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기를 기회로 -- >
5다 물려간 상태에서 남은 사람을 헤아려보니 7명이 남았다.
"당신들 이리 오시오. 당신들이 제일 불만이 많은 모양인데, 어디 먼저 들어봅시다."
나의 말과 손짓에 대부분 중장비에 올라있던 사람들이 나한테 하나 둘 주춤주춤 다가온다. 모두 몰려와 내 주위로 반원을 그리자 나는 7명을 한 번 쓸어본 후, 말을 한다.
"당신들 모두를 상대하려면 내가 피곤하니, 당신들끼리 회합을 해 한 명만 대표자로 선정해 나와 대화를 나눠봅시다."
내 말에 서로 눈치만 보던 그들이 잠시 후에는 둥그렇게 모여 수근 거린다. 외부에서 보니 운동선수들이 무슨 스크램이라도 짠 모양새다.
이런 비상한 시국에도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내 자신이 우스워 피식 실소를 흘리다보니, 이들의 모임이 다 끝났는지 한 사람이 나를 향해 똑바로 걸어온다. 건장한 체구에 구리빛 얼굴이보기 좋으나 내게는 흉기로 보인다.
"주된 불만이 뭡니까?"
"정 사장이 실질적인 오너가 되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내 대답에 그 사람이 하소연을 시작한다.
"그 후로는 완전히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우리에게 일상으로 전달되는 주 부식은 물론 잔업수당도 일정부분 줄였고, 심지어 일 년에 한 번씩 귀국 휴가마저 없애니, 저희들 불만이 폭발하지 않겠습니까?"
"좋습니다. 그 부분은 내 직권으로 이 자리에서 원상회복을 시키겠습니다. 그 외 다른 불만은 없는 것이요?"
"목욕시설이나 주거환경의 개선도 이참에 이루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부분 당신과 같은 불만이고, 의견이오?"
"네!"
"내 이 자리에서 확실히 보장하건대, 반드시 정 사장이 퇴보시킨 제도는 원상복구를 바로 시키도록 명령을 내릴 것이오, 하지만 주거시설 문제는 나도 이 자리에서 확답할 수가 없소. 우선 실태 파악이 먼저이고, 회사의 경영상태도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됐습니까?"
"네!"
"그럼, 우선 내 말을 여기에 모인 동료들에게 전하고, 또 이들로 하여금 전 근로자들에게 전파하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일단은 현지의 일에 복귀한 후, 다른 문제는 차차 당신들의 대표단이 구성되고, 우리 간부들도 아마 대폭 물갈이가 있을 것이니, 사장단이 교체되는 대로 의논하기로 합시다."
내가 이 자리에서 내 사업도 아닌 정 사장의 거취문제까지 논할 수 있었던 것은, 은마아파트 특혜분양이 언론을 탔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정 사장의 시대는 이것으로 끝났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돌아가시오!"
"네!"
"우리도 갑시다!"
"네!"
나는 호텔로 들어오자마자, 이 소식을 바로 파드 왕세자에게 알리는 한편 한국에도 전화를 걸어 회사는 물론 청와대 비서실까지 해결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곧 바로 정 사장의 거취문제를 논의한다.
"정 사장님, 나로부터 오늘 국내소식 들었지요? 은마아파트 특혜분양으로 인해 기사가 전 조간신문마다 대문짝만하게 나고, 그뿐입니까? 국내에 남은 부회장부터 사장단까지 전부 경찰서로 끌려가 조사를 받고 있고, 그룹 전체가 세무사찰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연관도 별로 없는 국내에 남은 사람도 이 모양인데, 당신은 도저히 손쓸 방도가 없을 것 같소?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당신의 입으로 말해보시오?"
"허허.........! 이제 나라는 인간은 한국에서는 끝난 모양이오. 염치없지만 제 주식이나 사주셨으면 하는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흐흠........!"
잠시 고뇌하던 표정을 짓던 내가 정윤희 양을 불러 오늘 대원건설의 주식시세를 알아보도록 한다. 잠시 후 돌아온 정양이 말한다.
"사우디 소요사태의 보도로 대폭락을 거듭하던 시세가, 8천 원에서 오늘은 아예 거래정지가 되었다는 데요?"
"들었소?"
"듣긴 들었습니다만, 이것 참 난감하군. 한동안 국내는 발도 못 붙일 테고, 천상 어디로 망명을 하거나 해외로 떠도는 신세가 될 나인데, 주식마저 이 모양이니........"
잠시 처량한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리던 정 사장이 무슨 결심이 섰는지 내게 질문을 한다.
"회장님, 아직 우선인수권주 조항은 유효한 것인가요?"
"아무 상관도 없는 내게 무슨 소리요?"
"참, 그랬던가? 아무튼 제 주식을 전부 회장님께 넘기겠습니다. 받아 주십시오, 단 5%만은 휴지조각이 되어도 제가 갖고 있겠습니다. 단순히 제 욕심 차원이 아니라, 회장님과 장차의 연을 위해 남기는 것이지요."
"얼마면 되겠소?"
"8천 원에 안 될까요?"
여기서 정 사장은 비굴한 표정을 여지없이 노정하며 내게 애원하지만 나는 단호하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말이! 못 들으셨소? 거래정지가 되었다는 말을. 이는 상장이 폐지될지도 모른다는 소리요. 이렇게 똥값인 주식을 어느 누가 8천 원에 산단 말이오. 액면가500원이면 모를까?"
"그건 너무 한 소리고, 5천 원에 어떻게 안 될까요?"
"그렇잖아도 신경 쓸 일이 많은 나요. 휴지조각인 주식 갖고 더 이상 당신과 실랑이 하고 싶지 않으니, 천 원에 팔려면 팔고 말라면 마시오."
나의 이렇게 단호한 말에도 나를 붙잡고 끝까지 애원을 하는 정 사장을 보니, 어떻게 보면 인간적으로 안타깝기도 해서, 그가 넘긴 주식 26%, 전량 5,200만 주를, 주당 2,500원 씩 계산해서, 1,300억 원에 양도를 받았다. 그래도 정 사장은 시장에서 나 몰래 사들인 주식 등이 있어서, 자신의 말대로 5% 지분은 유지하게 되었다. 둘이 서명날인까지 마치자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에게 묻는다.
"이제 어떻게 할 거요?"
"당분간 인터폴도 미치지 못하는 국가로 떠날 작정입니다."
"이런 변이 있나........! 정치라는 것이..........!"
나는 개탄을 금치 못하며, 힘이 하나도 없는 처량한 표정의 그를 보니, 그간 미운 정 고운정이 다 들어서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직 우리나라와 인터폴이 협정을 맺지 않아, 그럴 일은 없겠지만 추후라도 맺을 지도 모르고 하니, 정 사장님의 말대로 알아서 잘 처신하시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천만 원을 드릴 테니, 이는 어디 교통비라도 쓰세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회장님 밖에 없습니다. 내 사나운 욕심 때문에 회장님의 가슴에 비수를 들이댄 것도 모자라, 회사를 이 지경까지 만들어 놨는데도, 끝까지 온정을 베푸시니, 이 정 태순이 살아있는 한은 반드시, 회장님께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 쓸쓸히 퇴장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니, 웬일인지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그가 떠나도 한동안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내가 쓸쓸한 눈을 들어 엔지니어링의 최 사장에게 묻는다.
"거기는 어떻소? 듣기로 거기도 술렁인다면서요?"
"왜 아니겠습니까? 대원건설이 사실 우리 그룹에서 제명된 사실을 자세히 전하고, 우리 엔지니어링만은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 공표를 하니, 일들을 하기는 하나, 들뜬 심정들인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회장님!"
"공사 진행 상태와 경영 상태는 어떻소?"
"겨울과 봄철 등 태풍 철을 피해 온산에서 철 및 콘크리트 구조물을 다량 안전하게 수송해 오고, 주야로 일을 한 관계로, 공기가 최소한 10개월 이상은 앞당겨져 내년 2월이면 완공이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경영도 제가 빡빡하게 구는 바람에 이익금이 많이 남은 상태입니다만, 이런 꼴을 보니 차제에 베풀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오. 차제에 바람난 여자들로 이혼하는 우리 직원들이 없도록, 국내에 있는 현장근로자의 아내들도, 일 년에 열흘씩 이곳 현장으로 보내도록 하시오. 현장에서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봐야만, 남편들이 이 열사와 먼지바람 속에서,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려 번 소중한 돈인가를 알 것이고, 그래야 또한 아껴 쓰고, 새삼 남편의 소중함도 알 것 아니겠소? 또 대학등록금 까지는 어렵겠지만, 중고등학교 수험료만이라도, 차제에 지급하는 방안을 강구해 보도록 하시오."
"그럼, 엄청난 재원이 들 텐데.........."
"돈이야 더 벌면 되는 것이고........ 우선 직원들과 종업원들의 이탈을 막아야 기술축적이 되는 것 아니겠소? 이를 장기적인 눈으로 평가한다면 오리려 우리에게 이익일 테니, 내 말대로 진행하시오."
"네, 회장님!"
"인도 파이프라인 공사는 어찌 돼가고 있지요? 내 듣기로 부사장이 현지에 파견나가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만?"
"회장님이 알고 계신 사실 그대로입니다. 우리의 근면한 근로자들이 단 한 번의 태업도 없이 주야로 일을 하니, 생산성이 놀라울 정도라, 싸이펨에서는 이란과 파키스탄을 오가는 파이프라인 공사까지 5억 불에 맡겨, 한창 공사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두바이 발전소 프로젝트는 차질 없이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란이라는 말에 나는 퍼뜩 정신이 들어 묻는다. 금번 이란은 회교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팔레비 왕을 추출하고,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종교지도자 호메이니옹을 수반으로 하는 내각을 구성하고자 한창 투쟁중인 까닭이다.
"싸이펨에서 제대로 결재는 되고 있는 것이오?"
"아직 까지는 단 하루도 지급 날짜를 어긴 적은 없습니다."
"그럼 다행인데, 앞으로가 큰일이오. 당분간 아르헨티나의 유정이나 파이프라인 공사는 준대도 맡지 마시오."
"뭔 이유가 있습니까?"
"이란의 사태를 옆에서 직접 들으면서도 이해가 안 간단 말이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제야 납득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는 최 사장이다.
"당분간 대원건설까지 최인준 사장이 맡아서 관리하고 계시오. 내 곧 사장을 선임해 보낼 테니........."
"네, 회장님!"
여기까지 진행하니 머리가 무거워진 내가 잠시 회의를 파하고 호텔의 뜰을 거닌다. 이때 내 머리 속을 강타하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지금 처리해야만 내게 큰 이득을 안겨주는 골치 아픈 숙제를 이 기회를 빌어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그 문제는 곧 증여문제다.
나는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정 윤희 양에게 다시 한 번 국내로 전화를 걸어, 강철민 자금부장(승진)에게 주식이 폭락하고, 회사의 재산가치가 전체적으로 큰 손실을 입은, 이 시기에 신속히 증여문제를 검토 처리하도록 지시한다. 당연히 여기에는 기획실의 세무팀도 가세토록 했다.
이제는 기로에선 대원그룹이 이 시련을 딛고 금방 일어날 수 있는 키를 쥔 이상백 사장을 나는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연다.
"와프라 유전의 원유 생산은 개시가 되었습니까?"
"6개월 전 시험 생산을 거쳐 지금 현재 사우디, 쿠웨이트 양쪽 공히 하루 30만 배럴, 도합 60만 배럴의 원류를 일일 생산하고 있습니다."
"좋아요. 계속 해보시죠."
"이것이 내년 4월 초면 양쪽 월 50만 배럴, 도합 일일 100만 배럴의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됩니다. 또한 DK정유도 10월 25일 자로 완공되어 현 50만 배럴의 정제유를 토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온산의 DS정유는 공사를 늦게 착공하는 바람에 현재 마무리 공정이 진행되어 명년 1월5일 준공식과 더불어 생산에 돌입하는 것으로 계획이 잡혀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만하면 우리 대원그룹이 금번의 심대한 타격에도 금방 일어날 수 있는 충분한 단초를 제공했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니 이제야 체했던 것이 쑥 내려가는 기분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이 사장을 크게 칭찬하고, 그동안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힘써 일해 준, 간부들과 근로자들에게 특별상여금 100%를 지급하도록 명한다. 내 지시에 이 상백 사장은 물론 슐츠 부회장까지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대충 이곳의 문제가 정리되자 나는 국내문제로 속을 끓인다. 이제 하루 빨리 귀국해 대통령과의 담판으로 이를 해결할 결심으로 마무리 발언을 한다.
"이곳의 일은 이만하면 무난히 해결된 것이고, 우리 기업의 활로를 열 답도 얻었으니, 나는 가능한 빨리 귀국해야겠습니다. 그전에 하실 말씀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하세요."
내 말을 받아 원정남 중동 본부장이 입을 연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작품 후기 ============================오늘도 연참입니다.
즐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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