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8화 〉 [427화]시네마틱
* * *
몇 분 전, 감독은 다른 관계자들과 담배를 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도미닉 경이 제 때 올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하는 자리였다.
스태프 중 하나가 결국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감독에게 직접 물었다.
그는 도미닉 경이 푸른 소용돌이에서 나룻배를 타고 떨어졌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스태프 중 하나였다.
"도미닉 경, 제 때 올 수 있을까요?"
"온다."
감독은 단언했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와서 분장하고 대본 숙지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자연스럽게"
"필요 없어."
"...네?"
"도미닉 경에게 그런 건 필요 없어."
감독은 스태프의 말을 일축했다.
스태프는 감독에게 무언가 반론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감독은 굉장히 단호하고 진지한 눈으로 스태프를 바라보았다.
"네가 도미닉 경을 봤으면, 나랑 똑같은 반응이었을 거다."
"?"
"네가 [시네마틱]의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그래."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스태프를 다독였다.
"[시네마틱]이라니, 그게 뭡니까?"
"쉽게 말해서, 모든 이목이 도미닉 경에게 집중되는 기술이지."
"...그게 지금 상황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겁니까?"
"글쎄."
감독은 거의 다 타들어 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스태프에게 말했다.
"기다려 봐. 분명 도미닉 경은 모두의 이목을 끌면서 도착할 거니까."
그렇게 말하는 감독의 눈에는, 어떠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
도미닉 경은 꽤 순항하며 블랙 그룹 본사 근처에 도착했다.
"잘하면 제시간에 도착할 수도 있겠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말했던 5분은커녕 정시에 도착할 수도 있을 만한 시간이었다.
"별일만 없다면 좋겠군. 그래 별일만 없다면 말이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네비게이션이 알려 준 속도대로 안전하게 비행선을 몰았다.
이대로라면 충분히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만 같던 그때.
[경고! 갑작스러운 야생 동물 출현!]
"...음?"
도미닉 경은 갑자기 경고음을 내뱉는 네비게이션에 당황했다.
야생 동물이라니,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때, 도미닉 경은 갑자기 큰 충격과 함께 비행선이 마구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무, 무슨 일이지?"
도미닉 경은 아직 흔들리는 비행선의 내부에서 애써 자리를 유지하려고 애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드래곤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요즘엔 드래곤을 야생 동물로 치나 보군."
도미닉 경은 드래곤을 무시하려고 했으나, 드래곤은 비행선과 부딪친 것이 자존심 상했는지 자꾸 비행선에 머리를 들이박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비행선에 있는 무기로 반격이라도 하려고 했으나...
[경고! '야생 드래곤'은 현재 멸종 위기종입니다. 드래곤에 대한 공격은 야생 동물 보호법에 의해 1,000만 크레딧 이상의 과태료나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도미닉 경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지금 당장 죽게 생겼는데 드래곤에 대한 공격이 대수겠는가?
하지만 도미닉 경은 쓸데없이 규율을 잘 지키는 기사였다.
결국 도미닉 경은 야생 드래곤에 대한 공격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은 계속해서 도미닉 경의 비행선에 머리를 박았다.
그러나 비행선은 도미닉 경의 스탯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었다.
그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드래곤은, 이내 비행선을 향해 있는 힘껏 브레스를 뿜었다.
물론 이게 보통 브레스였다면 도미닉 경의 비행선은 멀쩡했겠지만...
[치명타! 방어 무시 피해!]
이 브레스가 하필이면 치명타가 터져 방어 무시 피해가 된 것이 문제였다.
"맙소사."
결국, 도미닉 경의 비행선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조타 시스템이 망가졌습니다.]
[비행을 위한 가스가 새어 나가고 있습니다.]
[고도가 점점 낮아집니다. 추락하고 있습니다!]
비행선이 불타오르자, 지속해서 비행선 내부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이제 비행선을 움직이지도, 고도를 올리지도 못한 체 그저 비행선이 움직이는 대로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그래도 방향은 맞으니, 이대로만 간다면..."
도미닉 경은 현재 비행선이 블랙 그룹 본사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운이 좋다면, 도미닉 경은 바로 블랙 그룹 본사에 떨어져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불타는 비행선이 사람들이 많은 곳 근처에 떨어지면 분명히 문제가 생기겠지만, 도미닉 경은 아직 그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은 오직 약속 장소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물론, 불타는 비행선이 착지한 이후에 생기는 문제도 도미닉 경이라면 크게 문제가 생길 이유가 없었다.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였고, 여차하면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배상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가차랜드에서는, 가끔 목숨보다 돈이 더 가치가 있는 법이었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
아무튼, 그렇게 드래곤에게 공격당해 떨어지던 비행선은, 다행스럽게도 무대 위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다행스럽다는 말은, 그나마 관객들이 있는 쪽이나 발표회 관계자들에게 떨어지지 않아 인적 피해가 극히 적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무대 위에 있던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글쎄. 제로에게는 모르겠지만, 히메는 아니었다.
사람이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으면 다섯 개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에?"
처음은 부정.
"에에?"
다음은 분노.
"에에에에?"
협상을 지나,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우울.
"아이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그리고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
그러나 해적 리얼리티 쇼크에는 그런 것 따위 없었다.
그저 공포! 압도적인 공포!
히메가 가진 해적에 대한 공포는 분명 후천적인 학습의 결과였다.
그러나 알파 테스트, 그리고 베타 테스트를 거치며 히메가 여우 귀와 꼬리를 가지게 되었듯, 히메의 해적 리얼리티 쇼크는 이미 선천적인, 유전자에 각인된 수준까지 변질한 상태.
지금까지는 그래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해적에 대한 공포심이 많이 희석되었던 상태였으나...
"아이에에에에에에에!"
현재 히메는 언찬트 콜라보로 인해 초심을 어느 정도 되찾은 상태였다.
그 말인즉,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그녀가 가진 해적 리얼리티 쇼크 인자가 발현되었다는 소리다.
그나마 발전한 점은, 바로 기절하지는 않았다는 점일까.
그게 히메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의 발전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바로 이거지!"
"언찬트다! 이게 바로 언찬트야!"
"그렇지! 닌자는 해적에게 이길 수 없다!"
놀랍게도,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사람들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연극이나 어트랙션으로 보고 있는 중이었다.
도미닉 경은 잘 몰랐을지도 모르겠지만, 도미닉 경이 처음 출연했던 언찬트라는 게임은 제법 인지도가 높은 인디 게임 중 하나였다.
괜히 돈 카스텔로가 돈줄로 삼고 사업 아이템으로 고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아임 낫 리틀을 비롯한 방송형 성좌들 사이에서는 이런 한 판 한 판 짧게 즐길 수 있는 로그라이크 게임은 꽤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여러 가지 이유가 맞물려, 언찬트는 꽤 거대한 팬덤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그 게임성과 설정놀음하기 좋은 설정들 때문에 더 깊숙이 파고드는 마니악한 팬층도 제법 있었다.
"그나저나 저런 비행선은 본 적이 없는데, 설정 오류 아니야?"
"멍청하긴! 도미닉 경은 그저 해적 기사라고만 나왔잖아. 정확한 설정이 풀린 적이 없다고. 하늘 해적이었다고 하면 모든 게 설명이 돼!"
"하, 하긴. 도미닉 경 전용 아이템 중 태엽장치가 있었지. '어디에서 온 지 모를 태엽장치'라는 건 비행선의 부품을 뜻하는 것이었나!"
...이 정도로 마니악 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아무튼, 여기 있는 모두는 이 모든 것이 실제 상황이라는 사실을 모른 상태로, 그저 연출의 일부라고만 여겼다.
"어쩌면 여기서 2년 만에 설정의 일부가 풀리는 걸지도 몰라."
진심으로 언찬트를 좋아하는 이가 그렇게 말했다.
"뭐, 게임은 모르겠지만 연출 하나는 진짜 힘을 빡 준 모양이네."
언찬트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를 즐기는 사람이 말했다.
"...일단 성능을 좀 봐야겠는데."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에 진심인 자들도 한 번쯤은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렇게 불타는 비행선은 그대로 무대에 떨어져 반으로 쪼개졌다.
다행스럽게도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무대의 절반은 이미 불타는 비행선으로 인해 엉망이 된 상황.
"...아이고."
사람들의 이목이 비행선에 집중되었다.
"설마 거기에 드래곤이 있을 줄이야. 하마터면 죽고 다시 올 뻔했소."
그리고 비행선의 갈라진 틈새에서, 머리를 부여잡은 도미닉 경이 검을 뽑아 든 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무대 아래의 관중석에서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큰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