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2 56. 마왕 강림 =========================================================================
푸드드득!
빛이 어둠을 밝히기 시작하자 건물 기둥과 천장에 붙어 있던 박쥐들이 날아올라 어둠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뱀파이어의 눈입니다.”
화이트 쉐도우가 박쥐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런 박쥐들을 향해 화이트 블러디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콰과과과광!
화이트 블러디들은 앞을 가로막는 것은 다 박살내고 있었다. 박쥐들이 자신들을 함정으로 유인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파괴하면 함정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카카카캉!
건물이 박살나기 시작하자 등에 박쥐의 날개가 달려 있고, 붉은 눈에 상아처럼 이빨이 튀어나온 창백한 인산의 뱀파이어들이 나타나 화이트 블러디들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힘에서 밀리자 하얀 피부에서 연기를 뿜어내면서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사악한 악마의 추종자들이군.”
“함정입니다.”
화이트 쉐도우가 충고를 하였다. 20명의 화이트 블러디들은 건물을 부수다말고 뱀파이어들을 향해서 몰려들고 있었다. 건물을 모두 파괴하려면 1년이 걸릴지도 모를 정도로 지하도시는 크고 넓었다. 불을 질러 단숨에 파괴할 수 없는 단단한 바위에 마기가 서려 있는 어둠의 도시이기에 신성력과 마나를 동시에 주입해서 때려 부셔야 한다.
“상관없다.”
화이트 블러디 단장은 천궁 화살을 꺼내서 천궁에 재우면서 대답했다.
번쩍!
퍽!
화르르!
천궁의 화살이 발사되자 뱀파이어의 이마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러자 뱀파이어의 몸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는 뱀파이어의 마기나 마나가 마스터급이 아니란 뜻이다. 절대공간을 만들 수 있는 마스터나 마스터급의 마족이라면 천궁의 화살이 이마에 박혀서 그의 몸에 있는 마나나 마기를 모두 정화시켜 재로 만든 후에야 천궁의 화살통으로 돌아온다.
스르릉!
저런 적들에게 천궁을 사용하는 것은 소 잡는 칼을 닭에게 휘두르는 격이다. 화이트 블러디 단장은 마법주머니에서 각종 무기를 꺼내서 몸에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천궁을 등에 메고는 미스릴이 가미되어 있는 특수합금으로 만든 대검을 검집에서 꺼내었다.
휘익!
화이트 블러디는 검을 들고 전장으로 달려들었다. 후위에서 일행을 지휘하던 사령관이 선두로 나선 것이었다.
번쩍! 번쩍!
화르르르!
단장이 앞장서자 후퇴하던 뱀파이어들은 후퇴할 시간도 없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뱀파이어들은 끝도 없이 튀어나와 이들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전진하자 지하도시 중심부에 거대한 타원형의 건물이 있었고, 그 건물을 타고 흐르는 피가 보였다. 마치 심장을 수천만 배 크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건물이었다.
“피의 마법진이다. 파괴하라!”
목표가 보이자 화이트 블러디 단장이 소리쳤다.
‘어리석은 놈.’
그의 뒤에서 가이드 역할을 하는 화이트 쉐도우가 속으로 비웃었다. 광신도들인 화이트 블러디는 이용해 먹는 소모품이었다. 저들은 뱀파이어의 피를 이용해서 피의 마법진을 활성화시키고 있었다. 신성력에 의해 재가 되는 것 같지만 그 반대였다. 피의 마법진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화된 피가 필요하다. 신성력을 이용해서 피를 정화하고 있는 것이었다.
‘피의 군주가 이곳에 있다는 정보가 사실이군.’
순혈의 뱀파이어가 마기를 이용해서 피의 권능을 강화한 피의 군주는 칸투 제국의 대장로로 황제인 발락의 형제로 레드 쉐도우 수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름조차 없는 그는 피의 권능으로 뱀파이어들을 양성한 후에 이들을 단련시켜 레드 쉐도우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즉, 이곳이 레드 쉐도우의 양산 공장인 것이다. 피의 마법진 중앙에는 워프 마법진이 있어서 칸투 제국 수많은 지하 광산에서 매몰되어 죽었다고 알려진 노예광부들이 이곳으로 워프 되어와 뱀파이어가 된다. 뱀파이어가 된 그들은 피의 군주에 종속된 자들로 피의 군주 의지대로 움직이는 인형이나 마찬가지다.
‘확률은 반반이다.’
화이트 쉐도우는 신성제국 황제인 헬리오스 3세의 분신이었다. 헬리오스 3세는 마왕을 강림하게 만들기 위해 분신 하나를 희생하기로 결정했다. 만약 이 작전이 실패하면 천궁을 비롯한 오리하루콘으로 만든 천계의 성물들을 회수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리고 피의 군주는 광신도들인 화이트 블러디들의 힘만으로는 제거가 불가능한 그랜드 마스터다. 더구나 이곳은 그의 권역이 가득한 피의 광장이다. 하지만 화이트 블러디들의 자기희생 주문을 걸고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스킬과 그것을 이용하는 자신의 권능이 합쳐지면 피의 광장은 물론 피의 군주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만약 형인 발락 황제를 누르고 칸투 제국의 황제가 될 야심이 있다면 마왕을 불러들여 마왕의 부하가 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이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가 죽음을 도외시하고 형에게 충성을 바치는 존재라면 이번 작전은 실패할 것이다.
마왕이 강림하면 그는 형을 배신하고 마왕에게 충성을 바치게 될 것이다. 그 대가로 칸투 제국의 황제가 될 것이고, 칸투 제국은 마왕의 영역으로 변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그는 죽을 것이고, 피의 광장은 파괴될 것이지만 그의 형인 발락 황제는 무사할 것이다.
스르륵!
‘나왔군.’
같은 뱀파이어의 모습을 하지만 붉은 눈동자가 아닌 깊은 무저갱을 보는 것처럼 검은 빛을 뿜어내고 있고, 창백한 피부가 검게 물든 뱀파이어들이 유령처럼 나오기 시작했다. 뱀파이어 수천마리를 희생해야 하나 탄생하는 마기와 마나로 강화된 돌연변이 뱀파이어들로 레드 쉐도우가 되기 전 단계의 레드 쉐도우들이다. 붉은 뱀파이어들이 마졸의 상태라면 이들은 피의 군주에 종속된 권속들인 것이다.
번쩍!
퍽!
“크아아악!”
화이트 블러디 단장이 대검을 버리고 천궁을 꺼내서 화살을 날렸다. 그러자 천궁의 화살이 레드 쉐도우의 머리를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곳이 피의 광장이기에 피의 권역에서 주입되는 권능의 힘이 훈련병에 불과한 레드 쉐도우를 상급 레드 쉐도우와 비슷한 힘을 내게 하고 있었다. 즉, 마스터 중급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레드 쉐도우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궁의 화살은 레드 쉐도우의 이마를 뚫고 들어가면서 그의 몸을 불태우고 있었다. 검붉은 기운과 백색의 불길이 뒤섞이다가 이내 백색의 불길이 모든 것을 집어 삼켰다.
카가강!
20명의 화이트 블러디 단원들도 오리하루콘으로 만든 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천궁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섞여 있는 양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레드 쉐도우들의 연합 공격에 쩔쩔매고 있었다. 200명이나 되는 레드 쉐도우들이다. 화이트 블러디의 공격에 부상을 당하면 피의 권능과 뱀파이어의 피를 흡수해서 금방 치유해 버렸다.
번쩍!
퍽!
“크아아악!”
화이트 블러디 단장이 천궁의 화살을 연신 쏘아 댔지만 서서히 뒤로 밀리면서 피의 광장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자. 시작해라. 미친 광신도여.’
화이트 쉐도우, 정확히는 헬리오스 3세의 분신은 차가운 눈으로 화이트 블러디 단장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때가 왔다. 백색의 피로 순교하자.”
“와!”
오리하루콘이 섞인 천계의 무기로 마스터급의 무력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피의 권역에서 레드 쉐도우들은 막강했다. 더구나 숫자에서 밀렸기에 천계의 무기를 이용해 엄청난 신성력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전투력의 차이 때문에 조금 지나면 전멸할 것이 분명했다. 비록 상대가 마족이나 마왕은 아니지만 사악한 악마의 추종자들임은 분명하다. 이왕이면 마왕과 같은 강한 상대와 싸우다 죽으면 더 위대한 순교가 될 수 있지만 순교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했다. 모든 힘을 쏟아붓고도 이길 수 없는 악마를 만났을 때가 영광스러운 순교의 때라고 믿고 있는 화이트 블러디들이다.
번쩍!
화르르!
화이트 블러디의 몸에서 백색의 불길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미스릴이 섞인 마도 공학으로 만든 최강의 방어구들도 이 불길에 녹기 시작했다. 신성력이 아닌 모든 것들을 녹여 버리는 정화의 불길이었다. 즉, 마나와 육체를 가진 자신의 몸조차 이 불길에 녹아버린다는 뜻이다. 다만 오랫동안 신성력과 하나 되어 수련한 육체이자 빛 속성의 마나이기에 상극인 마기부터 태워버리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1시간 이상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런 마기가 없는 곳이라면 1분도 버티지 못한다. 백색의 희생, 백색의 순교라는 이 희생의 권능은 모든 것을 정화의 불꽃으로 태워버리기에 전투력과 파괴력은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무기가 버틸 수 없으니 타오르는 육체로 적을 붙잡아서 태워 죽이는 방법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화의 불길에서 버틸 수 있는 오리하루콘으로 된 무기가 있다면 다르다. 이 정화의 불길을 더 상승시켜주기에 그랜드 마스터라도 도망칠 수밖에 없는 강력한 파워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파워를 내는 것은 천궁이었다.
퍼버벅!
화르르!
태양처럼 빛나는 하나의 화살이 한번 발사되면 서너 명의 몸을 꿰뚫고 되돌아 왔다. 그리고 20명의 화이트 블러디들도 몸이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고, 그 태양에서 뿜어지는 불길의 검이나 창, 망치가 되어 레드 쉐도우의 몸을 박살내고 있었다. 레드 쉐도우의 공격은 정화의 불길에 그냥 녹아버렸다.
‘체크 메이트다.’
헬리오스 3세의 분신이 무심한 눈길로 피의 광장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두면 한 시간 안에 피의 군주가 가진 권능의 바탕인 피의 광장이 파괴될 것이다. 이곳에서는 칸투 제국 황제인 발락도 피의 군주를 두려워한다. 이곳에서 죽으면 피의 마법진을 통해서 피의 군주 권능을 더 키워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피의 권능과 상극인 신성력이다. 마기로 피의 권능을 강화했지만 마기와도 상극인 신성력이 폭발하자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다.
이제 남은 방법은 피의 권능의 바탕이 되는 이곳을 버리고 도망치거나 마왕을 불러내서 화이트 블러디들을 피의 권능으로 흡수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피의 군주도 초월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대가로 발락이 아닌 마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그의 수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이곳에서 자존심을 지키면서 블러디 화이트들과 함께 자폭하는 방법도 있었다. 이곳에서만큼은 발락도 자신을 어쩔 수 없기에 암흑의 도시는 그의 독립된 왕국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그런 왕국을 잃으면 망국의 왕처럼 자존심을 버리고 발락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사냥개 신세가 된다. 어쩌면 피의 권능을 탐하는 발락의 먹이로 전락할 수도 있기에 자폭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마왕의 부하가 된다는 것도 비슷한 처지가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만 발락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일 것이다.
화르르르!
이때 피의 마법진에서 검은 불길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피의 권역이기에 정화의 불길에 타버리기 전에 레드 쉐도우의 피가 피의 광장으로 흘러들어가 피의 마법진을 활성화 시키고 있었다.
‘마왕을 불러내기 위해서는 블러디 화이트의 피와 내 권능이 필요할 것이다.’
헬리오스 3세는 피의 군주가 마왕이 아닌 상급 마족들을 불러내서 타협을 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럴 경우 대천사의 권능 일부를 넘겨줄 생각이었다. 그러면 피의 마법진에서 상급 마족이 아닌 마왕이 나올 확률이 훨씬 더 높아진다. 아니라도 상관없다. 상급 마족이 대천사의 권능과 오리하루콘과 같은 천계의 무기를 얻게 되면 초월에서 더 상급의 경지로 넘어갈 수 있다. 다만 이때는 신성력과 마기를 조합할 마나가 가득한 중간계인 뉴월드로 와야 한다. 물론 마나의 권능과 같은 드래곤 하트가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가서 마계에서 안전하게 초월의 경지를 넘어서는 신의 경지에 들 수 있지만 그것이 없다면 뉴월드로 기어 나와야 한다.
헬리오스 3세는 이런 초월의 경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천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왕의 마기가 필요하다. 신성력과 마기를 중화할 드래곤 하트가 있다면 제일 좋지만 없어도 이 둘을 조합해서 뉴월드에 가득한 마나를 이용해 신의 경지에 들 수 있다.
드래곤이 천족과 마족을 뉴월드로 불러내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드래곤 하트라는 마나의 권능 그 자체가 있기에 대천사의 신성력과 마왕의 대마기를 얻을 수 있다면 단순한 조율자가 아닌 신 그 자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드래곤이 가장 유리하지만 자신도 기회가 있기에 모험을 거는 헬리오스 3세다.
번쩍!
콰르르릉!
화이트 블러디 단장은 피의 군주를 향해서 천궁의 화살을 쏘아 보냈다. 악의 힘이 커질수록 희생의 주문은 더 효과가 있다. 바로 정화의 불길에 몸이 녹지 않고 강력한 마기를 흡수하면서 점점 더 강력해지는 신성력과 정화의 불길이었다. 하지만 그런 천궁의 화살도 피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결계를 쉽게 뚫지 못했다. 피의 군주는 신성력과 마기를 모두 피의 마법진에 주입하고 있었다. 신성력이 강할수록 미끼가 더 달콤한 법이다. 이 정도의 신성력이라면 마왕이 나올 가능성이 있을 정도였다.
“크아아아!”
정화의 불길이 몸의 안과 밖을 태우고 있었고, 신성력이 타는 몸을 재생하고 있었다. 때문에 화이트 블러디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비명을 지르면서 적을 향해 무기를 본능적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순교를 각오한 광신도가 아니었다면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실제로 화이트 블러디 화이트 하나는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 주문을 걸었다. 몸에 마기를 흡수하여 신성력과 함께 부딪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어리석은 놈! 영광스러운 순교의 순간에 고통을 이기지 못하다니.>
화이트 블러디 단장은 그 고통 속에서도 입이 아닌 심령으로 말을 전달했다. 신성력을 이용한 심령언어로 신성력이 닿는 순간 자신의 의지가 상대에게 전해지는 수법이었다.
<겨, 견디기 힘듭니다. 크으으!>
신성력이 연결되자 더욱 고통스러운 화이트 블러디 단원들이었다.
<내가 너희를 영광스럽게 하겠다. 나에게로 오라.>
“크으으으!”
화이트 블러디 단원들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레드 쉐도우와의 싸움을 포기하고 화이트 블러디 단장에게도 모이고 있었다. 레드 쉐도우들은 화이트 블러디들이 자기희생 주문을 건 순간 지독한 정화의 불길에 접근도 하지 못하고 닿는 순간 녹아 없어지고 있었다. 때문에 화이트 블러디들은 레드 쉐도우가 아닌 자신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한 화이트 블러디들은 단장에게로 갔다.
화르르르!
화이트 블러디 단원의 몸에서 솟아난 정화의 불길이 단장의 불길과 합쳐지자 단원은 재가 되었고, 단장의 몸에서는 더욱 강력한 불길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 불길이 강해질수록 피의 권역을 향해 천궁의 화살이 점점 더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나에게로 오라!>
고오오오!
화르르르!
피의 군주는 모든 힘을 모아서 피의 마법진을 유지했다. 신성력이 강할수록 마족을 유인하는 미끼가 좋은 법이다. 레드 쉐도우들의 희생과 피로 피의 마법진은 마왕을 불러들일 수 있을 정도록 강력한 차원게이트가 되었다. 다만 마계는 마나가 아닌 마기가 더 강한 세계이기에 그 마기를 마음대로 다루는 마족이 아니면 차원게이트가 열리지 않는다. 즉, 마계에서 응답하지 않으면 차원게이트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던전 게이트안 마계 던전을 만들기도 한다. 던전 게이트는 지속적으로 마계 생명체를 뉴월드로 소환하는 소환마법진이다. 소환되는 순간 마계와 뉴월드가 연결되는 차원게이트와 같기에 그 순간을 노리고 마계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크아아악!”
대부분의 화이트 블러디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모든 신성력을 단장에게 주자 천궁의 화살이 피의 권능 결계를 뚫고 피의 마법진으로 다가가는 순간 피의 마법진에서 검은 안개처럼 마기가 뭉클거리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소환마법진에 마계에 있는 마족이 응답해서 차원 게이트가 된 상태에서 나오는 현상이었다.
‘약해.’
헬리오스 3세의 얼굴에 실망감이 떠올랐다. 마기로 인해 피의 권능 결계가 더 강해졌고, 그와 함께 천궁 화살에서 더 강한 정화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힘겨루기는 화이트 블러디 단장이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가 아무리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도 몸이 버티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화의 불길이 강할수록 몸이 타들어가는 범위가 커진다. 그에 따라 신성력도 강해서 바로 재생이 뇌지만 더 가면 뇌가 반 이상 타버려서 광신도의 신념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번쩍!
‘천사의 가호!’
헬이오스 3세는 대천사의 권능 중 하나인 천사의 가호를 시전했다. 그러자 고통스러워하던 화이트 블러디 단장의 얼굴이 편안해졌고, 신성력과 정화의 불길이 두 배로 증폭되었다. 그러자 천궁의 화살은 피의 결계를 가볍게 관통하여 차원게이트가 된 피의 마법진 중앙에서 튀어나온 상급 마족의 이마를 꿰뚫어버렸다.
화르르!
그런데 천사의 가호를 받은 천궁의 화살은 화이트 블러디 단장의 의지가 아닌 헬리오스 3세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천궁의 화살이 피의 마법진이나 피의 마법진을 관장하는 피의 군주가 아닌 소환된 상급마족을 죽인 것이었다. 그러자 피의 군주는 살기 위해서 피의 권능과 결합된 마기를 사용해서 죽은 상급마족의 힘도 피의 마법진에 주입했다.
'……!'
피의 군주는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살기 위한 본능이 그를 움직였다. 무지막지한 신성력과 정화의 불길을 이용하여 상급 마족의 피를 정화하여 피의 마법진을 유지했다. 그러자 천궁의 화살에 피의 마법진이 파괴되지 않고 유지되었다. 문제는 이 무지막지한 제물이자 미끼를 보고 마왕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고오오오오!
이번에는 차원이 다른 마기가 피의 마법진에서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가공할 마기는 천사의 가호로 두 배로 증폭된 신성력과 정화의 불길을 그대로 흡수하고 있었다. 마치 검은 어둠이 빛을 삼켜버리는 것과 같은 충격적인 모습이 연출되었다.
‘마, 마왕이다.’
피의 군주는 안색이 창백해졌고, 헬리오스 3세의 얼굴에서 만족한 표정이 떠오르더니 이내 사라졌다.
“크아아악!”
분신에게서 헬리오스 3세의 의지가 사라지자 화이트 쉐도우는 거대한 마기의 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처절한 비명을 지르면서 어둠에 녹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