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원실업 날개를 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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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실에 불을 지르세요."
"네?"
내 말을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내 대답이 하도 황당해서 되묻는다.
"영업이사(최인준) 보고, 조니워카라도 한 병 사들고 선장실로 가서 단판을 지으라 하세요."
"어떻게요?"
"선장실이 전부 불탔을 때 배상금이 얼마냐고 묻고, 선장실을 불태워도 되는지 물으라 하세요. 아니 내가 흥분하다보니 순서가 조금 뒤바뀌긴 했지만 내 말뜻은 알아듣겠지요?"
"네 당연히요. 선장실을 불태울 수 있게끔 잘 협상을 해서, 최소한의 배상금을 주라는 소리 아닙니까?"
역시 똑똑하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게 하역과 무슨 상관입니까?"
"쿠웨이트 항만법에 의하면, 항구에서 불이 난 선박은, 제일 먼저 하역하게끔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방화가 아닌 실화로 만들어 하루라도 빨리 하역해야죠."
"네? 그런 법도 있습니까?"
"나도 여기저기 알아보느라 시간 많이 빼앗겼습니다. 그렇지만 우선 확실한 담보 차원에서우리 대사관에 한 번 확인은 해보세요."
"여부가 있습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최 이사에게 전화를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역시 회장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전하기 위해서 끊겠습니다."
"네!"
눈에 안 봐도 신바람이 나서 다이얼을 돌리고 있는 신 사장의 모습이 훤하다. 그 이튿날.
내가 등교하기 전 아침 일찍 전화가 왔는데, 그런 법이 실제 있다고 해서, 최 이사에게 전화를 해 담판을 지으라 했더니, 선장실을 태우고 배상금조로 2만 불을 주기로 합의를 보았다는 것이다.
하루 체선료만 해도 수만 달러를 지불하는 판인데, 2만 달러면 정말 껌 값에 지나지 않아, 당장 실행하겠다는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선장실을 반쯤 태울 정도의 화재가 발생하자, 쿠웨이트 항만청에서 긴급 진화와 더불어 바로 하역을 지시해, 모든 물품을 순조롭게 하역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다.
이번 수출로 인해 한국 기업의 불모지인 중동에 단단한 수출 거점을 확보한 것은 물론 인근의 다른 나라까지 판로를 개척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또한 그 쪽 바이어의 신용을 획득한 것이 무엇보다 큰 소득이다. 이 수출이 성사됨으로서 '죽일 놈에서 졸지에 믿을 만한 친구'로 격상된 사람이 있다.
사연은 이렇다. 일차 오일 쇼크로 인해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오일 머니를 주체하지 못해, 이를 어디에 쓰면 유용할 것인가, 검토한 끝에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기로 한 쿠웨이트다.
이에 갑자기 건설 붐이 일어났고, 당연히 건설 자재는 품귀 현상을 빚었다.
그 와중에 현지 바이어로부터 이 오더를 수주해 발주한 사람이 있었다.
원 정남이라는 사람이 그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아주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한국에서 초대 한국이슬람교 사무총장을 지내다가 쿠웨이트로 건너가 체신청 공무원을 하고 있는 사람이 그였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죽일 놈'이 된 이유는, 이 무더기 오더를 대기업에서 비토 하는 바람에 여기저기 떠돈 세월이 근 일 년 가까이 된다. 그러다가 금번 대원기업에서 근 일 년 만에 자신들이 발주한 물량을 싣고 왔으니 졸지에 원정남은 기사회생 하게 된 것이다.
소송 준비를 하던 바이어로부터 구원을 받음은 물론 초과 물량까지 쏟아내니 희희낙락 금방 그 자리에서 소화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셋은 서로 인사를 나누자마자 금방 친숙해진다.
같은 한국인인 데다 서로가 원하는 것이 있는 까닭에서다. 최인준은 물론 신태웅과도 곧 죽이 맞은 원정남은 자신의 이력을 소개함은 물론 현지사정을 전한다.
'건설 붐으로 싣고만 오면 금방이라도 판매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이에 최인준과 신태용은 그 자리에서 상의하여 제안을 하게 된다.'이럴게 아니라 현지의 지사장을 맡아, 계속 오더를 수주해 자신들의 회사로 전하면 어떻겠느냐'고.
원정남이 잠시 생각하더니 즉각 수락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다음날 바로 인쇄를 해서 자신의 명함을 뿌리고 다니는데, 이들이 귀국하기도 전에 70만 달러요, 이들이 귀국해서, 초동 물량을 확보하는 동안에 추가로 도착한 오더가 또한 80만 달러로, 도합 150만 달러의 오더가 도착한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데서 터진다. 곧 은행이다.
다른 유명 기업들은 신용장만 들고 오면, 그 액수에 맞추어 현금으로 지급해 주면서도, 대원실업은 아직 초창기 기업이고 신용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로컬L/C마저 개설해주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이에 신 사장이 이런 애로점을 나에게 상의해왔지만 나는 일부러 '알아서 하라'하고 모른 체했다.
조금 어려움이 닥친다고 모두 내게 의존하면, 이들은 온실 속의 화초가 되어 근성이 없어질까 해서다. 그러나 최소한의 근거는 마련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내 주거래 은행(물론 아버지 명의다)인 기업은행에 전화를 걸어 로커L/C를 개설해주도록 했다. 나라고 전화 한 통화로 해결한 것은 아니다.
나의 이런 요구에 은행에서는 담보를 요구하기에, 내 돈은 물론 가족의 돈 모두를 빼겠다니 알아서 저희들이 기었다. 이로서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소인배와 같은 곳이 은행이다.
강자에게는 굽실거리면서까지 대출을 해주고, 약자에게는 한 없이 강하게 나오는 곳이 은행이란 곳의 생리다. 아무튼 대원실업의 오인방은 이 로컬을 들고 이번에는 각 생산업체를 찾아다니며 물량확보에 나선다. 그런데 이게 또 만만치 않다.
이유는 은행과 동일한 이유다. 한마디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로컬까지 제시 했는데도.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로컬L/C에 대해 잠시 설명을 하고 넘어가면 이렇다. 수출업자가 해외수입업자로부터 받은 신용장을 근거로 하여, 국내의 납품·하청업체에게 발행하는 신용장이다.
이런 신용장을 근거로 수출업자는 국내의 여러 하청업체로부터 납품을 받아 물건을 제조, 선적하게 된다. 참고로 선하증권 및 신용장을 은행에서 할인, 수출대금을 조기 회수할 수도 있다.
이 신용장 하나면 웬만한 기업에는 모두 납품하던 사람들이 로컬을 제시해도 믿을 수 없다고 물량을 외상으로 안 주니, 오인 방은 필요한 건축자재를 수급하기 위해 시멘트 회사는 물론 합판, 철근, 파이프 등 여타 업자들에게 선이 닿는 연줄이란 연줄은 다 동원하고, 매일 그 회사에 살다시피 하면서 사정을 하고, 심지어는 일찍 출근하여 그 회사의 마당까지 쓸어주는 정도가 되어서야, 하나 둘 자재를 공급해 주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다 무엇 때문인가?
당연히 자금부족이 그 원인이다.
애초에 30만 달러 물량에 초과로 싣고 간 물량까지 모두 소화되었고, 그 돈은 모두 현금화 되었다. 그런데 그 돈이 9천 톤을 소화할 수 있는 물량 밖에 되지 않아 이런 고생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돈을 내주면 바로 해결 될 문제였지만, 나는 이들을 혹독하게 키워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헤쳐 나갈 수 있게끔 하기 위해, 비정하게 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오일 쇼크의 직격탄을 맞아 소비가 위축되고 건설 붐이 주춤한 상태다. 남아도는 것이 시멘트요, 합판, 찰근 등의 건축자재인 데도 이렇게 수출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요는 자본부족이 그 원인이다. 그래서 사업을 하려면 실탄이 충분해야 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1만8천 톤급의 진양해운의 진양12호에 만재할 수 있었다.
여기서 이들은 자신들의 회사가 현지 바이어들에게 크게 보이기 위해서 작은 꾀를 부린다. 진양을 지우고 그 위에 '대원실업'이라는 상호를 크게 페인팅해 출항을 시킨 것이다.
이렇게 한시름 덜고 나자, 신 사장은 바로 나에게 전화해서 인력충원을 요구했다. '돈도 돈이지만 도대체가 사람이 부족해서 일을 꾸려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하는 바람에 탈진해, 모두 병원에 드러누울 정도라고 하소연을 한다. 해서 내가 묻는다.
"얼마나 필요한가요?"
"한 100명이면 그럭저럭 꾸려나가겠습니다."
"너무 많습니다. 한 번 뽑으면 함부로 줄이지 못하는 것이 인력 아닙니까? 딱 절반 50명만 뽑으세요."
"너무 하십니다. 회장님은 눈으로 안 보시니까,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지만, 이제는 지쳐서 정말 죽을 판입니다. 50명 갖고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럼, 70명만 뽑으세요."
"알았습니다. 80명만 뽑을 게요. 물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느니 돌아서서 바로 또 뽑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이렇게 하세요."
"네?"
"최 인준 씨와 신태용 씨를 각각 사우디와 이란의 지사장으로 파견하세요. 그 쪽 물량도 수주하도록."
"그럼 어림도 없습니다. 현지에 파견할 인원도 있어야 하니, 차제에 한 200명 뽑죠?"
"하하하.........! 이거 혹 떼려다 혹 붙였나? 그건 너무 많고 150명으로 합시다. 대신 유능한 간부사원들을 많이 섭외해서 두 사람의 뒷자리는 물론 앞으로 전개될 사업에 대비해주세요."
"고맙습니다. 회장님!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 마시고요. 저희들 동기나 선배들 중에는 고시 출신도 많고 아무튼 다양한 인재들이 많으니 그에 대해서는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다시 한 번 배려해주신 회장님께 감사드리고요. 그런데 자금은 어떻게 좀 더 안 될까요?"
"당분간은 그 상태로 운영하되 더 커지면 내 심도 있게 고려해보죠."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그럼, 이만 끊습니다."
"그럼, 수고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회장님!"
신바람이 나서 수화기를 내려놓는 신 사장의 모습이 역력하게 보인다. 지금도 작고 초라한 책상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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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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