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3화 (3/135)

< -- 종자돈을 마련하다 -- >

기쁜 소식은 또 있었다.

그 해가 다 가기 전에 내 예측대로 우리가 사들인 땅을 사겠다는 매입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가격을 올리기 싫어서라도 저들의 용도를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분명 그 땅에 아파트를 지을 계획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쉽게 응하지 말고 어느 정도는 튕기라고 조언했다.

결국 그들은 평당 칠천 원에 우리 땅 삼천 평을 전량 매입했다. 그런데 우리 보다 한 술 더 뜨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옆에 위치한 밭주인이 그들이다.

우리가 쉽게 땅을 팔려고 하지 않자 그 밭주인에게도 매입 의사를 타진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들은 평당 일만 원을 달라고 해서 아파트 건설업자들은 우리에게 더욱 매달 릴 수밖에 없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아무튼 우리 집안은 내 말대로 진행해서 채 일 년도 안 지난 기간에 양도세를 내고도 약 일천만원의 시세 차익을 올렸다.

당시 기름진 평야의 논이 평당 천원이 안 되었을 때이니 일천만원이면 기름진 평야의 논 일만 평 즉 50마지기를 살 수 있는 큰돈이었기에 부모님의 기쁨은 대단했다.

덕분에 집안에서 내 위치는 더욱 굳건해진데다 충북 제일의 명문고에까지 합격했으니 내 발언권이 더욱 강력해 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어느덧 한 해가 저물고 73년이 되었다.

방학을 이용해 나는 대전을 다녀왔다.

그곳 즉 터미널 부근에는 내가 예측한대로 '자양궁'이라는 시식코너가 성업 중이었다. 시식코너가 무엇을 하는 곳이냐 하면 여러 가지 음식을 한 장소에서 판매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쫄면에서부터 중식 한식 양식까지 다양한 음식을 한 장소에서 제공하는 것이 서울에서 대유행을 하더니 대전까지 내려온 것이다. 미리 답사를 한 나는 어느 날 어머니를 모시고 자양궁을 찾았다.

때는 저녁 무렵이라 더욱 사람들이 몰려들어 줄을 서서 기다려할 정도로 성업 중인 모습에 어머니는 그 장면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계셨다. 그런 어머니의 옆구리를 툭 치며 내가 말한다.

"청주에도 하나 차리면 잘 될 것 같지 않아?"

"얘는 여기 건물 시세가 얼마 인데..........?"

"건물을 뭐 하러 사, 한 이년 정도 세를 얻어 장사하고 빠져나오면 그만이지?"

"그래도 일이년 하고 나오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하하하.........!"

나의 큰 웃음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몰리나 나는 개의치 않고 어머니에게 하던 말을 계속한다.

"다 한 때 유행이라고. 잘 될 때 너무 미련 갖지 말고 최고 시점에서 매출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면 미련 없이 남에게 권리금 많이 받고 넘기는 게 최고야!"

"너 열일곱 살 맞아?"

너무나 어른스러운 말에 어머니는 뻔히 알면서도 내 나이를 의심한다.

"내 말이 틀려?"

"아버지도 한 번 모시고 와야겠다."

"청주에서의 자리는 내가 물색해 볼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한 그릇 먹고 가야지?"

"나는 쫄면."

"밥을 먹지 그러니?"

"나는 그게 맛있어, 엄마!"

"호호호.........! 그럼, 네 말대로 주문하자."

이제 갓 사십이 되신 어머니는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으나 쉽게 우리 차지까지 자리가 오지 않아 계속 주변을 살펴야 했다. 아버지까지 한 번 다녀오셔서 찬성하시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는 옛날에도 창업하여 번성했던 자리인 청주에서도 제일 번화가에 위치한 청주극장 옆 큰 건물을 추천하고 그곳을 적극 교섭하라고 조언했다.

내가 복덕방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마침 그 건물에 입주해 장사하던 사람들의 계약기간이 만료된 데다가 벌여 놓은 장사도 시원치 않아서 이주할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터라 쉽게 건물을 임차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더욱 안성맞춤이었다.

내 예상대로 쉽게 그 건물을 이년 계약으로 임차했다. 아래 위 일이층을 다 쓰는 조건으로 보증금 육백만 원에 월 임대료가 각각 오십만 원씩 일백만원이었다.

싸다고?

당시 평균 결혼적령기(26세)의 고졸 평균 월급이 월 3만원, 대졸이 5만원 정도였고, 금 한 돈에 5,000원을 밑돌았다. 그리고 대략 1인당 GNP는 채 500달러가 못 되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제법 쓸만한 주택이 500 ~ 1,000만원이었고, 전세 값은 300~ 500만원 사이였던 점을 감안하면 결코 싼 금액이 아니다.

참고로 당시 고졸 이상의 학력은 전체 남성의 30% 정도였다. 그러니 여자들은 고등학교만 나와도 대접을 받는 시절이었다.

각설하고 이렇게 건물을 임차하는데 많은 돈을 투자하다보니 일이층 전체를 우리 가족이 운영하기에는 벅찼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제안대로 이층은 우리가 모든 설비와 사람을 구해 직영하되, 일층은 분양을 하여 한 코너 당 월 오십을 받기로 하고 4개 코너를 개설하기로 했다. 중식, 한식, 양식, 분식이 그 업종이다.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한 달이 지나자 이층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관망만 하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 일층에 입주하기를 희망했다.

그러자 나는 예초의 계획을 수정하여 한 코너 당 보증금 삼백에 60만 원의 월세를 받도록 부모님께 조언했다.

결국 내 의견이 수용되어 높은 월세를 요구하자, 지원자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네 코너를 분양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이렇게 되니 우리의 사업은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 되었다.

네 집에서 낸 보증금만으로도 우리가 집 주인에게 건넨 보증금 육백을 제하고도 육백이 그냥 남았고, 월세만 해도 네 집에서 240만 원을 받아 100만원을 주고도 140만원이 남는 데다. 이층의 수입은 고스란히 우리 차지가 되니 돈을 안 벌래야 안 벌수가 없었다.

이층에서도 모든 인건비와 관리비를 제외하고도 월 육백만 원의 순수입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부모님은 지금까지 긴가민가하여 망설이던 연탄배달과 쌀장사를 때려치우시고 시식코너에만 전념하셨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집 앞에 땅만 백 평 사놓고 유보해놓았던 집짓기 공사에 돌입하셨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장사하는 곳을 둘러보는 외에는 공부에만 전념하였다. 그리고 때로 정희와 약속을 하여 데이트를 즐겼다.

오늘 일요일을 맞아 나는 정희를 데리고 우리가 운영하는 시식코너에 들렸다. 바쁜 저녁 시간을 피하여 손님이 어중간한 오후 네 시쯤이다.

서로 마주 보고 살지만 우리가 만남을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라 정희가 많이 긴장한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며 사방을 둘러보다 어머니의 시선과 마주쳤다.

"어! 너 정희 아니냐?"

"네."

고개를 숙이고 수줍게 대답하는 정희를 바라보던 어머니가 정희 몰래 나에게 주먹을 들어 보이시더니 딴판으로 정희에게는 살갑게 다가와 묻는다.

"정희는 뭐 먹고 싶니?"

나의 물음에 정희는 부끄러운 듯 발그레한 얼굴로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작은 소리로 말한다.

"쫄면이 먹고 싶어요."

"호호호........! 우리 태민이도 쫄면을 좋아하는데, 식성도 닮니?"

어머니의 말에 정희는 더욱 붉어진 얼굴로 우물쭈물 답을 못한다.

"어머니 그만 놀리시고 쫄면으로 두 그릇 주세요. 그리고 만두도 이인 분 부탁해요."

"알았다. 알았어. 내 금방 해다 주라 하마."

부끄러움에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정희를 다시 한 번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으신 어머니가 이쪽저쪽 주방을 향해 활기차게 소리치신다.

"쫄면 두 그릇, 만두 이인 분!"

"네, 사장님!"

영업이 잘 되자 몇 차례 말썽을 피워 월급을 배로 올린 주방장이 우렁차게 대답을 한다.

"공부는 잘 돼?"

나의 물음에 여전히 식탁만 내려다보고 있던 정희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공부는 열심히 해서 뭐 하게, 대학 갈 것도 아닌데."

"내가 책임지고 대학등록금은 물론 여타를 지원해 줄 테니까 열심히 공부나 해."

"너에게 신세 지는 것은 싫어."

자존심은 있어서 튕기는 정희를 보며 나는 그녀 몰래 주먹을 쥐어 꿀밤을 먹이는 시늉을 하다가 그녀가 고개를 드는 기척에 얼른 손을 내리고 딴청을 하며 말한다.

"집에서 슬슬 미국 이민 이야기 나오는 것 아냐?"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깜짝 놀라 즉시 반문하는 그녀의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왜 몰라?'

전생에서 정희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시장의 쌀가게가 잘 되지 않자 전부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나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격이 되어 얼마나 방황을 했는지 모른다.

당시 그녀의 큰 언니가 미국에서 살고 있었는데 친정 소식을 듣고는 그녀의 가족 모두를 미국으로 불러들였던 것이다.

회한을 곱씹던 나는 그녀의 순진무구한 얼굴을 바라보며 이번 생만은 결코 그렇게 되지 않게 하겠노라고 전의를 불태운다.

============================ 작품 후기 ============================

삼종 세트는 작가를 춤추게 합니다! ^^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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