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럭비공 -- >
1나는 올라온 김에 아파트 현장을 찾았다. 이제 막 지하 공사를 끝내고 일층 골조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보고 있자니 한심했다.
정 사장이 갑자기 주먹구구식으로 건설 회사를 차리더니 내가 보기에는 영 아니었다. 전생에서 나는 자원공학과 졸업 후, 광산에서 3년 동안 보안기사 1급을 가지고 감독 생활을 하다가, 광량이 다 되어 나온 후에는 이런 저런 직장을 많이 옮겨 다녔다.
최종적으로 내가 차린 단종 창호공사 업체가, IMF를 만나 원청 건설 회사들이 서로 연대보증을 선 관계로, 도미노처럼 쓰러져갔다. 그 바람에 거의 자살직전 까지 몰린 경험을 한 사람의 눈으로 봐도, 이건 아니 올시다였다.
하긴 지금은 현대를 비롯한 전 대한민국의 건설사들이 최초로 15층 고층 공사에 나서는 판이라, 아무 경험 축척이 없던 관계로 내 눈에 봐도 한마디로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묵묵히 현장을 돌아보고는 곧 현장사무실 이층의 사장실을 찾아들었다.
나의 출현에 비서인지 경리인지 아가씨 하나가 앉아 있다가 기겁을 하고 일어나 인사를 건넨다.
"어머, 회장님!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제가 곧 사장님 모시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리고는 밖으로 쏜 살 같이 튀어나간다. 내가 회장인 줄은 어디서 보고,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혼자 앉자있기가 무료해 신문을 뒤적이는데 펼쳐놓은 기사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은마 아파트…민간아파트 최대 규모 분양]이런 타이틀 기사 밑에 기사가 이어진다.
무주택 서민을 위해 민간건설업자가 주택자금을 융자받아 분양하는 아파트 규모가 지나치게 큰데다 분양가격도 2천만 원을 넘어 무주택 서민을 외면한 처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아파트 업계에 따르면 대원건설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분양면적으로 31평과 34평짜리 2천1백70가구의 은마아파트를 주택청약부금 가입자 우선순위로 분양할 계획인데, 분양가격이 모두 2천만 원을 넘어서고 있어, 내 집 마련을 위한 청약부금 가입자들에게는 혜택이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분노로 씩씩거리며 발행신문을 보니 매일경제신문이다. 내가 몰리브덴 광 화재사건을 이야기한 후로는 경제신문은 꼭 챙겨서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런 회사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주는 기사에 분노했고, 전체 15개 동 중에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는지 눈에 띄지도 않았던 정 사장이, 잠시 후 터덜터덜 사장실로 들어왔다. 그 뒤를 아가씨가 내 눈치를 슬슬 보며 들어온다.
나는 속으로 화를 삭이고 신문을 들이대며 침착하게 묻는다.
"이 신문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느낌이 어떻던가요?"
"당연히 기분이 안 좋죠."
"대책이 있습니까?"
"분양도 저조한테 이참에 언론은 물론 정관계, 법조계는 물론 대학교수, 심지어 유명한 연예인들까지 로비를 좀 하죠."
"어떻게 말입니까?"
"평당 45만 원에 딱 2동 300채만 공급하죠."
"그 전에 내가 묻죠? 원가로는 평당 단가가 얼마나 먹힙니까?"
"내가 알기로 40만 원 선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당 5만원씩 남기고 300채를 공급하겠다는 말입니까?"
"그러니까 로비라는 것 아닙니까? 이참에 물량도 좀 떨어내고 음....... 관리나 정치인은 그 중에서도 발언권이 센 사람을 위주로 선발하고, 언론의 힘은 막강하니 작은 신문사라도 빼놓지 말고, 최소 최고위급 간부 한 명씩은 끼워주는 것으로 갑니다. 그리고 연예인은 당연히 지명도를 가지고 따져야겠지요. 대학교수 역시 저명도와 함께 사회에 발언권이 있는 사람을 집중 선택해 싸게 분양해 줍시다. 그러면 절대 앞으로 이런 기사가 안 나오고 호의적인 기사가 나올 겁니다. 어떻습니까?"
"안 됩니다. 나중에 이를 알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도 그렇게 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럽니까? 차라리 TV광고를 열심히 때립시다. 그것도 황금 시간대에."
"그럼, 이참에 둘 다 병행하죠."
"왜 로비에 그렇게 목을 맵니까?"
"그래야 악성기사도 안 나오고, 앞으로의 사업도 승승장구 할 것 아닙니까?"
"아무튼 안 됩니다. TV광고나 열심히 합시다. 그러나 저러나, 저 60년 대 공법은 뭡니까?"
"뭘 말씀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반대에 눈을 다른 데 가있고, 받는 말은 퉁명스럽기 짝이 없다. 몽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말을 잇는다.
"골조 공사 말입니다."
"지금까지 잘 시공되고 있지 않습니까?"
"공부 좀 하세요. 공부를!"
"뭘, 말이오?"
"지금까지 철근 콘크리트 라멘구조가 국내 시공의 일반적인 공법이라면 무량판(FLAT-SLAB)과 조립식(PRE-FAB) 구조 등은 요새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공법입니다. 이를 도입해서 인원을 감축하세요. 그뿐 아니라 작업의 표준화를 기할 수 있고, 과학적 공정관리로 낭비 요소를 최소화 할 수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그 공법으로 바꾸세요."
여기서 말을 끊고 호흡을 고른 나의 말이 이어진다.
"그러자면 지금의 인원만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세계 인류 건설회사에서 오래 근무해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을, 급료는 얼마든지 줘도 좋으니, 초빙해 현장 소장으로 앉히세요. 여타 설계나 하청 업체들도 가급적 경험이 많은 곳을 선정해, 우리가 갖지 못한 노하우를 전수받는 기회로 생각하시고요. 알겠습니까?"
"알았수다!"
퉁명스럽게 답하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에 다가서서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만 뿜고 있는 정 사장이다. 아버지 같은 연배의 정 사장의 그런 모습을 보노라니 과히 기분이 안 좋다.
"지금까지 잘 해오셨는데, 그 점만 좀 보강하라는 것이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의 달래는 말에도 한동안 그런 자세로 서있던 정 사장이, 한참 후, 뚜벅뚜벅 걸어 현장으로 사라진다. * * *내가 저녁 때 청주에 내려가 집에 들어가니, 여동생이 다짜고짜 나를 붙들고 하는 말이, '오자마자 바로 가든으로 오라 했다'한다.
연유를 물으니 동생은 모른다 한다. 가든으로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가든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가든으로 향했다.
가든에 도착하니 지배인이 나를 불러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더니 묻는다.
"오늘 학교 안 갔어?"
"네."
"무슨 일로?"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잠시 볼일 좀 보느라고요."
"그 때문에 어머님이 학교에 불려가셨잖아."
"그래서 화가 나서 나를 부르신 거예요."
"그건 아니고, 선생님들이 잔뜩 몰려왔어. 교장, 교감 선생님도 오시고. 삼 학년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다 오신 모양이야."
이 이야기를 듣자 나는 머리에 어떻게 된 것인지 그림이 그려진다. 지난번에도 무단결근을 했는데 이번에도 또 빠지자, 벼르고 계셨던 담임선생님이 어머니를 호출하셔서, 그 연유를 물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사업을 하는 줄은 알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모르고 계신다. 그러니 어머니가 나의 결석 사유에 대해 제대로 답했을 리가 없을 것이다.
학생이 무턱 대고 사업차 서울 갔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하니, 그 자리에서 죄송한 마음에 아마 초대를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초대 장소가 청주의 유명한 명소이다 보니, 담임선생님은 동료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 하셨을 것이고, 한 입 두입 건너 결국 교장이나 교감선생님의 귀에까지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두 분 중에 그런 곳에 혼자만 가지 말고 우리도 초대할 수 없느냐고 물어보라 하셨을 것이고, 결국 담임선생님은 떠벌린 죄로 전화를 걸어 어머니께 허락을 득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번에는 동료 선생님들이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교장, 교감선생님만 입이고, 우리는 주둥이냐고 달려들었을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 담임선생님은 어렵게 어렵게 용기를 내어 다시 어머니께 전화를 하셨을 테고, 어머니는 호쾌하게 승낙하셨음에 틀림없다. 이런 초대 자리에 주인공이 없을 수 없으니, 나를 오는 대로 오라하신 것이 아마 모르긴 몰라도 확률적으로 90%로 이상은 되리라.
지배인의 이야기에 나는 비집어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거울을 보고 옷을 점검한 다음, 선생님들이 모여 계신 방으로 향한다. 귀빈실로 들어가자마자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선생님들!"
"어~! 태민이 아니냐? 잘 왔다. 잘 왔어."
"어디 갔다 인제 오냐? 어디 아픈 것은 아니고?"
담임선생님과 국어선생님의 연이은 질문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잠시 볼일이 있어서 서울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무슨 볼일?"
교장선생님이 나름 온화한 웃음으로 물으신다.
내가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망설이자 담임선생님이 호통을 치신다.
"교장선생님이 물으시잖아? 어른이 물으면 바로 이실직고를 해야지."
"조그만 사업을 하나 하는데, 문제가 생겨서 해결하고 오는 길입니다."
"무슨 사업?"
'거참, 집요하네.'
"광산하고, 건설, 오퍼상입니다."
"뭐? 그렇게나 많이! 상호가 어떻게 되는데?"
"대원광산, 대원실업, 대원건설, 대원알미늄, 그렇습니다."
"설마, 요새 텔레비에 나오는, 거 은마인가? 천마라는 거창한 아파트를 짓는다는 그 대원건설은 아니겠지?"
"그게, 맞습니다."
"뭐? 그럼, 그게 네 꺼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허허........!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나? 벌써 대기업 회장님 아니신가? 아니, 그런데........ 담임선생은 학생들을 어떻게 관리하길래, 제자가 그런 거대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전혀 문고리도 못 잡고 있었으니, 청맹과니가 따로 없군, 따로 없어! 야, 강 태민!"
"네!"
교장선생님의 고함에 내가 바로 씩씩하게 대답한다.
"너 이리 와봐! 손 한 번 잡아보자! 우리 청주고등학교 개교이래, 최초의 자네같은 대 인물이 나왔으니, 현 교장으로서 뿌듯하다 못해, 이 순간 가슴이 터질듯 하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선작, 코멘, 추천은 작가의 사기를 진작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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