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자돈을 마련하다 -- >
12012년 12월의 어느 날.
오전 11시.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아버님의 팔순 잔치 때문에 집에 가는 길이다. 더불어 아내와 자식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나 혼자 객지에 있고 와이프랑 자식 부모님 모두 청주에 있으니 두 달 만에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은 항상 설레는 기분이다. 울산에서 청주까지 가는 여정인데 내차는 지금 김천을 지나고 있다.
밖은 기온이 차지만 안은 스팀으로 인해 훈훈하다. 비록 15년이 넘었고 IMF때 사업이 망해 산재보험료를 못 내, 압류된 1톤 봉고트럭이지만 달리는 데는 아직 아무 이상이 없다.
"아.......... 훕!"
갑자기 하품이 난다.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했더니 눈물이 찔끔 난다.
진즉부터 하품이 나고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억지로 참고 운전 중이다. 대구를 지날 때부터 하품이 나고 은근히 졸려서 칠곡 휴게소에 들려 잠시 눈을 부치고 간다는 것이 추풍령 휴게소로 미루었더니 이 모양이다.
왜냐하면 나는 추풍령을 넘으면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이 들기 때문에 가급적 추풍령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던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쉬려면 절반 거리이고 약 두 시간 운행 후인 칠곡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것이 정상이고 운행에 무리가 없지만 나는 평소의 습관대로 대구가 지날 때부터 졸린 것을 참고 지금 억지 운행 중이다. 다시 하품이 난다.
나는 한 손으로 '아 바 바'를 하고는 픽 웃는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린다.
"이럴 때 라디오나 음악이라도 들을 수 있으면 여간 좋아."
아쉽게도 그 부분이 고장 나서 나는 참고 억지 운행을 하는데 진짜 너무 졸리다. 하긴 지금 이 시간이면 졸릴 만도 하다.
원래는 아직 잘 시간이기 때문이다.
신문지국에서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나는 남이 다 잠을 자는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주로 일을 하고, 오전 8시부터 취침하여 낮12시면 다시 일어나 업무를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잘 시간인데 아버님의 팔순연과 부인 그리고 자식들을 보기 위해 집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김천 시내를 빠져나와 조금 더 달리니 이제는 평탄한 일직선 도로다. 나는 더욱 잠이 쏟아지는 것을 조금 만 더 참자고 버틴다.
머리가 멍한 게 눈꺼풀이 달라붙는 듯하다.
빠앙........!
갑작스런 경적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무의식적으로 우측으로 살짝 핸들을 틀며 백밀러를 본다.
스쳐 지나는 대형 차량에서 젊은 운전기사 놈이 주먹질을 해보이며 지난다. 순간적으로 내가 졸아 일차 선을 침범했나보다.
'이러다 큰일 나겠군. 잠시 쉬었다 가자.'
'아니야. 이제 15분 정도 더 지나면 휴게소잖아. 잠시 후에 푹 쉬지 뭐.'
마음에 갈등이 인다.
'쉬는 것도 좋은데, 어느 놈이 갓길에 세워 놓은 내 차량을 들이받으면 어떡하지?'
소심한 나는 별 생각을 다하다가 결국 잠시 후 추풍령 휴게소에서 푹 쉬기로 하고 다시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잠시 혼이 나서 그런지 이제는 정신이 많이 맑아졌다. 좀 전까지와는 달리 못 참을 정도로 졸리지는 않다.
나는 좀 더 속력을 내어 달린다. 그래봐야 시속 100Km다.
부웅~!
이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라 차가 많이 힘들어 한다. 그래도 아직은 받은 탄력으로 잘 달린다. 그러다보니 아까 나에게 주먹질을 했던 대형 화물트럭이 앞에서 힘겹게 오르막차선을 오르고 있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온다.
'죽어라고 달리더니 아직 여기야?'
혼자 야유하는 것도 모자라 스쳐 지나며 그 운전기사에게 주먹질을 돌려준다. 분개하는 운전기사를 추월한 나는 이윽고 추풍령 휴게소에 도착하여 무조건 씨트를 뒤로 벌렁 제친다. 그리고 정신없이 수마에 빠져든다.
얼마 후.
'일어나야지, 일어나! 1시부터 잔치를 한다고 했던가?'
잠결에 중얼거리며 급히 휴대폰을 꺼내보니 시간이 벌써 12시 반이다. 그럭저럭 30분을 넘게 잔 모양이다.
늦었다. 오후 1시부터 모 가든에 모여 아버님의 팔순 잔치를 하기로 했는데 지금부터 아무리 빨리 달려도 1시 20분은 돼야 도착할 것 같다.
나는 씨트를 정상으로 돌려놓고 차에서 내린다. 아무리 급해도 터질 것 같은 오줌보는 비우고 커피라도 한 잔 하기 위해서다.
소변을 보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대충 얼굴을 씻은 나는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빼서 빨리 마시기 위해 한식당으로 들어와 찬물을 섞는다. 그리고 급히 한 입에 털어 넣고 차에 올라 급히 출발을 한다.
그러고 보니 안전벨트도 안 매었다. 차를 움직이며 안전벨트를 맨 나는 점점 속도를 올려 상행선의 대열에 합류한다. 그리고 나는 최고 속도로 밟는다.
그래봐야 120Km 전후에서 계이지 바늘이 왔다 갔다 한다. 그렇게 한 10분 쯤 달렸을까 앞의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는 차가 보이는데 나를 한 번 추월했던 트럭이 거기에 있다.
'저 자식도 휴게소에서 쉬었나보네.'
영양가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갑갑한 그 차를 추월하기 위해 힐끗 좌측 백밀러를 보니 눈에 들어오는 차가 하나도 없다.
나는 그 길로 바로 일차 추월선으로 진입한다. 그런데..........
콰광!
옆에 바짝 붙어 사각지대에 놓인 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 길로 나는 의식이 끊겼다.
* * *
'나가야 되는데. 여기서 나가야 되는데.'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나는 이곳을 벗어나야만 살 수 있다고 의지는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내 몸은 내 의지를 배반하고 움직일 수가 없다.
'이러다가는 정말 죽는다. 기어서라도 나가야 돼.'
내 의식이 상황을 인지하고 계속해서 육체에 명령을 내리지만 육체는 그럴 힘이 없다.
'안 돼! 여기서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나는 부르짖으며 힘겹게 엎어지고 그리고 그대로 바닥을 긴다.
혼자만 쓰는 조그만 방이라 내 몸은 금방 장지문에 손이 닿을 수 있었고, 문을 열고 힘겹게 그 문턱을 넘어가 마루바닥에 벌렁 드러눕는다. 그리고 가쁘게 호흡을 몰아쉰다.
'휴우~! 이제 살 것 같다!'
안도하며 나는 천천히 다시 수마에 빠져든다. 그렇게 자길 얼마. 이제는 내 몸이 차다.
추운 겨울에 내복바람으로 찬 나무 바닥에 누웠으니 추워서 금방 잠이 깬 나다. 누운 채로 손발을 움직여 보니 이제 몸이 완전히 원기를 회복했다.
다닥다닥 붙은 옆방의 어머니 아버지와 안방의 식구들을 소리만 지르면 모두 깨어날 것이다.
'굳이 내가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었다가 간신히 살아났다고 이야기를 해, 자는 식구들을 모두 깨울 필요가 있을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 나는 단단히 잠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내 방을 바라본다.
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창문도 꼭 닫혀있고 레일식 연탄아궁이는 구들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따라 사나운 북풍에 가스가 역으로 새어나와 내 방으로 스며든 모양이군. 어? 그런데 내 모습은 이게 뭐지? 아니 내가 왜 여기에 와 있지? 교통사고로 죽었을 텐데.........?'
의문에 대한 답은 풀 수 없다. 단지 내 모습은 상당히 어려보이고, 집은 내가 중학교 때 살던 집이란 것만 알 수 있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나는 방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 불을 켠 후 벽에 걸린 거울을 잠시 본다.
빡빡 깎은 머리에 제법 준수한 얼굴이 거기에 있다. 키도 중학생치고는 제법 커서 170cm는 되는 것 같다.
내 과거 중 삼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
'내가 과거로 회귀한 것인가?'
확실하게 모든 것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심장은 마구 요동을 치고 있다.
기쁨과 걱정으로.
나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방을 나와 살며시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간다. 거기에는 내가 고 삼 때 돌아가셨던 할아버지도 분명 주무시고 계시고, 할머니와 내 동생 셋이 함께 잠을 자고 있다.
생각난 김에 나는 까치발로 창문 쪽으로 다가가 커튼을 젖혀본다.
'아........! 분명 있다. 있어! 내 첫사랑 그녀의 집이. 그럼, 그녀도 분명 저기 살고 있겠지.'
나는 벅차오르는 환희에 크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것을 참고 불끈 주먹을 말아 쥔다. 흥분에서 약간 깨어난 나는 그제야 새삼 안방을 둘러본다.
안방이라도 농과 여타 살림살이를 놓고 나니 비좁은 방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내 동생 셋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눈가가 축축해져 온다.
그래도 집안에서 내가 장남이고 제법 공부 좀 한다고 나만 독방을 주고 동생들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런 고생을 감내하셨구나 하는 생각에 울컥한 것이다. 눈가를 문지르고 살며시 안방을 나와 다시 내 방으로 돌아온다.
그간의 환기로 방이 춥다. 으스스 해 한차례 몸을 떤 나는 순간의 감상에서 깨어난다.
영 찝찝하다. 다시 연탄 중독이라도 된다면 안 되지. 내 방에 있기가 싫어 나는 그길로 살며시 현관문을 밀고나와 대문을 따고 마주보고 있는 앞집으로 향한다.
창백한 새벽달이 붉은 기와지붕을 비추고 있다.
'분명 정희도 저기 살고 있을 거야. 혹시 나만 홀로 과거로 회귀하고 그녀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 분명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절대 그럴 리는 없어!'
도리질을 하며 강하게 부정한 나는 등교하는 모습을 확인해 보기로 하고 다시 내방으로 들어온다.
있을 수도, 절대 일어날 수도 없는 회귀에 들떠있던 나는 차분히 내 방을 둘러본다. 책꽂이에는 중 삼 교과서와 일부 참고서가 꽂혀있고 달력은 1972년도 3월 달에 멎어 있다.
분명 내가 과거로 회귀한 것이 맞기는 맞나 보다.
'3학년 학기 초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자세를 바로하고 앉는다.
'정말 내가 회귀한 것이 맞다면 이대로 시간을 죽치고 있을 수는 없지.'
IMF때 사업에 실패해 찌질한 모습으로 살던 내 모습이 떠올라 부르르 몸을 떨던 나는 대충이라도 미래의 계획을 세워본다.
'돈! 돈을 무지하게 많이 벌어,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될 거야!'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 황금제국을 건설해, 세상을 한 번 쥐락펴락 해봐야지!'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굳게 굳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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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입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선작 코멘 추천을 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