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46화 (46/135)

< -- 위기를 대비하다 -- >

11976년 10월 28일.

내가 두바이 공항에 내리니 네 사람이 마중을 나와 있다. 여전히 중동에 체류 중인 엔지니어링의 최인준 사장, 건설의 정태순 사장, 인터내셔날의 이상백 사장 그리고 중동지사장으로 있는 원정남이다.

내 뒤로는 비서실장 정운수, 미래전략기획실장 이주찬, 두 여비서인 정윤희 양과 라니아 안 양이 따른다. 그리고 강길남 경호과장을 비롯한 두 팀의 경호요원 6명이 사방으로 나를 표나지 않게 은근히 밀착 경호한다. 5시간의 시차로 오는 내내 낮만 계속되어 은근히 머리가 무거웠던 나는 이제 석양이 곱게 물드는 하늘을 보니 좀 나아지는 듯하다. 그러나 오기 전 전화상으로 최인준 사장에게 현지의 기후를 물었을 때, 이제는 선선해 견딜만하다고 하더니, 이건 영 아니다.

현지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내가 아니어서 긴팔 와이셔츠 하나만 걸쳤어도 한국의 가을 날씨에 비하면 더운 정도가 아니라 많이 덥다. 이를 내색할 수도 없어서 마중 나온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나는 바로 숙소로 가기를 재촉한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나는 욕실로 달려가 샤워부터 한다. 그러고 나니 석찬이 준비되어 있다. 입맛이 별로 없어 가볍게 저녁을 든 나는 식후 소화도 시킬 겸 가벼운 산책을 한다. 그리고 모두를 내 숙소로 불러 모은다.

그 중에는 공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김명도 수주과장도 보인다. 아니 좀 정정을 해야겠다.

이제는 그룹 차원에서 발족한 수주 전담팀의 팀장으로 직급은 차장이다. 미리 파견 나와 인도 현지 실정을 파악함은 물론 최종견적까지 모두 마무리되어 이 회합에 합류한 모양이다.

이런 김 팀장을 비롯한 모두가 주문한 차를 앞에 놓고 모두 나의 얼굴만 주시하고 있다. 내 입이 열리기만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앞에 놓인 커피를 가볍게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연다.

"내일 발표 될 두바이발전소 3기 건설 일괄 프로젝트는 수주전망이 어떻습니까?"

"지금 까지 내온 우리 견적 내용으로 보아, 저는 그 수주 전망이 아주 높다고 확신합니다."

만약 수주한다면 이 공사를 시행하게 될 대원-싸이펨 엔지니어링의 최인준 사장의 말에 나는 밝게 웃으며 농담조로 묻는다.

"확신까지, 최 사장님은 아주 자신이 만만하신데, 그러다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십니까?"

"당연히 바닷물에 뛰어들어야지요."

"농담도 그런 농담은 하지 맙시다."

물론 최 사장이 웃자고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아무리 농담이라도 너무 지나쳐 내가 정색을 하고 한 말이다. 내 말에 비록 분위기는 썰렁해졌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다음으로 궁금한 사항을 묻는다.

"싸이펨 사장과의 면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역시 최 사장의 답변이다.

"UAE 발표 직후인 11시에 이곳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면담이 잡혀 있습니다."

내가 몰라서 물을 것이 아니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잡힌 일정이라 혹시 그 이후 변동사항이 없었는지, 확인 차 물었던 것이다. 나의 시선이 이번에는 얼굴이 많이 상한 김명도 팀장에게 옮겨가며 묻는다.

"인도의 현지 실정을 파악한 결과 어떻습니까? 해볼 만한 공사입니까?"

"무려 40개의 강을 횡단하고, 험한 산악지형과 푹푹 빠지는 늪지대 등 1,100km를 통과해야하는 파이프라인 공사지만, 저는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공사라고 파악했습니다. 비록 현지인들이 험한 코스에 낮은 인건비 책정으로 수없이 말썽을 부려 지연된 공사이기는 하지만, 싸이펨의 계획대로 현지인들을 배제하고 우리가 뛰어든다면, 한국인의 근면성과 저돌적인 공격성으로 미루어보아 반드시 해낼 수 있고, 해내야만 우리의 기술력도 더불어 축적될 것으로 사료되어 집니다.

"흐흠..........!"

내가 낮게 침음하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동안 엔지니어링의 최 사장이 덧붙인다.

"이번 인도의 장거리 파이프라인 공사를 저희들이 성공리에 마친다면, 저들은 파키스탄과 이란의 장거리 파이프라인 건설 공사는 물론, 얼마 전에 저들이 수주한 아르헨티나 유정 600개를 굴착하는 공사에 이어 3,700km에 이르는 장거리 파이프라인 설치 공사도 우리에게 주겠다고, 싸이펨 사장이 직접 저에게 언질을 주었습니다."

"우리를 꼬이는 떡밥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농담 비슷한 물음에 최인준 사장이 정색을 하고 답변을 한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비록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싸이펨 사장은 주베일 항만공사 현장을 수차례나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밤낮을 잊고 공사에 매진하는 광경을 수없이 보고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아랫사람들의 전언입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금번에 제시된 인도의 파이프라인 건설 공사는 물론 추후 물량까지 제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난공사는 난공사만큼 우리가 충분한 견적가를 제시해, 그들이 OK한다면 우리가 손해 볼 일은 전혀 없을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 사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럼, 견적가는 얼마나 나왔습니까?"

내가 김명도 수주 팀장에게 직접 묻는다.

"3억2천 달러입니다."

"그 정도 금액이면 충분한 수익성을 낼 수 있습니까?"

"충분한 정도는 아니지만 10% 내외의 수익성을 담보로 견적을 뽑았습니다."

"너무 적은 것 아닌가요?"

나의 물음에 김 팀장이 아닌 최 사장이 역시 정색을 하고 달려든다.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요즈음 저희들이 계속해서 낙찰을 받자 세계 유수의 업체들도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수익성을 대체로, 상당히 낮게 잡아 견적가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해들은 얘기로는 그들도 이제는 수익률이 채 10%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싸이펨에 제시하는 견적가가 모순이 아닌가요? 너무 높지 않느냐는 물음입니다."

"그건 또 경우가 다릅니다. 저들이 이 건을 수주한지가 괘 오래 되었고, 당시 수주가는 결코 낮은 금액이 아니었던 것으로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견적 가는 내일 싸이펨 사장과의 담판에서 바로 결론되어질 테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맙시다. 그런데 인터내셔날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나의 시선이 이번에는 이상백 사장에게로 옮겨간다.

"정유사의 정비공사는 얼마 전에 성공리에 마무리 지었고, 쿠웨이트와의 합작사 정유공장 건설은 현재 18%의 공정율을 보이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유전은 예정된 평가공을 계속해서 뚫고 있고, 현재도 뚫고 있는 결과로는, 저희 예상대로의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추정매장량이 확정매장량으로 속속 잡히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반갑고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건설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이 상태로 공사가 계속 진행된다면 애초 저의 예상대로 최소 6개월은 공기가 단축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역시 반갑고 고무적인 현상이군요."

"더불어 사우디 주택성에서는 주베일 항만에 배후도시와 산업단지 조성 공사를 우리가 하면 어떻겠느냐는 의사를 타진해왔습니다. 물론 수의계약입니다만, 아무리 수의계약이라도 서로 간에 공사금액이 맞아야 최종 발주가 이루어지겠지요."

"그 건에 대해 견적은 나왔습니까?"

"아직 저들의 도면이 완성되지 않은 관계로 견적을 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대체적인 공사개요는 있는 것 아닙니까?"

"공사규모는 몰라도 관가에서 흘러나오는 관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대체적으로 8억7천만 리알 내외 선에서 우리의 수주가 가 결정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도 있나?

아직 공사규모도 채 결정되지 않았는데 공사수주 가능금액에 대해서 정 태순 사장은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로비력이 이곳에 와서도 얼마나 빛을 발하고 있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나는 내심 혀를 내두르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소를 금치 못한다. 이런 내 표정이 겉으로 드러났는지 환했던 정 사장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데, 이를 파악한 라니아가 정 사장에게 말을 건넨다.

"사장님! 그 정보 정확한 건가요?"

'이 아가씨는 또 누구인데 남의 말을 믿지 못하고 시비를 거나?'

내심 이렇게 생각한 정 사장이 뜨악한 표정으로 한마디 툭 쏜다.

"아가씨 보고 믿으라고는 하지 않았소."

분위기가 어색해지려하자 나는 급히 화제를 돌리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며 묻는다.

"8억7천 리알을 달러로 환산하면 도대체 몇 달러고, 한화로 환산하면 또 얼마나 되는 것이오?"

나의 물음에 지금까지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던 기획실장 이주찬이 나선다.

"76년 7월1일자로 개정된 외환관리법상의 고시된 교환비율을 보면, 사우디의 1리알은 미화로 3.5달러고, 우리나라 돈으로는 약 138원의 교환비율을 갖습니다. 그렇게 계산을 한다면 미화 2억5천만 달러, 한화로는 약 1200억 원 선 내외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이 시장이 콕 찍어서 사우디 1리알로 답변하는 것은 리알을 화폐 단위로 쓰는 나라가 세계에는 의외로 많아, 주변의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 등의 중동국가 외에도 남미의 브리질 등 남미 권에도 리알을 화폐 단위로 쓰기 때문에, 사우디 1리알로 정확한 답변을 기하는 것이다. 이를 보아 알 수 있듯이 평소 그가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일처리를 하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건설의 정 사장님을 위시해 이곳 열사의 땅에서 매일을 땀과 열정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현지 사장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내일의 결과는 지켜보아야 알겠지만 하늘도 우리의 정성에 감동하여 반드시 반대급부를 돌려 줄 것으로 나는 믿습니다.

오늘은 고생하신 여러분들을 위해 직원들과 회식이라도 한 번 하라고 작은 금액이나마 봉투에 담아왔습니다."

내가 여기서 말을 끊고 두 여비서에게 눈짓을 하니 둘이 각각 준비된 봉투를 핸드백에서 꺼내어 현지사장들에게 나누어준다. 물론 여기에는 원정남 중동 지사장도 포함되어 있다. 이를 받고서도 면전이라 감히 봉토를 열어보지 못하는 사장들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이 원정남 지사장에게 머문다.

"원 지사장님은 내게 보고할 것이 없습니까?"

"기회를 주셨어야죠."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기회를 드릴 테니 말씀해 보시죠."

"저희 상품 교역과 수주가 그동안에는 사우디와 쿠웨이트에 편중되어 있었습니다만, 금번에는 아랍에미리에이트에 미친 것과 같이 앞으로는 좀 더 주변 국가에 신경을 더 써서 주변의 오만이나 카다르는 물론 이란과 이라크가지 좀 더 교역과 수주를 확대하고자 저 이하 모든 지사의 직원들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좀 더 높은 관심과 지속적인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모두 좋은 말씀입니다만........ 단 이란과 이라크와는 단기 상품교역은 하되, 장기를 요하는 수주 같은 건은 당분간 배제를 했으면 합니다. 이유는 제가 우리의 조직을 확대 개편하면서 말씀 드린 것이 있으니, 대충은 감을 잡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내 말대로 행해주십시오."

"네!"

이구동성으로 답하는 그들을 보면서 내가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파장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엔지니어링의 최 사장이 가벼운 농담을 던진다.

"정 양은 그전에 몇 번 보아 낯이 익습니다만, 회장님 옆의 또 한 미인은 누구인지 궁금하군요. 이번 기회에 저희들에게도 소개시켜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최 사장님의 눈에는 미모의 라니아 양만 눈에 띄고, 이 주찬 기획실장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인데, 그러면 이 실장님이 많이 섭하지요."

최 사장의 말을 받아 나 또한 농담으로 받으며 곧 이 실장과 라니아를 이들에게 정식으로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기획실장님과 라니아 양은 차례로 여러 사장님들 앞에서 직접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시죠. 그럼 이 실장님부터."

"네."

"방금 회장님으로부터 소개받은 대원그룹의 미래전략기획실장 이 주찬입니다. 앞으로도 사장님들의 많은 지도편달을 바랍니다."

이 실장은 평소 말이 없는 사람답게, 또한 자신을 소개하는 말 역시 짧다. 이 실장이 자신의 소개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자동으로 라니아가 자신을 소개하려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런데 모두의 시선이 그녀의 꽃 같은 얼굴에서 한동안 머물더니 이윽고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멈추어 떠날 줄을 모른다.

이 행태에 나는 과히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헛기침을 하고나니, 이 또한 무안한 일이라, 나는 애써 이들의 시선을 피한 채 딴전을 피운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 송이 장미가 일제히 만개한 것 같은 라니아의 활짝 웃음에 이은 그녀의 말이 쏟아진다.

"여러 사장님 또한 원 지사장님,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비록 오늘 처음 뵙는 자리지만 앞으로 예쁘게 봐줄 실 것을 이 라니아 믿겠고, 저 또한 여러분들을 많이 사랑할 것입니다.

비록 제가 부족하더라도 회장님 이하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고, 사랑해주신다면, 이 라니아 최선을 다해 대원 그룹을 위해, 이바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Thank you!"

끝말을 제외한 라니아의 유창한 한국말이 쏟아지자, 모두의 얼굴에 감탄의 기색이 어린다.

나는 이 모습에 내심 흐뭇하여 미소를 짓고 이들의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돌발 변수가 출현한다. 갑자기 정 양이 벌떡 일어나 한마디 하는 것이다.

"저 역시 예쁘게 봐주세요!"

"하하하.........!"

좌중의 웃음에 얼굴이 새빨개져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있는 정윤희 양이다. ---------------------------------============================ 작품 후기 ============================오늘은 연참입니다!

^^즐겁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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