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기를 기회로 -- >
112월 달에도 정희는 내게 면회를 왔다. 그런데 꼭 비서실장과 1주일 차이다. 그래서 나는 연달아 외박을 나가게 된다. 그러자 나도 눈치도 보이지만 주변 분위기도 좋지 않은 것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다음 달에는 정 비서실장과 함께 오도록 정희에게 일러둔다.
알았다고 대답하며 떠나는 그녀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누구든지 쉽게 서로 몸을 섞는 것이 남녀 간의 이치다.
나와 정희는 이번에도 그 여관에서 하룻밤을 유쾌하게 보냈다. 비록 내 입장에서만 인지는 몰라도. 비서실장도 그룹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고 하니 나는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군무에 충실할 수가 있다.
이렇게 비교적 편안한 해안의 경계근무가 4월 달이 되자 막을 내리고, 우리 중대는 내륙으로 들어와 훈련만 거듭되는 본격적인 어려운 군 생활이 시작된다. 여기서 1년을 훈련으로 단련해야만 또 다시 해안 초소로 가서 경계근무에 임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가벼운 분대전투로 시작되더니 갈수록 훈련의 질이 힘들어진다. 이쯤 되니 '똥 푸는 것이 특과'라는 말이 이해된다.
군대의 퍼세식을 퍼내는 것도 중대의 최고 고참 아니면 아무도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다. 냄새나는 똥 푸는 것이 쉽지, 그만큼 훈련이 고되고 힘들다는 말이다.
훈련은 훈련대로 힘든데다가 우리 중대는 5분대기조 마저도 지정되어 밤에도 편안하게 발을 뻗고 잘 수가 없다. 문자 그대로 비상이 걸리면 5분 내에 완전군장은 물론 탄약고에 가서 탄약까지 수령해 중대병력 전원이 차에 올라, 차가 출발을 해야 한다. 그러니 밤에도 5분 내에 출동하기 위해서는 그 꼬린내 나는 통일화를 신은 채 침상에 거꾸로 잠을 잔다.
그 결과는 전 중대병력의 절반 이상이 무좀 환자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것도 오래하다 보니 요령이 생긴다. 나중에는 통일화를 벗고 잤다. 그리고 비상이 걸리면 얼른 신기만 하고, 나중에 차 안에서 신발 끈을 조이는 것이다.
아무튼 2개 분대가 합류해 완전한 소대를 이루어 한 막사를 지정받은 우리다. 즉 4개 분대 중에서도 나는 화기분대에 속해 M60을 다루는 탄약수가 내가 맡은 소대 내의 임무다.
즉 내 개인 화기인 M16은 물론 M60의 탄약까지 책임져야 하는 임무였다. 4월 초에 철수한 우리는 6월 달에 있을 여단 자체의 중대전투 측정시험에 대비해 일주일에 최소 두 번 이상은 10km 완전군장 구보를 한다.
완전을 군장을 꾸려 맨 채 전 중대가 열을 맞추어 10km 구보를 하는 것이다. 이 구보가 말은 쉬워도 해보면 정말 힘들다.
오죽하면 전 중대원의 1/5이 낙오를 할까. 뒤따라오는 앰브런스에 실려 오는 놈, 천천히 걸어서 늦게 돌아오는 놈, 별의 별 놈이 다 있다.
그래도 나는 구보는 잘 했다.
중학교 3학년 일 때 당시 정년퇴직을 맞이한 교장선생님(65세의 노인이다 보니 특별히 건강을 강조)의 특별지시로, 방과 후에 매일 6km 이상의 남들 제방을 뛴 덕분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중대측정 시험 당일 날을 맞은 우리는 또 한 번 놀라운 일을 당한다.
연습 구보시에는 내 사수는 빈 몸으로 뛰었다. 그에게는 개인 화기로 M16은 지급되지 않고, M60만 지급 된 탓에 빈 몸으로 구보를 했는데, 측정 교관은 그게 아니었다.
'만약 전쟁 발발 시 후퇴하거나 진격 시, 개인화기인 M60을 버려둔 채, 철수나 후퇴를 할 것이냐'는 반문과 함께, 10kg이 넘게 나가는 M60을 메고 구보에 임하게 한 것이다. 처음에는 육중한 화기를 들고 기세좋게 뛰던 사수가 도저히 힘들어 안 되겠는지, 이를 바로 밑인 부사수에게 넘겨준다. 그런데 내 부사수는 구보만은 영 아니어서 간신히 낙오나 면하는 처지다.
"난 도저히 자신 없다. 강 일병 네가 메고 뛰어라."
이때는 나도 6개월 만에 진급이 되어 일병이 된 상태였다. 아무튼 분내 내에서 바로 나의 윗고참으로 다른 놈들은 자신의 팬티마저 벗어주며 내게 빨아달라는데, 이 양반만은 그래도 나를 챙겨 그런 일은 전혀 없고, 나를 다른 면에서도 많이 편들어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말이니 계급을 떠나서도 거부할 수가 없다.
개인화기를 사수에게 넘긴 나는 M60을 군장 위에 둘러매고 뛰는데, 이게 영 장난이 아니다. 거짓말 좀 보태, 한 발작 한 발짝 뛸 때마다 땅이 움푹 움푹 파였다가 복원되는 것은 느낌이 올 정도로, 그 육중한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이까짓 것 하나 못 이겨내면 어떻게 그 험난한 사회생활을 하며, 재계의 싸움을 이겨내겠는가!'
독하게 마음먹은 나는 이를 악물고 이제 중대 전체의 구령마저 붙인다.
"하나!"
하나에 왼발, 둘에 또 왼발이다. 이 구령 붙이는 것이 왜 힘드냐 하면 자신의 호흡 조절하기가, 말을 뱉는 바람에 그 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를 악물고 부대 전체를 위해 구령까지 붙여가며 뛰는 내게, 저 만큼 결코 낮지 않은 오르막길이 보인다. 평지도 힘든데 오르막길은 정말 죽을 맛이다.
이 고비에서 낙오병 거의 대다수가 낙오를 한다. 이 고개만 넘으면 평탄한 길의 연속이었다가 곧 종착역이다.
내가 이를 악물고 중대 전체를 호령한다. 이때 중대장도 함께 뛰긴 뛰는데 제 한 몸 건사하기 바쁘니 구령을 붙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고개 숙여!"
"고개 숙이란 말이다!"
이 당시 얼마나 힘든지 입에서 모두 게거품을 물고 있는데 내가 반말했다고 트집 잡을 놈은 하나도 없다. 그럼, 명령이라는 것이 반말이지,
'고개 숙이세요!'
이런 명령은 없잖은가.
아무튼 내 명령에 일제히 고개를 푹 쳐박고 자신의 발끝만 바라보고 열심히 오르막을 오른다. 비록 입에서 거품이 뿜어지고 단내가 날지라도.
여기서 왜 고개를 들지 않고 뛰느냐 하면, 고개를 들고 뛰면 오르막의 남은 길이가 전부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열심히 죽겠다고 뛰었는데도, 아직도 오르막이 한참 남아있으면 인간 심리상 지레 지쳐, 여기서 숫한 낙오병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선임들의 경험적 측면이 면면히 전해내려 온 까닭이다. 아무튼 전 중대원이 나의 분투에 힘입어 평소에는 숫하게 낙오하던 마의 고개에서 딱 두 명의 낙오자만 나오고 전원 통과를 한다.
그 낙오자들마저 어느 사병이 총기를 받아주고, 어느 사병은 다른 낙오자를 부축해 뛴다. 비록 측정 합격 시간인 50분 내에 들어오지 못한다 해도 그 감투정신만은 높게 평가되어 플러스알파가 되기 때문에, 결코 포기시키지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동료애와 자기 자신의 눈물겨운 사투가, 그들 간에 끝까지 벌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구보를 마치니 중대원 전체가 돈만 많은 놈에서, 훈련에도 적극 임하는 아니 훌륭하게 군 생활을 하는 모범 병이 되어, 중대장의 재량에 의해 2박3일 간의 특박을 다녀오게 된다. 아무튼 고단한 6월이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7월이 되자 훈련이 중지된 대신 이제부터는 진지공사가 본격적으로 벌어진다.
중대에서 가까운 어느 야산 전체를 유사시 참호를 쓸 진지화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또한 사람을 잡는다. 누구는 땅을 파고, 누구는 뗏장을 들어다 떼를 입히는데, 내게 주어진 임무는 어른 머리통만한 소위 '호박돌'이라는 것을 야산 중턱에 차로 부려놓은 놈을 당거에 실어 진지 앞에 부리는 것이다.
4등분으로 접은 모포의 양끝을 임시로 깎아 만든 작대기에 붙들어 맨 다음, 작대기 양 끝에 밧줄을 걸어 만든 조악한 들것에 허리가 휠만큼 잔뜩 호박들을 싣고, 둘이 비탈진 산길을 오르자면 이내 죽을 맛이다. 한여름의 불볕더위는 왜 이렇게 덥기는 한지. 중대원 전원이 모두 상의 탈의에다가 군대 팬티 한 장만 달랑 걸친 차림으로 매일 이 짓을 한다.
자연히 온 몸이 햇볕에 새까맣게 타고, 땀에 절어 번들번들한다. 그래도 삼일 째까지는 억지로라도 버티었다. 그러나 나흘째는 분명히 손에 힘을 꽉 주어 들것을 들었는데, 손이 맥없이 스르르 풀리며 들것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다. 위에서는 빨리 가져오라 독촉을 하다못해 분대장이나 고참병의 매가 우리의 등짝에 사정없이 작렬한다.
부사수와 나는 힙 없는 웃음을 웃으며 할 수 없이 끈을 좀 더 길게 풀어 목에다 건다. 이제는 목 힘으로 버티는 것이다.
어기적 어기적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매일 일요일만 되면 연속해서 4주나 내리던 소나기가 갑자기 평일에 쏟아진다.
"야호.........!"
내심 쾌재를 부르지만, 군대의 전투(?)는 비가와도 멈추는 법이 없다. * * * 정희가 이번에도 비서실장과 함께 면회를 왔다.
물론 한 달 만이다. 나는 나의 지시대로 경영의 내실화만 충실히 기해, 전 계열사들이 충분한 이익금을 내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나는 이를 현금으로 모두 유보시켜놓으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비서실장을 먼저 보내고 관례대로 밤이 되자 정희와 나는 여관으로 들어간다. 이제는 서로의 몸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우리는 나체인 채 서로 장난을 칠 정도로 친숙해졌다. 그런데 오늘만은 정희의 태도가 이상하다.
새삼 벌거벗은 내 아랫도리를 침상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뭘 봐, 처음 봐!"
기분이 별로인 내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남들보다 크지는 않아도 작지도 않다.
이것을 언제 확실히 느꼈느냐 하면, 해안가에서 경계근무를 설 때, 목욕트레라는 것이 와서 우리 분대원 전부가 목욕을 한 일이 있다. 그 때 남의 것도 확실히 보았다.
동네에 목욕탕이 없느냐고? 우리 동네(청주)에는 올해 처음으로 대중목욕탕이 생긴 것을 보았다. 2박3일의 특박 시 비록 위수지역 이탈이지만 청주에 다녀올 때였다.
아무튼 대개 이 시절은 부유한 집이 아니면 뜨거운 물을 집에서 데워 큰 목욕통에서 대충 목욕을 하던 시절이었다. 아무튼 정희의 시선에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는데도 그녀는 미소를 띤 채 나를 바라보다가 기어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를 잡고 웃는다.
"호호호.........! 자기가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봐봐! 안 우습게 생겼나?"
그녀의 말에 따라 흘끔 내 하체를 내려다보니 팬티 입었던 부분만 새하얗고 나머지 부분은 먹장, 흑인이 따로 없다. 그러니 정말 내가 봐도 한심하고 웃음이 나온다.
"그래, 보기 좋아?"
"아니, 웃기잖아. 그 부분만 하야니."
"됐다, 이놈아!"
나는 냉큼 달려들어 그녀를 얼싸안고 침대 위를 뒹군다. 그러면서 간지러움을 태운다.
"깔깔깔........! 그만, 그만......... 항복, 항복!"
나의 간지러움 태우기에 그녀가 결국 백기투항을 하자, 나는 본격적으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기 시작한다. 끝내 우리는 열락의 폭풍에 휩싸이고, 나는 아낌없이 내 분신들을 그녀의 자궁 내에 뿌려둔 채, 그녀를 꼭 보듬어 안고 있다.
* * *1978년 10월.
군대 생활이 어언 13개월이 다 되어가도 휴가 소식이 없어 짜증이 나는데 돌연 위병소를 통해 나에 대한 면회신청 소식이 들려온다. 1주일 전에 정희와 비서실장이 다녀가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위병소 한 편에 마련된 면회실을 찾으니 뜻밖에도 사우디에 있어야할 대원건설의 정태순 사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한편에는 정 비서실장이 일어나 나를 맞는데 평소의 표정과는 좀 다르다. 그러려니 하며 정 사장과 악수를 나눈 나는 그의 안부를 묻는다.
"별일 없었습니까? 건강은 하시고요?"
"금번에 별일이 있어서 회장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별일이라니 좋은 소식인가요?"
"아닙니다. 회장님에게는 과히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말 돌리지 말고 직접 말씀해보세요. 무엇인지."
"금번에 장외에서 제가 대원건설의 주식을 1% 넘게 취득했으므로, 대표자 변경 공시를 하기 전에, 이를 먼저 회장님께 알려드리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싶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뭐요?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회사를 이렇게 키워놓으니 잡아먹겠다는 말입니까?"
내가 화를 버럭 내며 소리쳐도 정 사장은 특유의 유들유들한 얼굴로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꾸를 한다.
"잡아먹은 게 아니라 이제 정상으로 환원된 것입니다. 원래부터 제가 설립한 회사가 아니었습니까?"
"그래요?"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숨기지 않은 채 나는 정 사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우선인수권주 조항은 아시죠?"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겸사겸사 찾아뵙기도 한 겁니다."
"그렇다면 얘기하기가 쉽겠군요. 나는 오늘 이 시간부터 대원건설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내 물량의 전부를 인수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럴 능력은 못되고 한 5% 정도만 제가 더 인수를 하겠습니다. 나머지는 여전히 회장님이 보유하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우선 양도 인수계약서부터 작성합니다. 비서실장님 서류는 준비되었겠지요?"
"네. 여기 있습니다."
탁자에 바로 서류를 펼쳐놓는 비서실장이다.
"요새 대원건설의 주가가 얼마나 합니까?"
"어제 종가 기준으로 14,100원이었습니다."
"많이 올랐네요."
"계속된 호황이었잖습니까? 요새 중동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으로 조금 빠진 시세가 지금 이 시세입니다."
"어떻게, 14,100원에 5%를 인수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오늘 시세를 한 번 알아볼 랍니까?"
"14,100원으로 그냥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여기 서명하세요. 나도 할 테니."
"네."
잠시 후 2통을 작성해 한통씩 나눠가진 내가 그 문구를 검토하며 묻는다.
"이제 다 끝난 것이죠?"
"네, 아무튼 감사합니다."
"됐습니다. 비서실장님!"
내가 곧 정 비서실장을 부른다.
"네, 회장님!"
"나머지 대원건설의 잔여주식도 시장에 전부 다 내다파세요!"
"그럼, 안 됩니다. 그 많은 물량을 시장에 한꺼번에 쏟아내면 주식이 대폭락을 합니다."
나의 발언에 대경실색한 정 사장이 애원의 표정으로 나서지만 나는 요지부동이다. 나는 정 사장의 말에 대꾸는커녕 아예 그에게는 일절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비서실장만 재촉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물량을 일시에 다 쏟아내면 우리도 손해니 한 달이나, 한 달 보름여의 시간 여유를 갖고 다 소화해내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비서실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럼, 나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비서실장도 조심해서 돌아가시고요!"
"네, 회장님!"
내가 자리를 떠도 정 사장은 멍한 상태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게 해도 국방부 시계는 잘도 돌아 11월 하순인데, 오늘은 아침부터 중대장실에서 중대장님이 나를 부른다.
'이제는 정말 휴가를 가는 가?'
하는 들뜬 기대를 안고 나는 중대장실을 찾아든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연참입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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