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약 스타가 되다 -- >
4내가 사장단 및 전 간부들을 이끌고 숙소인 프라자 호텔에 도착하니, 프런트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배인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더니 말을 건넨다.
"쿠웨이트에서 국제전화가 왔는데, 발표를 이틀 후에 하겠답니다. 시간은 오후 1시랍니다. 그렇게 하면 알 것이라고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건 또 뭔 짓이야? 서로 시샘이라도 하는 거야. 뭐야? 왜 쿠웨이트도 갑자기 발표를 하겠다고 난리야. 여기까지 온 것, 천상 이틀 후의 결과도 보고 가야겠군."
내가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하는데 옆에 서있던 최인준 지사장이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말한다.
"이번 건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회장님!"
"주베일 공사가 지금까지의 세계 최대 금액의 공사이기도 하지만, 또한 최대의 난공사 중의 하나라고. 최 이사는 걱정도 안 되는 거야? 모두 수주해서 어쩌자고?"
나의 질책성 발언에도 최인준은 여전히 싱글거리는 얼굴로 말한다.
"우선 따놓고 보는 것이죠, 뭐!"
"그 무대포 정신은 또 뭐야?
나의 웃음 띤 질책에도 최인준은 여전하다.
"수주만 하면 어떻게든 공사야 되겠지요."
최 이사의 말을 받아 내가 심각한 안색으로 말한다.
"나는 정말 심각하오, 우리가 언제 이런 공사를 해봤어야 말이지. 막상 따놓고 보니 근심이 한 가득이란 말이오. 다들 도면을 보아서 알겠지만, 50만 톤급 유조선 4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대규모 항만 공사요. 수심 10m의 바다를 길이 8㎞, 폭 2㎞로 매립해 항구와 기반시설을 만드는 공사죠. 300 미터 높이의 산 하나를 통째로 옮겨다 바다에 메우는 물량이란 말이오. 거기다가 호안공사와 암벽공사는 또 어떻게 할 것이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가는 내내, 나의 걱정이 전이되었는지 이제는 모두 굳은 얼굴들이다.
"이제는 어떻게 되겠지가 아니라 보다 세밀한 작업방법과 기술적 지식이 필요한 시점이란 말이오. 이래도 자신 있소?"
"어떻게든 되겠지요."
"또 그 소리........."
최인준의 말에 내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모두 꿀 먹은 벙어리들이다. 나는 화를 삭이며 침착하게 말한다.
"내방으로 가서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나눠봅시다."
말과 함께 나는 가장 큰 내 방으로 직원들을 이끌고 들어간다. 그래도 아무래도 소파가 비좁아 모두 앉을 수가 없다. 나는 눈치로 보아 침대에 걸터앉으며 턱으로 소파를 가르킨다.
모두 그곳에 앉는다. 다만 정양만이 자리가 없어서 서 있다. 내가 침대를 가르키며 그 위에 가서 쉬라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냥 서있겠다고 한다.
지금 내 심정이 복잡하므로 그녀가 서있거나 말거나 나는 하던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그래서 내 생각은 외국의 건설사와 기술제휴가 되었든, 자본참여가 되었던, 제휴를 했으면 하는데 어떻게들 생가하오?"
"그것은 안 됩니다. 죽 쒀서 개 좋은 일시키는 꼴 밖에 안 됩니다."
여기 또 하나 무대포가 있다. 지금까지 꾹 입을 다물고 있던 신태웅이다.
별명이 불도저이니, 그의 성품을 알만한 것이다. 나는 그의 발언을 무시하고 이번에는 대원 인터내셔날의 사장 이상백을 바라본다.
사십 대 초반에 안경을 끼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풍기는 그를 보노라면 현장 묵기라기보다는 참모형 내지 사무실 요원 타입이다. 그렇지만 막상 그의 성품은 그렇지도 않다. 이론에도 해박하지만 밀어붙이는 추친력도 대단하다고 정평이 나있는 사람이다.
그런 유능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나이에 벌써 세계 제일의 건설회사에서 상무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는 유전과 정유 쪽에도 해박하지만, 원자력 쪽이 오히려 그의 주 종목이라 할 정도로, 그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권위자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로 나까지 네 번이나 찾아가 그를 모셨고, 또한 백지 위임장까지 들이대면서 그를 초청하려 애쓴 것이 아닌가. 아무튼 그가 안경테를 만지며 차분하게 말한다.
"회장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제가 판단하기로는, 지금 대원건설의 실력으로는 어렵다고 보여 집니다. 그렇다고 대원건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마십시오. 기술적 난이도가 원래 큰 공사이다 보니, 세계의 내노라하는 기업도 선뜻 달려들기에는 만만치 않다는 말입니다."
"당신이 자문을 해주는 것은 어떻소?"
이 상백 사장의 말 도중에도 대원건설이 낮게 평가되자 기분이 나빠 씩씩거리던 정태수 사장이 그를 시험하려든다. 막 답변하려는 이 사장을 만류하고 내가 발언에 나선다.
"유전탐사와 두 군데의 정유공장 건설만 아니라면 내가 벌써 그런 제의를 했을 것이오. 지금 현재로서는 그 임무도 벅차다고 느꼈기 때문에 애초에 내가 이런 말을 꺼내게 된 것이오?"
"그러면 벡텔사 본사의 지원을 받는 것은 어떻습니까?"
신선우 사장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내가 받는다.
"나도 그 문제를 가지고 심각하게 생각을 해보았는데, 일장일단이 있소. 내 말의 전제는 일단은 벡텔에서 우리의 요구에 응해, 우리를 기술적으로 지원해준다는 가정 하에 드리는 말씀이오. 음........! 한 군데만 계속 매달리다가 만약 모종의 일로 그 쪽과 관계가 틀어졌을 때는, 우리는 유전, 정유뿐만 아니라, 건설까지 심대한 타격을 입을 우려가 크단 말이오. 반대로 이쪽저쪽 기웃거리지 않고 그쪽만 거래를 하게 되면 그쪽에서는
'신의는 좀 있군.'
하는 평가는 받겠지만, 아마 그뿐일 것이오. 그래서 내 생각은 금번에 떨어진 싸이펨이나, 테크닙과 접촉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오만?"
"옳으신 말씀입니다. 세계적 일류 기업이 된다는 것은 결국 그 분야뿐만 아니라 관련된 이웃 분야까지 모두 M&A로 집어삼켰다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한마디로 비정하고 냉혹한 게 이쪽 분야입니다. 비단 이쪽분야뿐만 아니라 전 산업 분야가 그렇겠지만 서도요. 그래서 저는 회장님의 말씀해 찬동합니다.
테크닙이나 싸이펨을 접촉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결론 내고, 그래도 이 분야에서는 안면이 많은 이 박사(이상백:실제 박사 학위소지자다)가 접촉을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떻겠소? 내 생각에는 그들도 쿠웨이트 항만공사의 입찰에 참여해서 아직 이 호텔에 머물고 있을 것으로 아는데?"
"제가 알고 있는 정보로도 그렇습니다.
'쇠뿔은 단김에 빼라.'
는 한국의 속담대로 지금 즉시 그들과 접촉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그럼, 부탁하오."
"다녀오겠습니다."
그가 나가자 나는 한숨을 쉬며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본다. 그런데 아직도 정양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서 있다.
"내가 불편하니 침대위에 가서 앉던지 눕던지 하시오."
"괜찮습니다. 갈증도 나실 텐데, 차라도 한 잔 주문해 올리겠습니다."
"나는 다방 커피!"
"네?"
정윤희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는 신태웅의 주문에 정양이 졸지에 백치미를 발휘한다.
"이곳에도 있을 라나 모르겠는데, 커피에 프림은 물론 설탕까지 듬뿍 넣는 것을 말하니, 알아서 주문해주시오."
"호호호.......! 저는 다방에 가서 커피를 가져오라는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하하.........! 다방은 있기는 하고?"
모두의 웃음이 채 다 끝나기도 전이다. 신태웅이 불쑥 한 마디 던진다.
"나는 회장님의 처사에 불만이우. 만약 현대 같았으면 통째로 다 해먹었을 거인디, 어째 자꾸 남하구 갈라먹자는 소리만 해쌌는지........"
흥분하니 이제 막 본격적으로 전라도 사투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하는 신태웅이다.
"험, 험.........! 아다시피 현대는 말이오, 일찍이 경부고속도로며 해외공사도 여러 건 해온 것으로 알고 있소, 그런데 우리 대원건설은 이제 주택 몇 채 지은 게 전부 아니오? 정말 우리의 기술력만으로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이런저런 고민 안하고 무조건 맡기겠소. 나라고 저 코쟁이들에게 돈 받치는 것이 좋아서 하는 줄 아오?"
나의 말에 갑자기 조개입이 되는 신태웅이다. 신태웅뿐만 아니라 장내가 조용하다. 모두 내 기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느닷없이 돌아서서 말을 꺼낸다.
"이 참에 조직도 좀 개편을 해야겠소. 점점 일거리도 많아지고 조직도 커지니 어쩔 수 없을 것 같소. 건설 부분을 둘로 쪼개 주택부분과 플랜트 분야로 나누어, 기존의 대원건설은 그 체제로 주택부분을 맡고, 차제에 플랜트 분야는 별도의 법인체를 설립해야 할 것 같소. 그리고 내 예상이지만 공기를 맞추고 수지 타산을 맞추자면 이곳 현지에서의 작업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오. 그래서 하는 말이오만 가칭 '대원중공업'이라는 별도의 회사도 하나 설립해 당분간은 후방지원의 임무를 맡아야 할 것 같소. 게다가 무역부분도 우리의 많은 수출로 외국사의 배를 빌리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가칭 '대원해운'이라는 해상 물류를 담담할 회사도 하나 차리는 것이 좋겠소."
"다 좋으나, 결국 자본이 문제 아닙니까?"
신 사장의 말에 나는 정운수 비서실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이렇게 계획을 잡으시고, 건설과 무역부분인 대원실업을, 상장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주시오."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 외의 이야기로 우리의 이야기가 좀 더 진행되고 있는데, 커피를 비롯한 음료수가 들어오고, 마침내 테크닙과 싸이펨이라는 세계 2,3위 건설업체들을 접촉하러 갔던, 이 사장도 돌아온다.
"결과는 어떻소?"
성급한 최인준의 질문에도 묵묵히 표정 변화가 없던 이 사장이 말한다.
"테크닙은 아예 상대도 않으려는데 싸이펨은 조건만 맞는다면, 지분참여든, 기술제휴로 인한 로얄티 지급 방식이던, 둘 다 가능하다 하는군요."
"그래? 이 박사가 보기에는 어느 방식이 우리에게 유리할 것 같소?"
나의 미소 띤 질문에 이상백 사장이 즉석에서 답변한다.
"둘 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저들의 지분을 유도해 참여시키는 방안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 그렇소?"
"아시는 바와 같이 저들은 세계적인 건설사로 해외 곳곳에 사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저들이 전 공사를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도의 공사는 대체적으로 자신들이 직접 하지만, 인건비성 공사는 대개 현지나 믿을만한 기업에 하청을 줍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재의 우리 처지는 장점이 싼 인건비 밖에 없습니다. 저들이 주는 하청이라도 일단은 자꾸 해먹어가면서, 거기서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해, 결국 저들을 1;1로 상대해도 지지 않을 강한 회사를 키워내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라 한다면, 단발성 로얄티 지급 방식보다는, 저들이 하청을 주어도 지분이 있으니, 일정 부분은 다시 저희들 회사로 돌아가는 즉, 하청도 보다 수월하게 주지 않을까 사료되는 바, 지분 참여를 시키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하하하........! 평소 말씀이 없으셔서 실례지만 벙어리과 인줄 알았더니, 아주 달변가이십니다 그려. 하하하.........!"
"원 별 말씀을........."
"그럼 저들에게 지분을 주는 것으로 하되, 주베일 공사는 아예 신생 법인으로 출발하려고 하니, 최초의 자본금부터 저들의 지분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상의하시죠."
"바로 끝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만........"
"공사도 바로 시작해야 하니 가능한 빨리 교섭을 마무리 짓는 것으로 하되, 단....... 전권을 이 사장님께 부여합니다. 일은 그렇고 시장한데 우리 식사나 하러 갑시다. ."
"믿고 맡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그들과 식사라도 하면서 운을 떼어볼 랍니다. 처음이라 큰 기대는 하지마시고....... 저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저 사람도 우리 과 아냐? 굉장히 급하군. 바로 돌아서서 나가잖아?"
신태웅의 말에 멋쩍게 웃는 최인준 이사다. -------------------============================ 작품 후기 ============================오늘도 4종 세트와 더불어 좋은 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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