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화 〉 [418화]이스터 에그 뜻 밖의 항해
* * *
도미닉 경은 나룻배를 타고 가다가 문득 점점 주변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주변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수면이... 내려가고 있다?"
도미닉 경은 은근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다 중심지로 향하는 곳에는 이스터 에그 형식으로 기둥이나 섬들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그런 기둥이나 섬들의 젖은 부분을 보면 대략 어느 정도 수면이 낮아졌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었다.
"...맙소사."
가장 가까이 있는 기둥을 확인한 도미닉 경은 곤란한 듯 침음성을 흘렸다.
젖은 부분과 현재 해수면의 높이가 거의 10~15미터는 차이가 나고 있었다.
파도가 치고 있다는 것을 감안 하더라도 심각한 차이였다.
"아무래도 주변 어딘가로 가서 잠시 기다리는 것이 좋겠...?"
도미닉 경은 이 알 수 없는 상황에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근처의 섬에 정박해 상황을 지켜보자는 생각을 떠올렸다.
도미닉 경은 가장 가까운 섬을 확인하고 노를 저어 그곳으로 향하려고 했으나, 도미닉 경은 섬으로 가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도미닉 경은 점점 멀어지는 섬을 바라보며 당황했다.
그때, 도미닉 경은 문득 주변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도미닉 경 주변의 물들이 어느 한 곳을 향해 맹렬하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해류가... 이상해졌다?"
도미닉 경은 잠시 멍하게 물의 흐름을 바라보다가 이내 등줄기에 소름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건 굉장히 불길한 징조였으니까.
도미닉 경은 바다에 대해서 잘 모른다.
도미닉 경은 생애의 대부분을 육지에서 보냈고, 이로 인해 바다에 대한 건 정말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니 그런 도미닉 경이 해류를 볼 수 있을 정도라는 건, 지금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소리였다.
도미닉 경은 필사적으로 흐름의 반대편으로 노를 저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이런 상황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에, 계속해서 흐름에 끌려가고 있었다.
"엇!"
그때, 도미닉 경은 문득 타고 있던 나룻배가 붕 뜬 느낌을 받았다.
아니, 그건 느낌뿐만이 아니었다.
흐름을 타고 커진 파도가 도미닉 경의 나룻배를 하늘로 날려 버린 것이다.
도미닉 경은 순간 노를 잡은 손을 떼고 나룻배를 붙잡았다.
나룻배는 다시 바다에 철썩 떨어졌으나, 다행스럽게도 뒤집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런!"
지금까지 나룻배를 움직이던 노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도미닉 경은 어쩔 수 없이 이 거센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도미닉 경이 탄 나룻배는 어디론가 끌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른 몇몇 부유물들과 함께.
...
"맙소사."
도미닉 경은 문득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처음에 도미닉 경은 그것이 파도가 부서지며 나타난 포말이거나, 혹은 비가 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도미닉 경의 오판이었다.
아니, 어쩌면 절반은 맞췄을지도 모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바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하늘이었다.
조각조각난 하늘이 바다에 빠져 하얀 포말을 만들어냈으니, 도미닉 경의 추측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닌 셈이다.
도미닉 경은 자그마한 나룻배를 꼭 붙잡았다.
해류는 더더욱 거세지고 있었고, 가는 길은 이제 무너진 하늘로 인해 암초 미로가 되어 버렸다.
도미닉 경이 헤쳐나가기엔 너무나도 험준한 지형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에겐 해류를 읽는다거나 뛰어난 조타술을 가진 대신 그런 기술들을 대신할 것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시네마틱]이었다.
시네마틱은 도미닉 경과 암초가 부딪칠 것 같을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게끔 만들었다.
물론 나룻배가 조금 손상되는 일이 있었으나, 가라앉을 정도는 아니었다.
해류는 더더욱 급해졌고, 지형은 더더욱 험준해졌다.
시네마틱으로도 채 피하지 못한 암초들과 부딪쳤고, 나룻배는 파도를 따라 요동쳤다.
파도로 뛰어오른 나룻배가 바로 암초를 향해 돌진할 때는 아무리 도미닉 경이라도 등줄기가 서늘해질 정도였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의 높은 방어력과 체력 스탯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막아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이렇게 버틸 수는 없는 노릇.
도미닉 경은 이제 슬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
그런 도미닉 경의 마음을 하늘이 알아차린 것일까?
도미닉 경은 마침내 무너진 하늘로 이루어진 암초 미로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미로를 빠져나온 것에 기뻐할 수가 없었다.
"산 넘어 산이로군."
그것은 바로, 도미닉 경의 눈앞에 회오리치는 거대한 소용돌이 때문이었다.
소용돌이는 원뿔 모양을 그리며 아래로 아래로 물을 빨아들이고 있었는데, 그 물살이 얼마나 빠른지 무너진 하늘이 소용돌이에 닿는 순간 완전히 가루가 되어 버릴 정도였다.
"맙소사."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을 보며 탄식을 터뜨렸다.
그러나 도미닉 경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건 없었다.
무언가를 조종할 것도 없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해류에 몸을 맡기는 것뿐이었으니까.
"흐."
도미닉 경은 이 짜증 날 정도로 불합리한 상황에서... 오히려 웃었다.
"뜻밖에 이런 이스터에그라면 괜찮겠군. 짜릿한 느낌이 있으니."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방금 전까지 도미닉 경은 이스터 에그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는 채 이곳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말인 즉, 도미닉 경이 보기엔 이곳은 그저 난해하기만 하고 재미는 없는 곳이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어트랙션처럼 만들어진 이스터 에그만큼은 마음에 쏙 들었다.
웬만해서는 긴장감을 느낄 수 없는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이만큼의 긴장감을 주었으니까.
...물론 이건 도미닉 경의 생각처럼 이스터 에그도, 어트랙션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설마 이것이 코더 하나의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재밌긴 하지만... 두 번 다시 오고 싶지는 않은 곳이야."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소용돌이 속으로 점점 깊숙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처럼, 도미닉 경은 서서히 가운데 생성된 검은 구멍을 향해 끌려들어갔다.
그나마 차이점을 찾아보자면, 개미지옥과는 달리 도미닉 경은 뱅글뱅글 맹렬히 회전하고 있었다는 점일까.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마지막으로 초당 몇십 번의 회전을 하며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다.
소용돌이는 도미닉 경을 빨아들인 뒤에도, 계속해서 이 세상을 빨아들일 뿐이었다.
...
모든 코더들은 자신들만이 쓸 수 있는 우회로를 만든다.
무슨 일이 터졌을 때 빠르게 대응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그냥 있어 보여서라는 것도 그 이유였다.
이런 우회로는 일반인이 알 수도 없고, 알 지도 못 하는 곳에 보통 존재했다.
예를 들면, 바닷속에 있던 마개 속이라던가.
"...여긴 어디지?"
도미닉 경은 방금 전 소용돌이를 타며 경험한 맹렬한 회전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상태 이상에 제법 내성이 있는 도미닉 경이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방금 전의 회전은 무시무시했다.
도미닉 경이 정신을 차려보니, 그곳은 여전히 나룻배 위였다.
어떻게 나룻배가 그 맹렬한 회전 속에서도 멀쩡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도미닉 경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의 모습이 굉장히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여긴 참... 신비한 곳이로군."
도미닉 경은 검은 배경에 형광색으로 빛나는 초록 글자들이 마치 오선보처럼 이어지는 곳에 있었다.
도미닉 경을 태운 나룻배는 그곳을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나룻배 아래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 하나하나가 글자들의 뭉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Liquid_Water_PourWater]
[0.0.117]
도미닉 경은 이 글자들도 이스터 에그인지 확인하기 위해 자세히 읽어 봤으나, 도미닉 경은 이 글자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흠. 아무래도 모르겠군..."
도미닉 경은 턱을 쓰다듬으며 나룻배가 움직이는 대로 코드들의 위를 움직였다.
마치 강에서 배를 타듯이 말이다.
도미닉 경은 문득 휴대폰을 꺼냈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보려고 말이다.
그러나 이곳 만큼은 통화권 이탈이라고 되어 있을 뿐, 검색도, 통화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큰일이군."
도미닉 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장소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있었으니까.
도미닉 경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때, 도미닉 경은 문득 폰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도미닉 경은 다시 폰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S.P.Y앱이 자기 멋대로 켜지더니, 이내 그 안에서 검은 슬라임이 튀어나왔다.
"슬라임?"
슬라임은 도미닉 경의 말에 기쁘다는 듯 뭉글뭉글 뾰잉하더니, 이내 갑자기 나룻배의 아래로 다이빙했다.
"!"
도미닉 경은 슬라임이 뛰어내린 곳에서 푸른 게이트가 생성되는 것을 확인했다.
아마 코드 사이를 비집고 다른 곳과 연결을 시킨 모양이었다.
하긴. 슬라임은 애초에 도미닉 경의 폰 안에서 도미니카 경의 폰과 연결을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 이런 것쯤은 간단했을 것이다.
슬라임은 이제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다시 도미닉 경의 폰 속으로 들어갔다.
도미닉 경이 고맙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슬라임은 천만에. 라는 듯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도미닉 경은 일단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회전하는 푸른 게이트 속으로 몸을 던졌다.
여기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야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도미닉 경이 뛰어든 회전하는 푸른 게이트는, 잠깐의 시간 뒤에 다시 닫혔다.
코드들은 여전히 멀쩡하게, 그리고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