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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17화 (505/528)

〈 417화 〉 [416화]이스터 에그 51지역

* * *

도미닉 경은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졌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도미닉 경은 어째서인지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글리치 부르크의 기억이 말이다.

"설마 이번에도 글리치 부르크로 향하게 되는 건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한참의 시간을 더 떨어진 뒤에야, 도미닉 경은 어딘가에 착지할 수 있었다.

"밝군."

도미닉 경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글리치 부르크의 어두컴컴함과는 달리, 이곳은 굉장히 밝았다.

아래로 한참 떨어졌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도미닉 경은 문득 하늘 위에서 어떠한 이질감을 느꼈다.

도미닉 경이 하늘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조금 전 도미닉 경이 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우주 정거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길게 금속의 관이 내려와 있었는데, 아무래도 도미닉 경은 저 관을 통해 이곳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여기는 아직 12지역이라는 소리인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도미닉 경은 또 뭔가 이상한 일에 휘말린 모양이었다.

"뭐, 일단 여기를 빠져나갈 길을 찾아봐야겠군."

도미닉 경은 이제 이런 것 정도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나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가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당신은 누구요?"

도미닉 경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도미닉 경은 문득 그 소리가 소의 울음소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도미닉 경은 아무리 주변을 탐색하는데 정신이 팔렸다고는 해도 그의 뒤를 잡혔다는 사실에 놀라 검과 방패를 뽑아 들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두 배로 놀라고 말았다.

그의 등 뒤에는 정말 소가 있었다.

그것도 양복을 입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소가!

"무, 무슨 일이오?"

양복을 입은 소는 놀란 듯 양손을 들어 올리고는 그 순박해 보이는 눈을 끔뻑였다.

소가 양손을 들어 올리자 도미닉 경은 그 소의 손에 도시락 통 하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 도시락통에는 크레용으로 낫과 망치가 그려져 있었으며, 'There is no Moscow level'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 소의 모습을 보며 공격 의사가 전혀 없음을 알아차리고 천천히 무기를 내렸다.

소는 식겁했다는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마터면 A++ 마크 달고 출하될 뻔했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소는 도미닉 경에게 다시 한번 정체를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뭐요?"

도미닉 경은 조금 전의 행동으로 눈앞의 소가 공격 의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자신에게 적대적이지 않았으니, 도미닉 경도 소를 적대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요."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 외국식 이름처럼 보이니 경 페럴란트의 도미닉이오?"

경이라는 성씨가 있나? 라면서 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기사 작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소."

"아. 영국인인가?"

소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인처럼 생긴 걸 보니, 확실히 영국쪽 사람인 것 같은데... 아니지, 페럴란트면 독일식 발음인가? 모르겠네..."

소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내가 물어볼 차례로군. 여기는 어디고, 당신은 누구요?"

도미닉 경은 눈앞에 있는 소에게 정체를 물었다.

더불어, 이곳의 정체도.

"여긴 51지역이라고 불리는 곳이예요. 그리고 저는... 글쎄요. 도시락 먹는 소라고 불러 주세요."

양복을 입은 소가 말했다.

"만들어진 이유는 아직 모르겠군요. 일단 창조자 분께서 우리를 어떤 이유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도시락을 먹어야 해요."

그렇게 말한 양복을 입은 소는 근처의 벤치에 앉더니, 이내 도시락 통의 뚜껑을 열었다.

그곳에는 토마토소스로 볶아진 건초더미가 있었는데, 소는 젓가락을 들고 마치 파스타를 먹듯 그 건초를 호로록 먹기 시작했다.

"...정신이 없군."

그때였다.

저 멀리서 갑자기 무지개 빛 오로라를 흩뿌리는 유니콘을 탄 개가 나타났는데, 그 개는 다급하게 소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 개가 누런 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데, 전체적인 모습이 뒤죽박죽 섞인 것이 아무래도 잡종같아 보였다.

아무튼 누런 털의 개는 머리에 터번을 쓰고 한 손에는 황금 잔을, 한 손에는 황금 홀을 들고 있었는데, 개는 소에게 다급하게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야! 뭘 그리 느긋하게 있어! 오늘 신 캐 나오는 날이잖아! 심지어 인권캐라 뽑아야 한다고!"

"아, 맞다."

"아, 맞다는 무슨! 빨리 와! 총알은 장전되어 있지?"

"무­울론이지."

소는 갑자기 품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이내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허공에 한 발을 쏴 안에 총알이 들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탕! 하는 소리가 51지역에 울려 퍼졌다.

"아, 갑자기 총을 쏴서 미안 합니다. 많이 놀라셨죠?"

소는 화들짝 놀라며 도미닉 경의 눈치를 보았다.

"괜찮소."

도미닉 경은 여전히 소가 공격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괜찮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시계를 보고 도미닉 경에게 양해를 구했다.

"미안 해요. 아무래도 가 봐야 할 것 같군요. 대화 즐거웠습니다."

"빨리 와!"

그렇게 말한 소는 개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나저나 소설도 있겠지?"

"그래. 네가 좋아하는 소설도 있으니까, 당장 가자고! 아. 너도 같이 가자, 친구!"

개는 지나가는 길에 진주 목걸이를 한 돼지를 데리고 갔다.

"흠..."

도미닉 경은 이 엉망진창인 세계를 보며 정신이 없었다.

도대체 이곳은 뭐 하는 곳이고,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단 말인가?

"저기요..."

그때, 도미닉 경은 또 한 번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거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그건 소리가 아니었다.

지직거리는 느낌과 함께,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써진 대사였다.

도미닉 경은 이런 식의 대화법에는 익숙하지 않았기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죄송한데, 뒤를 좀 봐 주시겠어요?"

도미닉 경은 자기를 부른 이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저, 예쁜가요?"

도미닉 경은 등 뒤에 있던 누군가의 말에 그 존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도미닉 경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도미닉 경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만 것이다.

서술하는 처지에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대략 저작권에 위배되는 캐릭터였다.

크고 검은 동그라미 세 개처럼 보이는...

...

"...헛?"

도미닉 경은 밤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차마 보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본 탓이었다.

그나마 정신력이 강한 도미닉 경이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이가 보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정신이 붕괴되어 가차랜드에서 추방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봐 친구, 일어났군."

"음?"

"샌드위치라도 먹을 텐가?"

도미닉 경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안전모를 쓴 호쾌한 분위기의 남자가 있었는데, 낡은 작업복이나 이런저런 공구로 봤을 때 그는 공학자로 보였다.

공학자는 모닥불 옆에서 기타를 튕기다 말고 도미닉 경에게 샌드위치를 건넸는데, 도미닉 경은 잠시 그 샌드위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괜찮소."

"그래? 음. 그렇군. 하긴. 그럼 내가 먹어야겠군."

공학자는 그렇게 말하며 올리브가 올라간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다.

그러고는 다시 기타를 튕기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잠시 그의 기타 소리를 감상하다가, 문득 자기 뒤편에 딱딱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도미닉 경이 그 무언가를 확인하자 그건 무시무시한 무기들이 달린 터렛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터렛은 도미닉 경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지는 않았다.

도미닉 경은 모닥불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공학자에게 질문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51지역. 창조주의 욕망이 가득 들어간 곳이지."

공학자는 검은 선글라스를 꺼내 끼며 말했다.

아무래도 모닥불이 눈부신 모양이었다.

그럴 거면 고개를 돌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여기엔 도미닉 경과 공학자 뿐이었고, 그나마 딴지를 걸 만한 인물인 도미닉 경은 의문에 가득 차 그런 것에는 관심조차 돌리지 못 하는 상황이었다.

"창조주?"

"코더들을 말하는 걸세."

공학자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그때, 삐빅­소리와 함께 터렛이 어딘가를 조준했다.

그리고 총알을 발사했는데, 그곳에는 푸른 옷을 입고 있던 누군가가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이런."

공학자는 죽은 자를 보며 잠시 묵념했다.

"감히 이곳에 온 것에 애도를."

그렇게 말한 공학자는 다시금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잠시 죽은 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죽은 이의 시체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평범한 가차랜드식 일상이었으니까.

대신 도미닉 경은 또 다른 의문을 풀기 위한 질문을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이 공학자는, 이 장소에 대해서 잘 아는 모양이었으니.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오?"

"나가는 법? 흠."

공학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한 곳을 가리켰다.

"잘은 모르지만,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 하는 이들은 다 저기로 갔지."

공학자는 손가락을 들어 푸른 바다를 가리켰다.

도미닉 경은 잠시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보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소."

당장에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정신 나간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도망치듯 바다로 향했다.

"그대에게 행운이 있기를."

공학자는 그렇게 말하며 저 멀리 걸어가는 도미닉 경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공학자의 터렛이 푸른 옷을 입은 자들 몇몇을 추가로 처치했다.

모닥불의 일렁거림과 별들의 반짝임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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