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자돈을 마련하다 -- >
2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나는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기 전에 동생에게 슬쩍 물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오빠는 참!"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본 동생이 말을 잇는다.
"뭐가 바빠, 날짜 가는 줄도 몰라. 3월6일, 화요일. 됐어?"
"응. 그런데 72년은 맞지?"
다시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본 동생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참고로 내게는 동생이 세 명 있는데 바로 밑이 여동생이고 그 밑의 둘은 남동생이다.
'이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겠네.'
세 살 차이인데다 교통사고로 한 해가 늦어졌으니 틀림없이 그렇다.
나는 내방으로 와 벽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참조해 가방에 책을 주섬주섬 챙긴다. 그리고 가게(상점)가 있는 곳으로 와 앞집을 쳐다본다. 여기서 보면 앞집 대문이 정문으로 보이기 때문에 정희가 학교 가기 위해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너, 학교 안 가고 뭐해?"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집을 나선다. 그리고 골목길 모퉁이에서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다.
'이러다 지각하겠다.'
투덜거리는데 단정히 교복을 차려 입은 그녀가 모퉁이를 돌아 나온다.
'와아........! 살아 있었구나!'
비로소 내가 회귀한 느낌이 확실히 전해지는데, 나를 본 윤 정희가 깜짝 놀라 얼굴이 붉어진다.
"학교 안 늦어?"
붉어진 얼굴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그녀다. 그녀와 나는 동갑내기로 같은 중 삼이다.
"공부는 잘 돼?"
나의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응, 그럭저럭."
정희가 공부를 못 하는(?) 것은 나도 알고 그녀도 안다. 전생에서 공부도 별로지만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하기가 어려워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사실을 아는 까닭에 나는 그녀의 말에 수긍하며 걸음을 빨리 한다.
"공부 열심히 해. 그리고 고등학교 들어가서 만나자."
"으~응.........?"
나의 뜬금없는 말에 의문을 제대로 답을 할 여유도 주지 않고 나는 서두른다.
"지각하겠다. 나 먼저 간다."
"으~ 응."
붉어진 얼굴로 땅만 쳐다보고 대답하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나는 뛰기 시작한다. 옛날 같았으면 말 한 번 붙이기 위해 몇 주일은 주변을 맴돌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땅의 삶을 살았던 데다 이번 생은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는 결사적인 각오이기 때문에 쉽게 행동하고 말을 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서 중학교까지 한 5Km 정도 되는데 전생에서는 한 번도 버스를 타고 등교하지 않았다. 계속 걸어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지각하게 생겼다.
참고로 그녀의 학교는 내가 다니는 학교의 절반에 채 못 미치는 거리에 있었으므로 그녀는 나보다 항상 늦게 집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녀의 통학 시간에 맞추었으니 내가 늦을 수밖에 없다.
나는 부지런히 뛰어 시내버스가 다니는 정류장 앞에 도착한다. 다행히 앞에 회수권 파는 상점이 있다.
"한 장에 얼마요?"
"십팔 원."
"한 장 주세요."
"여기!"
"네."
시내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몰랐던 나는 거스름돈으로 이원을 돌려받고 버스가 오자마자 바로 올라탄다.
출발 신호인 여 차장의 '오라잇!' 소리가 내가 회귀했음을 다시 한 번 인지시킨다.
늦은 시간이라 여 차장이 배로 학생들을 문안으로 들여놓을 정도는 아니나 그래도 혼잡하다. 학교에 도착해 3학년 4반 교실을 찾아든다. 그러나 나는 내자리가 어디인지 몰라 주변을 대충 휘둘러본다.
지각은 아니지만 모든 학생이 등교한 때이므로 뒷자리에 빈 좌석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한 나는 성큼성큼 그곳으로 간다.
말없이 첫 수업인 수학책을 펼쳐놓은 나는 상념에 잠긴다.
이 당시 나는 수학이나 과학 등 이과 계통의 과목을 잘 못했다. 그러나 전생의 경험에 의하면 나이가 들수록 이해력은 증가하나 암기력은 떨어지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당시 내가 생각했던 것이 지금 이 나이에 공부를 한다면 수학이나 과학을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 적이 있다.
지금 나는 전생의 이해력에다 현생의 뛰어난 기억력과 암기력을 발휘한다면 전생보다 훨씬 쉽게 공부를 잘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그래서 나는 수학과 과학 등 부족한 과목은 기초부터 다시 쌓자는 생각을 하며 수업을 기다린다.
* * *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내가 계획했던 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아버지 어머니와 마주 앉았다.
"저기........."
"할 말이 있으면 주저 말고 말해라."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어렵게 입을 떼는 것처럼 가장해 입을 연다. 전생의 내 모습이 이러 했으므로 내가 변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한 일종의 연기이다.
"내 년에 집 지으려고 모아 놓은 돈 있잖아요?"
"네가 그걸 어떻게?"
"허허........! 집안일에는 전혀 관심 없는 줄 알았더니 별 걸 다 아네."
놀라는 어머니와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씀 하시는 아버지의 말에 확실히 감을 잡은 나는 다시 어렵게 말을 이어간다.
"집 짓는 것을 몇 해 연기하면 안 되나요?"
"왜?"
나의 이상한 말에 다짜고짜 그 이유를 묻는 아버지다.
"그 돈으로 목 좋은 곳에 땅을 산다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돈도 돈이지만 너는 네 동생들이 고생하는 것도 안 보이느냐? 좁아터진 방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동생 셋이 뒹구는 것을 봐라."
"옳은 말씀이지만 한 해만 더 고생하면 그 돈이 배가 될 텐데........."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네 방으로 건너가 공부나 해!"
아버지의 지엄한 명에 나는 더 이상 말을 못 붙이고 내방으로 건너온다. 하지만 일단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나는 집요하다.
이 당시 내가 고일 때 바로 앞의 공터 100평을 사서 이층집을 지은 사실을 상기한 나는 다음부터는 베갯머리송사의 달인이신 어머니만 상대한다.
"엄마! 내가 봐도 이건 아니야. 남자도 하기 어려운 연탄 배달 일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드는 할아버지도 고생이시잖아. 내가 어디 다른 사업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잠시 그 돈을 땅에 묻어두면 배가 되어 돌아온다는데, 왜 못 믿어? 요새 오르면 올랐지 땅값 떨어지는 것 봤어?"
내 말에 잠시 곰곰이 생각하시던 어머니가 묻는다.
"그 곳이 어디 인데?"
땅 살 곳이 어디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나는 신이 나서 떠든다. 그곳은 바로 우리 동의 이웃 동인데 그 곳에 청주에서도 최초의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기에 나는 그곳의 위치를 상세히 설명한다.
"그 땅을 샀다 치자, 어떻게 그 곳만 땅 금이 배가 올라?"
어머니의 이성적인 물음에 나는 사실대로 말한다.
"지금 서울 등 대도시에는 아파트 열풍이 불잖아? 이제 청주에도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할 텐데, 내가 보기에는 가장 도심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아직 논과 밭이 있는 곳은 그곳 밖에 없어. 아직 논과 밭이니 당연히 다른 땅보다는 쌀 것이고, 이것을 사놨다가 팔면 많은 이익이 생길거야. 그러면 한 몇 해 더 고생하면 이 짓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어미 애비가 일을 안 하면 네 대학은 어떻게 하고, 줄줄이 사탕인 동생들은?"
"그래도 내가 하자는 대로 하면 최대 사 년 안에 엄마뿐이 아니라 아버지까지도 힘든 일 안 하셔도 될 거야."
"네 말 대로 되었으면 좋겠다만, 어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아니?"
한숨을 쉬며 말씀을 맺는 어머니의 표정은 내 말대로 한 번 해보겠다는 결의가 역력하다. 결국 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로부터 채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사직동의 논밭 삼천 평을 현 시세보다 평당 오백 원이 비싼 삼천오백 원에 매입하였다는 이야기를 어머니 편에 들을 수 있었다.
"아자! 됐다. 됐어!"
처음부터 내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나는 힘이 불끈 솟아 혼자 격려를 하며 공부에 매진한다.
그리고 그해 어느덧 겨울이 되어 나는 고등학교 입시에서 200점 만점에 196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충북 제일의 명문인 청주고에 차석으로 합격한다.
============================ 작품 후기 ============================
첫 회인데 생각보다 맣이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선작과 추천 코멘을 해주시면 작가는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자판 앞에 당겨 앉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날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