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약 스타가 되다 -- >
476년 2월 16일 오전 9시, 10분 전.
리야드 체신부에 있는 국제 입찰실.
관계자들과 이곳저곳에 모여든 입찰 참가자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소곤대고 있다.
이 순간 내가 각 분야 사장단들을 데리고 정양과 함께 나타나자 힐긋 한 번 나를 보고는 모두 아는 체도 않고 고개를 돌린다. 그들의 눈에는 오만한 기운이 흐르고 입에는 비릿한 미소를 띠고 있다.
한마디로 동양의 이름도 알 수도 없는 작은 나라에서 온 너희들은 상대가 안 된다는 오만함 가득 베인 방자한 시선과 행동들이다. 나 또한 이들을 무시하며 딴전을 치는데 대원 인터내셔날의 사장 이상백이 코큰 놈에게 다가가 알근 체를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입찰에 참여한 벡텔의 부사장이다. 저들의 무시에 나도 무시로 일관하고 있는데 다시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 돌아보니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들어오자 한 번 힐끔 시선을 주더니 모두 슬금슬금 자리를 피한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얼른 코를 막았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부사장 둘을 대동한 정 회장의 모습은 한마디로 거지였다.
부하들도 똑 같은 행색이고. 무슨 관습인지 목욕을 하거나 면도라도 하면 입찰에 떨어진다는 속설을 믿어 그대로 행한 것까지도 좋았는데, 옷조차 갈아입지를 않아 냄새가 진동을 해서 모두 피한 것이다. 사우디의 날씨가 여간 더운가.
에어콘도 없는데 그들의 냄새 때문에 모두 코를 막고 있어 오히려 긴장감은 아까보다 떨어졌다.
국제입찰실에 에어콘이 없느냐고?
없다.
지금 사우디 형편도 우리보다 나을 게 별로 없었던 시절이다. 제다에서 리야드로 전화를 걸면 사흘 후에 전화가 연결이 되어 통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통신 시설이 엉망인 시절이었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대사관에 전화기 한 대 있고, 텔렉스도 없어서 필요하면 떨어진 코트라에 가서 빌려 써야 하는 열악한 형편이었다. 아무튼 이때 또 다시 다른 동양인들이 나타난다.
"누가 대원건설의 강 회장이오?"
뜻밖에 한국어로 나를 찾는다. 내가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대답한다.
"접니다만, 누구신지요?"
"하하하........! 반갑소! 나 주 사우디대사로 있는 유양수라 하오. 옆은 홍순길 건설 사무관이고."
"그런데 무슨........"
"어제 김재규 건설부장관으로부터 전문을 받았소. 현지에 가거든 잘 돌봐주라고."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자 정주영 회장이 다가온다.
"당신들도 입찰에 참여한 것인가?"
"네!"
"어느 회사요?"
"대원건설입니다."
"으응........?"
생각이 잘 나지 않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가 묻는다.
"혹시 은마와 리야드에 대규모 아파트를 건설하기로 했다는 회사가 당신들이요?"
"맞습니다."
"허허........! 한국에서는 나만 참여하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군."
약간을 께름칙하다는 표정을 짓는 정 회장이다.
"이제 나는 알근 체도 않는 것이오?"
"누가 누구를 아는 체도 안하는 지 모르겠수다. 하하하.........!"
유대사의 농담을 농담으로 받은 정 회장이 호쾌하게 웃는다.
"조용히들 하시오."
아랍어라 정양이 나에게 조용히 통역해준다.
발표시간이 임박하자 주무장관인 탑픽 장관이 등장한 것이다. 내가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보니 정각 9시다.
"그럼, 지금부터 주베일 산업항 공사의 낙찰자를 발표하겠소!"
탑픽이 봉투에 든 내용물을 꺼내며 하는 말에 장내는 정말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정밀하다.
"그럼, 발표하겠소. 낙찰자는 기업능력 평가에서 종합 3위를 받았고, 공사금액으로 9억4천만 달러를 제시한........."
여기서 긴장을 더 유도하기 위해서인지 잠시 말을 끊고 장내를 한 바퀴 휘둘러보는 탑픽이다.
"한국의 대원건설이오!"
우와.........! 발표가 끝나자마자 나를 얼싸안으려 달려드는 정 사장을 비롯한 부하들이다. 나는 담담한데 신선우, 정태수, 이상백, 최인준, 신태웅, 원정남은 모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강 회장........ 정말 축하오........ 축하해!"
사장들의 에워싸인 밖에서 나를 축하해주는 유 대사다. 역시 붉게 상기된 얼굴에 눈물이 맺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유대와 홍사무관이다. 이때 밖으로 울며 달려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현대건설의 부사장 둘이다. 씁쓰레한 웃음을 머금고 있던 정주영 회장에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한다.
"축하하오. 같은 한국인이 수주를 했다는 게 여간 다행한 게 아니오."
비록 축하를 하지만 눈가가 빨개진 정 회장을 보니 내가 괜히 미안하다.
"미안합니다!"
"강 회장이 미안할 게 뭐 있소. 내가 욕심을 조금 더 부린 게 죄지."
그 순간 여기저기서
'말도 안돼!'
'이건 엉터리야!'
하는 고함이 들리지만, 나는 말없이 축 쳐진 어깨로 밖을 행해 걸어 나가는, 정 회장의 등에 시선이 꽂혀있다. 내가 정말 그에게 미안한 게 있다.
전생에서 그의 책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몇 번 통독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이 산업항 수주과정이 아주 상세히 나온다.
지금의 행색대로 부정 탄다고, 목욕도, 수염도 안 깎고, 입찰서가 든 봉투를 발로 밟는 장면도 나온다. 입찰서가 든 봉투를 짓밟아야 낙찰된다는 속설을 믿고. 그리고 그 장면과 함께 수주 금액도 나오는데, 9억4천하고도 자투리가 있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현 내 기억으로는 자투리 단위는 더 이상 기억나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자투리에 연연하지 않고 딱 9억4천을 써냈다. 그러니 이미 나는 결과를 알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낙찰이 되었어도 내가 그렇게 담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전생에서 현대의 낙찰 금액은 9억4천5백만 달러였다.
"축하하네, 축하해!"
유양수 대사와 홍순길 사무관이 어디서 물컵에 물을 잔뜩 채워가지고 와서 내게 권하며 축배를 들자는 것이다. 사우디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으니 물로 대신하자는 의도는 알겠는데, 너무 기쁨에 들뜬 나머지 무의식중에 반말이 저절로 나오는 모양이다.
이 모양에 정태수 사장이 눈을 부릅뜨나, 흥분한 유 대사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듯하다.
"정말 축하합니다!"
홍 사무관이 컵을 부딪쳐오고, 유대사도 내 컵에 함께 부딪히더니, 그 물을 마실 새도 없이 서두른다.
"통신사 어딨어? 통신사!"
"네, 여기 있습니다. 대사님!"
한쪽 구석에 존재감도 없이 있던 사람이 급히 나타난다. 유 대사는 침을 튀기며 혼자 막 떠든다.
"부르는 대로 받아 적어."
"네!"
"대통령각하! 기뻐해 주십시오. 1976년 2월 16일에 발표한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공사에서 대원건설이 수주를 했습니다. 금액은 9억4천만 불입니다. 이로써 사우디에서 수주한 누적 합계 금액이 12억4천만 달러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전권대사 유 양수."
"빨리, 빨리 코트라에 가서 전문 날려."
"네, 네. 대사님!"
자신의 일 마냥 기쁨에 겨워 얼른 달려 나가는 통신사다. 우리가 이렇게 마냥 흥분으로 들떠있는 사이 한쪽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것은 뭔가 잘못됐다고 계속 장관을 붙들고 항의하는 랭킹 세계 2위로 평가받는 프랑스의 건설 강자. 테크닙, 랭킹 3위로 '무적의 로마군단'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싸이펨 등의 회사 중역들이다. 그러나 벡텔만은 우리기업에 투자를 해서인지 승복하고 부사장이라는 자가 내게 다가와 축하를 해준다.
"축하하오! 미스터 강!"
"감사합니다!"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시오."
"네!"
건방지게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사라지는 코쟁이다. 그로부터 30분, 우리의 흥분이 서서히 식을 때다.
통신사가 헐레벌떡 달려와 한국에서 온 긴급전문을 유 대사에게 건넨다. 두 장이다. 읽기를 마친 유대사가 그 중에서 한 장을 나에게 건네준다.
"대통령 각하로부터 직접 온 것이오."
전문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강 회장, 축하하오! 그동안 고생 많았소. 귀국하는 대로 청와대로 들려주시오.] -------------------============================ 작품 후기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4종 세트를 주시면 더욱 감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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