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44화 (523/528)

〈 444화 〉 [443화]축제

* * *

도미닉 경이 5성이 된 그날부터, 가차랜드에선 축제가 시작되었다.

이는 오랜만에 5성 심사를 통과한 자를 위한 축제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축제는 도미닉 경의 사재로 열린 축제였다.

물론 시스템 인더스트리와 행정부, 그리고 블랙 그룹에서 소소한 지원이 있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소소한 지원에서 그쳤다.

"굉장히... 화려하군."

돈 카게야샤는 루미나리에 축제처럼 변한 길거리를 바라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 돈 카르텔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탓인지, 금전에 관련된 일이라면 제법 잘 알았다.

돈 카게야샤가 보기에, 지금, 이 거리는 못해도 건물 한 채 값의 조명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못해도 나라 몇십 개나 행성 한두 개 쯤은 살 수 있겠군."

그렇게 대략적인 금액을 예측한 돈 카게야샤가 혀를 내둘렀다.

돈 카게야샤는 가차랜드에서 손에 꼽을 만한 부자 가문인 돈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렇다는 말은, 어중간한 금액으로는 그가 이렇게 놀랄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 돈 카게야샤가 놀랐다는 말은, 반대로 이 축제에 들어간 금액이 상상 이상이라는 뜻.

"그 정도예요?"

돈 카게야샤의 말에 도미니아 경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도미니아 경은 그의 할아버지, 도미닉 경이 매우 큰 부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좋은 저택에서 흔히 보기 힘든 물건들을 잔뜩 가지고 있었으니, 그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미니아 경은 설마 그 부유함의 단위가 나라나 행성이 될 줄은 몰랐다.

이는 그녀의 어머니가 도미니아 경의 금전 감각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감춘 것이었지만, 도미니아 경에게 있어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야 삼촌께서는 타이쿤 시티에서도 손꼽히는 '농장'의 소유자시니까. 경영에서는 물러나셨지만, 소유는 여전히 삼촌 명의지."

도미니아 경은 문득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바라보았다.

이 유기농 아이스크림은 타이쿤 시티의 '농장'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의 생각보다... 아니, 모두의 생각보다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것이 도미닉 경이 원하는 것이든, 원하지 않는 것이든 간에.

"맙소사."

도미니아 경은 자기 할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20대가 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왜 도미닉 경을 존경하는지 이제야 알겠어?"

메리는 도미니아 경에게 그렇게 말하며 산탄총에 달린 도미닉 경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렸다.

메리의 열쇠고리 더미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펠트로 만들어진 작은 인형 열쇠고리 하나와 아크릴로 된 열쇠고리 하나가 추가되어 있었다.

"그래."

도미니아 경이 메리의 물음에 답했다.

"원래 가까이 있는 사람보다 멀리 있는 사람이 더 진가를 잘 안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야."

도미니아 경은 그렇게 말하며 황홀한 눈으로 빛에 휩싸인 거리를 바라보았다.

이는 도미닉 경이 만들어낸 놀라운 업적들에 대한 존경심의 눈빛이었다.

"그나저나, 다들 가면은 준비했어?"

미네르바가 그런 두 사람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번 축제의 테마가 가면 무도회라잖아."

"...그건 시스템이 멋대로 한 거 아니었어?"

도미니아 경이 미네르바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도미닉 경이 축제를 준비하는 도중 중앙 시스템은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 새로운 이벤트를 진행했다.

아무리 봐도 도미닉 경이 준비한 컨텐츠에 업혀가겠다는 의도였지만, 도미닉 경이 크게 개의치 않았기에 사람들도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축제와 더불어, [가면 무도회]이벤트를 개최합니다.]

[축제 기간 동안 여러분들은 가면을 쓰고 활동하게 됩니다.]

[가면 무도회를 위한 여러 가지 미니게임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미니게임을 통해 포인트를 얻어, 여러 가지 재미있는 분장 도구를 얻어 보세요!]

물론, 가면 무도회 이벤트가 재밌어 보인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그래도 하면 좋잖아."

미네르바가 도미니아 경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고."

도미니아 경은 미네르바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고작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래로의 회귀]이벤트가 거의 끝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네."

도미니아 경은 미네르바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삼촌, 돈 카게야샤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삼촌, 어차피 혼날 거, 조금 더 놀고 가면 안 될까요?"

돈 카게야샤는 말없이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니아 경은 간절한 표정으로 돈 카게야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안 그러면 삼촌이 들고 있는 망태기의 오리너구리 인형들에게 총알을 먹여 버리겠어요."

"!"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순진한 얼굴과는 다른 악마 같은 발언!

"그럼 삼촌은 오리너구리 인형을 가져가지 못할 거고, 저희랑 똑같이 혼나시겠죠."

"...!"

나만 죽을 수 없다는 마인드!

도미니아 경은 기사 작위를 받아 경(Lady)의 칭호를 받았지만, 이는 외면 때문이지 내면 덕분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공갈과 협박을 자행할 수 있는 것이다.

돈 카게야샤는 이 당돌한 꼬마 기사님을 말없이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돈 카게야샤는 도미니아 경이 저렇게 말해도 진짜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을 알았다.

그래도 겉으로는 기사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말로 저렇게 일을 저질렀다간 그녀의 어머니에게 혼나는 것과 별개로 그녀의 스승인 앨리스 경에게 호되게 혼이 날 것이었다.

무려 10m나 되는 거인이 눈높이를 맞춰 호통치는 그 박력이란!

돈 카게야샤는 잠시 앨리스 경을 생각하며 볼을 붉혔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도미니아 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짐짓 도미니아 경의 협박에 굴복한 투로 말했다.

"좋다, 좋아. 내가 졌다. 남은 기간 동안만 더 있다가 가자. 어차피 혼날 거, 조금 늦는다고 더 심하게 혼나는 것밖에 더 있겠느냐?"

"!"

도미니아 경과 메리, 그리고 미네르바는 돈 카게야샤의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셋 모두 이 아름다운 축제를 내심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내 곁에서 흩어지지 않는 것이 그 조건이야. 알겠어?"

"네!"

도미니아 경은 상기된 얼굴로 활짝 웃었다.

이는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세 사람은 당당하게 '네!'라고 외친 것치고는 상당히 들뜬 상태였다.

메리는 고개를 돌리고 연신 나이스를 외치고 있었으며, 미네르바는 벌써 마음에 드는 가면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도미니아 경은 가방에서 낡은 오리너구리 인형을 꺼내 끌어안으며 한껏 기쁨을 표시하고 있었다.

"자, 삼촌! 빨리 가서 가면을 골라요!"

"네! 당장 가면부터 사러 가죠!"

"예에에­!"

"...내가 실수한 건 아닌지 모르겠군."

돈 카게야샤는 한껏 들뜬 세 사람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너무 들뜬 나머지 사고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으니까.

...

"축하해."

"고맙소."

도미니카 경은 자기보다 먼저 5성을 달성한 도미닉 경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5성이 대체 뭔데?"

이제는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한 앨리스 백작 영애가 도미니카 경에게 물었다.

"글쎄."

도미니카 경이 앨리스 백작 영애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5성을 이렇게 비유했다.

"가차랜드에서 가장 강하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이지."

"...?"

앨리스 백작 영애는 도미니카 경의 비유에도 쉽게 5성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페럴란트에서는 성급의 구분이 없었기에 앨리스 백작 영애가 이해하기 더 어려웠던 것이다.

"...1성이 농노면, 2성은 자유민이야. 3성이 귀족과 왕족이고 4성이 천사, 5성이 신의 챔피온쯤 되겠네."

도미니카 경은 그런 앨리스 백작 영애를 위해 조금 더 편한 비유를 들었다.

물론 이는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대략는 비슷한 비유였다.

"페럴란트는 이제 농노와 왕족의 구분이 없어."

앨리스 백작 영애는 도미니카 경의 말에 진지하게 그렇게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차별이 없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등급을 나누지는 않아."

아무래도 앨리스 백작 영애에게 있어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뭐, 내 기준의 페럴란트는 아직 그런 차별이 있던 시대였으니까."

도미니카 경은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요즘 페럴란트는 정말 살기 좋은 곳인 모양이네."

"뭐, 그렇지."

"노력 좀 했나 봐? 성좌 앨리스 씨."

도미니카 경이 그렇게 말한 뒤에야 앨리스 백작 영애의 화가 풀렸다.

도미니카 경은 그런 앨리스 백작 영애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축제를 연다고 했지?"

"그렇소."

"언제?"

"지금. 정확하게는 준비가 끝나자마자 바로 시작될 예정이오."

"방금 전에 뜬 가면 무도회 이벤트도 그런 맥락인가?"

"아무래도 원가 절감을 위해 같이 하려는 모양이오."

"흠."

도미닉 경은 졸린 듯 도미닉 경의 무릎 위에서 꾸벅꾸벅 조는 도미니아 경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도미니카 경이 할 말을 기다렸다.

"축제라고 했지?"

"그렇소."

"그럼 이렇게 꾀죄죄하게 있으면 안 되겠네. 그렇지?"

"?"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

도미닉 경은 현재 오랫동안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기에 꽤 머리가 엉망인 상황이었다.

그나마 [시네마틱]의 효과로 보정이 되어서 다행이었지, 그 마저 없었으면 마치 다리 아래 거지꼴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머리나 자르러 가자. 가는 길에 가면도 좀 사고 말이야."

도미니카 경이 그렇게 말하며 슬쩍 곁눈질했다.

"저 친구도 같이."

"어? 나도?"

그 자리엔, 떡진 머리에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앨리스 백작 영애가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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