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45화 (524/528)

〈 445화 〉 [444화]축제

* *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도미니아 경, 그리고 앨리스 백작 영애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한 뒤 내친김에 분장용 옷과 가면까지 구매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소."

도미닉 경은 내심 분장이 불편한지 계속해서 목의 크라바트를 매만졌다.

도미닉 경은 현재 중세 시대의 해군 제독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하얀색과 파란색의 조화가 인상적인 옷이었다.

"뭐, 스킨이 아니라 분장이니까."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머리 모양이 신기한지 계속해서 도미닉 경의 머리를 매만졌다.

현재 도미닉 경의 머리는 마치 중세 시대의 귀족처럼 돌돌 말려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인상이 확 바뀌어 도무지 도미닉 경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뭐, 그나저나 당신도 못 알아볼 정도구려."

도미닉 경은 놋쇠로 머리를 장식한 지팡이로 땅을 두어 번 두드리며 도미니카 경에게 말했다.

도미닉 경의 말대로, 도미니카 경은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꽤 검소해 보이는 드레스였다.

물론, 이는 가차랜드에서 통용되는 말로, 페럴란트를 기준으로 보면 드레스 하나에 성 하나를 살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편이었다.

"앨리스만 하겠어?"

도미니카 경은 앨리스 백작 영애를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으..."

앨리스 백작 영애는 파란색 드레스에 하얀 앞치마를 하고 머리를 금발로 염색한 상태였는데, 그 머리 위에 커다란 검은 리본을 달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둘 다 화려하기 그지없소만."

"완전히 다르지. 나는 르네상스 풍 네덜란드 드레스고, 앨리스 백작 영애는 앨리스 풍 드레스니까."

"...? 앨리스 백작 영애는 앨리스가 맞지 않소?"

"그 앨리스 말고."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지만, 도미닉 경의 눈에는 그저 둘 다 드레스였을 뿐 자세한 구분은 하기 힘들었다.

"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자신을 납득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부!"

그때, 도미니아 경이 도미닉 경에게 아장아장 걸어왔다.

도미니아 경은 핑크색 공주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머리 위에는 작은 티아라까지 씌워진 상태였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작은 공주님이었다.

"너도 예쁘게 치장했구나."

도미닉 경이 도미니아 경을 안아서 들어 올리며 그렇게 말하자, 도미니아 경은 만족한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도미니아 경은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품속에 안긴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갑갑한 게 싫은지, 가면을 쓰기 싫어하더라고."

"과연."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나이쯤의 어린아이들은 대개 갑갑한 것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런 거라면 어떻겠소?"

도미닉 경은 꽤 유치하지만 알록달록 예쁜 가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우­?"

도미니아 경은 그 가면에 관심을 가지더니, 이내 자기 스스로 그 가면을 얼굴에다가 씌웠다.

너무나도 마음에 든 나머지 자기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뭐, 그럼 됐네."

도미니카 경은 가면을 쓴 도미니아 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도미니카 경 자신도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하얀 가면에 귀부인들이 쓸 법한 나비 가면이 덧대어져 있는 가면이었다.

그와 동시에 도미닉 경도 가면을 썼다.

고대 그리스에서나 볼 법한 우스꽝스러운 연극 가면이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가면을 쓰자 도미니아 경은 깜짝 놀랐으나, 도미니아 경은 꽤 똑똑한 아이였기에 그것이 그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가면을 쓴 것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으, 난 집에서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나 하고 있으면 안 될까?"

앨리스 백작 영애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앨리스 백작 영애를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놓아주지는 않았다.

"좀 걷고 그러시오, 주군."

"그러니까. 요즘 살 찐 거 알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말에 앨리스 백작 영애는 황급히 자기 배를 만져 보았다.

앨리스 백작 영애는 기본적으로 문무를 겸비하고 있었기에 체지방이 극히 적은 편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뱃살이 잡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좀 걷긴 해야겠지?"

앨리스 백작 영애는 에둘러 말하며 뻘쭘하게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황동색 기어와 실린더로 만들어진, 얼굴의 윗쪽 절반만을 가릴 수 있는 스팀펑크 풍 반가면이었다.

그렇게 완전히 정체를 숨긴 네 사람은 가차랜드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화려하네."

"축제니까 말이오."

"게다가 돈을 얼마나 들이 부었는데."

가차랜드의 거리는 벌써 완전히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하늘에서는 끈적거리지 않는 말랑말랑한 젤리와 아무리 먹어도 재채기가 나오지 않는 고운 설탕 가루들이 내리고 있었고, 거리를 가득 메운 전구 예술들은 제각이 아름다운 빛을 내뿜고 있었으며, 예술적인 감각이 있는 자들은 거리로 나와 초상화를 그려주거나,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며 팁을 받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도미닉 경의 일행들처럼 변장을 한 채였는데, 평소의 가차랜드도 충분히 정신없고 화려 했지만, 지금의 가차랜드는 무언가 평소보다 더욱 활기차고 화려한 느낌이었다.

"아직 축제는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벌써 활기가 넘치는구려."

"그러게."

"하뿌! 솜사탕!"

도미니아 경은 거리의 노점에서 파는 군것질거리에 눈길이 가는지 도미닉 경에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부탁했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위해 차마 저작권 문제로 말할 수 없는 캐릭터 모양으로 된 솜사탕 하나를 샀다.

어째서인지 도미닉 경은 이스터 에그 51지역이 생각이 났지만, 왜 그런지는 알지 못했다.

도미니아 경은 솜사탕을 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가면에 가려져서 전혀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제 곧 축제가 시작합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이제 곧 축제가 시작됩니다!"

"축제의 시작으로 행렬이 시작될 테니, 모두 안전 요원의 안내를 따라 선 밖으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아, 이제 곧 축제가 시작되려나 보오."

도미닉 경은 목이 터져라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안전 요원이 말한 선 밖으로 나갔다.

도미닉 경은 우연찮게 선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 즉 행렬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선 밖으로 나가자, 거리에서 빛나던 모든 전구들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지막 조명이 꺼지자, 거리에는 어둠만이 남아 있었다.

"하뿌?"

도미니아 경이 갑자기 어두워진 환경이 불안한 듯 도미닉 경의 손을 꼭 잡았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안심시키려는 듯 역시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잠깐의 기다림 후.

도미니아 경이 결국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 아주 완벽한 타이밍에 턱시도를 입고 하얀 가면을 쓴 사회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나타났다.

"신사­ 숙녀­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축제를 즐길­"

사회자는 장황하게, 그리고 화려하게 축제의 시작을 알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사회자의 말에 환호하기도하고,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행동의 기저에는 축제에 대한 기대감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회자는 바로 그 기대감과 흥분을 잔뜩 건드리며 점점 더 그 감정을 키워나갔다.

아무래도, 사회자가 꽤 유능한 베테랑인 모양이었다.

사회자는 한참 동안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심어 주더니, 이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자, 이제 행렬이 시작됩니다! 모두 박수와 함성으로 환영해주십시오! 그리고 즐겨 주십시오!"

그 말과 함께 조명이 꺼졌다.

사회자는 꺼진 조명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금, 거리의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그 조명의 파도는 방금 전 사회자가 있던 자리에서부터 가차랜드의 끝까지 이어졌는데, 사회자가 있던 자리에는 지휘봉을 든 지휘자가 악보를 보며 손을 휘두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휘자가 지휘봉을 휘두르자...

가차랜드 전체에 불이 들어오면서, 엄청난 수의 마칭 밴드가 나타났다.

이 마칭 밴드의 인원이 얼마나 많았는지, 도미닉 경은 그 수가 적어도 수천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지휘자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는데, 얼마나 그 움직임이 정교하던지 마치 기계가 조종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야, 설마 레이드 보스인 B.B.B를 부를 줄이야."

"음? 저 자가 빅 밴드 보스야? 레이드는 어쩌고 여기 와서 연주하고 있대?"

"오늘 같은 축제에 누가 레이드를 뛰겠냐? 할 일도 없으니 여기서 일하는 거겠지."

도미닉 경은 옆에서 중얼거리는 사람의 말을 통해 저 밴드들이 레이드에서 나오는 이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도미닉 경은 탱커 노조에게 자금을 대어 주었을 뿐 모든 축제 준비는 탱커 노조에서 관할했기에, 저 자들을 섭외한 건 탱커 노조일 거라고 단정 지었다.

"아무래도 탱커 노조에서 칼을 간 모양이구나."

"우?"

도미닉 경의 중얼거림에 도미니아 경이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니란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도미니아 경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마칭 밴드의 행진과 함께, 축제는 시작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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