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비 재벌의 사소한 나날 -- >
3다음 날 나는 정희와 함께 다니며 포니구매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운전면허시험을 접수한다. 그리고 삼일 후, 시험에서 코스에서 떨어진다. '우째 이런 일이........?
"근 삼십 년 가까이 운전을 한 사람인데, 이런 불상사가 생기니 어이가 없다. 위로를 하는 정희를 보며 내가 하는 말.
"속으로는
'쌤통이다!'
이다 하는 것 아니야? 지금까지 시험이란 시험은 보는 족족 붙었으니까."
"어떻게 알았지? 내 마음을?"
"얼굴에 다 써있어."
"히힝, 그건 아닌데. 나 자기가 붙기를 바래단 말이야. 자기와 같이 차타고 테이트 하는 거, 얼마나 멋져! 상상만 해도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아!"
"그래?"
"응........!"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정희다.
"그럼, 이틀 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붙어야겠네. 자기랑 데이트 하려면."
"당연하지."
그녀의 말이 아니어도 나는 이틀 후에 당당하게 합격하고, 차를 받으러 간다. 출고까지 시간이 걸린다기에 마음이 급한 나는 안 된다는 것을 억지를 부려, 전시 중인 차를 내차로 만들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입학식이 삼일 후다.
나와 정희는 내일 아침 서울로 출발하기로 하고 그날은 아직 해가 있을 때에 헤어진다. 그녀가 비록 드라이브 시켜달라고 징징(?)거렸지만, 나는 내일이면 차 실컷 탈 테니, 걱정 말라고 달래서.
다음 날 우리는 오전 8시에 출발해, 지방도를 타고 가다가 수원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해, 대치동의 은마아파트로 향한다.
가는 내내 정희가
'왕초보가 정말 운전 잘 한다.'
고 칭찬을 했지만, 나는 내심 우습기만 했다.
사람의 머리에 든 것과 손발로 익힌 기술은 절대 누가 훔쳐갈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의 자산이다. 나처럼 회귀한 사람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금 큰 덕을 보고 있지 않는가!
나는 그녀의 말에 미소로 답하며 묻는다.
"요즈음 나한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 안 들어?"
"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그녀다.
"전 국민이 다 아는 유능한 신랑감을 두고 잠이 잘 오느냐 말이야?"
"쳇, 난 또, 뭐라고? 정말 그 문제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야. 나 정말 심각하거든. 꼭 누가 자기를 채갈 것만 같아. 심지어 꿈속에서도 그런 꿈만 꿔. 꿈속에서도 너를 보내고 징징 울고 있는 거야. 깨어나 보면 당연히 꿈이지만, 그때부터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는 거야. 내 마음 알겠어?"
"그런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날 믿고. 열심히 근무나 잘해."
"정말?"
갑자기 표정이 환해지며 생기가 도는 그녀의 꽃 같은 얼굴이다.
"나만 믿어!"
힘차게 가슴까지 두드리며 그녀를 안심시키는 나다. 차 안에서 그녀의 날씬한 다리를 쓰다듬었다가, 긴 생머리를 가져와 냄새도 맡아보는 등 장난을 치며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덧 서울이다.
바로 은마아파트로 직행한 나는 현장사무실을 찾아간다. 정 사장도 없고 하니 사무실에 들이닥치자마자 소장을 찾는다.
경리아가씨가 헐레벌떡 현장으로 달려가 소장을 찾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채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다.
"현장소장 이재준입니다."
회장 앞이라 그런지 부동자세로 자신의 관등성명(?)을 대는 소장이다.
"우리 처음이죠?"
"네!"
"당신이 금번에 새로 현장소장으로 부임한, 일본 제일의 건설 회사 '다이세이'에서 스카우트 되어 온 사람 맞죠?"
"네. 맞습니다. 일본에서도 부장 직급에 현장소장 이었습니다."
"앞으로 큰 공사를 많이 수주 할 테니 잘 해보세요. 좋은 끝이 있을 겁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해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때 내 옆구리를 툭 치는 사람이 있다. 정희다. 손짓으로 소장의 자세를 가르킨다.
아직도 부동자세로 서 있는 그 모습이 그녀에게는 무척 불편한 모양이다. 자신의 상관이 될지도 모르니 더 할지도. 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며 그를 간이의자에 자연스럽게 주저앉힌다.
"그런데 경리가 몇 이죠?"
"여기에 과장 하나와 여직원 하나, 그리고 본사에 또 한 사람 있습니다."
"흐흠.........! 셋이라.........?"
잠시 생각하던 내가 말한다.
"여기 하나 더 두어도 상관없겠죠?"
"아닙니다. 여기는 필요 없고 두려면 본사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본사에는 한 명이라 매우 고생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흐흠........! 그래요? 그러면 여기 있는 아가씨를 본사로 발령 낼 테니 그리 알고, 여기 이 아가씨를 현장에서 쓰세요."
"실례지만 누굽니까?"
"음.......! 내가 잘 아는 친척 여동생이라 해둡시다."
내가 봐도 거짓말이 참으로 어설프다. 대충 눈치로 때려잡은 소장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것이 얄밉다. 그래서 소리를 빽 지른다.
"내 말 알아들었습니까?"
"네, 회장님!"
곧 바로 무릎 위에 단정히 손을 얹고 부동자세로 답하는 소장이다.
"그럼, 그렇게 알고......... 현장에 큰 문제는 없죠?"
"네, 없습니다. 회장님!"
"알겠습니다. 이 아가씨는 내일부터 출근하는 것으로 알고 계세요."
"네."
나는 그길로 찬 한 잔도 안마시고 밖으로 걸어 나온다. 그리고 곧 바로 정희를 차에 태워 현장을 떠난다.
"이모 집이 어디야?"
"그 전에........"
표정이 상당히 굳은 정희다.
"왜 내가 친척 동생이야?"
"그럼, 애인이라고 소개시키길 바랬어?"
"응!"
"아이고, 이 바보야! 그럼, 뭔 근무가 돼! 현장소장부터 네 눈치 볼 텐데. 네가 편히 근무하겠어?"
"그게, 그렇게 되나?"
"그런데 아까 본사 자리가 비었다는데 왜 날 굳이 이런 삭막한 현장에 쳐 박으려 해?"
"처음부터 편한 환경에서 근무하던 사람은 나중에 좀 어려운 곳으로 보내면 무척 힘들어 해. 초년고생은 사서 한 다는 말도 못 들어봤어? 그러니 아무 말 말고, 열심히 근무하고 있어. 잘 하고 있으면 좋은 곳으로 보내 줄 테니."
"정말 약속하는 거야?"
"내 말 믿어? 못 믿어?"
"자기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그러면 됐어. 집이 어디라고?"
"장충동이야."
"그렇게 멀지는 않네."
"지금 나 데려다 주려고?"
"그럼, 어딜 가게?"
"본사 구경 안 시켜줘?"
"그것은 나중에 기회가 많을 거야. 오늘은 내가 조금 바쁘니 양해해라."
"됐어. 나 여기서 내려줘. 버스타고 갈 거야?"
"지리는 알고?"
"그쯤은 나도 몇 번 와봐서 알아. 나 너무 무시하지 마."
"그 말뜻이 아니잖아?"
"됐어. 나 내려줘."
'아이고, 저 밴댕이 소갈머리 하고는........'
나는 내심 그녀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아무런 답도 없이 차를 모는 데만 열중한다.
"왜? 화났어? 헤헤헤........!"
"그래. 화났다. 왜?"
"헤행! 자기 화 풀어! 나 이모네 집에 안 데려다 줘도 충분히 갈 수 있어. 그러니까 나한테 너무 신경쓰지 말고, 바쁜데 가서 일봐."
"아무래도 너, 불안하다. 그럼, 택시 타고 가라."
"택시?"
"싫어?"
"좋아!"
나는 결국 그녀를 대로변에서 내려주었다. 물론 손에 집히는 대로 택시비는 듬뿍 집어주었다.
10원 짜리로. 당시 택시비가 대충 500원 정도 했다(기본요금).
그러나 그녀는 끝내 시내버스를 타고 이모네 집에 갔다.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서.
* * *내가 본사에 들어가니 어느덧 점심 무렵이다.
모두 점심들을 먹으러갔는지 소수의 사람만이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썰렁하다.
을씨년스러워지려는 마음을 고개를 흔들어 일깨운 나는 바로 회장실로 찾아든다. 나의 갑작스런 출현에 깜짝 놀란 정윤희 양이 나를 보고 말한다.
"전화 한 통도 없이 갑자기 웬 일이세요?"
"내가 못 올 때를 왔나? 그게 뭔 말이오?"
"소식도 없이 나타났으니 그렇잖아요. 점심은 잡수셨어요? 커피라도 한 잔 타드릴까요?"
빠르게 지껄이는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보면서 엉뚱한 상상을 하다가 머리를 흔들어 떨쳐버리고 엉뚱한 것을 묻는다.
"윤희 씨는?"
식사를 했느냐는 물음이다.
"보고 계시잖아요? 빵 한 조각에 사과 하나."
"그게 점심이야?"
"헤헤........! 살찔까 봐요."
아닌게 아니라 정희가 날씬한 체형이라면, 정윤희 비서는 좀 통통한 체형이다.
"지금이 보기 딱 좋아!"
"정말요?"
나의 칭찬에 그녀가 반색을 한다.
"정말이야, 그런데 비서실장은 점심 먹으러 갔나요?"
"네, 연락을 할까요?"
"내버려 둬요."
"그래도 그게 아니죠. 회장님이 갑자기 상경했는데 비서실장이 자리에 없으면 당연히 서운한 노릇이잖아요. 빨리 식사하고 들어오라 할게요."
"알아서 하세요."
그녀의 수다에 항복한 내가 무덤덤하게 뱉고 내 자리로 가서 앉는다. 그녀가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잠시 후.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 정 비서실장이 헐레벌떡 달려온다.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있다.
"짜장면 드셨어요?"
"회장님이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와이셔츠 칼라에 묻었잖아요."
"회장님이 오셨다기에 급히 먹는 바람에........."
겸연쩍은지 머리를 긁적이는 정 실장이다.
"이거라도 좀 드시죠."
검은 봉지를 내미는 정 실장이다.
"뭔데요?"
"점심을 안 드셨다기에, 오는 길에 만두 2인분 사왔습니다."
"같이 드십시다."
나는 사양 않고 만두를 탁자 위에 펼쳐놓는다.
"저는 배불리 먹었으니, 정 양은?"
"보면 모르세요. 매일 그렇잖아요."
아직도 남은 사과 반쪽을 들어 보이는 정윤희 양이다.
"윤희씨도 같이 들지요?"
"어머, 어머! 제가 살찌는 모습이 그렇게 보고 싶으세요?"
"아닙니다. 그럼, 저 혼자 먹겠습니다."
배고픈 판이라 혼자 우걱우걱 입으로 쑤셔 넣는 나다.
"좀 천천히 드세요. 그러다 체하시겠어요."
말을 하며 재치있게 물 한 잔을 탁자 위에 갖다놓는 윤희 양이다.
"경호요원은 좀 뽑았습니까?"
나는 음식물을 입에 넣고도 잘도 말한다. 듣는 사람이야 좀 거북할지 몰라도.
"네. 추천을 받아 온 사람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 열두 명이나 뽑았습니다. 전부 전 청와대 경호요원 출신입니다."
음식물이 입에 잔뜩 들어 고개를 끄덕인 내가 그것을 삼키고 묻는다.
"정보 요원은 요?"
"추천 수도 많지 않아 다섯인데, 한 명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탈락시켰습니다."
"어디 가요?"
"추천서에도 씌어있었는데 사생활이 아주 복잡하답니다."
"능력은 어때 보이던가요?"
"제일 나을 거라는 평이 있었습니다."
"부르세요!"
"네?"
"인격에 흠결이 있다 해도 그것이 굳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 일이라면, 능력본위로 써야죠."
"나중에 뒤탈이 없을까요?"
"고용하기 전에 각서를 받고 단단히 조심시킨 다음 일단 써보죠. 그때도 행실이 영 아니라면 그때는 달리 생각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언제 쯤 볼 수 있을까요?"
"내일부터 전부 출근하라 했습니다. 모레가 입학식이니 내일은 올라오시리라 생각하고."
"알겠습니다. 특별히 다른 일은 없죠?"
"아직은 요?"
"그럼, 정 실장님은 뭔 일이 있기를 바랍니까?"
"기쁜 소식이 있으면 좋죠."
"하하하........! 그야 그렇죠."
"대원 알미늄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처음에는 정상화가 어려워, 처음부터 관여한 김춘길 과장을 임시 사장으로 발령 내, 지금은 팡팡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삼교대를 해도 주문 물량을 미처 못 댈 지경입니다."
"좋은 소식이군요. 내가 없는 동안에도 여러분들께서 힘써 일해주시는 것을, 나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최고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니, 값은 해야죠."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저는 고맙지요."
"그런데, 정 윤희 양은 직급이 아직 없습니까?"
"아직 경력이 일천하여........"
"내일 3월1일 자로 대리로 발령 내세요. 그리고 비서실에 참신한 남자 사원도 밑으로 하나 두고요."
"그러면 인사 원칙에 어긋납니다. 주임이면 몰라도."
"나는 능력본위로 인재를 등용합니다. 5개 국어에 능통하고 실력도 빼어난 재원을, 그냥 평사원 대우를 하는 것은 가당치가 않아요. 아셨습니까?"
"네! 명대로 시행하겠습니다!"
"회장님! 저 오늘 감격했어요! 그것도 아주 많이, 많이! 그 보답으로 오늘 저녁 한 끼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실장님과 동행이라면 응하겠습니다."
"쳇, 멋대가리 없게........"
작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뺨은 근래 보기 드물게 상기되어 있다.
기쁨으로.
----------------============================ 작품 후기 ============================날씨가 추워졌네요!
감기조심하시고, 즐거운 휴일되세요!
^^3종 세트는 작가를 감격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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