도 나고, 또 처녀가 결혼도 않고 함부로 아이를 낳으면 남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도 있으니, 아무리 군대에 있다지만 조만간 결혼 날짜를 잡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상의를 하러 오신 것이다."

"그래서요?"

"내 그래서 솔직히 얘기했다. 그 아이는 도저히 우리 태민이의 결혼 상대가 아니니, 아이를 지우라고. 그러면 많은 보상을 해줄 것이고, 또한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뭐요? 어머니가 정희한테 어찌 그럴 수가 있어요? 정말 해도 너무 해요."

나는 너무 분해 내 감정을 내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하니 말조차도 안 나온다. 그런 나를 안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어머니가 다시 이야기를 하는데 표정은 아주 냉정하다 못해 표독스럽기 까지 하다.

"그럼, 너는 그 아이가 너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냐?"

"안 어울릴 이유가 또 뭐 있어요?"

"아무튼 내 얘기 계속 들어봐라."

계속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정희 어머니가 '딸 팔아, 팔자 고치고 싶은 생각 없다'고 끝까지 버티자, 어머니는 급기야 정희를 회사까지 찾아가 불러낸다. 그리고 말한다.

'결혼이라는 것도 서로 어느 정도는 지체가 맞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태민이와는 전혀 안 어울린다. 그래도 네가 태민이와 끝까지 결혼하겠다고 우기면, 결국 내가 먼저 죽는 꼴을 볼 것이다.'

하는 강경한 협박에 계속해서 울고만 있는 정희를 보자 조금은 마음이 약해지신 어머니가 이제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씨에 호소한다.

'네가 정말 태민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네가 그 아이의 앞길에 걸림돌은 되지 않아야 옳지 않겠니? 너도 생각이 있는 아이라면 너와 태민이를 비교하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내가 볼 때,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지금 너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가 말이다.

'그 말에 울음을 그친 정희가 종당에는 어머니 말을 수용했고, 어머니는 싫다는 그녀식구들에게 약 1억 원이라는 거금을 강제로 위탁시켜, 결국 그들 가족을 이 땅에서 내쫓은 결과를 불러왔다.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나도 망연히, 무엇을 어찌 해야 할 지 한동안 감이 잡히자 않는다. 그러다 그 순간이 지나자 폭발적으로 화가 끓어오른다. 그렇다고 그 화를 어머니에게 폭발시킬 수도 없고 나는, 만류하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그 길로 바로 눈에 띄는 차를 끌고 나간다. 그러자 경호원들이 난리가 났다.

바로 내 뒤를 쫓아, 내 회사 전용차를 끌고 뒤를 쫓는다. ------------------------------============================ 작품 후기 ============================하루 2편 쓴다는 것이 정말 피곤하네요!

^^작가의 피곤을 풀 수 있는 청량제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하고요!

^^ 늘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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