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기를 기회로 -- >
7조금 진정이 되자 대통령이 다시 입을 연다.
"아직 자네 말 안 끝났지. 어서 계속 해보라고."
"전번에 허가를 내주신 한-사우디 50만 배럴의 합작 정유공장이 온산에 완공되어, 명년 1월 5일에 준공식을 가질 예정입니다."
"뭐? 몇 만 배럴?"
"50만 배럴입니다. 각하!"
"허허........! 이런 일이.........! 선견지명이 있고 만. 강 회장! 그런데 가만, 가만......... 종전에 비서실장이 우리 하루소요량이 50만 배럴이면 된다고 하지 않았어?"
"네, 아껴 쓰면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럼, 과잉 아냐? 이봐, 비서실장!"
무조건 부르고 보는데, 비서실장이 안 보인다. 좀 전의 지시를 이행하러 잠시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가 4개라도 달렸는지, 멀리 문밖부터 대답을 하고 들어오는 비서실장이다.
"부르셨습니까? 각하!"
숨을 몰아쉬는 비서실장이다.
"우리 정유사들의 정유 능력이 일산(日産) 얼마야?"
"57만 배럴로 알고 있습니다."
"역시 비서실장은 똑똑하단 말이야. 그런 걸 다 알고 있고 말이야."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근래 파악한 수치입니다."
"아무튼, 그러면 기름이 너무 생산되는 것 아니야? 괜히 기름 과잉 생산해, 아까운 달러만 축내는 것 아니냔 말이야? 물론 길거리에 쏟아 붓는 것은 아니겠지만 서도."
"애초 저희 계획은 국내는 15% 내외만 점유하고, 나머지는 전량 현물시장에 내다팔 계획이었지만, 과잉이라면 저희는 전부 현물시장에 내다팔아 달러를 벌어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도 이게 훨씬 마진이 좋은 장삽니다.
보통 국내 유가가 20달러라면 현물 시장에서는 내다파는 정제유는 40달러를 훨씬 웃도니 까요."
"그러면 원유도 수출품목이 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비록 사우디 기름을 수입해오지만, 배 이상을 남기고 되파는 장사를 하는 셈이죠. 이는 달리 말하면 더 많은 달러를 국내로, 오히려 들여온다고 볼 수 있죠."
"하하하.........! 역시 사업가는 강 회장 같아야 한단 말이야. 괜히 좁은 국내 시장에서 아옹다옹 하지 말고, 외화 획득까지 하니 여간 좋아! 그렇게 좋은 일인데 내가 준공식에 참석을 안 할 수가 없지. 준공식 예정일이 5일 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5일 10시 30분 예정입니다."
"이봐, 비서실장! 들었지?"
"네, 각하!"
"미리, 미리 준비하라고. 시간 늦지 않게."
"네, 각하!"
"그런데, 청이 하나 있습니다. 각하!"
"뭔지 말 해봐. 웬만하면 다 들어줄 테니."
"제 증여세 문제를 아직 처리를 못 해서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제 부친의 명의로 지금까지 사업을 해온 관계로.........."
"흐흠......... 강 회장에게는 그런, 문제가 있었군. 그런데 말이야, 강 회장, 이거 알아? 내가 알기로 말이야, 증여세가 상속세보다 비싼 걸로 알고 있단 말이야. 그렇다면 엄청난 증여세를 물어야 된다는 얘긴데, 하루아침에 기업 반쪽 나는 것 아니야? 허허허........! 그러면 나야, 나라의 수입이 그만큼 증대되니 좋지만 말이야."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가 없는 대통령의 어투다.
"물론 그런 면도 있습니다만, 사실 제 입장에서는 억울한 것이, 부모님은 제게 약간의 종자돈 밖에 마련해준 것 밖에 없고, 전부 제가 오늘의 부를 이룬 것인데........ 이는 법정으로 가도 정상참작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여기서 나는 말을 끊고 대통령의 눈치를 본다. 그리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각하! 선처해 주십시오."
"하하하.........! 모처럼 강 회장이 내게 굽실거리니 기분은 좋은데, 이봐, 비서실장, 이런 경우의 판례도 있나?"
"그건, 저도 처음 들어보는 일이라서.........."
"법무부 장관을 불러서 물어보도록 하지."
"그 전에 각하의 용단이 더욱 중요할 것 같습니다. 각하!"
"나 보고, 뭘 어쩌라고?"
"10%만 내면 안 될까요?"
"하하하.........! 이거 거저먹을 생각 아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참 동안을 생각에 잠기는 대통령이다. 그리고 조용히 나를 부르신다.
"이봐, 강 회장!"
"네, 각하!"
"강 회장이야 좀 억울하겠지만, 나라에는 법이라는 게 있어. 15%만 내도록 해. 나머지는 내법무부 장관과 상의해 볼 테니."
"억울합니다. 각하!"
내가 그 자리에서 얼굴을 무릎에 묻고 억울함을 하소연한다.
"하하하........! 그럼, 돈을 작작 벌지 그랬어?"
농담을 마친 대통령의 웃음이 서서히 걷히며 시선이 천정으로 향한다. 천정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대통령이 갑자기 내게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진중한 어투로 말을 한다.
"자네만 청이 있는 게 아니야. 나도 청이 있어."
내가 말없이 얼굴만 올려다보자, 대통령이 한 옥타브를 올리며 말한다.
"신 현화를 날 줘."
"네?"
"자네 부회장 말이야. 요새 부 총리감을 고르고 있는데, 영 마땅한 사람이 없어. 그래서 청하는 거니까, 그런 줄 알고."
"제가 어렵게 모신 사람인데........."
"대신 12%로 감해주지. 물론 법무장관의 법 논리도 들어봐야 알지만, 내가 봐도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으니, 내 말대로 될 확률이 아주 높아."
"바로 입각해야 됩니까? 저는 금번 사태에 대한 우리의 해명과 와프라 유전 개발소식, 각 정유소 상황 등을, 기자회견을 열어 소상히 전할 적임자로, 신 부회장을 찍고 있는데요."
"그 정도는 강 회장이 해도 되잖아. 그러니 바로 내게 넘겨주는 걸로 해. 내 말 알아들었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볼 때는 말이야, 이런 비상한 시국에는, 그런 강단 있는 인물이 경제를 이끌어야, 적임이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도록 하지요."
"일 다 봤나?"
"아닙니다. 아직 한 가지 남았습니다."
"말 해봐."
"사우디 왕세자와 쿠웨이트 국왕이 금년 상반기 내에 한국을 꼭 방문하기로 저와 약조를 했습니다. 물론 친선방문입니다만, 그 전에 이들이 확고하게 한국의 원유소비량 만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책임져 주겠다는 언약을, 사전에 제게 했습니다.
이 소식을 기자회견 석상에서 발표해도 좋다는 언질 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각하께서는 미리 알고 계시옵고, 외무부나 관련부서에서는 이참에 그동안 체결 못했던 한-사우디 투자보장협장이나, 이중과세방지협정 등 여러 현안과, 기타 통상협력 증진방안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하하하........! 역시 강 회장은 확실하고만. 아주 대 못질까지 했어. 참 너무 영민해서 걱정이군."
종내는 늙은이 자식 걱정하는 무드로 돌변하는 대통령이다. 나는 말없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상체를 반쯤 들고 대통령의 눈치를 살핀다.
'일어나도 좋으냐고?'
내 눈치를 알아 챈 대통령이 말한다.
"바쁠 텐데, 가서 일보지, 그래?"
"네, 각하! 감사했습니다."
내가 다시 정중하게 고개를 조아리자 대통령은 내게 다가와 친근하게 어깨를 두드린다. 그리고 내 손을 잡으며 말한다.
"사업 잘 해!"
"네, 각하!"
답변을 하고 그의 표정을 보니 뭔가 이상하다.
어딘지 매우 쓸쓸한 표정이다. 이를 본 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의 죽음이 만 10개월도 남지 않았음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 *내가 대통령 집무실을 벗어나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비서실장이 말한다.
"춘추관에 기자회견 준비 다 해놨습니다. 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비서실장님의 도움으로 이번에도 많은 건을 해결하고 갑니다."
나의 덕담에 비서실장이 웃으며 말한다.
"허허........ 그게 어찌 내 도움이오. 다 강 회장의 노력이고, 잘 난 덕이지."
"아닙니다. 음으로 양으로 실장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하하하.........! 말이래도 그렇게 해주니 고맙소만, 내 강 회장이 그렇게 말 하니, 이 한 마디 조언해 드리리다. 이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는 법이오. 특히 사업은 더욱 그렇소. 그러니 앞으로 강 회장이 처신을 잘 하시기 바라오."
"감사합니다. 이번 기회에 저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제게 소신이 하나 있다면,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고, 정치와는 너무 가까이도, 또 멀리 하고도 싶지 않습니다. 적당히 선을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하하하.........! 젊은 사람이 나보다 더 노련하네. 그렇지만 강 회장 한 가지 꼭 명심할 것은, 적당히도 좋지만, 절대 정권과 척을 져서는 기업을 할 수 없다는 것만은 명심해두시게."
"실장님의 충고 가슴에 새겨두겠습니다."
"기자들 기다리겠습니다. 어서 내려가십시다."
"네, 실장님!"
나는 말과 함께 내 뒤를 따르는 두 사람 즉 정 비서실장과 이 기획실장을 돌아보며 말한다.
"기자회견을 하자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은데, 배고픈 것은 아니시죠?"
"하하하..........! 회장님도. 별 걱정을 다하십니다. 이제 그만 여유를 찾으신 것 같아, 보는 우리들이 더욱 기분이 좋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나는 조금 긴장되는 마음을 풀기 위해서라도, 이들과 사소한 잡담과 농담을 하며 기자회견장으로 향한다. 기자회견장이 마련된 춘추관.
청와대에 상주하는 전 방송사와 신문은 물론 지방지 기자들까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내가 춘추관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플래쉬 불빛이 일제히 터지고 TV용 조명까지 환하게 밝아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다. 나는 이를 감내하고 작은 일자형 탁자와 물잔 그리고 배석자들의 좌석 배치까지 완료된 회견 자리에 기서 앉는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촬영을 못한 사진 기자들에 의해 다시 한 번 일어서서 포즈를 취해준다. 그리고 내가 자리에 앉자 두 실장이 내 뒤에 배석하고, 언제 달려왔는지 강 팀장 등 네 명의 경호원이 측면과 후방 경계를 위해 버티고 서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 앉아 여유를 찾기 위해, 물을 한 잔 따라 마시며, 메모지며 필기도구를 가지런히 한다. 그러자마자 청와대 비서관 하나가 앞으로 나서, 사회자로서 회견을 주도한다.
"지금부터 대원그룹 강 태민 회장의 기자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전에 잠시 제가 언질을 준대로 주제와 상관없는 질문은 가급적 삼가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질문을 받겠습니다. 질문이 있는 분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네, 거기. 질문하는 분의 소속사와 이름을 대시고 질문 시작해 주십시오."
"동양방송의 주재로 기자입니다. 우선 묻겠습니다. 좀 전에 청와대 홍보수석 비서관의 발표에 의하면, 와프라 유전에서 60만 배럴의 원유가 하루에 쏟아져 나온다는데, 이것이 정확한 수치며, 사실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주시고, 가까운 시일 내에 또한 증산 계획은 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네, 답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3년 전부터 평가공을 뚫는 등 착실한 준비를 해서, 세계의 유래가 없는 최단 시일 내에, 사우디아리비아, 쿠웨이트 양 유전에서 각각 30만 배럴 씩, 60만 배럴의 원유를 매일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또한 내년 4월 초면 사우디, 쿠웨이트 양 유전에서 공히 50만 배럴씩, 일산 100만 배럴의 생산 체계를 갖출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수년 동안 대한민국은, 대원그룹에서 개발한 원유만으로도 충분히 자급자족하고도 남습니다.
더 이상 남의 나라에 굽실거릴 이유가 없단 말입니다. 답변이 됐습니까?"
"네.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대원그룹에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유전을 확보할 예정인지요?"
"네,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고,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이 비록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지만, 대단위 유전을 꾸준히, 계속 확보해, 원유가 매장되어 있는 나라 부럽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대원그룹의 존재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니까요."
"감사합니다. 성실히 답변을 해주셔서."
"다음 분 질문 해주세요."
"동아일보의 최 석준 기잡니다. 일산 50만 배럴의 원유처리능력을 갖춘 한-쿠웨이트 정유공장이 생산을 개시했다는 것이 맞습니까? 맞다면 생산은 언제부터 개시했으며, 여기서 생산되는 원유는 누가 판권을 쥐고 있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소상히 답변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확히 올 10월 25일부터 생산을 개시했으며, 판권은 우리 대원인터내셔날에서 쥐고 있으므로, 만약 한국의 기름이 달린다고 하면 언제든지 전량, 한국으로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과잉을 우려해 현재는 두바이, 암스테르담, 싱가폴 등의 현물시장에서 대부분을 소화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내 말이 맞지요? 비서실장?"
"하하하.........!"
"네, 맞습니다. 회장님!"
나의 뜬금없는 확인성 질문에 기자들의 웃음보가 터진다. 그 소란 속에서도 정 비서실장의 답변은 또렷이 들린다.
"제가 제대한지 불과 며칠 되지 않아, 미처 확인치 못한 사항도 있어, 확실히 하기 위한 물음이니 너무 흉보지 마십시오."
하하하..........!
----------------------------------============================ 작품 후기 ============================많은 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추천과 멘트를 남겨주시면 더욱 감사하고요!
^^오늘도 연참입니다. 즐거운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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