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7화 〉 [446화]가면 무도회
* * *
도미닉 경이 증거 찾기를 누르자, 도미닉 경은 그 즉시 두 장의 카드를 받았다.
[앰버 사략선장은 반동분자입니다!]
[당신은 카닐리온 변경백이 아닙니다!]
"음?"
도미닉 경은 몇 번이고 받은 카드들 확인해 보았지만 적혀 있는 글귀는 그것뿐이었다.
도미닉 경은 카드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증거 찾기를 누르면 이렇게 정보가 나오는 모양이군. 이렇게 반동 분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건가."
도미닉 경은 꽤 복잡한 룰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도미닉 경은 두 장의 카드를 포개어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이건 꽤 귀중한 정보들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정작 서로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방도가 없군."
도미닉 경은 문득 직원이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이 게임은 그저 파벌을 나눠서 정치를 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파벌 내에서도 정치가 가능하고, 반대파를 숙청 가능하지요.'
"이게 그런 뜻이었나."
도미닉 경은 이 게임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직원은 괜히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자기가 이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모두를 숙청하고 마지막에 남는 것뿐이었다.
"그 누구도 믿어선 안 되겠군."
도미닉 경은 이 게임이 괜히 정치 추리 게임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도미닉 경이 있는 방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는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른 기병대장 예복을 입은 자였는데, 허리춤에는 기병도를 차고 있었다.
"반갑소. 설마 여기에 선객이 있을 줄이야."
그는 도미닉 경을 보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설마 이곳에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니,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몰랐다.
"동선이 겹친 건가?"
기병 대장은 도미닉 경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오. 그저 증거 찾기를 누른 참이었소."
"아."
기병 대장은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소득은 좀 있었소?"
"글쎄."
도미닉 경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기병 대장에게 되물었다.
"당신은 증거를 좀 찾았소?"
"그럴 리가."
기병 대장은 도미닉 경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첫 턴부터 이동한 참이었소. 일단 사람들을 좀 만나 볼 생각이었거든."
"첫 턴부터 이동을?"
도미닉 경은 기병 대장의 행동에 의문을 품었다.
증거를 찾아도 모자랄 판에,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다?
"그렇게 볼 것 없소. 이것 때문에 그런 거니까."
기병 대장은 [추리하기] 버튼을 가리켰다.
"어째서 증거 찾기가 있는데 추리하기 버튼이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있소?"
"...없소."
도미닉 경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기병 대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버튼에 대해서 설명했다.
"추리하기를 누르면 상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소. 증거 찾기가 '누구누구는 무엇이 아니다.'라는 식이라면, 추리하기는 '지금 보는 누구는 무엇이다.'라고 바로 알려주는 셈이지."
그리고 그건, 증거를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지. 라고 기병 대장이 말했다.
"과연."
도미닉 경은 기병 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상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다면 여러모로 게임이 편해졌다.
일단 상대의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있다는 말은, 자기의 이름을 알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한 상대가 귀족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은 정치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만일 반동분자임이 확인된다면, 사람들의 여론을 몰아 반동분자를 치워 버릴 수도 있으니까.
"모두가 행동을 마치면 한 턴이 끝날 거요. 그럼 다음 턴에 또다시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을 거요."
기병 대장은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말했다.
"난 당신을 조사할 거요. 그러니 당신도 날 조사해 보시오. 그리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합시다."
"..."
도미닉 경은 말없이 기병 대장을 바라보았다.
기병 대장은 도미닉 경이 꼭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라도 있었는지, 두 번째 턴의 선택지를 바로 골랐다.
도미닉 경은 조금 더 기병 대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기병 대장은 그저 평온한 얼굴을 한 채 도미닉 경의 선택을 기다릴 뿐이었다.
"하뿌!"
"아, 그래."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의 말에 기병 대장을 바라보는 것을 그만두고 선택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도미닉 경의 손이 선택지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
이번 게임의 또 다른 칸.
거대한 범선의 그림이 그려진 화려한 방 안에서,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기모노를 입은 채 여우 가면을 쓰고 있었고, 한 사람은 몸에 쫙 달라붙는 귀족 복식을 입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대치하고 있었다는 말이 정확하리라.
몸에 쫙 달라붙은 귀족 복식을 입은 자는 피를 철철 흘리며 땅바닥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으니까.
[오닉스 백작이 죽었습니다.]
[오닉스 백작은... 반동분자였습니다!]
"와. 반동분자였네."
여우 가면의 여성은 그렇게 말하며 손에 쥔 쿠나이의 피를 털어내었다.
"...[대비하기]를 눌러서 다행이었어."
여우 가면의 여성은 그렇게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겉으로 보기에 이 상황은 여우 가면의 여성이 오닉스 백작이라 불린 남자를 죽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내막을 확인하면 약간의 내용이 더 있었다.
여우 가면의 여성과 오닉스 백작은 처음부터 같은 공간에 존재했다.
처음에는 서로 대화를 나누며 훈훈한 모습을 보였으나, 여성은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오닉스 백작의 눈빛 속에 숨은 살기를 캐치한 것이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한 비술을 통해 살기를 그 누구보다 잘 캐치할 수 있었기에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서로 조사하기를 누릅시다. 그리고 정보를 교환합시다.'
오닉스 백작은 그렇게 말하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미 살기를 감지한 여우 가면의 여성은 겉으로는 그러겠노라고 말했으나, 속으로는 내심 이 상황을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우 가면의 여성은 아마 상대가 [암살하기]를 선택할 것으로 생각했다.
눈에 비친 살기를 생각하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여성은 [암살하기]의 카운터인 [대비하기]를 눌렀다.
만일 상대가 [조사하기]나 [증거 찾기]를 눌렀다면 그저 한 턴을 날린 셈이 되겠지만, 그녀는 자기 감을 믿었다.
그리고 그 감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져 [암살하기]를 누른 오닉스 백작을 역으로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유효한 정보는 얻지 못했네."
여우 가면의 여성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증거 찾기라도 해 봐야겠어."
그녀는 두 번째 턴에서 일단 증거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증거 찾기]를 눌렀다.
그리고 그녀는 두 장의 카드를 받았다.
...
"하뿌."
"음?"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의 외침에 선택지를 고르려던 손길을 멈췄다.
"부."
도미닉 경이 도미니아 경을 빤히 쳐다보자, 도미니아 경은 도미닉 경에게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이 가리킨 방향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엔 첫 턴엔 분명히 없었던 화살표가 있었다.
"화살표...?"
도미닉 경은 그 화살표를 보며 잠시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 화살표를 눌러보았다.
"!"
도미닉 경이 화살표를 누르자, 도미닉 경의 눈앞에는 또 다른 선택지가 나타났다.
[암살하기]
[대비하기]
바로, 암살과 대비라는 말을.
도미닉 경은 힐끔 기병 대장을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기병 대장은 이미 선택지를 고른 채 도미닉 경의 선택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손톱 아래를 확인하거나 수염을 매만지며 도미닉 경을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방에 두 사람이 있어서 생기는 또 다른 선택지인 모양이군.
그렇게 생각한 도미닉 경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이내 도미닉 경은 단 세 가지만 신경 쓰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를 믿고 [조사하기]를 누르느냐.
혹은 상대가 배신할 것이라 믿고 [대비하기]를 누르느냐.
혹은 상대를 배신하고... [암살하기]를 누르느냐.
도미닉 경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았다.
손바닥 위에서 마치 요정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도미니아 경은, 도미닉 경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도미닉 경을 올려다보았다.
"하뿌?"
도미닉 경은 천진난만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며 마침내 마음을 정했다.
사실 무엇을 고르더라도 도미니아 경에게 부끄럽지 않을 선택이었지만, 도미닉 경은 그중에서도 더 부끄럽지 않을 선택지를 골랐다.
바로, [조사하기]를 말이다.
"난 당신을 믿겠소."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하며 조사하기를 눌렀다.
"그렇소?"
도미닉 경의 말에 기병 대장은 미소를 지으며 속내를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혹시, 정말 [조사하기]를 누른 거요?"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기병 대장은 도미닉 경의 말을 듣고 더더욱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가 광대까지 걸릴 정도로 기묘하고, 괴상한 미소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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