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2화 〉 [421화]히어로즈 오브 레전드
* * *
"그러니까, 이번 트레일러의 주인공으로 나를 쓰고 싶다고 했소?"
"그렇습니다."
도미닉 경은 눈앞에 있는 감독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감독은 도미닉 경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온함을 유지했다.
"하지만 난 그 모드를 한 적도 없소."
"이번에 한번 해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죠."
"그게 무슨 소리요?"
"이번 트레일러는 새롭게 개편된 모드에 대한 트레일러입니다. 그 말인 즉, 새로운 캐릭터가 나와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죠."
"흠."
"그렇게 되면, 이것은 트레일러임과 동시에 PV가 되는 겁니다. 새로워진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에 새롭게 도미닉 경이 합류한다! 그야말로 사람들에게 '완전히 달라진 AOS모드'라는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는 거지요."
"그렇구려."
도미닉 경은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의 말은 제법 그럴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이 대화의 논점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오?"
"그건..."
감독은 잠시 난감하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나 이내 도미닉 경에게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도미닉 경의 이득은 바로 도미닉 경의 명성입니다.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 뿐만 아니라 여러 도시에서 그 인지도를 높여나가고 있죠."
그렇게 말한 감독은 입이 마르는 듯 침을 꿀꺽 삼키더니, 이내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현재 가차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모드는 AOS모드입니다. 이는 사실이죠. 저희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의 인기가 그 증거입니다."
그렇게 말한 감독은 어디선가 서류 몇 장을 꺼냈다.
그곳에는 어떤 모드에 어떤 사람들이 몇 % 비율로 있는지에 대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현재 전체 모드에서 AOS가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45%입니다. 그 말인 즉"
감독은 도미닉 경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이 하나의 모드로, 지금까지 도미닉 경이 쌓아온 모든 인지도만큼 추가적인 인지도를 쌓을 수도 있다는 소리지요."
"!"
도미닉 경은 감독의 말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긴 했지만, 도미닉 경의 목적은 가차랜드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명성과 명예가 필요한 법.
그런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이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이는 감독의 함정이기도 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모드에만 수치를 한정시켜 도미닉 경을 현혹시켰다.
가차랜드 자체에서 모드가 차지하는 비율로 따지면, AOS 모드가 가차랜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5~7% 사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데도 큰 수치인 것은 확실했다.
여기서 일단 도미닉 경은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에 참가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살짝 기울었다.
감독은 명예와 관련된 말이 잘 먹힌다는 걸 깨닫고는 계속해서 그쪽으로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저희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는 지금 살짝 주춤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AAA급 타이틀입니다. 그 말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윈윈이라는 겁니다. 저희는 도미닉 경이 가진 비AOS 모드 유저들에게 저희 모드를 알릴 수 있는 기회고, 도미닉 경에게 있어선 AOS 모드 유저들에게 인지도를 넓힐 기회라는 뜻입니다."
"음."
"그뿐이겠습니까? 명성이 높아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연스럽게 인지도가 높아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신과 관련된 굿즈가 늘어나겠지요. 그럼 또 인지도가 높아지는 선순환이 계속되는 겁니다. 그러니"
"하겠소."
"!"
도미닉 경은 여기서 바로 마음을 굳혔다.
애초에 도미닉 경은 5성을 위해 GOTY급 멀티미디어에 출연해야만 했다.
그리고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 모드는 이에 걸맞은 모드였고.
도미닉 경은 이렇게 딱딱 맞아들어가는 상황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제안을 수락하고 만 것이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이번 트레일러가 확 살아날 것 같군요!"
"고마워할 것 없소. 서로 이득이 되니 수락한 거니까. 그나저나영상은 언제, 어떻게 찍을 생각이오?"
도미닉 경은 예전에 언찬트의 트레일러를 찍을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감독에게 일정과 계획을 물었다.
"아, 걱정하지 마시죠. 이미 다 찍어두었으니까요."
"?"
도미닉 경은 감독의 말에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에 계약을 끝냈는데, 벌써 영상을 다 찍었다는 말인가?
설마 계약하는 장면을 내보내겠다는 건 아니겠지?
도미닉 경이 그렇게 혼란에 빠져 있자, 감독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아, 조금 전에 도미닉 경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 때 영상을 우연히 따서 말입니다. 그걸 베이스로 만들어 볼까 합니다."
"아."
도미닉 경은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없는 것이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아니지, 한 가지 있습니다."
"무엇이오?"
감독은 도미닉 경에게 한 가지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저희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 개발팀에 가셔서 모션 캡쳐 좀 해주시지요."
"아."
도미닉 경은 그 말에 그가 처음 출연했던 인디 게임, 언찬트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도미닉 경은 모션 캡쳐로 온갖 행동을 해가며 고생했으니까.
그래도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 팀은 AAA급 개발사니까 조금 더 편하게 모션 캡쳐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도미닉 경은 자신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직접 경기도 한 번 뛰어 주시면 더욱 좋구요."
"경기라."
"네. 보자... 이왕이면 이때 전후가 좋겠군요."
감독은 바로 옆에 있던 달력에 적힌 한 날짜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어째서요?"
"이때 대회가 있어서요."
"대회?"
"네. 대회."
도미닉 경은 대회라는 말에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가장 최근에 겪었던 레이싱 대회에서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참 엉망이었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감독에게 말했다.
"꼭 해야만 하는 거요?"
"그럴 리가요. 안 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하면 좋다는 거지요."
"흠."
도미닉 경은 감독의 말에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예전에 다른 대회에서 데인 기억 때문에 조금 과민반응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입에 거품을 물고 거절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생각은 해 보겠소."
"그 정도로도 좋습니다."
결국 도미닉 경은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으니 이만 가 봐야겠군. 사실, 오늘 꽤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겪어서 말이오."
"힘든 일이라. 도미닉 경의 성능을 생각하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상도 못하겠군요. 우주 바깥의 외신이라도 만났다거나?"
"뭐, 성좌들도 다 먹고 사는... 뭐 그런 이들이오. 그런 이들에게 피곤할 일이 뭐가 있겠소?"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만났던 성좌들을 생각하며 그렇게 말했다.
아임 낫 리틀, 앨리스 백작 영애, 붉은 장미의 거인...
사실, 도미닉 경은 성좌들보다는 종자 앨리스의 어머니가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키가 수천km에 달하는 서리거인 말이다.
"오늘은 좀 쉬고, 내일 가서 모션 캡쳐를 시작하겠소."
"그럼 그쪽에도 그렇게 말해 두지요."
도미닉 경은 그 말을 끝으로 숲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좋아."
남아 있던 감독은 주먹을 꽉 쥐고 작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러고는 기쁨에 차 방언을 중얼거리더니, 이내 모든 스태프와 연기자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자! 오늘 촬영 끝! 모두 수고했다!"
"...?"
"오늘 회식할 예정이니까, 회식할 사람은 남고 피곤한 사람은 집에 가! 나중에 내가 또 지랄할 거라고 일부러 남는 거면 안 그럴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감독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세트장에 울려 퍼졌다.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만 할 수 있다는 도미닉 경과의 계약을 따낸 기쁨에 젖어 한 행동이었으나, 다른 스태프들과 연기자들은 도대체 감독이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어 고개만 갸웃할 뿐이었다.
...
도미닉 경은 이튿날 일찍 일어나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 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미닉 경은 어제 너무 피곤한 나머지 가야 하는 길을 물어본다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으나, 다행스럽게도 어떻게 알았는지 감독이 아침 일찍 도미닉 경을 태우러 도미닉 경의 집 앞까지 차를 끌고 왔다.
"꽤 좋은 곳에 사시는군요."
감독은 도미닉 경의 집을 보며 감탄했다.
사실, 이런 매물은 요즘 돈을 주고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얼마나 관리를 잘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집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것 같군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소."
"겸손하기도 하시지."
감독은 도미닉 경의 말을 겸양의 말로 여겼으나, 도미닉 경의 말은 사실이었다.
도미닉 경은 처음 이 집을 산 이후, 단 한 번도 제대로 정원을 가꾼 적이 없었다.
그 말인 즉, 지금 도미닉 경의 마당은 처음 샀던 그대로라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감독이 극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으니, 도미닉 경의 집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알 수 있으리라.
"음. 다 왔군요. 여기입니다."
감독은 뒷 좌석에 탄 도미닉 경에게 다 왔다고 말했다.
"...? 여긴..."
도미닉 경은 고개를 차에서 내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딘가 익숙한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블랙 그룹 본사가 아니오?"
그곳은, 블랙 그룹 본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