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3 32. 대족장들과의 결투 =========================================================================
32. 대족장들과의 결투
“이상하지 않습니까?”
칸투 제국의 에우제니오 공작은 정보부 수장인 소르이자 블랙 기사단 소르 후작이 가져온 정보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테바는 천재적인 전략가입니다.”
소르 후작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알아요. 그래서 더 이상하다는 것이지요. 그가 서대륙까지 간 것은 신성 제국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라는 것은 네가 더 잘 알지요.”
테바는 몽크이지만 신성제국의 대신관 중의 하나인 공작의 최측근이다. 그가 모시는 공작이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자 제일 먼저 공작의 오른손인 테바가 마왕 퇴치 임무를 맡고 신성제국에서 쫓겨났다는 것이 칸투 제국에서 파악한 테바의 비밀이다.
“예.”
“내가 그라면 조작을 해서라도 공을 크게 만들어서 본국으로 돌아가서 권력 싸움에 발을 담글 놈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가 가짜 마왕과 흑마법사들을 따라서 어둠의 숲으로 간다고 하니 이상하지 않나요?”
테바는 흑마법사의 비밀 던전을 급습해서 테이밍 흑마법사를 제거했지만 가짜 마왕을 만든 제조 마법사와 키메라인 마왕은 놓쳤다고 보고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수의 마왕 척살대가 전사했다는 연락이었다. 그 보고 이후에 거대 개미 군단과 오크 군단은 물론 가짜 마왕도 서대륙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옵트 왕국에서 추진 중인 사막 녹화 계획이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는 정보가 있습니다.”
“본국으로 가도 권력 싸움에서 이길 확률이 적으니 외부에서 자신의 친위 세력을 키운다는 것인가요? 하지만 옵트 왕국의 일 년 예산은 신성 제국에 있는 백작의 영지 예산보다 작지요. 그리고 노카 족은 그런 옵트 왕국에서도 가장 작은 부족이지요. 그들을 키운다고 해서 신성제국의 권력 싸움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권력 싸움의 기본은 무력과 돈입니다. 옵트 왕국에서 그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보았다면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가 사주한 것으로 보이는 노카 족이 옵트 왕국을 삼키도록 해야 하겠군요.”
“마스터들인 대족장들을 제압하고 사막 녹화작전을 성공 시킨다면 테바가 그 두 가지를 노카 족에게서 보았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림자들을 파견할까요?”
“테바라면 그림자들이 위험하지요. 돈이 들더라고 드워프 길드와 마법 길드를 이용해서 정보를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칸투 제국에서는 옵트 왕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테바가 꾸미는 계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신성제국도 마찬가지였다.
* * *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노이만의 오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국왕인 노이만을 제외한 11명의 대족장들이 왕성보다 큰 옵트 부족장의 건물에 있는 대족장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맞습니다. 정보에 의하면 놈은 반란을 일으켜서 제 아버지를 강제로 은퇴 시키고 스스로 대족장 자리에 올랐다고 합니다.”
대족장들은 국왕인 노이만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그가 사막 웜을 길들이는 비법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길들인 사막 웜이 천문학적인 돈에 팔려나갔다. 길들인 사막 웜은 사막에서 말이나 마차 대용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운하를 만드는 일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전쟁용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큰일 났습니다.”
이때 옵트 부족의 전사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노이만이 마탑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뭐라고?”
옵트 부족의 대족장 건물에 있는 회의실에 모여서 회의를 하던 대족장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노이만이 왕이 되어 왕성에서 살고 있었지만 왕성에서 근무하는 행정관들이나 시종, 하인들은 모두 옵트 부족 사람들이거나 옵트 부족의 영향하에 있는 하수인들이다. 노카 족 전사들은 노이만을 호위하는 소수만이 근위대에 속해 있었다. 즉, 근위대 대부분도 옵트 족 전사들이다. 때문에 왕궁에 있는 노이만은 옵트 대족장의 손아귀에 있는 인질이나 다름없었다.
“잡아야 합니다.”
“지금 바로 가면 그가 노카족 전사들을 모으기 전에 잡을 수 있습니다.”
“그가 사막녹화 작업 중인 사막 웜들을 모아서 대항하면 골치 아파집니다.”
대족장들은 노이만이 어떻게 자신들이 그를 제거하려 한 것을 눈치 채고 도망쳤다고 확신했다. 전쟁이 벌어지면 골치 아파진다. 예전이라면 교역만 하지 않아도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가난한 부족이 노카 족이다. 하지만 지금은 마탑 지부가 있어서 마법 길드가 협조하지 않으면 봉쇄도 불가능하고 사막녹화가 진행되고 있어서 자급자족도 가능해진 상태였다. 그렇다고 대군을 일으켜 쳐들어가면 사막에서 유인전술을 사용하면 전멸할 수밖에 없다. 상대에게는 길들인 사막 웜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족장님 여기!”
이때 정보를 담당하는 전사가 쪽지를 건넸다. 노카 족에 침입해 있는 세작에게서 연락이 온 정보였다. 마법 통신기가 있기에 바로 정보를 알려온 것이었다.
“놈이 눈치 채고 도망친 것이 아니라 일이 있어서 암산으로 갔다는 정보입니다. 하지만 배신자들이 있어서 우리가 모인 정보가 놈에게 전달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옵트 부복의 대족장은 노이만에게 정보 세력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가 단시간 내에 옵트 왕성에 있는 자신의 정보조직을 능가하는 세력을 만들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아내고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노카 족이 사막녹화 사업을 통해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었기에 12지파의 수장 자처하는 자신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었다. 때문에 노이만이 사막 웜을 길들이는 비법을 알려준다고 해도 그를 제거할 계획이었다.
“놈이 무슨 일로 비밀리에 왕성을 벗어나 암산으로 갔는지 제가 압니다.”
한 대족장이 일어나 말했다. 그에게는 자신의 친위대인 전사가 가져온 쪽지가 있었다.
“무슨 일로 갔다고 합니까?”
모든 대족장의 시선이 모이자 그가 말했다.
“킹 웜의 독을 이용해서 우리를 제거하고 통일 왕국을 세우려는 수작이라고 합니다. 노이만이 사막 웜을 길들일 비법을 알려준다고 미끼로 우리를 초청하기 위해 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정보를 알려준 전사는 강철의 피를 통해서 귀졸이 된 전사였다. 하지만 대족장들은 이런 고급 정보를 어떻게 얻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 기회를 역이용합시다.”
대족장들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놈이 어리석게도 스스로 명분을 주고 있었다.
* * *
며칠 후
노이만은 사막 웜을 길들일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준다고 하면서 대족장들을 초대하였다. 하지만 대족장들은 옵트 왕성으로 와서 알려달라고 하였다. 전통과 국법을 들먹이면서 국왕이 왕성을 떠나서 일을 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노이만은 자신의 계획이 들통난 것도 모르고 순순히 왕성으로 돌아와서 대족장 회의를 준비했다. 이 준비에 노카 족 전사들 수십 명이 왕성으로 들어왔다. 비법을 지키기 위한 경호 병력들이었다.
“준비 되었나?”
“예.”
왕성이 있는 광장 주변의 상가 건물들 옥상과 창가에 있는 방에는 수많은 전사들이 매복해 있었다. 노카 족을 제외한 11개 지파에서 파견한 전사들이었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 마셔라.”
“감사합니다.”
부족에서 올라온 신입 전사들은 왕성에서 오랫동안 활약해온 선배 전사들이 주는 포도주를 마셨다. 강철의 피가 섞여 있는 포도주였다.
“너는 이번 작전을 어떻게 생각 하냐?”
“네?”
“노이만 국왕은 옵트 왕국의 공존과 번영을 위해 사막 웜을 길들이는 비법을 공개하고자 대족장들을 초청했다. 하지만 대족장들은 그를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
“……!”
놀란 신입 전사들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이미 귀졸이 되었기에 선배의 말에 수긍을 하고 있었다.
“노카 족 전사들에게는 대족장들만이 알 수 있는 마나심법과 마스터가 되는 비법서가 공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벌써 수십 명의 마스터들이 탄생했다고 한다.”
“저, 정말입니까?”
선배의 말에 신입 전사들의 눈이 커졌다.
“정말이다. 대족장들이 노이만 국왕을 제거하면 옵트 왕국은 발전이 없다. 사막 웜은 마스터가 아니면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족장들이 직접 사냥에 나설까?”
“……!”
신입 전사들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대족장들은 대저택에서 하인들과 시종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호의호식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생명을 걸고 사막을 돌아다니면서 사냥을 하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사막의 율법대로 더러운 음모에 끼어들지 않는다.”
“사막의 율법이라면 강자존이 아닙니까?”
“맞다.”
“노이만 국왕은 마스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11대 1로 불리합니다.”
귀졸이 된 전사는 무의식 중에 노이만 국왕의 편을 들고 있었다.
“최근에 마스터가 된 노이만 국왕의 친위대가 가세하면 달라질 것이다. 대족장들은 우리뿐 아니라 자신의 친위대들도 모두 이끌고 왕성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유리한 상황에서도 노이만이 동귀어진 수법으로 발악을 해서 자신이 부상당할까 두려워서 직접 나서지 않을 것이다.”
“……!”
귀졸이 된 신입 전사들은 수긍을 하였다. 11대 1이라는 수적 우위를 가지고도 수천에 달하는 정예들을 왕성 주변에 매복시킨 대족장들이다. 이는 탈출을 방지하기 위한 병력 배치이지만 신입 전사들의 눈에는 비겁하게 보였다.
쾅!
이때 왕성에서 폭음이 울렸다.
“시작한 모양이군.”
왕성에서 폭음이 울리고 전투가 시작되면 전사들의 일부는 일제히 왕궁으로 진입하고, 나머지는 왕성을 포위하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전사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움직이려는 세작들을 제거하고 있었다.
* * *
옵트 왕성
왕성에 있는 영광의 홀에 노이만 국왕이 준비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중앙에는 국왕인 노이만의 식탁이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11개의 식탁이 차려져 있었다. 각 식탁에는 대족장들이 홀로 앉아 있었고, 그 뒤편에는 수십 명에 달하는 대족장들의 호위 병력인 전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자 드십시오.”
“……!”
만찬을 준비한 노이만 국왕이 포도주 잔을 들었지만 대족장들은 잔에 손도 대지 않았다.
“왜 안 드십니까?”
“킹 웜의 독을 탄 술을 어떻게 마시겠나?”
옵트 족의 대족장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킹 웜의 독은 지독해서 금으로 도금된 이 술잔이 버틸 수 있겠습니까?”
“마법 처리를 했겠지.”
“나를 모욕할 생각이십니까? 나는 젊지만 노카 족의 대표인 대족장이고 옵트 왕국을 대표하는 국왕입니다.”
노이만 국왕이 분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비를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킨 너는 대족장 자격이 없다.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증거가 있습니까? 나는 아버지로부터 정당하게 대족장 자리를 물려받았습니다.”
“비겁한 놈.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는 구나. 독을 탄 이 잔을 마셔봐라.”
옵트 족 대족장이 신호를 하자 뒤에 있던 전사가 포도주 잔을 가져다가 노이만 국왕에게 주었다.
꿀꺽!
노이만 대족장은 망설이지 않고 잔을 마셨다.
“……!”
노이만의 행동에 대족장들의 얼굴에 당혹함이 깃들었다. 지켜 보는 눈들이 많기 때문에 명분이 없다면 뒷처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해독약을 미리 복용한 모양입니다.”
대족장들은 억지를 부렸다. 증거를 찾지 못했기에 힘으로 억누를 생각이다. 원래 역사란 승자가 써내려가는 것이다. 힘으로 굴복 시킨 후에 증거를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서다.
“맞소.”
대족장들은 증거도 없이 노이만을 몰아붙였다. 그러자 대족장들을 따라온 전사들의 눈에 의혹이 길들고 있었다.
“나는 이런 모욕을 받고 더 이상 참지 않겠소.”
“참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더 이상 고집 부리지 말고 네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라.”
옵트 족 대족장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스릉!
“사막의 율법대로 합시다. 누가 내 죄를 물을 것인가?”
노이만 대족장은 벌떡 일어나 검을 뽑았다. 시퍼런 시미터에서 마스터를 상징하는 푸른 오러 블레이드가 치솟아 올랐다.
“……!”
노이만 국왕이 강하게 나오자 대족장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 눈치만 봤다. 힘으로 억누르려 했는데 놈이 먼저 힘으로 해결하려 나왔다. 원하는 대로 되었지만 이는 상대가 자폭 하겠다는 심사였다. 그러면 놈에게 얻어야 하는 비밀을 얻지 못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상처 없이 상대를 사로잡아야 하는데 그러면 합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합공도 정면에 나서는 자는 부상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상대의 오러 블레이드를 보니 합공을도 쉽게 사로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족장들은 일대일 대결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신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사막의 율법은 강자 존이다. 증가가 없는 상황에서 죄의 유무를 가리는 방법은 결투다. 사막에서는 약한 것이 죄다. 사막에서 강자는 모든 것이 용서된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사막의 율법대로라. 좋군.”
옵트 족 대족장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나서겠소.”
“사막에서는 약한 것이 죄다.”
옵트 족 대족장은 악역은 자신이 하기로 결심했다.
슥!
옵트 족 대족장이 오른 손을 들자 그의 뒤에 도열해 있던 전사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섰다. 사막의 율법에서 있어서 강자는 일대일 결투를 의미하지 않는다. 강한 부족이 약한 부족을 침략해서 통합하는 것도 사막의 율법에 따르는 것이다. 그런 전쟁을 막기 위해 강한 대부족들이 연합해서 만든 것이 옵트 왕국이고, 새로운 국법이 탄생했다. 그 이후 사막의 율법이란 개인 대 개인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전락해서 일대일 결투 방식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옵트 족 대족장은 통합 이전의 야만적인 사막의 율법을 들고 나왔다.
슥!
그러자 노이만 국왕이 데려온 사막의 전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이들 중에는 강철과 마스터가 된 기사들, 그리고 마스터급의 전투력을 발휘하는 가디언들이 섞여 있었다.
“11대 1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
옵트 족 대족장은 자신의 부족만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부족장들의 뒤에 서 있던 전사들도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반월형으로 포위한 형세가 되었다. 혹시라도 난전이 벌어지면 왕성에 있는 근위대 병력과 왕성 밖에 포진한 병력들도 가세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노이만 국왕이 독 이외에도 다른 함정을 준비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비겁하구나. 하늘이 너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노이만은 대족장들이 연합하여 자신을 공격하려 하자 크게 웃으면서 소리쳤다. 대족장들은 그가 비통하고 억울해서 소리친 것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