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자돈을 마련하다 -- >
세월은 거침없이 흘러 어느덧 또 한해가 가고 1974년이 되었다. 1월도 중순쯤인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나를 불러 상의를 하셨다.
"요즘 어느 작자가 권리금을 많이 주겠다고 달라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얼마를 준다는데?"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삼천 정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
"요즘 한 달 수입이 얼마나 돼?"
"일이층 다 합치면 저 지난 달은 천만 원은 됐는데, 지난달은 구백 조금 넘고, 이번 달은 아마 그보다도 좀 빠질 것 같다."
"이제 하향곡선이야. 팔긴 팔아야겠는데........ 한 육천 달래보지?"
"얘는 누가 그렇게 많이 준다니?"
"깎아서 5천. 그 이하는 절대 안 된다고 우겨. 그래도 아마 살 거야."
"호호호.........! 좋다. 나도 오천 이하로는 안 팔아. 한 달에 어디 천만 원 남는 장사가 쉬운 줄 아니, 전부 둘러봐도 어림도 없다. 가만히 붙들고 있으면 절로 돈이 들어오는데."
"오천 준다면 무조건 팔아야 돼."
"아까운데........."
금방 또 마음이 변해 짭짤한 수입과 목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시는 어머니시다.
"이제부터는 계속 매상이 떨어질 거야.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는 밑진다고, 너무 미련두지 말고 팔면, 내가 다음 사업으로 멋진 것을 추천할 게."
"그런 게 또 있어?"
금방 희희낙락하는 어머니께 나는 오금을 박는 한 마디를 한다.
"대신.........!"
"대신 뭐?"
궁금한 듯 금방 물어오는 어머니시다.
"나한테 천만 원만 줘."
"그렇게 큰돈을 뭐 하게?"
"나름대로 사업 좀 해보게."
"사업은 우리에게 맡기고 너는 공부나 열심히 해."
"내가 직접 하는 것은 아니고 남에게 맡길 거지만, 이 사업에 대해서만은 절대 아버지 어머니가 하실 수 있는 사업이 아니야."
"뭔 사업인데 그렇게 거창하게 나오니?"
"하여튼 날리는 셈치고 천만 원만 줘봐. 그러면 내가 성공하고 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줄 테니까."
"아버지 알면 불호령이 내릴 텐데........?"
"그 부분은 엄마가 알아서 잘 하시고."
"정희 하고는 어쩔 셈이니?"
"장차 결혼 해야지."
"뭐? 나는 반대다."
펄쩍 뛰시는 어머니시다.
"이유가 뭔데?"
"걔는 실업계라 고등학교만 마치면 그만일 테고........"
"인물은 배우 뺨치도록 예뻐, 마음씨 착해, 살림 잘 하겠다........"
"살림은 해보지도 않은 살림을........?"
나의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칭찬에 어머니가 태클을 거신다.
"척 하면 삼척이고, 안 봐도 평소 행동하는 것만 봐도 알잖아."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고 언제까지 해주면 되니?"
"권리금 받거든. 아버지 한 테는 살짝 권리금에서 천을 빼라고."
"네 아버지도 알게 될 걸?"
"그 때는 줬다고 솔직히 말씀 하시던지. 나 아니었으면 아직도 끙끙 앓아가며 그 힘든 일 하고 계실 텐데, 그거 면하게 한 공적이라고 생각하시고........."
"에라, 이놈아! 공치사는........!"
"하하하.........!"
"호호호.........!"
"그런데 요즈음도 할아버지는 계속 약주 드시고 계시지?"
"하루가 멀다고 잡숫지."
"어머니가 주선해서 건강진단 좀 받게 해드리지."
"왜? 건강하신 것 같은데?"
"에이, 연세가 드시면 아무도 장담 못 하는 게 건강이야.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그래, 알았다. 네가 우리 집안의 장남은 장남이로구나, 내가 미처 신경 못 쓰는 것 까지는 챙기는 걸 보니 아주 기특해."
"내가 좀 잘 낫지?"
"누가 낳아 주었는데?"
"결론이 그렇게 되나? 하하하........!"
"호호호.........!"
전생에서 고삼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관계로 나는 특별히 어머님께 말씀드려 할아버지가 종합건강진단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 *
그렇게 일주일이 흐른 후.
어머니는 나를 불러 권리금 5천을 받고 팔았노라고 말씀 하시면서, 이제 백수가 되었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상의를 하셨다.
나는 그보다는 돈 천만 원을 달래 먼저 챙기고(100만 원 권 수표로 10장), '가든을 해보시는 게 어떠냐고?' 운을 떼었다.
"가든?"
"에이, 시시하게 일반 가든이 아니고 아주 폼 나게 최 일류로 하는 거지."
"그럼 돈이 많이 들잖아?"
"많이 벌었잖아?"
"날리면 어쩌려고?"
"안 날려. 이것도 돈 아주 많이 벌 거야. 대신!"
"대신?"
나의 화술에 침을 꼴깍 삼키며 무릎을 당겨 앉으시는 어머니시다. 나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와 픽 웃으며 말한다.
"이번처럼 일이년 정도 지나 매출이 줄기 시작하면 또 권리금 받고 넘기는 거야."
"그런데, 우리한테 산 사람은 손해는 안 볼까?"
"남은 계약기간 하고 해서, 대충 계산 안 해보셨어? 내 계산에는 그래도 제법 남을 걸."
"그러면 다행이고. 그러나 저러나 어디다 어떻게 해야 되는 데?"
"이번 건도 내가 장소에서부터 인테리어까지 전부 알려줄 테니 내 말대로 해. 그러면 반드시 성공할 테니까."
"그런데 너 아무래도 이상하다. 신기라도 있니?"
평소부터 품으셨던 의문을 쏟아내는 어머니의 눈은 별 희한한 놈 다 보았다는 표정이시다.
"내가 엄마 걱정하실까봐 이야기 안 했는데, 중3 막 올라가서 연탄가스를 마신일이 있어."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런데 내가 왜 몰랐을까?"
"내가 일부러 얘기 안했지 식구들 걱정할까봐."
"하긴, 효자에 난 놈은 난놈이야. 아무튼 그래서?"
"그때부터 희미하게나마 미래가 보이는 거야."
"정말?"
"그럼, 내가 어떻게 알고 시식코너며 가든을 추천해. 참 할아버지 건강 검진은 받으셨어?"
"그래. 정말 네 말 듣기를 잘했더라. 아니면 혈관이 막혀서 풍이 올 뻔했단다. 정말 아버님의 병도 보인 거냐?"
"대충은........."
대충 얼버무린 나는 더 이상의 대화를 기피하고 어머니를 반강제로 쫓다시피 해서 내보내고 앞으로의 사업 구상을 해본다.
어머니가 할 가든은 이미 내 머리 속에 부지의 위치에서부터 인테리어 설비까지의 그림이 모두 입력되어 있지만, 내가 단독으로 벌이려는 사업은 불투명하기에 그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