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기를 대비하다 -- >
6
"눈 안돌려!"
같이 경계근무를 서는 고참 일병의 일갈이다. 이 꼴통은 중졸 후, 대전에서 이불 장사를 하다 오던 놈이다. 그런데 완전히 군기반장이다.
내가 최 말단이고, 내 위로 갓 일병을 단 고참이 셋 있었는데, 매일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내 시선이 자꾸 정희가 면회 오는지 궁금하여 육지 쪽으로 가자, 단번에 견제가 들어오는 것이다.
내가 바로 윗고참으로부터 듣기로, 내가 오기 전에는 참 구타도 많이 당했다 한다.
특 하면 5파운드짜리 곡괭이 자루로 때리고, 심지어 주먹과 발로 맞는 날도 많았단다. 그런데 내가 들어온 이후로는 구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마 위에다 일러바칠까봐 두려워서 그런 것 같다는 바로 윗고참들의 추측이다.
구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이 당시에도 '구타금지'라는 말은 훈련소에서부터 있었다. 심지어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는 날, 전 병력을 연병장에 집합시켜놓고 소원수리도 받았다.
구타 등 불합리한 점이 있으면 익명으로 써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구타는 절대 내가 제대하는 그날까지 근절이 되지 않았다. 아무튼 고참의 지랄에도 내 눈이 아프도록 육지 쪽을 바라보던 보람찬(?) 날이 왔다.
마침내 정희가 나를 면회 오고 있는 것이다. 부모님이 다녀가신지 꼭 1주일 만이다.
멀리서 봐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그녀의 자태가, 내 망막을 파고들자, 내 눈에 갑자기 습막이 어린다.
"애인이 면회 온 것 같습니다."
"지랄, 누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애인이다, 부모다 면회를 오는데, 나는 이게 뭐야? 가봐 이 자식아! 가서 외출복 갈아입고 대기하고 있어. 보초는 나 혼자 설 테니까."
"고맙습니다. 이 일병님!"
"됐어, 빨리 꺼져!"
"네!"
나는 곧 선임하사에게 보고를 한다. 그리고 외박을 허락받고 나는 곧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정희를 기다린다. 마침내 그녀가 산 초입에 접어들자 나는 달려 내려간다.
"정희야!"
"어........ 그러다 넘어져!"
"넘어지기는......... 보고 싶었다!"
정희를 와락 껴안은 나다.
"아, 아........! 숨 막혀!"
"나 안 보고 싶었어?"
"하나도."
"정말이야? 너........?"
"헤헤헤........! 사실은 나 너무 너무 보고 싶어서 눈이 다 짓물렀어."
"어디 보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댄 내가 갑자기 그녀의 입에 깜짝 뽀뽀를 한다.
살짝 얼굴이 붉어진 그녀가 말한다.
"모두 우리만 쳐다보고 있잖아."
그러고 보니 산등성이에 인간 열매가 열렸다. 멋쩍은 표정을 짓던 내가 비로소 그녀의 손에 든 것을 받아들고 묻는다.
"이게 뭐야?"
"통닭 2마리."
'에고........! 이런 철딱서니 하고는........ 근 이십 명이 되는 우리 부대원들인데, 달랑 통닭 2마리를 누구 코에 부치 노.........?'
내 눈치가 이상하자 정희가 곧 바로 대답한다.
"자기 먹으라고."
"알았다, 알았어. 내가 다 먹어주지."
그렇게 말을 하며 둘이 막사의 초입에 들어서니
'와........!'
하는 환호성이 터진다.
"배우야, 탈랜트야?"
"정말 예쁘다. 역시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회장다운 안목인데........!"
부대원들이 던지는 한 미디씩의 찬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정희다. 군대 오래 있으면 치마만 둘러도 예뻐 보인다드니, 다 그 짝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사실 내가 봐도 오늘따라 정희가 예쁘긴 예쁘다.
긴 생머리에 깃을 세운 브라운 계통의 코트, 목에는 장미빛 스카프로 멋을 낸 그녀는 평소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다. 내가 내무반으로 들어가니 모두 따라 들어온다.
나는 내무반 침상 위에 정희가 가지고 온 통닭 2마리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주머니를 뒤적여 돈을 꺼내 내놓는다. 5만 원이다.
80년도 당해에, 오르고 오른 병장 월급이 3,800원 이었으니, 사실 무시 못 할 돈이다. 어머니가 살짝 찔러주고 간 돈의 일부다.
"여자라 많이 들고 오기가 뭣해, 돈으로 준비했답니다. 얼마 되지 않지만 성의로 받아주십시오,"
"어서 가봐! 애인이 많이 기다리잖아!"
선임하사의 말에 나는 거수경례로 절도 있게 경례를 하며 신고를 한다.
"충성! 이병 강 태민은 금일 16시 부로, 외박을 명받았기에, 이에 신고합니다!
"잘 갔다 오고, 귀대 시간에 늦지 않도록 조심 하도록!"
"네!"
선임하사의 말에 나는 어느 새 내무반 밖으로 나가 기다리고 있는 정희에게로 간다. * * *
"왜 이렇게 늦었어?"
6km를 걸어가도 그녀와 함께 하니 하나도 안 멀다. 걸어가면서 내가 묻는 말이다.
"토요일이라, 오전 근무 마치고 오느라고 늦었지."
당시 우리 그룹 전체가 토요일은 오전 근무만 했다. 물론 해외는 예외다.
"그게 아니고, 편지받고 왜 바로 면회 안 왔느냐 말이야?"
"아무래도 아버님 어머님과 겹칠 것 같아서. 그럼, 내가 불편하잖아."
"아무튼 이제라도 와줬으니 됐다. 우리 오늘은 뭐 먹을까?"
"자기가 먹고 싶은 것 먹어. 나는 사회에서 먹고 싶은 것 다 먹잖아."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어때?"
사실 오늘은 짬봉이 먹고 싶으나 그녀를 배려해 내가 선택한 메뉴다.
"자기가 좋다면 나는 아무래도 좋아."
우리는 이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새 그 먼 길을 다 걸에 소읍에 도착한다. 그리고 애초의 얘기대로 우리는 삼겹살을 파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나는 삼겹살 3인분과 소주 한 병을 시킨다.
곧 내온 삼겹살이 연탄 위의 석쇠에서 지글지글 구어지고, 나는 그새를 못 참아 이미 정희가 따라 놓은 소주잔을 집어 든다.
"모처럼만에 건배 한 번 할까?"
"고기 익거든. 빈속에 먹으면 속 버린다잖아."
"아직 젊은데 뭔 상관이야. 자, 건배!"
마지못해 정희도 내가 따라 놓은 소주잔을 집어 든다.
"건배사는 뭘로 할까? 정희와 나의 변치 않는 사랑을 위하여, 아님 건전한 성생활을 위해서.......?"
"아니 미쳤어? 군대 가더니 별소릴 다해, 망측하게."
"하하하.........!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자, 건배!"
"건배!"
주변을 둘러보고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자, 다소 안심한 정희가 살짝 잔을 부딪쳐온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고기가 다 익었다. 나는 상추에 고기 한 점과 잘게 썬 매운 고추 하나를 살짝 집어넣어 그녀의 입에 넣어주며 말한다.
"자, 안주!"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본 그녀가 그냥 입을 벌리면 될 것을, 기어코 자신의 손으로 받아 입에 넣는다. 이내 꼭꼭 씹던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말한다.
"우와, 매워! 물, 물, 물!"
"하하하..........!"
하얗게 눈을 흘기는 정희다.
"정말 못됐어! 군대 가더니, 사람 다 버렸나봐!"
"하하하........! 나는 안 싸줘?"
"알았다, 알았어! 나도 고추 댑다 많이 넣어서 싸줘야지."
"아........ 그건, 사양!"
"흥........! 누가 나만 당할 줄 알고."
그녀는 기어코 싼 쌈을 내게 권했는데, 고추보다는 생마늘이 잔뜩 들어가 그것 역시 매운 고추 못지않은 고통을 내게 준다. 이렇게 우리는 사소한 이야기와 농담을 하며 고기와 술을 먹다보니 어느새 삼겹살 삼인분과 소주 두 병을 비웠다.
그 중 1과 1/3은 내가, 2/3는 그녀가 비운 술이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취기가 오른 내가 말한다.
"오늘 자고 갈 거지?"
"으.......... 응........?"
머뭇머뭇 미처 결정을 못하는 그녀다.
"내가 자기 사랑하는 거, 알지?"
"으응........!"
아직도 상기된 채 제대로 답변도 못하는 그녀다.
"너랑 정식으로 사귄지가 벌써 햇수로 6년째야. 장차 결혼도 할 것이고, 뭐가 문제야, 문제 없잖아?"
"으응, 그건 그런데, 미처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정 못하면 그냥 손만 잡고 자자. 자기가 허락하지 않으면, 나 그냥 자기 손만 잡고 잘 자신 있어."
그 말에 비로소 안심을 한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OK를 한다. 모처럼 자신의 돈으로 술값을 계산한 그녀가 식당을 나와 내 뒤를 따른다.
날은 이미 저물어 캄캄한데, 주변은 이 상점 저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으로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내게 손을 잡힌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나를 따르는 그녀다.
나는 그런 그녀를 잡고 느낌에 먼지가 잔뜩 앉은 것 같은 작은 점포에 들어가, 맥주 3병과 땅콩이며 이것저것 안주삼아 먹을 것을 산다. 그리고 가게를 나온 내가 뜬금없이 묻는다.
"우리 애 몇 낳을까?"
"뭐..........?"
그 큰 눈이 더 커져, 놀라 나를 바라보는 그 모습이 내게는 너무 재미있다.
"푸 하하하........!"
"웃지 마. 뭐가 좋다고 웃어.........?"
"하하하.........! 아직 생각 안 해봤어?"
"아직은........!"
작게 대답하며 고개를 푹 숙인 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이 나는 너무 귀엽다. 나는 갑자기 그녀를 확 잡아채 내 품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이마에 갑자기 키스 세례를 퍼붓는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볼 테면 보라지. 청춘남녀의 청춘사업을 이해 못하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바보지."
"그래도........!"
그러다보니 어느새 반쯤은 형광등이 나가 졸고 있는 듯한 여관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씩씩하게 앞장을 서는데 반해, 그녀는 다시 한 번 불안스러운 눈초리로 주변을 훑는다.
그런 그녀를 잡아채 계산을 끝내고 방 키를 받아 이층 계단으로 오르려니, 새삼 걱정이 되는지 다시 한 번 망설이는 그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떠다밀다시피 해서 과감히 앞장세운다. 그리고 나는 이층의 지정호실에 닿아 키를 따고 들어간다.
"와아, 넓다!"
"넓긴 뭐가 넓어, 굉장히 좁은 데."
"더 좁아야, 도망갈 공간이 없지."
"쳇, 여기까지 온 이상은 더 머뭇거리지는 안네요. 헤헤헤........ 메롱!"
자신이 말해놓고도 쑥스러운지 공연히 얼굴을 붉히는 그녀다. 나는 얼른 화제를 전환한다.
"자, 이리 와 앉아. 한 잔 더 하자."
두려움을 이기려는지 더는 사양 않고 바로 작은 탁자에 마주 앉는 그녀다.
"자, 한 잔 따라봐."
"내가 기생이냐, 술이나 따르게?"
"잘나가시다, 왜 그러나? 장차 서방님 되실 분한테 한 잔 따르는 게 뭐가 어때서?"
"알았어. 자기 나 버리면 안 돼?"
"이런, 누가 들으면 벼락 맞을 소릴. 잔말 말고 어서 따르기나 해봐."
"알았어. 사랑해!"
쪽!
갑자기 내게 달려들어 뽀뽀를 하고는 수줍게 웃는 그녀의 모습이 오늘 따라 너무 사랑스럽다. 나는 달려들어 꼭 껴안고 싶은 것을 진정하기 위해 헛기침을 하며 말한다.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
"당연하지. 어느 모로 보나, 1등 사윗감인데."
"그러면, 다행이고. 그런데 우리 아버지 어머니한테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잖아?"
"사실 아버님은 잘 모르겠는데, 어머님은 날 꺼려하시는 것 같아. 자기야 나는 그것이 두려워."
"걱정 마. 내가 있잖아! 나만 믿으라고."
내가 가슴까지 쾅쾅 두드리며 안심시키자 그녀가 베시시 웃으며 말한다.
"사실 나 자기랑 결혼하면, 자기도 물론 지극정성으로 모실 테지만, 어머님 아버님도 못 지 않게 잘 모실 자신이 있어. 헤헤헤.........! 그렇게 생각지 않아?"
"암, 당연히 정희 성품으로는 그러고도 남지. 이리 와봐. 그런 의미에서 뽀뽀 한 번 해보게."
"이따가, 씻고."
살짝 빼는 그녀다.
"술은 이제 됐고. 남은 것은 이따 마시기로 하고. 누가 먼저 씻을까? 내가 먼저 씻을까, 아니면 자기가 먼저 씻을 래?"
"자기가 먼저 씻어."
"아니야. 자기가 먼저 씻어. 나 씻는 동안에 도망가면 안 되지."
"쳇, 알았어."
말과 함께 욕실로 그냥 들어가려는 그녀다.
"그냥, 들어가게? 대충 벗어놓고 들어가지. 물이 튀어 옷이 젖을 수도 있잖아."
"알았어, 이 바보야. 아직 온수도 안 받았단 말이야."
"그런가?"
오히려 내가 더 정신이 없는가 보다. 욕조에 물을 틀어 놓은 그녀가 다시 나오며 묻는다.
"자기 나 안 버릴 거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이 바보야. 이리 와봐, 확실하게 이마에 콱 도장을 박아 버릴 테니........."
"헤헤헤.........! 고마워. 그래도 걱정이 돼서."
낮게 말한 그녀가 구석에 세워진 옷걸이 곁으로 가, 하나씩 옷을 벗는다. 나는 벌써 기대감으로 침을 꼴깍 삼키는데, 그녀의 입에서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리가 튀어나온다.
"눈, 안돌려!"
"쳇, 어차피 이따 실컷 볼 건데. 그때 보나, 미리 보나?"
"그래도 안 돼!"
옷을 벗다말고 쫓아와 기어코 내 고개를 창 쪽으로 돌려놓고는, 서서히 옷을 벗기 시작하는 그녀다. 그러나 금방 내 시선은 음흉한 웃음을 머금고, 그녀의 한 동작 한 동작을 쫓고 있다. 연신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 작품 후기 ============================어제는 50회 만에 처음으로 컨디션이 안 좋아 하루를 쉬었습니다.
대신 오늘은 연참을 하니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느 작품이던 연참하는 전의 작품은 모든 것이 빠지더라고요. 조회수, 멘트 할 것 없이. 아무튼 다음 회에 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