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광산을 운영하다 -- >
정 씨와 다시 마주 앉은 나는 밀고 당기는 지루한 협상을 시작했다. 결국 점심도 꼬박 굶고 맺은 결론은 자본 참여도 6:4, 이익금 배분도 6;4로 하기로 하고 결론을 맺었다.
정 씨가 6이고 내가 4가 되었다, 광산을 경영하려면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므로 그가 900만 원을 더 출자하고 나는 550만 원을 더 투자해 지상권과 광업권의 매수가격까지 총 2,000만 원으로 광산 개발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그는 내가 많이 양보한 것을 알고 내 제안대로 철민이 형을 경리과장으로 임명하기로 하는 한편 나를 부사장에 임명하는 배려도 보였다.
물론 자신이 사장으로 광산 운영에 관한 전권을 쥐었다. 협상이 끝나자 우리는 이를 공증하고 다음 작업을 논의하였다.
다음 작업은 당연한 수순으로 갱내에 차있는 물을 빼내는 한편 그간 탐사 시추를 하여 매장량을 확인하기로 했다. 탐사 시추는 전 비용의 30%만 우리가 대면 광업진흥공사에서 알아서 해주므로 양수 작업과 병행하여 빠른 시일 내에 실시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로 했다.
모든 일이든지 빠른 일처리를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기름칠을 해야 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정씨가 알아서 하기로 했다. 재계 서열 14위까지 한보 그룹을 키우는 동안 그의 로비력은 정평이 나있었으므로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대충 모든 일이 결정되자 나는 명문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고 정 씨는 현장 소장을 구하는 등 활기차게 광산개발을 추진해 나갔다. 열공을 하는 한편 나는 틈틈이 집안일에도 관여하였다.
내가 광산 개발의 단초를 마련하고 나자 어머니께서도 몇 군데 부지를 보시고 나서 어느 곳이 가든 자리로 적합할지 상의해 오셨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현장을 방문하여 부지와 가격을 알아보고 그중에서 제일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곳을 선정하여 교섭에 임하게 하였다.
그 결과 충주로 통하는 도로변의 밭을 평당 이천오백 원에 10,000평을 구입하였다. 그러나 용도변경 등을 거치고 나니 평당 3,000원 꼴이 먹혔다.
그러고 나니 나에게 1,000만원을 떼어주고, 집을 짓고, 남은 돈이 대략 7,000만 원 정도 되었다.
그 돈 중 다시 이천만 원을 할애하여 아래 위 합하여 용적율 오백 평의 가든을 신축하는 외에 주변에 팔각정 정자 모양의 룸 10개를 지어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이층으로 된 본관 건물 중, 이층은 룸 형태로 꾸며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하였고, 일층은 일반 손님을 맞기 위해 칸막이만 설치한 구조로 만들기로 하였다. 그리고 멋있는 조경수는 물론 바위, 분수, 작은 연못과 폭포 등을 곳곳에 꾸며 아취를 더했다.
게다가 바닥은 하얀 차돌을 깔아 시각적 효과와 함께 비오는 날에도 질퍽거리지 않게 하고, 입구에서부터 곳곳에는 크리스마스 때나 설치하는 꼬마전구를 무수하게 설치하여 그 화려함을 더하게 했다.
그러고도 칠천 평이 고스란히 남아 그곳에는 결혼예식장을 지하 일층에 지상 삼층으로 용적율 칠백오십 평 규모로 신축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주차장 부지로 사용하기로 했다.
지하 전체와 삼층 일부는 식당으로 꾸며 예식 손님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일층 이층은 각각 4개, 총 8개의 예식실과 부대시설로 채우기로 했다.
예식장 신축에도 이천만원이 들어가 이제 남은 돈이 삼천 만원 밖에 없었다. 그 중 나는 또 천만 원을 들여 지금의 사직동 안기부 건물 뒤편 오르막이 끝나는 곳에 산을 포함한 밭 이천 평을 사들이도록 아버지께 조언했다.
장차 이곳은 사직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지로 시세 차익도 만만치 않거니와, 이곳에 고물상을 차려 현실의 이익도 창출하도록 했다. 아버지의 적성에는 고물상 등이 맞으므로 이를 경영케 하고 어머니가 가든과 예식장을 총괄하도록 했다.
당시 국제 자원값이 하루가 다르게 뛰는 편이어서 특히 고철 값이 폭등해 많은 돈을 벌 수 있음에 착안한 내 계획에, 아버지도 흔쾌히 동의하시어 운영자금 포함하여 천오백만원을 투자하였다.
그러고 나니 집안에는 이제 천오백만 원의 여유 돈 밖에 없었다. 이 돈은 잠시 비상금으로 간직하기로 했다.
그러던 일요일을 맞은 어느 날.
하루는 정희가 나를 만나자고 해서 당시 유행하던 튀김집에서 둘이 마주 앉았다.
당시 튀김집에서는 튀김과 함께 빈 맥주병에 막걸리를 담아 파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고등학생들 특히 남자들이 주로 이를 애용하였다. 전생에서 나 또한 즐겼지만 현생에서 마주 앉은 둘은 무미건조(?) 하게도 튀김과 사이다를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왜?"
왜 만나잤느냐를 한 마디로 줄여서 멋대가리 없게 묻는 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근사근한 성격이 못되었던 나의 질문에 정희가 시무룩하게 대답한다.
"그냥 보고 싶어서."
"요새도 이민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아무래도 아버지가 하시는 장사가 부진하다 보니까."
"그것 참, 큰일이네."
둘 다 말을 하고는 수심 깊은 얼굴로 튀김을 한 조각 떼어먹으나 맛을 모르겠다. 침묵이 갑갑하여 분위기 전환을 위해 내가 묻는다.
"요즘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는 거야?"
"열심히 해서 뭘 하게?"
"내가 책임지고 대학에 보내준 댔잖아. 생각 안 해봤어?"
"신세 지고 싶지 않아."
"그게 왜 신세야?"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니 주위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린다. 그것이 창피한지 정희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할 말을 계속한다.
"같이 대학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훗날......... 음........ 알잖아?"
"좀 더 생각해 볼 게."
나의 열변에도 그녀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녀의 불성실한 대답에 내 가슴이 답답해온다.
나는 아름다운 얼굴에 조신하게 조금씩 튀김을 먹고 있는 그녀를 보며 방법을 달리할 생각을 하고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 그런 내 머리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희심의 미소를 지은 내가 묻는다.
"오빠는 요즘도 청춘사업에 바쁘지?"
"알면서........?"
함초롬히 웃는 그녀가 그녀의 오빠만큼이나 밉다. 생긴 것은 귀공자 형으로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잘 생겨가지고는, 세 달이 멀다하고 여자가 바뀌고, 기타나 치며 백수생활 하는 주제에 돈은 왜 이리 헤픈지, 풍문을 들어보면 부모 속을 꽤 많이 썩이는듯하다.
"내게 한 가지 아이템이 있는데 오빠가 할라나 모르겠다."
"뭔데?"
공부하라는 말에는 별로더니, 돈 얘기가 나오자 아주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그녀다.
"곧 청주에도 민속주점이 유행을 할 건데, 내가 알아서 전부 차려 줄 테니, 월급쟁이 사장은 어떨까?"
"그런 거라면 오빠 적성에도 맞을 걸?"
요는 오빠를 통해 간접적으로 정희네 집에 경비를 지원함으로서 가족들로부터 이민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책에 그녀가 적극 반응하니 그런대로 괜찮다.
"일단 오빠에게 의사를 타진해봐."
"얼마를 줄 건데?"
"한 이십만 원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게나 많이?"
당시 대졸자의 평균 임금이 오만 원 시대에 4배를 더 주니 많기는 하다.
"그 정도는 주어야 내 체면이 서지."
"장사가 그 정도로 잘 될까?"
"그것은 나만 믿어. 아주 바쁘다고 중간에 그만 둔다는 소리나 안 했으면 좋겠어."
"오빠가 좀 바람둥이래도 그 정도는 아니야."
"알았어. 일단 오빠의 의사가 중요하니까. 오빠의 의중부터 먼저 알아봐. 그래서 하겠다면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바로 하나 차려줄 테니까."
"고마워!"
쪽!
많은 이목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그 자리에서 내 볼에 키스를 하는 정희다. 살짝 붉어진 내가 무안하여 계산을 하며 말한다.
"그만 나가자."
"아직 남았는데, 남기면 아깝잖아. 우리 다 먹고 나가자."
정희의 말에 알뜰살림꾼이 될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그녀가 먹는 것을 지켜보다가, 아무래도 너무 늦는 것 같아 몇 조각 거드니 금방 접시가 비워졌다.
그곳을 나온 둘은 한동안 무심천 제방 변을 거닐며 데이트를 즐기다가 오후 늦게 헤어졌다. 그러고 나서 이틀이 지나지 않아 정희로부터 바로 연락이 왔다.
결론은 오빠가 열심히 해보겠단다. 결국 나는 어머니께 간청하여 다시 천만 원을 받아 민속주점을 차렸다.
시내 요지에서는 조금 벗어난 단층 건물이지만 그래도 통행량이 많은 곳이기에 목으로는 괜찮아 보이는 곳을, 보증금 오백만 원에 월 삼십 만원을 주기로 하고 얻었다.
그리고 곧 인테리어 공사에 착수했다. 외부는 청사 홍사등롱을 내걸고, 내부는 목재를 이용하여 조선 시대의 분위기가 나도록 꾸미는 공사였다.
물론 소품도 옛날 바구니나 짚으로 만든 짚신, 삼태기 등을 만들어 걸고, 나무로 깎은 상평통보 등도 비치하는 등 정성을 들였다. 술은 전통 막걸리에 안주는 녹두 빈대떡 등 고유의 음식을 주안으로 삼았다.
고풍스런 분위기와 고전스타일의 메뉴로 인해 개업을 하자마자 입소문을 타고 소문이 번져 채 한 달이 되기도 전에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앉을 공간이 없어 대기 손님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약속대로 정희의 오빠 윤 정성에게 월 이십만 원을 월급으로 지급했다.
당연히 나머지 수입은 내 차지 아니 어머니의 수중으로 흘러들어갔다. 그 중 일부는 나의 용돈으로 들어오기도 했지만 주로 어머니의 차지였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흘러 차례로 가든과 예식장이 문을 열고 성황리에 영업을 시작했고, 울진의 광산에서도 때마침 평균 품위 0.3%에 830만 톤의 매장량이 확인되어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작품 후기 ============================
오늘 아침에는 연참이라고 해보았더니, 조회수는 많이 늘었는데, 추천수가 고작 5개라 쬐께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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