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퍼상을 인수하다 -- >
1내가 서울에 도착하니 벌써 늦은 오후다.
몇 번 심호흡을 한 나는 천천히 공중전화로 걸어간다.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한참을 기다린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동전을 넣고 다이얼을 돌린다.
짧은 신호음이 끝나고 바로 안내원의 멘트가 나온다.
"율산 실업 좀 부탁드립니다."
"네 000국에 0000번입니다."
"감사합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나는 바로 기억한 전화번호를 돌린다.
뚜 뚜 뚜 하는 몇 번의 신호음이 끝나고 바로 전화를 받는다.
"율산의 강 동운입니다."
"수출상담 건 때문에 상담 좀 드리려고 하는데 사무실 위치가 어디입니까?"
"전화상으로 안 되겠습니까?"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만."
"네에. 그러시다면 남대문 앞 동진빌딩 7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몇 시쯤 도착 가능하시겠습니까?"
"한 시간 후에 뵙도록 하죠. 가능한 전 직원이 모여 있었으면 좋겠네요."
"큰 건입니까?"
"큰 건이라면 큰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따 뵙죠."
공중전화 박스를 나온 나는 건너편으로 건너가 시내버스를 탄다. 1시간 후.
동진빌딩 7층에 올라 '율산 실업'이라는 상호를 찾는데 몇 번 복도를 왔다 갔다 해도 영 상호가 눈이 띄지 않는다.
'자신들 사무실 위치를 잘못 알려 줄 리는 없고, 내가 잘못 찾아왔나?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번에는 아주 세밀히 찾는다. 끝내 겨우 찾기는 찾았다.
제일 구석진 끝 방의 여러 간판 중 아주 작은 간판이다. 이들의 현 실정을 말해주는 듯 초라하다.
똑, 똑 노크를 해도 대답이 없다. 그냥 무조건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긴 복도를 기준으로 많은 칸막이들이 쳐진 방들이 죽 보인다.
'이러니 노크를 해도 대답할 리가 없지.'
혼자 중얼거리며 각기 다른 방의 상호를 확인하는데, 복도 끄트머리에서 웬 사람의 머리가 하나 삐죽 나온다.
아무래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 같아 말을 건다.
"거기가 율산 입니까?"
"네. 혹시 아까 전화 준분이세요?"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어린데요. 장난은 아니죠?"
"뵙고 말씀드리지요."
'오나가나 나이 때문에 멸시받고 이래저래 개고생이네. 이럴 때는 하루 빨리 세월이 흘렀으면 좋겠다.'
"어서 들어오시죠."
"네. 아........!"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나는 입을 쩍 벌린 채 굳어진다.
"너무 초라하죠?"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달랑 책상 하나에 전화기 한 대가 전부다. 또 있긴 있다. 조그만 탁자를 중심으로 의자 여섯 개 비치된 게 정말 다다. 아무리 이 시대에 수출 지상주의를 등에 업고, 달랑 책상 하나에 전화기 한 대로 오퍼상들을 무수히 창업을 하지만, 막상 보니 이게 회사인가 싶다.
"혼자 근무하시나요?"
"아닙니다. 모두 다섯 명인데, 바빠서 모두 외근 중입니다."
"일단 앉으시죠.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차는 됐고요. 광물도 수출해봤습니까?"
"솔직히 광물은 처음입니다. 무슨 광종입니까?"
"흐흠........!"
나는 대꾸도 않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척 한다.
"양은 많습니까?"
차를 싫다고 하자, 책상 밑에서 박카스 한 병을 꺼내 권하며 내 눈치를 살피는 강 동운이다.
"사장이십니까?"
"네, 제가 부족하지만 사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럼, 결정권이 있겠네요."
"명색이 사장이지만, 근무하는 사람들이 전부, 대학동기에 친구다 보니 전원 합의체에 가깝습니다."
"그럼, 혼자 결정 못하신다는 말인가요?"
"내용에 따라서는 제 직권으로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몰리브덴 원석인데, 양은 음....... 현재 100톤 정도 모았지만, 월간으로는 대략 500톤 전후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거래하길 원하십니까?"
"전체 수출 물량에 커미션을 주는 것이죠."
"퍼센트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톤당 가격이 얼마나 합니까?"
"얼마 전의 시세로 몰리브덴 값이 kg 당 8.8달라니까, 톤당으로는 8,800달라 정도 되겠군요."
"그것이 월 500톤이면 사백사십만(4,400,000) 달라네요. 게다가 그것을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현 환율이 달러 당 480원 이니까, 이십일억 천이백만 원(2,112,000,000)이네요 우와........!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네요."
혼자 즉각, 즉각 암산을 하며 계산을 끝내더니 한동안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하던 강 동운이 급히 실태를 깨닫고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는다. 그런 그를 바라보고 웃으며 내가 한마디 한다.
"뭔가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제가 분명 몰리브덴 시세라고 했습니다. 원광하고는 틀리죠. 우리 원광의 평균 품위를 0.03%로 잡으면 정련했을 때 톤당 30kg이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그것을 월 오백 톤으로 환산하면 15,000kg이 나오는 것이고, 8.8달러에 환율 480을 곱하면 육천삼백삼십육만 원(63,360,000) 밖에 안 되는데, 이게 정련까지 끝난 상태의 값이니 원광 값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기서 오퍼상의 능력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정련비, 화물운송비 여타 경비와 마진을 제외한, 최대치로 원광 값을 받아주는 것. 어떻습니까? 얼마나 받아낼 수 있겠습니까?"
"원광 값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대충이야 있지만 교섭하기 나름이죠."
"맡겨만 주신다면 최대 값을 받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만, 일단은 금액이 큰 만큼 저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친구들을 전부 오라하겠습니다. 괜찮으시죠? 그런데 혹시 갖고 계신 명함이 있으면 한 장 주시죠. 이게 제 명함입니다 만."
금방 친구들을 불러 모으겠다고 했다가, 내 나이 어린 것에 생각이 미쳤는지, 의구심으로 명함을 요구하는 강 동운이다.
"여기 있습니다."
내 명함을 받아든 그가 뚫어지게 쳐다보며 소리 내어 읽는다.
"(주)한보광업, 부사장, 강 태민?"
"됐습니까?"
"아, 네~! 일단은 친구들을 부르도록 하죠."
"좋을 대로 하세요."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한 후 상체를 크게 뒤로 제쳐 기지개를 켠다. 얼마 후.
기라성 같은 멤버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하는데, 이들이야 말로 한때 김우중 씨와 함께 대한민국 청년들의 꿈이요, 샐러리맨들의 우상이었던 '율산 신화'를 이룩한 천재들이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경영학과 동기인 이들은 1974년 9월 자본금 100만원으로 율산실업을 창업해 79년 망하기 전까지 약 오년 동안 8,000명의 종업원에 14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재벌로 성장하지만, 정치적 외압과, 기존 재벌들의 비토로 인해 순식간에 공중분해 되고 만다. 물론 이들의 잘못도 있다.
승승장구하는데 취해 방만한 운영과 무역진흥자금 등 단기자본에 의존하는 근시안을 노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기존 경제인들과는 달리 관치금융에 의존하지 않았고, 열정과 아이디어로 승부한 점은 지금도 높이 살만하다. 나는 그런 이들이 한참 춥고 목마를 때 이들의 곁에 나타난 것이다.
--------------------============================ 작품 후기 ============================선작수도 조회수도 팍팍 뛰어서 기분이 좋은데, 댓글이 너무........ 저 지난회는 제 스스로 글을 달아 0을 벗어났습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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