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26화 (26/135)

< -- 일약 스타가 되다 -- >

1나는 현지에 며칠을 더 머물며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을 조율하여 계약을 체결했다.

그 내용을 기술하면 이렇다.

첫째: 대원실업과 쿠웨이트 석유공사는 쿠웨이트 남쪽, 미나 알-아흐마디 정유공장의 기계정비를 46만 달러에 시행한다.

공사기간은 체약 체결일로부터 6개월 이내이다.

여기서는 공사기간이 문제가 되었으나, 최종 우리의 1년 주장과 저들의 3개월 주장을 절충하여 6개월이 된 것이다.

둘째: 사우디와 쿠웨이트 양국의 아람코와 쿠웨이트석유공사는, 국경의 중립지대인 '와스라 유전지역의 탐사권과 개발권을 대원개발에 준다. 단 육상에 한하고 해상은 제외된다, 지분은 대원실업, 사우디, 쿠웨이트 각각 52:24.

:24로 한다.

단 대원실업의 절대적 하자가 없는 한 국유화 할 수 없다.

여기서 지분 문제로 처음에는 3국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우리의 주장은 처음부터 60%를 달라는 것이었고, 양국은 자신들이 51%를 우리에게 49%를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상당히 난항을 거듭했는데, 최종 우리 51% 양국 49%로 조율되었으나, 이제는 1%의 지분을 가지고 양국이 첨예하게 다투었다. 이 과정에서 차라리 우리에게 1%를 더 주면 다툼이 없지 않겠느냐는 우리의 제의에 저들은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단호히 못 박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아예 해상 개발권까지 문구에 넣자고 주장하자, 판이 더 커진 관계로 이제는 1%의 지분이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애초부터 해상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저들의 주장을 우리가 전폭 수용하는 대가로, 1%의 지분을 더 양보 받고, 또 우리 측의 절대적인 하자가 없는 한, 사우디 쿠웨이트 양국은 여하한 경우에도 국유화 조치를 취할 수 없다'라는 강력한 문구를 명시화 할 수 있었다. 이는 추후 이들이 와스라 유전지대를 국유화하는 것을 알고 있던 나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애초부터 우리도 생각하지 않았던 해상권까지 들고나가 이룬 쾌거였다.

세 째: 사우디 주택성은 대원실업에게 리야드 외곽, 한국평형기준 34평 즉 103제곱미터 5,000 세대를, 3억 달러에 발주한다. 단 계약 체결 후 3년 이내에 완공이 되어야 하고, 지체하는 쪽은 배상금조로 100분의 3을 지급해야 한다.

여기서 다툼이 된 것은 뜻밖에도 건물의 세대수와 금액이 아니라, 공사기간과 지체보상금 문제였다. 애초에 저들은 3년을 우리는 5년을 주장했는데, 우리가 3년으로 공사기간을 대폭 줄이는 대신, 지체보상금이 국제적 관례인 1,000의 3을 무시하고, 그 십 배인 100분의 3이 된 것은 강력한 나의 주장에 의해서였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나에게도 독소조항이었지만, 그보다는 저들의 강력한 시행을 촉구하기 위한 나의 아이러니였다. 이 공사는 이 소설의 모델이 되고 있는 전 '율산실업'에서 실제로 그 금액에 수주한 공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주택성의 지연으로 인해, 율산이 부도가 나는 79년까지 시행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노파심에서 이렇게 많은 지체보상금을 위약시 서로 지불하기로 약조하게 된 것이다.

넷째: 사우디의 주베일 항만 공사, 쿠웨이트의 슈아이바 항만 확장공사에 대원실업의 입찰권을 부여한다. 이 건이 어떻게 보면 아파트 건설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조항인지도 모른다.

이런 대형 공사의 입찰권은 소나 개나 아무나 주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유수한 기업만이 입찰권을 부여받는다.

당시 일본 제1의 건설사였던 다이세이까지도 입찰권을 부여받지 못한 것을 보면, 당시 이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만한 특혜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뿐인가! 같은 우리나라 기업인 현대건설이 이에 참여할 입찰권을 얻어내기 위해서 대사관의 건설 담당관은 아예 장관실로 출근을 하다시피 했고, 김재규 건설부 장관, 유양수 주 사우디 대사도 매일 이를 체크해 큰관심을 가지고 국가적인 총력체제로 지원에 나선 박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했다.

그런 형편이니 우리 기업에 대한 왕세자의 총애(?)가 어떠했는지는 알만 할 것이다. 지금도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당시를 회상하면, 현대건설에서 이 입찰권을 손에 넣고 감격에 겨워하던, 그 이상의 감격이 우리에게도 있었음을 부언해 둔다. 그렇지만 나의 함구 특명으로 이를 아는 사람은 발표일 당일까지 한국에 전무했다.

괜히 떨어지면 망신이고, 알아도 우리 기업을 현대와 같이 박대통령 이하 총력적으로 지원해줄 것인가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대원건설과 아람코(ARAMCO: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생산업체)는 한국에 1차로 일산50만 배럴 추후 50만 배럴 도합 100만 배럴의 정유공장을 건설하기로 합의한다.

지분율은 대원실업 60% 아람코 40%이다. 단 대원실업이 우려하는 원유의 안정적 공급을 위하여 계약일로부터 아람코는 20년 동안 장기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

대신 한국의 정유공장 건설이 무산되면 같은 조건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영내에 정유공장을 건설해야 한다. 대원건설과 쿠웨이트석유공사는 일산50만 배럴의 정유공장을 슈아이바에 짓는다.

지분은 60:40이며, 원유공급은 쿠웨이트 국영석유공사가 책임을 지고, 공사기간은 계약일로부터 5년 이내이다. 단 부지는 쿠웨이트 정부가 제공하고, 판매는 전적으로 대원실업에서 맡는다.

* * *즐거운 것은 계약을 체결하는 순간뿐이었다. 모든 계약을 체결하고 나니 이를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로 인해 내 머리는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기내에 동석한 신 사장은 물론 정 비서실장까지 모두 말을 잃고 무언가에 골몰하는 표정들이다. 그러나 정윤희 비서만은 태연하게 잠을 자고 있다. 부러움에 이마에 꿀밤이라도 쥐어박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나는 내 나름대로의 대책에 골몰한다.

자본금이 풍부하면 골머리 앓을 필요도 없이 얼른 뚝딱 해치우면 되지만, 돈 들어 갈 곳은 무수히 많고 재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골치가 아픈 것이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행복한 고민일 것이다.

이 소식을 한국에서 알게 되면 방송이고 신문이고 난리가 나겠지만, 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일체 이를 누설하지 말 것을 직원들에게 명했다. 귀국 후 나는 강 상무와 권 이사까지 회장실로 불러들여 계약 내용을 설명하고, 사안별 경중을 가려 가장 중요한 일의 순서대로 처리하기로 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사안인 와스라 유전지대의 탐사와 정유공장의 건설을 위해, 우선 이를 총괄할 가칭 '대원 인터내셔날'이라는 법인체를 별도로 설립하기로 생각을 모았다. 그 산하에 한국과 쿠웨이트의 정유공장 건설공사는 물론 46만 달러짜리 정비공사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자금은 지금까지 대원실업에서 번 돈과 아파트 분양으로 번 돈을 투입하면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 같은데, 문제는 우리 간부들 중에 아무리 둘러봐도, 유전개발과 정유공장을 건설할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를 외부에서 영입해 해결하기로 하고,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찾아내 영입하도록 지시했다. 다음은 3억불짜리 아파트 5,000 세대의 건설인데, 이는 같은 주택건설 사업이므로 대원건설에 맡기기로 하고, 근간에 정 사장을 만나 세부 계획을 세우도록 할 방침이다.

* * *후일담이지만 먼저 (주)대원 인터내셔날의 사장을 구한 이야기부터 하겠다. 내 지시는 그대로 이행되었다.

한 달 만에 외부에서 사장 및 일부 간부 사원들을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먼저 전략기획실은 기왕이면 앞으로 주베일이나 슈아이바 항만 공사까지의 수주에 대비해,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제외하고, 그보다는 세계 일류건설 회사를 상대로 영입대상자를 수배하기로 했다.

그 결과 세계 제1의 건설회사로 명성이 높은 벡텔에서 한국인 최초의 상무로 근무하고 있는 이상백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다음부터는 인고의 세월 아니 신 사장의 삼고초려 더 나아가 나까지 네 번을 쫓아가서야 간신히 그의 허락을 득할 수 있었다.

그와 내가 직접 만나 애국심에 호소하고 백지위임장의 연봉까지 들이대고 나서야 그를 어렵게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그가 회사를 나오는 과정에서 그는 내게 허락을 구하고, 직접 벡텔의 본사 사장과 담판을 벌였다.

'(주)대원인터내셔날'에 지분 40%를 투자하기로 함은 물론 앞으로 상호간에 많은 협력을 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다. 그 외 벡텔 본사는 일부 중간간부 사원들의 이탈도 묵인하기로 했다.

기왕 회사를 맡은 이상 자신이 사업을 수월하게 전개해 나가기 위함은 물론 벡텔의 사업 영역도 넓히는 것이니, 어찌 보면 서로 윈윈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쾌거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강력하게 고집하여 '신주우선인수권' 조항과 '우선인수권주' 조항을 정관에 명백히 삽입하였다.

이는 자본을 증액하기 위해 신주를 발행할 때 내가 먼저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장치요, 만약 그들이 대원 인터내셔날에서 떠나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인수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이 과정에서 (주)대원 인터내셔날의 자본금이 애초보다 증액된 1,000억 원으로 책정되고, 나는 이중에서 60%에 해당되는 6백억 원을 납입했다.

이 돈은 내가 건설과 대원실업에서 번 돈 중 일부인 300억 원을 투입하고, 나머지 300억 원은 주거래 은행인 기업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아낸 돈이었다.

이렇게 해서 한 달 만에 쿠웨이트 내의 정유소 정비공사, 정유소 신설공사는 물론 유전탐사까지도 본궤도에 진입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정부에서 아직도 우리가 신청한 일산 50만 배럴의 정유공장 건설 허가를 내주지 않는데 있었다.

지금은 '공급과잉' 상태로 내 줄 수가 없다는 주무부서인 석유국 담당 과장의 답변만 들었을 뿐이다. 하긴 당시에 신청한 우리 기업 말고도, 기존의 정유사가 5개나 있어 과잉문제가 대두될 만한 상황이긴 상황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이 필요로 하는 석유의 량에 비하면 턱도 없는 지금 현재의 한국 내 정유시설이었다.

아무튼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나는 불같이 화를 내며 상공부 장관의 면담을 주선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대원실업의 최고 간부인 4인방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상공부 장관은커녕 담당 국장과도 만나는 자체가 어려웠다. 이에 나는 로비의 귀재 정 태수 씨를 움직여서 가까스로 담당 최고책임자인 석유국장과 자리를 마련할 수가 있었다.

이로보아도 아직은 우리 회사의 인지도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내심 씁쓸하기도 했다. 이번 계약 성사 건을 언론에 빵 터트리면 어쩌면 주무장관도 쉽게 만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 비싼 몸이 일개 국장을 만나러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신 사장을 내보냈다. 물론 신 사장이 어련히 잘 해내리라 믿지만, 나는 노파심에서 몇 가지 그를 설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었다.

----------------============================ 작품 후기 ============================오늘 하루종일 매달려 딱 2편 썼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고.......!

^^염치가 없어서 4종셋 이야기 하기도 꺼려지네요!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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