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1화 〉 [440화]5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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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에서 주최하는 5성 시험은 일종의 쇼케이스였다.
그 말인 즉, 이런 자리에서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뇌리에 박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도미닉 경은 성공적으로 등장한 셈이었다.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위풍당당한 도미닉 경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었으니.
"...과연. 탱커라는 건가?"
운류 무사시는 백금의 갑옷을 입고 백금의 월계관을 쓴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아니, 도미닉 경은 그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운류 무사시를 비롯해, 다른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도미닉 경은 거인처럼 느껴졌다.
그들을 아래로 굽어보는 거인.
이렇게 사람들이 착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가차랜드에서의 위압감과 분위기란, 그 사람의 '가치'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도미닉 경의 '가치'가, 순간적으로 운류 무사시의 '가치'를 잠시 넘어섰다고 말할 수 있었다.
운류 무사시는 대놓고 사기인 특성과 세상에게 사랑을 받는 듯한 스킬셋을 가지고 있었다.
방어 무시 공격. 단일 대상에게 최적화. 범위 공격기가 존재. 심지어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기술까지.
운류 무사시는 근접 딜러의 정석과도 같으며, 근접 딜러의 최고봉에 가까운 사내였다.
그런 사내가 가진 가치는 감히 가차석이나 크레딧으로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런 운류 무사시의 가치를 일시적으로 추월할 수 있었다.
오로지 단 하나, 신화 급 스킨 하나로 말이다.
물론 신화 급 스킨만으로는 운류 무사시의 가치를 넘어서기는 힘든 법이다.
하지만 도미닉 경에게는...
"아무래도, 자네의 행동하나하나를 보정하는 특성이나 특수 기술이 있는 모양이군."
"정확하오."
그렇다. 특수 기술 [시네마틱]이 있었다.
[시네마틱]은 자의적으로 도미닉 경이 이 콜로세움에서 가장 멋지게 보일 수 있는 최적의 각도와 최적의 상황을 계산해냈다.
그리고 눈은 부시지만 도미닉 경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을 정도의 빛과 적당히 역동적으로 보일 만큼의 바람을 통제하며 도미닉 경의 가치를 있는 힘껏 띄워 준 것이다.
만일 시네마틱이 아니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온몸에 거울을 잔뜩 단 사람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움직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눈부시기만 하고, 사람의 형상은 전혀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말이다.
바람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콜로세움에는 바람이라고는 일절 불지 않았다.
이는 바람으로 인해 혹시라도 있을 변수를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콜로세움의 직원들은 특수한 방법을 쓸 정도였으니, 콜로세움 내부에 바람이 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시네마틱은 그저 바람이 불어 깃발이 휘날리면 멋있을 것이라는 그 하나, 그 하나를 위해 콜로세움 내부에 바람을 불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모여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의 사람들을 비롯해 외부에서 온 지휘관들, 그리고 성좌들에 이르기까지 '도미닉 경의 카드를 뽑고 싶다.'... 아니, 그 수준을 넘어 '절대로 뽑고 만다!'의 수준까지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데 성공하고 만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성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치 서방의 반신과 동방의 검귀가 대립하는 듯한 모습에 사람들은 이미 반쯤 이성이 증발한 상황이었다.
"동양과 서양의 대결!"
"창과 방패!"
"반신과 요괴의 대결!"
이 광경을 지켜보던 기자들마저 광기에 휩쓸려 그런 기사를 쏟아 낼 지경이었으니,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볼 필요조차 없으리라.
사회자는 이런 상황에서 아주 큰 부담감을 느꼈다.
오랜만에 5성 시험이라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기도 했고, 그 관심이 너무나도 과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사회자도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였다.
그렇기에 사회자는 도미닉 경과 운류 무사시의 사이에 가서, 시험을 빙자한 쇼케이스의 룰을 알려주었다.
"이 쇼케이스에서는, 서로가 가진 가장 강력한 기술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입니다. 단 1합만 보여주면 끝이라는 소리죠."
도미닉 경은 사회자의 말을 듣고는 있었지만 눈은 계속해서 운류 무사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룰에 대해서 들은 것은 확실했기에, 도미닉 경은 계속해서 운류 무사시를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소."
"최고의 한 합이라."
운류 무사시 역시 도미닉 경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마찬가지로 도미닉 경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몸에는 여유가 한가득이었다.
도미닉 경과의 신경전과는 별개로, 운류 무사시는 이 일 합 싸움에서 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운류 무사시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콜로세움에 가득하던 환호성이 순식간에 줄어 이내 개미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그때가 되어서야,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을 도발하는 말을 내뱉었다.
"내 일합을, 버텨 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음."
운류 무사시의 도발에 와아아! 하는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콜로세움 전체를 메운 운류 무사시의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조금 전까지 살짝 역전하고 있었던 가치가, 다시 운류 무사시 쪽으로 기운 것이다.
"그렇지! 이국의 무사라면 저 정도의 패기가 있어야 하는 법이지!"
성좌들은 이국의 무사가 가진 자신감이 마음에 들었다.
"와 저런 딜러 하나 가지고 싶다..."
지휘관들은 운류 무사시의 성능과 외모에 매료되었다.
"역시 운류 무사시!"
"딜러의 희망!"
가차랜드의 시민들조차 운류 무사시의 멋에 감탄을 터뜨렸다.
운류 무사시의 위압감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이대로라면, 도미닉 경은 일방적으로 당하고 말리라.
그러나 도미닉 경도 만만치 않았다.
도미닉 경도 운류 무사시만큼이나 거친 전장을 수없이 거쳐 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요, 가차랜드에서 승승장구하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 엘리트 중의 엘리트.
그런 도미닉 경이었기에 도미닉 경은 무의식적으로 깃대를 잡은 손을 놓고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한 손에는 검을, 한 손에는 방패를 든 채 검 끝을 운류 무사시에게 겨누었다.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눈에서 줄기줄기 나오는 에메랄드빛 안광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도미니 경이 날카롭게 갈아 놓은 검 끝에 걸린 빛과, 날카로운 눈매에서 흘러나오는 눈빛을 바라보았다.
이 험악한 분위기에 다시금 콜로세움의 내부가 조용해졌다.
아무래도 도미닉 경이 무언가 한 마디 말을 할 것만 같았으니까.
그때, 도미닉 경은 검을 거두며 씨익 웃었다.
기분 나쁠 정도로 환한 웃음이었다.
"조금이라도 내가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구려."
콜로세움 내부는 여전히 침묵에 쌓여 있었다.
모두가 도미닉 경의 말뜻을 생각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때, 누군가가 도미닉 경의 말뜻을 알아챈 듯 감탄사를 터뜨렸다.
"도미닉 경의 소환 대사를 생각해 봐! '행복해서 죽을 것 같소. 행복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잖아! 그럼 저 말은,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시던가.'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거야!"
"그, 그런...!"
"과연 도미닉 경! 탱커라는 자리에 있어선 자부심이 넘친다는 건가?"
사람들은 그 사람의 해석을 통해 도미닉 경의 마음가짐을 알 수 있었다.
그 해석을 들은 운류 무사시의 미간이 아주 잠깐 꿈틀거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없었다.
운류 무사시가 쓴 가면이 그 발끈하는 모습을 가려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기세 싸움은 반반인 것 같군."
운류 무사시가 도미닉 경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을 걸었다.
"영광이오."
도미닉 경이 운류 무사시의 말에 화답했다.
"도미닉 경! 도미닉 경! 도미닉 경!"
"탱커의 희망 도미닉 경! 파이팅!"
"무사시! 무사시! 무사시!"
"저 건방진 탱커에게 참교육을!"
운류 무사시의 말대로, 콜로세움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절반으로 나뉘었다.
도미닉 경을 응원하는 이들과, 운류 무사시를 응원하는 이들.
백중세. 호각세.
그야말로 우위를 겨룰 수 없는 함성이 콜로세움을 가득 메웠다.
마치 도미닉 경의 에메랄드빛 기세와 운류 무사시의 붉은 기세가 부딪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그럼, 이제 전초전은 끝났다고 보면 되겠습니까?"
사회자는 확실히 프로였다.
이런 위압감 속에서도 자기가 할 일을 정확히 하고 있었으니까.
도미닉 경은 사회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운류 무사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일 합을 준비해주십시오. 방어자인 도미닉 경이 준비가 끝나면..."
"무사시 공이 준비가 끝나면 바로 시작하시오."
도미닉 경이 운류 무사시에게 말했다.
"내 한계를 보기 위해서니, 부디 노여워 마시길 바라오."
"음!"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대기실에서 알았듯이, 도미닉 경은 운류 무사시에게 억하심정같은 건 없었다.
그저, 정말로 자기 자기 한계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한 수를 꺼내 들기로 다짐했다.
사회자의 말에 운류 무사시는 허리춤에 찬 세 자루의 일본도 중 오오타치(大太?)를 꺼내 들었다.
이는 그가 오니기리 오오타치(?? 大太?)라고 부르는, 그가 가진 검 중에서도 가장 크고 날카로운 검이었다.
칼날의 길이만 해도 무려 1.3m나 되는 무시무시한 검!
운류 무사시는 그야말로 일 합에 모든 것을 걸려는 것이 분명했다.
"준비하게, 도미닉 경."
운류 무사시는 검집에서 태도를 빼어내어 검집은 바닥에 던지고, 검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쥐어짜듯 손잡이를 붙잡고, 도미닉 경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힘이 들어간 눈빛과는 다르게, 온몸의 긴장은 풀어져 언제라도 검을 휘두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 일격은, 그야말로 눈 깜빡할 새에 이뤄질 테니."
그리고 그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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