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럭비공 -- >
3얼마 후, 일요일 저녁.
정희와 나는 모처럼 중국집에 마주 앉아있다. 그것도 방안이다.
나는 돈은 좀 번 것 같은데 아직 실감도 나지 않고, 아직도 그런저런 소시민이다. 8시쯤이라 홀 안에 손님 하나 없었지만 학생 신분의 남녀가 만나는 것이 과히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닌지라, 방안으로 청해 든 것이다.
내가 짬뽕과 함께 백알 한독구리를 시켜 홀짝홀짝 다 비워가도록 그녀는 나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정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식을 안 먹는다. 그렇다고 볶음밥을 시켜줘도 싫다한다.
하긴 그것도 중식이긴 하지만,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면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길손시식에서 쫄면을 시킨 것은 무슨 변덕인 줄 모르겠다.
'쫄면은 잘 먹나?'
이 사실을 알고 나는 앞으로 '면은 다 먹었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어쨌거나 지금은 면을 싫어한다는 말은 않고, 배가 불러서 안 먹는다고 내숭을 떨며 내 입만 주시하고 있는 중이다.
술기운이 조금 오르기 시작하자 조금은 부끄러웠던 마음이 가신다. 전생의 기억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요즘 젊은이들처럼 닭살 돋는 행동은 잘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를 내 옆으로 불러 앉힌다.
"왜?"
자리를 옮기고 고개를 치켜들고 묻는 그녀에게 나는 조용히 말한다.
"할 말이 있어서."
"무슨 할 말?"
"이것 받아!"
"뭔데?"
나는 부시럭거리며 상의 주머니에서 옥갑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준다.
"이게 뭐지? 반지 같은데?"
"반지 맞아."
"지금 내게 청혼하는 거야?"
"너무 오버하지 마. 우리 나이가 지금 몇 인데, 벌써 청혼이야?"
얼굴이 벌개진 정희가 새침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럼, 뭔데?"
"커플 반지."
"커플?"
"응."
"무슨 의미야?"
눈을 빛내며 묻는 정희다.
"좋은 친구로 영원히 함께 지내자고."
"영원히 함께?"
"음........!"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나.
"헤헤헤.........! 의미가 심장한데! 이런 걸 갑째 주면 어떡해. 꺼내 끼워줘야지. 이리 와봐."
"옥갑을 열더니, 두 개를 들고 비교하더니 아무래도 큰 놈을 들어 내 손에 끼워준다고 달려든다. 나는 얌전히 손을 내밀어 그녀가 다 끼워줄 때까지 기다린다. 마침내 그녀가 다 끼워주자 나도 그녀의 손을 당겨 그녀의 왼쪽 무명지에 끼워준다.
"헤헤헤.........! 예쁘네! 정말 멋져!"
손가락을 쭉 펴서 요리조리 살피며 아주 기쁜 표정을 짓는 정희다. 정말 예쁘긴 예쁘다. 연록 빛 영롱한 광채가 온 방안을 환하게 비추는 듯하다.
"그런데, 이 테두리는 금이야, 뭐야? 박힌 보석은 또 뭐고?"
"순금은 물러서 이런 알을 박으면 잘 빠진대. 그래서 18K로 했고, 네 생일이 10월이잖아? 내 생일도 10월이고."
"응."
"10월의 탄생석 오팔이야!"
"오팔?"
"청주에는 구하기 힘들 것 같아서 서울에서 맞춰온 거야. 희망, 환희, 순결, 여성의 행복을 뜻해!"
"우와! 그 말을 들으니 더 예쁜 것 같은데. 이리 와봐, 잠시."
"왜?"
그녀가 갑자기 달려들어 내 입술에 뽀뽀를 하더니, 화들짝 붉어진 얼굴로 달아난다. 그리고 말한다.
"아무래도 너를 더 좋아할 것 같아! 그런데 내가 네게 해줄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
처연해지는 그녀를 향해 씨익 웃으며 말한다.
"지난번에 조끼도 떠주고, 만년필도 사줬잖아?"
"그 딴 것 말고........."
"그럼?"
"비싼 걸로."
"지금 내게 한 입맞춤이 내게는 세상 어느 것 보다 비싼 것 같은데!"
"정말?"
그제야 눈을 빛내며 웃음꽃이 피어나는 선녀 같은 얼굴이다.
"그래. 이리 와봐. 이젠 내가 정식으로 뽀뽀 한 번 하게."
"아........ 안 돼!"
후닥닥 장지문을 열고 달아나는 정희다.
"후후후..........!"
일어나 천천히 걸어 나가며 음흉한 웃음을 짓는 나다.
* * *내가 정희와의 데이트를 끝내고 집에 들어가니 아무래도 늦은 시간인데, 그 시간에도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내가 전화를 거니 뜻밖에도 내 비서실장이자 전략기획실장인 정운수다.
"정실장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밤에 무슨 긴한 용무라도 있나요?"
"회장님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려고요."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네. 다름이 아니라 금번 사우디 황태자께서 회장님을 초청해오셨습니다. 그 자리에는 쿠웨이트 황태자도 함께 하신다고 하네요."
"경사는 경사인데........ 참, 신 사장은 요?"
"서운하게도 사우디 황태자의 초청에는 담담하시고, 신 사장만 찾습니까?"
"하하하.........! 아무튼 초청은 반가우나 비싼 항공료 내버리고 거기까지 가서 한 끼 식사나 하고 오는 것은 영 내키지 않는 데요?"
"설마 일국의 황태자 되시는 분이 밥만 먹자고 부르겠습니까? 현지에 가 있는 신 사장의 전화 통화내용으로는 선물도 준비한 모양입니다."
"신 사장이 거기 있으면 그 편에 선물을 주든지 말든지 하면 되지, 이 비싼 얼굴은 왜 보잡니까?"
"내용은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쿠웨이트 황태자와 사우디 황태자 간에는 평소에도 서로 긴밀하게 소통을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금번 쿠웨이트 황태자가 사우디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마침 그 자리에서 그 날 신문에 대서특필된 우리 이야기가 화제로 오른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열정의 사나이들에게 작은 선물이나 하나 주자고 하다 보니 신 사장을 부르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신 사장은 사실을 사실 대로 이야기 한 모양입니다.
'모든 아이디어는 우리 회장님이 내신 거다. 나는 다만 열심히 보필만 했을 뿐이다' 그 이야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회장님의 신상이 언급되었고......... 시체 말로 소년 영웅의 활약에 장래가 기대된다면서 미리 얼굴이나 익히자고, 회장님을 초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허허, 참.........! 낯 뜨겁게 그 먼 나라까지 가서 내 이야기는 왜 해가지고.........?"
"그래도 기분 나쁜 것은 아니시죠? 회장님!"
"나쁠 리야 없지만 크게 기뻐할 일도 아니지요. 아무튼 세계 자원부국의 두 황태자씩이나 만나게 되었다니, 무엇을 좀 뜯어내긴 뜯어내야겠는데........ 뭐, 좀, 고민을 좀 해보아야겠군요."
"하하하.........! 이참에 많이 뜯어내시길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잠깐만요. 혹시 통역요원은 있나요. 아직 영어가 약해서요."
"영어 통역사야 회사 내에 당연히 있지요."
"내 얘기는 그게 아니고, 아랍어와 당연히 영어는 능통해야죠."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안 되면 광고를 내서라도 급히 구해놓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시고요."
"그런데 언제 쯤 방문을 한다고 타전을 할까요?"
"열흘 후 쯤 어떨까요?"
"네, 상대국에는 그렇게 통보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수고 많으시고요. 너무 회사 일에 연연하지 마시고, 아무리 젊다지만 각별히 건강도 신경 쓰도록 하세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다시 전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수고 좀 해주세요."
"네!"
사실 이번에 사우디 황태자 초청 건은 우리가 헬기와 LST 하역 등 열정적으로 근면하게 일한 면도 작용했지만, 그 근본 원인은 신 선우 사장의 큰 형인 신 은우 박사의 전화 한 통화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 박사 출신인 신 운우 씨가 하버드대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사람이 지금의 사우디 황태자인 파드였다.
당연히 둘은 절친한 관계를 맺었고, '내 동생 좀 잘 봐주라'는 전화 한 통화에 긍정적인 답변은 했지만, 잊고 있다가, 금번 쿠웨이트 황태자의 방문 시 '대원실업'의 기사가 화제에 올랐고, 그제야 부랴부랴 알아보고 챙긴 것이 금번의 결과였다. ---------------------============================ 작품 후기 ============================날씨가 많이 춥네요!
옷이라도 따뜻하게 챙겨입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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