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기를 대비하다 -- >
3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커피를 내오는 라니아 양을 바라보며 내가 슬쩍 황색봉투를 그녀 앞으로 밀어놓으며 말한다.
"열어보세요."
"네?"
내 말을 이해못해서가 아니다. 이런 일을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사적인 물음이다.
"열어 보라고요."
좀 더 강조하는 내 말에 주변을 슬쩍 둘러본 그녀가 봉투의 끝부분만 살짝 열어보고는 놀란 눈으로 내게 반문한다.
"이렇게 많은 돈을 제게 왜 열어보시라고 하는 거예요?"
"가지시라고요."
"네?"
"하하하..........!"
놀란 토끼눈이 되어 동그래진 그녀의 눈을 보니 내가 더 우습다. 귀엽기도(?) 하고. 내 말뜻을 겨우 납득한 그녀가 조금은 떨리는 음성으로 묻는다.
"이렇게 많은 돈을 제게 주시는 이유가 뭐죠?"
오히려 조금은 두려운 표정의 그녀다.
"최소 500만 달러를 더 벌게 되었으니 당연히 공로자에게 포상을 해야죠."
"네?"
이것은 진짜 몰라서 묻는 질문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 때 한 옆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정 실장을 불러 묻는다.
"500만 달러를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인가요?"
"현재 환율시세 483원으로 계산하면 24억1천5백만 원이 됩니다."
"그 정도에서 50만 원이면 몇 %가 될까요?"
"당장 계산이 안 나올 정도로 미미한 숫자입니다."
정 비서실장의 답변에 내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라니아 양에게 묻는다.
"아래도 이해가 안 됩니까?"
그제야 어느 정도 납득한 그녀가 말한다.
"그래도 제게는 큰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물론 샐러리맨들에게 이 정도 금액이 큰 금액이라는 것은 저도 압니다. 그렇지만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제 양심이 허락 지를 않는군요."
"회장님, 제가 큰 공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비서 겸 통역관으로서 현장에 임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이런 큰돈을 제게 주신다는 것은 뭔가 근거가 희박한 논리요, 포상인 것 같습니다만?"
이거 돈을 줘도 암팡지게 달려드니 내가 오히려 답변이 궁색하다.
"정 실장님 어떤 논리가 맞는 것입니까?"
"제 생각에는 라니아 양의 말도 전혀 그르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절반만 주셨으면 하는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그래요? 이거 참 난감하네. 회장 체면에 기왕 내민 돈을 덥석 거둬들이기도 그렇고. 음....... 실장님이 알아서 분배해주세요."
"아닙니다. 회장님! 제가 알아서 챙기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라니아가 봉투에서 지폐를 꺼내 분배를 하는데 그녀의 말이 이렇다.
"절반은 회장님 몫으로 다시 돌려드리고, 또 그 중의 절반이 약간 넘는 13만 원은 회장님의 포상 의지를 생각해서 내 몫. 나머지 12만 원 중 함께 고생한 실장님의 직급이 높으니, 7만 원, 나머지 5만 원은 나의 동료 정 양. 됐지요?"
"내 몫이 왜 거기 포함되는데?"
이제는 비서실장이 라니아에게 시비(?)를 거는 행태가 된다. 나는 이쯤 되니 짜증이 나 버럭 소리 지른다.
"모두 됐으니, 라니아 양의 분배대로 하세요."
지금까지의 하는 양을 멀리서 지켜보던 정 양이 역력히 감탄한 기색으로 말한다.
"공을 사양할 줄도 알고, 내 몫 까지 챙겨주니, 너무 예쁘네."
그냥 환한 웃음으로 답하는 라니아다. 잠시 후, 모든 돈이 라니아 양의 말대로 분배 되고나자, 나는 정 실장을 불러 남은 돈 25만 원을 비서실 경비로 쓰라고 넘겨준다.
* * *우리의 작은 소동(?)이 끝나고 정상 업무를 보고 있는데, 기획실장 이주찬이 들어온다. 이 실장은 대뜸 정 비서실장을 찾아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 의견을 나눈다.
둘이 한쪽에서 몇 마디 나누는 것 같더니, 바로 두 사람 공히 내게로 온다. 내 앞에 서서 입을 연 것은 이 실장이다.
"회장님,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나는 젖혔던 상체를 바로하며 그의 말을 경청할 준비를 한다.
"우리가 금번 중동에서 수주한 공사 내용이 방송에서는 한 마디 언급도 되지 않았고, 신문에서도 토막기사로 처리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평소 저들의 생리로 보아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튼 좋지 않은 현상임에 틀림없기에 보고 드립니다."
"흐흠........! 좋지 않군, 좋지 않아!"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나 망연한 표정이다. 누가 보면 넋이라도 나간 사람 같았을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심각한가 하면, 나의 롤 모델인 율산실업이 승장구하다가 79년도에 공중분해 된 사실이 갑자기 내 머리를 강타하며, 위기의식을 느낀 탓이다. 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데 정 실장이 말을 한다.
"얼마 전만 해도 사우디의 아파트 공사건 3억 달러 수주한 것만 가지고도 얼마나 나라가 난리법석을 떨었습니까? 주베일 항만공사 수주 시에는 또 어떠했습니까? 온 나라가 축제분위기에 휩싸일 만큼 호들갑을 떨던 사람들이 금방 배라도 불러졌습니까? 아직은 아니지 않습니까? 외국에 부채는 잔뜩 하고, 국민소득 1,000달러도 안 되며, 수출은 100억불도 달성 못한 국가가 우리나라 아닙니까? 그런데, 이는 필시 기득권층인 재벌들의 농간이거나 정부에서 언론 통제를 하지 않고서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는 바, 그냥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비상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만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 아닌 모양이다. 정 실장 또한 나와 똑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 나는 단호한 표정과 결의에 빛나는 눈으로 간명하게 묻는다.
"방법은?"
"제가 기자회견을 자청해서라도 금번 공사 수주 건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겠습니다. 곧 우리가 벌어들이는 외화가 국가 위기를 넘기는데 일조하고 있음을 주지시키는 것이죠. 우리 대원그룹이 외화가득을 통해 나라에 애국하고 있는 기업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인식시켜 주고, 그 여론을 바탕으로, 우리를 질시하는 자들의 견제를 피해가자는 것이죠."
"좋습니다. 그대로 행하세요. 시간은 석간신문의 마감 시간을 고려하여, 내일 오전 9시로 하고, 오늘 전 언론사에 통보하세요."
"네, 회장님!"
"저........ 회장님!"
일단 이구동성으로 복명한 이 실장이 주저주저 말을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 하세요."
"제 생각에는 기자회견에 권위를 싣기 위해서라도, 회장님이 직접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귀찮지만 제가 하는 것으로 하고, 그렇게 준비를 좀 해주세요."
"네!"
둘의 복명에 나는 기자들의 예상 질문을 생각하며 생각에 잠긴다. 나름 기획실과 비서실에서 모범 답안을 준비하겠지만, 내 생각도 중요하므로 생각을 하는 것이다.
* * *[대원 5억6천만 불 수주, 외환위기 완전 진화][대원 또 한 번 대형공사 수주로 국민경제에 활력 불어넣다] [산소 같은 대원, 국민 경제에 숨통][달러는 원청 하청을 가리지 않는다]내가 가자회견을 마친 그날 석간신문부터 이튿날 조간신문의 주요 타이틀 기사다. 야당지로 자처하는 신문은 외환위기 까지 들먹였고, 모 신문은 내 기자회견 내용 중, 말의 일부를 타이틀 기사로 싣기도 했다.
시간을 소급해서 내가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장실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바로 청와대에서 나를 호출한다는 전화가 온다. 곧 간다는 답을 하고 나니,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터지는 나다.
기존 재벌들의 대원 죽이기 공작이 아직은 최상층 까지는 이르지 않았다는 반증이기 때문에, 나는 박 대통령의 호출이 반갑기만 하다. 내가 정 실장, 이 실장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니 오전 11시 30분이다.
바로 집무실로 안내된 나는 잠시 기다려야 했다. 아직 기존의 면담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면담이 끝났는지 낯모르는 사람이 집무실 문을 나오고, 뜻밖에도 비서실장을 대동한 대통령이 직접 문밖 까지 나와 나를 청한다.
"어서 오시오. 강 회장! 오래 간만이군."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나의 꾸벅 인사에 나의 손을 맞잡고, 한 손으로는 등을 두드리며 웃음으로 말을 시작하는 대통령이다.
"하하하........! 알긴 아는 고만. 내가 몇 번을 청해도 이 핑계 저 핑계로 잘도 빠져나가더니,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득달 같이 달려왔지? 무슨 애로사항이라도 있나?"
'기존 재벌들과 기득권층이 대원의 목조기를 한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했지만, 아직 아무 증거도 없는 이상 괜히 무고죄만 뒤집어 쓸까봐, 쓴 웃음만 짓던 내가 표정을 바로 하고 말한다.
"실은 각하께 한 가지 청이 있어 왔습니다."
"이봐, 비서실장! 여기 차 좀 내와. 앉아서 얘기하지."
말을 하며 친히 자리를 안내해 주는 박 대통령이다. 내가 소파에 앉자 맞은편에 앉은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얘기 계속 해봐."
"월성1호기 원전 공사건에 대해서, 건의 드리고 싶은 사항이 있습니다."
"계속 해봐."
"제가 얻은 정보로는 이 공사를 몇 개로 분리해서 발주하려는 것으로 아는데 사실입니까?"
"내가 그렇게 지시했어. 아직 우리나라의 기술이 일천하잖아. 그래서 캐나다원자력공사(AECL)를 주계약자로 선정해서, 원자로 부문의 제작공급과 발전소 건설의 전반적인 책임을 맡길 예정이고, 영국의 파슨스사에는 터빈발전기를,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사에는 옥외 변전설비를 공급케 할 계획으로 있어. 물론 토목공사 및 제반 시설공사를 할 국내 건설업체는 입찰로 뽑을 예정으로 아직 미정이지만."
"각하께서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신지 줄줄 외우시네요."
"하하하........! 그게 좋은 현상은 아니지. 우리나라 기술이 좋다면야 양놈들에게 굽신거리며 공사를 맡길 이유도 없고, 나 자체도 아마 관심을 끊었을 거야. 공사만 주면 저희들이 척척 다 알아서 할 텐데, 내가 뭐 하러 다른 일도 바쁜데, 이런데 까지 시시콜콜 밤 놔라. 대추 놔라 하겠어. 어쩌다보니 내 이야기만 했군. 그런데 강 회장 청이 뭐야? 핵심만 말해. 괜히 말 빙빙 돌리지 말고."
"아직 외국사와 계약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죠?"
"건설부에서 이렇게 선정하면 어떠냐고 결재만 올라온 상태야. 왜? 자네가 하게? 어, 미안!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내 딸보다 어리니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막 반말이 나오는 군. 이해하시게."
"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대원인터내셔날이 미국의 세계적 건설사인 벡텔과 합작을 맺은 회사입니다. 그네들 지분이 40%나 되지요. 원자력발전소 건설 또한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쌍벽을 이루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씀드립니다만, 저희에게 일괄 맡겨주신다면 저회 회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을 지고 기필코 완성해내겠습니다. 그러면 국부의 유출도 덜할 것이고, 물론 일부는 벡텔로 흘러들어가겠지만, 지금보다는 확실히 덜 할 것입니다.
아울러 한국의 기술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해서요."
"그래?"
박 대통령은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긴다. 그러더니 한참만에야 무겁게 입을 연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나 말고, 주무장관인 건설부 장관을 설득해봐. 그 사람이 OK하면 나도 OK할 의향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각하! 그 분을 저희가 꼭 설득해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용건을 그것뿐이야?"
"네."
이때 벽시계를 흘끔 바라본 대통령이 말한다.
"때가 때인 만큼 점심이라도 함께 하지. 그 자리에서 공사를 수주한 경위와, 에피소드를 듣는 것으로 하고 말이야."
내 마음이야 콩밭에 가있지만 거절하기가 참으로 난감하다.
'네.'
하고 대답을 하지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 작품 후기 ============================마음은 바쁘고, 글은 안 써지고, 겨우 겨우 1회분이 완성되어 올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은 작가의 사기의 근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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