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10화 (10/135)

< -- 광산을 운영하다 -- >

5그날 오후 4시, 사무실 업무가 끝나자 나는 당직자를 제외한 전 간부들과 함께 약속대로 회식을 실시하기 위해 면사무소 소재지에 위치한 한 삼겹살집으로 이동을 했다. 식탁을 다닥다닥 이어 만든 자리의 정 중앙에는 사장 정 태수 씨가 자리를 하고 맞은편에는 내가 자리했다. 그런데 내 좌우에는 경리과장 강철민과 웬 어린 아가씨가 앉았는데 알고 보니 올해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말단 경리 아가씨였다.

철민이 형이야 이해가 가도 경리 아가씨를 바로 내 옆자리에 배치한 것은 이해가 안가서 앞자리의 정 사장을 쳐다보고 무언으로 그 의도를 물으니 금방 내 의도를 파악하고 답변을 하는 그다.

"젊은 사람끼리 붙어 앉으면 대화도 통하고 분위기가 좋을 것 같아서, 내가 그렇게 하도록 사전에 지시를 해놓았습니다."

그의 말에 옆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으니 대놓고 말하기가 뭣해서 참았지만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경리 아가씨도 못난 모습은 아니고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내가 사귀는 정희에 비하면 어림없었다. 그래도 사장이 배려해서 행한 행위니 냄새나는 수놈들보다는 나으려니 하고 즐겁게 회식 자리에 임했다. 곧 삼겹살이 나오자마자 달구어진 불판에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는 소리를 낸다.

모두 배고픈 판이라 그 냄새와 구어 지는 모습에 취해 침들을 삼키며 삼겹살을 뒤집어 놓는데, 어느 사람은 채 익지도 않은 고기를 입에 넣는 사람도 있다. 배는 고픈데 고기는 미처 익지 않으니 젓가락으로 꼭 누르고 있지 않으면, 어느 귀신이 채가는 지도 모르게 금방 고기가 없어지는 풍경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지만, 나 역시 체면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행동했을 것 같아 참고 익기를 기다린다.

이때 정 사장이 장내를 둘러보고 대충 고기도 익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되어 졌는지 건배제의를 하는데, 조금이라도 잔을 남기는 사람은 벌주로 석 잔을 받아야 한다는 경고를 포함해서다. 나는 아직 고등학생 신분이고 해서 대략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곁에 앉은 경리가 내 어깨에 매달려 말을 하는데 뭔가 뭉클한 것이 뒷등을 자극한다.

"아잉! 부사장님도 사장님이 건배 제의를 하는데 술잔을 드셔야지요. 우리끼리 회식 할 때는 요, 다 먹고 나서 술잔을 머리위에서 탁탁 털어야하니 알아서 하세요."

그녀가 무안하지 않도록 슬쩍 밀어 자세를 바르게 하게 한 나는,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오늘은 주계를 범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소주잔을 치켜든다.

"회사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정 사장의 선창에 모두 '위하여'를 후장하며 곧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잔 넘기는 소리들이 요란하다. 이후 모두 잔을 비운 후에는 머리에다 소주잔을 터느라 야단법석이다. 나도 같이 따라서 모양을 흉내 내니 모두 좋아라하고 난리도 아니다. 이때 정 사장이 다시 분위기를 진정시키더니 한 마디 한다.

"내가 오늘 부사장이 제출한 리포터를 보고 한마디로 깜짝 놀랐습니다. 내 추후에 공개할 테니 한 번들 읽어보시면 부사장님의 놀라운 식견에 탄복할 것입니다.

해서 말입니다만 여러분들도 나이 어린 부사장님께, 뒤지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할 것이며........ 에....... 또, 오늘 회식의 주최자이자, 주인공이신 부사장님의 말씀을 한 마디 안 들어볼 수가 없죠.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와아아........!

"옳소! 옳소!"

무슨 공산당 집회도 아니고 회식 자리에서 '옳소' 소리가 연방 쏟아지니, 나는 곧 무안함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즉석연설을 한다.

"회식 자리인 이상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여러분들은 직분에 충실할 것이며, 회식 자리에서는 열심히 먹고, 마십시다. 이상!"

"부사장님, 멋쟁이!"

별 희한한 소리가 다 들리며 부지런히 잔들을 입에 쏟아 붓는 직원들이다. 나 또한 경리 박 양이 따라 놓은 술을 마시고는 주변을 둘러보니 경리과장 철민이 형의 빈 잔에 잔을 채워준다.

"오늘 부사장님의 인기가 대단한데........!"

누가 들을세라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이는 강철민이다.

"열심히 하세요. 그러면 좋은 끝이 있을 거예요."

"나야 항상 열심히 하지."

그러고 있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나. 빙그레 웃으며 다만 잔을 마주칠 뿐이다. 이렇게 술을 권하고 받다보니 금방 술이 오르는 느낌이 온다.

이생에 와서 처음 이렇게 많이 마셔보는 술이라 아무래도 더한 것 같다. 그렇게 장장 두 시간 동안 회식이 진행되니 벌써 탁자에 엎어져 자는 사람도 나온다. 정 사장은 얼굴은 붉지만 아직 쌩쌩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나는 너무 많이 마신 술로 인해 정신이 오락가락할 판이다.

간신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서, 정 사장에게 이제 회식을 그만 둘 것을 건의한다. 그도 장내를 한 번 둘러보고는 내 말이 타당한지 바로 회식을 마감한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철민이 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이 거주하는 여인숙으로 안내를 한다. 이때는 모두 파장이라 대부분은 떠나고 일부는 이차까지 갔으며 혹자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회사 내에서도 최고위 간부급에 속하는 자들이다. 나는 그들도 어서 들어가라고 권유하여 모두 돌려보내고, 철민이 형과 함께 그의 숙소로 향한다.

이 때 정 사장이 화장실에서 나온다. 술기운이 도는 붉은 얼굴로 내 어깨를 툭 치며 정 사장이 한마디 한다.

"오늘 너무 과용한 것 아닌가?"

"이 정도야 쓸 수 있지요, 뭐."

"다음에는 내가 사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시죠. 그런데 숙소는.........?"

"강 과장의 옆방에 숙식하고 있네."

"아무래도 이사를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의 학업문제도 있으니 곤란하고......... 음......... 광산이 하루라도 빨리 펑펑 돌아가야, 사택이라도 꿈 꿀 텐데........?"

"그렇게 하셔야죠. 아무튼 객지에서 너무 고생이 많습니다."

"나야 내 사업이니 고생이랄 것도 없지만, 강 과장을 비롯한 외지 출신들이 고생이지,"

대화를 나누다보니 좁은 시골구석의 소재지라 금방 여인숙에 도착한다. 강 과장의 재빠른 조치로 나 또한 빈 방을 하나 배정받아 손발만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드는데 갑자기 작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귀찮았지만 누가 무슨 용건인지 몰라 문을 따주니 머리부터 쏙 들어오는데, 뜻밖에도 집에 간 줄 알았던 경리 아가씨 박 양이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오?"

나의 다그침에 우물쭈물하던 그녀가 간신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잘 먹었다는 인사나 드리고 가려고........."

"그것은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 이만 들어가 보세요. 식구들이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네"

붉어진 얼굴로 간신히 대답하고 방안을 한번 휘둘러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많은 미련이 남아있다.

"조심해 가요."

나는 인사를 하고 문을 쾅 닫는다. 누가 보냈는지, 자발적으로 왔는지 몰라도, 이것은 아니지 싶다.

* * *새벽 일찍 눈을 뜬 나는 쓰린 속을 부여잡고 양치와 세면을 하고는 옆방에 기거하고 있는 강 과장을 불러낸다. 자다가 금방 일어나 눈곱을 떼는 그를 다그쳐 해장국 한 그릇을 억지로 먹인 후, 그는 회사로,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평해로 나간다.

버스 정류장에서 경제신문을 한 장 산 나는 바로 대구 행 첫차에 오른다. 이곳에서는 바로 서울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교통이 편리한 대구로 나가는 길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스팀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추운 버스에 자리를 잡고 신문을 펼쳐든다.

우선 대충 큰 타이틀만 읽어보는데 내 눈에 번쩍 뜨이는 기사가 있다. [세계 최대의 몰리브덴 광산 대 화재]라는 타이틀 밑에 '몰리브덴 값 천정부지'라는 소제목의 기사를 나는 열심히 탐독한다.

기사를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얼마 전에 발생한 미국 소재 세계 최대 몰리브덴 광의 대화제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몰리브덴 원광 값이 치솟고 있다는 기사와 함께, 향후 세계 절반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이 광산이 생산을 재개하기 까지는 값은 더 오를 것이라는 분석기사다. 또한 이 회사의 생산 재개가 일 년이 될지 이년이 될지 불투명한 상태이므로, 당분간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비싼 값에 수입을 할 수밖에 없다는 탄식조의 기사가, 내 심장을 벌렁벌렁하게 한다.

우리가 몰리브덴 광을 개발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서운함도 뒷전이다.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으로 진정을 한 나는 다시 신문을 들어 오늘의 환율 시세를 살펴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만다.

"됐다. 됐어!"

한 달 전까지만 해도 1달러 당 400원이던 환율이 480원으로 급격히 절하되어 있었다. 당시는 변동환율제가 아닌 고정환율제로 정부에서 임의로 환율을 조절했다.

'이래서 정 사장이 일확천금을 벌었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난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고 즐거운 상상을 이어간다.

'전체 수익의 40%는 내 차지이니, 이제는 어디 가서라도 졸부 소리는 듣겠군!

음 하하하...........!'

나는 괜히 미친놈처럼 실실 거리며, 김이 서려있는 창에.'세계 경제의 지배자'라고 써놓고는 혼자 흐뭇해한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