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0화 〉 [439화]5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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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있었군, 도미닉 경."
붉은 갑주의 무사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오랜만일세."
"오랜만이오, 운류 무사시 공."
도미닉 경은 운류 무사시의 악수를 받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런, 꽤 딱딱하게 대답하는군."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대응이 슬프다는 듯 과장된 몸짓으로 축 늘어졌다.
"뭐, 오늘 싸우기로 한 자와 가까이하면 뭐 하겠소."
도미닉 경이 씨익 웃으며 운류 무사시에게 말했다.
"이기든 지든, 마음 아프기만 할 것 아니겠소?"
"하하하! 그 말이 맞군. 그 말이 맞아."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껄껄 웃었다.
"그나저나, 여긴 무슨 일로 오셨소?"
도미닉 경이 운류 무사시에게 말했다.
"아, 별 이유는 아닐세."
운류 무사시는 정말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그저, 어째서 자네의 능력과 상극인 나에게 시험을 부탁했는지 물어보려고 한 걸세."
"음."
도미닉 경은 운류 무사시의 말에 잠깐이지만 움찔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곧 평정심을 되찾고 운류 무사시에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왕 남들에게 보여 줄 거라면, 상극인 이를 보여주는 것이 나을 것으로 생각했소."
"어째서?"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말에 의문을 가진 듯 다시금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지는 모습 보다는, 이기는 모습이 더 좋을 텐데?"
"물론 이기는 것도 좋지만..."
도미닉 경은 잠시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정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세한 이유를 말했다.
"지더라도 순순히 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오."
"순순히 지지는 않는다?"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말에 흥미를 가지고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요."
도미닉 경이 운류 무사시에게 대답했다.
"나는 탱커요. 그렇다면, 다른 이들을 얼마나 빠르게 때려 눕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오. 얼마나 다른 이들의 공격을 버틸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아는 최고의 상대이자 최악의 상성인 자와 싸우기를 원했소. 그런 이에게서, 내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과연."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말을 듣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야말로 탱커의 귀감과도 같은 말이 아니겠는가!
"확실히 한 합에 얼마나 피해를 입히는지를 보여주는 딜러들과는 다른 마음가짐이로군."
운류 무사시는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에게 예우를 갖췄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사과의 표시를 전한 것이다.
"음? 왜 그러시오?"
도미닉 경이 갑자기 예우를 갖추는 운류 무사시의 행동에 당황해 그렇게 되물었다.
그러자,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을 향해 고개를 그대로 숙인 채 이렇게 말했다.
"사실, 도미닉 경이 5성 시험으로 날 선택했다는 것에 조금 화가 났었다네.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냐면서 말일세. 그러나 지금 도미닉 경의 말을 들어 보니 내가 큰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알겠네. 이는 이에 대한 사과일세."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조금 당황한 상태였었다.
지금까지의 5성 시험에서,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굉장히 무례한 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는 원수거나, 혹은 만만해 보이는 이에게 거는 시비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까지 5성들의 시험을 확인해왔던 미스터 노바는 도미닉 경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일까?
그건 바로, 새로운 5성이 너무나도 오랜만에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가장 마지막 5성이 탄생한 이래로, 도미닉 경은 정말 수 세기 만에 나타난 새로운 5성이었다.
그랬으니 아무리 그 유능한 미스터 노바라도 이런 세세한 것들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는 표면적인 이유였고, 사실 미스터 노바는 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 하에 일부러 도미닉 경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쉽게 말하자면, 가차랜드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홍보의 수단으로 도미닉 경을 이용한 것이다.
물론 도미닉 경은 이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자초지종을 들은 도미닉 경은 자신이 한 행위가 상대를 매우 업신여기는 태도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운류 무사시에게 사과했다.
"내가 죄송하오. 설마 상대를 선택하는 일에 그런 의미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소."
"미스터 노바가 알려주지 않았나?"
"전혀. 전혀 알려주지 않았소."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말을 듣고 도미닉 경의 눈을 쳐다보았다.
비록 도미닉 경의 눈은 하나였지만, 그 눈에는 진실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렇군."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말에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어렴풋이 깨달았지만, 그 역시 가차랜드의 일원이었기에 가차랜드의 가치를 위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면 서로 실례한 셈이니, 없던 일로 하는 것은 어떤가?"
"음."
대신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제안했다.
도미닉 경은 운류 무사시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이제 서로의 오해도, 앙금도 없어진 거요."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운류 무사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이 내민 손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방금 전에 악수를 했는데, 또 왜 손을 내민다는 말인가?
"화해의 악수요."
"아."
운류 무사시는 도미닉 경의 말에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하하! 하하하하! 그렇군! 화해의 악수였군!"
도미닉 경은 갑자기 웃기 시작한 운류 무사시를 그저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 손을 잡을 거요, 말 거요?"
"암. 잡아야지. 화해하려면 잡아야 하고말고."
운류 무사시는 그렇게 말하며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암. 잡아야지."
그때, 운류 무사시의 분위기가 한 순 간에 확 바뀌었다.
방금 전에 환하게 웃던 사람 좋은 이는 어디 가고, 여기에는 한 마리의 야수만이 남아 있었다.
"다만, 지금은 아닐세."
운류 무사시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자네의 말대로라면, 그 손을 잡을 시 싸우고 나서 마음이 아파지지 않겠나. 그러니 잡지 않겠네."
운류 무사시는 그렇게 말하며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운류 무사시는 문밖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도미닉 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만, 싸우고 나서 그 악수를 받아주겠네. 그때면, 마음이 아플 일도 없지 않겠나."
그 말과 함께, 도미닉 경과 운류 무사시를 가르고 있던 문이 쾅 닫혔다.
도미닉 경은 손을 내민 자세 그대로 운류 무사시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손을 거두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무구 정비용 천을 꺼내더니, 검과 방패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아주 반짝반짝하게, 그 누가 보더라도 그 찬란함에 넋을 잃을 수 있게.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도미닉 경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게.
...
"여기 표 4개요."
"아, 감사합니다."
돈 카게야샤와 도미니아 경, 메리, 그리고 미네르바는 콜로세움에 도착하자마자 표 4장을 끊었다.
물론 이 표는 대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관전을 위한 것이었다.
"이게 그 표네요."
미네르바가 돈 카게야샤가 나눠준 표를 보며 말했다.
"세상에, 내가 도미닉 경이 5성이 되는 순간을 보게 될 줄이야."
경찰복을 입고 있는 메리는 거의 숨이 넘어갈 듯 흥분해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저희 할아버지가 당대 최고의 탱커가 되었던 순간이라는 거죠?"
"그렇지."
그리고 도미니아 경은, 미묘한 표정으로 돈 카게야샤에게 말을 걸었다.
"자, 이제 곧 시작합니다! 줄 서서 입장하세요! 다 입장하실 수 있으니까 줄 서세요, 줄 서!"
"아, 이제 우리도 가도록 하자."
돈 카게야샤는 도미니아 경들을 이끌고 콜로세움 내부로 향했다.
그리고 직원의 안내받아 콜로세움의 관객석에 앉았다.
이 네 명이 앉은 관객석은 전장에서 손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적어도 전투는 잘 보이겠네요."
"그리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돈 카게야샤가 한껏 기대하는 미네르바에게 말했다.
"보통 이런 건 거의 일격에 끝나거든. 삼촌은 탱커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만..."
"자! 이제 경기가 시작합니다!"
무대 위에서 사회자가 나와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사회자는 과한 움직임으로 손을 들어, 동쪽 게이트로 쭉 뻗었다.
"오늘의 쇼케이스... 아니, 시험을 도와주실 5성, 운류 가문의 운류 무사시 님을 소개합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게이트가 드르륵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그는 인주를 먹여 번들거리는 붉은 갑주를 입은 붉은 무사였다.
그는 허리춤에 세 자루의 검을 끼고, 붉은 도깨비의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그가 걸어가는 길에는 발자국이 일체 남지 않았다.
그저 저벅저벅거리는 발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저 사람이 바로, 운류 무사시..."
"미래에서도 1티어로 군림하시는 분이지."
도미니아 경이 놀란 눈으로 운류 무사시를 바라보았다.
도미니아 경이 바라보는 운류 무사시는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눈앞에 있는 저 붉은 무사는 무시무시한 살기... 아니, 살기를 넘어 귀기(??)에 가까운 위압감을 내뿜고 있었는데, 그 기운이 얼마나 강한지 콜로세움 내부에 있는 모두가 얼어붙을 정도였다.
"저게 바로... 5성 딜러의 모습..."
도미니아 경은 저 엄청난 모습을 일단 눈에 담았다.
도미닉 경의 손녀인 도미니아 경 조차 시선을 빼앗길 정도로, 운류 무사시의 모습은 모두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물론, 도미닉 경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ㅈ, 자! 다음으로는 오늘 새롭게 5성이 된 자이자, 탱커 중 유일하게 5성이 된 탱커계의 희망! 도미닉 경을 소개합니다!"
사회자는 괜히 프로가 아닌 듯,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진행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서쪽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백금의 갑옷을 입고 백금의 월계관을 쓴 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등에 방패를 메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빛나는 검집이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손에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깃발을 든 채 전진했다.
그리고...
전장의 중앙에 그 깃발을 꽃아버렸다.
그 순간, 전장에 감돌던 위압감이 싸그리 사라지고 말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저 위압감이 줄어들었을 뿐이지만, 이미 엄청난 위압감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서 위압감이 덜어지며 사라진 것처럼 착각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 착각은, 곧 눈앞에 있는 저 기사에 대한 경외심으로 이어졌다.
저런 딜러가 내뿜는 위압감을 한 번에 해소하는 저 대단한 이의 정체는 바로 누구인가?
저 강력한 5성의 앞에서, 반신의 모습을 하고 당당히 서 있는 저 자의 정체는 대체 누구인가?
그렇다.
바로 도미닉 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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