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원, 그룹으로 거듭나다 -- >
1세월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오월도 하순이다. 학교생활은 중간고사도 끝나고 그럭저럭 이어지는 가운데 회사는 마냥 활기차게 돌아간다.
그 가운데서도 발군은 뭐니 뭐니 해도 상장에 이어 유상증자까지 끝낸 '대원실업'과 '대원건설'이 연일 상종가를 기록하며, 연일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다는 사실 일 것이다. 액면가 500원으로 발행한 대원실업은 3,000원으로 개장된 이래 연일 상종가를 기록하여 지금은 8,000원을 돌파하여, 그즈음에서 횡보를 거듭하고 있는 상태다.
대원실업이 이럴진대 대원건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역시 상종가를 거듭하여 지금은 순식간에 대원실업의 8,000원 시세를 뛰어넘어 주당10,000원에도 팔자 물량이 없는 형편이다.
이를 현 시세에 내가 갖고 있는 주식수를 곱해 돈으로 환산하면 이렇다. 대원실업의 내 주식 수가 3천7백6십5만 주다.
여기에 현시가 8,000원을 곱하면, 무려 3,012억 원이나 된다. 대원건설은 물경 2조 원이나 된다.
대원실업은 전번에 언급한 바 있으니 생략하고, 대원건설에 대한 나의 재산이 어떻게 계산 되어 나왔는지, 그 대충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금까지의 재산 가치를 재평가하니 250억이었다.
이를 유무상 증자를 거듭하니 1천억 원이 되었는데, 이를 액면가 500원으로 발행하니 2억 주가 되었다. 이를 현 시세인 10,000으로 환산하면 물경 2조원이 되는 것이다.
대신 내 지분율은 30%, 정 사장의 지분율은 20%로 떨어졌다. 그리고 하나 부언할 것은 정 사장과 나는 대원건설을 상장하면서 서로 간에 우선인수권주 조항을 정관에 명문화하여 주식을 팔 때 상대의 의사부터 묻고 팔기로 했다. 즉 내가 만약 주식을 판다고 하면 정 사장에게 먼저 살 의향이 있느냐고 물어야 하고, 이를 정 사장이 산다고 하면, 그에게 먼저 팔아야지, 타인에게 먼저 팔 수 없다는 뜻이다.
아무튼 나는 내 지분 중 5%를 팔 예정으로 이 조항에 의거 정 사장에게 물으니, 정 사장 자신이 사겠다고 해서, 995만 주를 현 시세에 팔아 995억 원의 자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돈으로 나는 3개의 회사를 더 설립하고 하나의 기존 출자 약속을 지켰다. 우선 대원-싸이펨 엔지니어링에 그들과의 약속대로 485억 원을 출자해 68%의 지분을 소유했다. 그리고 200억 원씩을 각각 투입해 대원중공업과 대원해운을 설립했다. 그리고 안병권 맥주집 사장의 동의하에 50억 원을 출자해 대원의류를 신설했다. 그러고 나니 50억 원 밖에 남지 않았다.
이 돈도 가칭 대원호텔과 대원백화점 그리고 사무실을 짓는데 쓸 예정이다. 물론 이 돈 가지고는 부족하다 그렇지만 그 동안 버는 돈이 또 있고, 정 급하면 대원실업의 주식 일부를 팔아서라도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시킬 예정이다.
아무튼 이로서 대원건설에서의 내 지분율은 25.05%로 떨어졌고, 정 사장은 24.95%를 소유하게 되어 거의 다시 동업상태가 되었다. 여기서 막말로 정 사장이 경영권을 넘본다면 얼마든지 시중에서 취득 가능하고, 능력도 된다. 그래서 나를 제치고 다시 대원건설의 오너가 될 수 있으나, 나는 정 사장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본다.
형식상으로는 내가 0.05%의 지분을 더 가지고 대표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실제 대원건설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이 나이고, 나로 인해 클 수 있다는 것을 그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은마아파트만 자신이 저질러 놓았고, 나머지 사우디 주택성 공사의 수주라든지, 삽교천방조제의 입찰권은 물론 월성1호기 원자력발전소 입찰권까지 모두 다 내가 따왔고, 앞으로도 더 많은 공사를 수주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자신이 이를 모른 채하고 대표노릇을 하려든다면, 내 성질 상 아마 이 회사는 반 토막 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그가 정말 내 의사에 반해 그렇게 나온다면, 나는 단호히 대원건설에서 철수 할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로써 11개 기업을 소유한 명실공이 그룹의 총수가 되었다.
여기서 그 기업명을 하나, 하나 열거하면 이렇다. 대원광산, 대원실업, 대원건설, 대원인터내셔날, DS정유(사우디와 합작사), DK정유(쿠웨이트와 합작사), 대원-싸이펨 엔지니어링, 대원중공업, 대원해운, 대원의류, 대원알미늄 등이다.
백화점과 호텔은 신축예정이니 넣지 않았다. 대원그룹의 총수가 되어 내가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대대적인 인사의 단행이었다.
먼저 대원실업의 신 선우 사장과 대원 인터내셔날의 이상백 사장은 그대로 유임시켰다. 다음으로 대원-싸이펨 엔지니어링 사장에는 사우디 지사장으로 가있는 탱크 최인준을 임명했다.
다음으로 새로 설립된 대원중공업 사장에는 역시 중동에 나가있던 불도저 신태웅을 사장으로 임명했다. 그 공백은 쿠웨이트에 나가 있는 현지인 원정남을 중동 지사장으로 승격시켜 중동의 모든 영업을 책임지도록 했다.
물론 그 밑에는 많은 직원들이 현지로 파견 나가 돕고 있고, 추가로 더 파견할 예정이다. 그리고 대원해운은 권순호 이사를 사장으로 선임 발령 냈으나, 본인이 이 분야는 자신 없다고 고사하는 바람에, 적임자를 외부에서 영입해올 때까지 임시 사장직을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대원의류는 안병권 씨가 사장직을 맡아 맥주집을 접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이 밖에 강동운 상무는 전무로 승진시켜 지금과 마찬가지로 전 그룹의 자금을 책임지도록 했다. 또 비서실장 겸 미래전략기획실장인 정운수 실장은 현 부장급에서 이사로 승진시켜 그간의 공로를 인정해주었다. 그러나 아직 정유사들은 건설 중이므로 추후 내정 예정이다. 또 하나 대원알미늄은 김춘길 과장을 정식으로 사장으로 임명하는 한편 그룹 내 직급은 부장이 되었다. 또 외시출신 박헌도 과장은 미주지사를 새로 설립하고 미주영업을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그 외 대원광업은 소장 손인태를 지난번에 비록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평소 잘 하고 있었으므로, 부사장 겸 현장소장으로 발령 내 대부분의 업무를 위임했다.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대원실업 사장: 신 선우(유임)대원건설 사장; 정 태수(유임)대원인터내셜날 사장: 이 상백(유임)대원-싸이펨 엔지니어링 사장: 최 인준(신임)대원중공업 사장: 신 태웅(신임)대원해운 사장: 권 순호(임시)대원의류 사장: 안 병권(신임:오늘부터 이름을 균에서 권으로 개명)대원알미늄 사장: 김 춘길(정식, 그룹 내 부장급)대원광업 부사장: 손 인태(현장소장 겸임)강 동운: 전무(승진: 그룹 내 자금 담당)정 운수: 이사(승진: 비서실장 겸 미래전략기획이사)원 정남: 중동지사장(중동지역의 영업 총괄: 부장급)박 헌도: 미주지사장(신생 미주지역 영업 총괄: 부장급)나는 이들을 임명 사실을 통보함과 동시에 외국에 나가 있는 자들은 일시 귀국하도록 했다. * * *삼일 후.
오전 10시.
간부회의실.
회장실은 간부들이 다 앉기에는 자리가 비좁아 간부 회의실에서 회의를 개최하기로 해, 면면들이 모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회장실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결재 서류를 처리하고 있다. 3분 전에야 정 비서실장이 시간 다 되어간다는 말에,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 일어난다.
거울을 보고 대충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회의실로 향하니, 비서실장은 물론 정윤희 양까지 함께 따른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제히 기립해 맞는다.
나는 여기서 형식상 한마디 한다.
"다들 그냥 앉아 계세요."
그렇다고 그냥 앉는 사람은 없다. 내가 헤드 테이블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가 자리에 앉자,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나는 말을 하기 전, 면면들을 둘러본다. 여전히 실내는 기침 소리 하나 없고, 숙연하다 못해 비장감마저 든다. 내가 천천히 말을 시작한다.
"바쁜 와중에도, 외국에서 까지 모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운을 뗀 나의 말이 이어진다.
"대한민국 역사상 창업한지 1년 만에 그룹으로 부상한 예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 대원그룹이 유일할 것이고, 앞으로도 쉽게 이런 기업은 탄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그 만큼 기존 재벌들이나, 여타 기득권층의 질시를 받을 수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해서 나는.........."
여기서 나는 말을 끊고 다시 한 번 내 말을 강조하기 위해 장내를 쓸어본다.
"내실 경영을 선언합니다. 내실 경영이라 해서 현 상태에 만족하고 안주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선 모든 계열사 하나, 하나가 그 분야에서 국내 1등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전력을 경주하자는 것입니다.
빛 좋은 개살구마냥 실없이 외연만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내실 경영을 통하여, 부단히 자본과 내부역량을 축적하여, 그 분야의 으뜸 기업이 되자는 말입니다."
여기서 나의 말이 잠시 끊기자 중역들의 박수소리가 쏟아진다.
나는 잠시 탁자 위에 놓여있는 물을 마시고 내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이것이 첫째 목표고 두 번째 목표는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는 부단히 노력하고 연구해서 기필코 이 목적을 달성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지, 앞으로 국내에 안주하는 기업은 내 단언하건대 절대 미래가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요란한 박수 소리가 터진다.
"앞으로 세계는 무역장벽을 날이 가면 갈수록 더 높일 것이고, 무한 경쟁의 시대가 도래 할 것입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매진하고 분투해서, 모두 세계의 1등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모자라는 기술은 선진 최일선 기업과 제휴를 통해서라도 축적해야할 것이고, 모자라는 자본은 국내만이 아닌 외국에 가서라도 빌려와야만 할 것 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세계 일류기업의 근처는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부터가 진짜 중요합니다."
"이쯤 되면 세계 어느 기업도 우리에게 기술 전수를 꺼릴 것이고 사방에서 견제를 넘어 발목을 잡아 기필코 넘어트리려 할 것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독자적인 연구개발 투자요, 활성화라고 봅니다.
돈에 구애받지 말고 세계적인 고급두뇌들을 과감하고 많이 유치하여, 우리의 독자기술을 개발해내야 하고, 첨단 기술이 내재된 상품을 개발해 내야 합니다.
이런 점진적인 목표를 항상 가슴 속에 간직하고 움직이시되, 당장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여기서 앞으로 수년 내에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예측하여, 대략적으로 말씀 드릴 테니, 꼭 참고 하시고, 미래의 운영 지침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한국은 77, 78년까지는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호황일 것입니다. 모든 경기가 과열이라 할 만큼 좋을 것입니다. 반면에 물가는 40% 가까이 뛸 것이고, 특히 건설 경기는 정점을 찍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79년도 1사 분기 쯤이 되면 상황은 급변할 것입니다. 중동에서 핵폭탄의 변수가 터질 것입니다. 불안한 정정으로 중동의 어느 한 나라로부터 파급된 효과가 전 세계에 미친다는 말입니다. 곧 2차 석유 파동을 의미합니다."
"와.........!"
"정말입니까? 회장님!"
내 말이 끝나자마자 놀람 당혹의 감탄에 이어 확실한 것이냐는 질문들이 쏟아진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한 분들이 안 믿어주면 내 말을 누가 믿어줍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회사들을 꾸려나간다면, 설령 그런 일이 안 일어난다 해도, 극단상황까지 대비했는데, 그깟 조그마한 장애물을 못 뛰어넘고, 우리가 비틀거리겠느냐, 그 말입니다. 내 말의 요지를 이해하시겠지요?"
"네!"
"옳습니다. 회장님 말씀이.........!"
"아무튼 내 말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꿈은 높게, 현실은 차가운 가슴으로 철저하고 기민하게, 움직이자~, 그 말입니다."
"네!"
"끝으로 이 회의가 끝나는 대로 각 계열사 별로 단독 미팅을 하겠습니다. 거기에서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현안은 물론 앞으로의 비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토의를 진행하여 지혜를 모을 생각입니다. 그러니 각 사장님들은 이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순서는 외국에 나가 있는 기업의 사장님들부터 먼저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네!"
이어 나는 신임 사장들과 승진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다. 그리고 그룹 전체의 발전 방향에 대한 난상토론을 전개한다. 기상천외한 안들이 난무하고, 그중에는 영양가 전혀 없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나는 제지하지 않고 끝까지 경청한다.
그런 안을 제지하다보면 정말 비상한 아이디어가 있는데, 또 제지를 당할 것 아니냐는 두려움으로 묻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묵묵히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러니 화자는 더욱 신이 나서 이야기하고, 그런 중에 기묘한 아이디어도 튀어 나오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12시가 다 되어 회의를 파하고, 단체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 날이 날이니만큼 사기 진작 차원에서라도 나는 오늘만은 돈을 아끼지 않고 쓸 요량으로, 요정요리의 산실인 삼청각(三淸閣)으로 향한다.
모두 신명이 나서 우르르 지하주차장으로 차를 타러가는 회사의 중추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