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16화 (504/528)

〈 416화 〉 [415화]이스터 에그

* * *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내부 개발실.

한 코더가 열심히 코드를 작성하고 있었다.

"후아."

코더는 빠른 속도로 코드를 만들어내다가 문득 눈이 건조해졌는지 잠시 안경을 벗고 눈 주변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아무래도 하루 이틀 밤을 샌 것이 아닌지, 안경을 벗은 그의 눈 주변은 시커멓다 못해 공허해 보일 정도였다.

"헤이, 친구."

그때였다.

코더에게 또 다른 코더 하나가 다가왔다.

그 코더는 금발 벽안이었는데, 마치 교과서에 나올 법한 금발 벽안 외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아, 이번에 레트로 그라드에서 왔다는 친구네.

그리고 그 코더는 정말로 외국인이 맞았다.

정확하게는, 가차랜드 외부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겠지만.

"당신이 저번에 버그를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신, 징계를 받았다. 맡습니까?"

"뭐, 그렇지."

코더는 어눌하게 말하는 금발 벽안의 코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Oh."

금발 벽안의 코더는 피곤한 코더의 말에 과장되게 놀란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바로 본론을 말했다.

"당신이 만든 버그, 잘 보았습니다. 정말 정교하고 감탄만 나왔다. And I also, 그 코드가 좋아. 그래서 I found you."

금발 벽안의 코더는 엉망진창 말을 섞어서 했지만, 피곤한 코더는 대충 그가 하려는 말을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내 코드가 뭐."

"배우고 싶습니다. 버그 코드도 저렇게나 아름답게 짜는데, 그냥 코드는 더 아름답지 않을까?"

"아하."

피곤한 코더는 그제야 금발 벽안의 코더가 하려는 말을 알아차렸다.

그는 실력 향상을 위해 자존심도 굽히고 동료 코더를 찾아온 것이다.

피곤한 코더는 이런 자주적이고 매사에 열심히 일하는 동료가 싫지 않았다.

이런 동료가 많아야 자신도 좀 쉴 수 있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한 피곤한 코더는 어깨를 으쓱하며 금발 벽안의 코더에게 말했다.

"어려울 것 없지."

그렇게 말한 피곤한 코더는 금발 벽안의 코더에게 지금 자신이 짜고 있는 코드를 보여 주었다.

"자 봐. 이건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이스터 에그 코드인데­"

피곤한 코더는 자기 코드를 보여주기 위해 미완성된 코드를 시스템에 포팅해 금발 벽안의 코더에게 보여 주었다.

물론, 여기까지라면 훈훈했겠지만, 여기서 하필이면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시스템은 이 이스터 에그 코드를 완성된 것이라고 보고 실제로 현장에 적용을 시켜 버린 것이다.

...중앙 시스템이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만, 중앙 시스템이라고 해서 정말 이런 사소한 것까지 담당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미완성된 이스터 에그가 세상에 풀리고 말았다.

...

도미닉 경은 곧 있을 폭발에 대비해 근처에 있는 물건을 꽉 잡았다.

도미닉 경의 예상대로 폭발은 페럴란트의 영광을 덥쳤으나, 역시나 페럴란트의 영광이 위험할 일은 없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시스템 메시지 덕분이었다.

[대항군의 지휘 본부가 파괴되었습니다!]

[마지막 행성 간 탄도 미사일이 파괴되었습니다!]

[한 가지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여 12지역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그 말과 함께 도미닉 경 및 다른 모든 지휘관들은 다시 우주 정거장 로비로 소환되었다.

도미닉 경은 갑자기 바뀐 풍경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머지 않은 곳에 엘랑 대위가 있었다.

엘랑 대위는 승리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상기된 얼굴로 폴짝폴짝 뛰며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과격하게 기쁨을 표현했으면 3초마다 한 번 씩 다른 이들의 발을 밟는 바람에 계속해서 사과해야 할 정도였다.

아무튼,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엘랑 대위에게 다가 갔다.

"고생했소."

"아,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이 없었으면 이렇게 이길 수는 없었을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별말씀을. 난 고용되었을 뿐이잖소. 오늘의 승리는 날 고용한 당신의 공이오."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을 꽉 껴안으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도미닉 경은 겸양의 말을 내뱉으며 엘랑 대위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 이제 좀 떨어져 줄 수 있겠소?"

"아, 네."

다행스럽게도 엘랑 대위는 생각보다 빨리 침착함을 되찾았다.

얼마나 빠르게 침착해지던지, 오히려 도미닉 경이 당황할 정도였다.

[12지역 클리어를 축하합니다, 지휘관님들.]

그때, 모든 지휘관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12지역 클리어로 13지역이 열렸습니다.]

[12지역 클리어 보상을 기본으로 드립니다.]

[각자가 세운 공훈을 계산중입니다...]

[공훈에 따라 보상 분배가 완료되었습니다.]

[자세한 사안은 아래 자세히 보기를 눌러 주시길 바랍니다.]

[자세히 보기]

도미닉 경은 자세히 보기를 눌러보았다.

그는 지휘관은 아니었지만, 전함을 소유하는 자로서 지휘관에 준하는 자격이 있다고 시스템이 판단했기 때문에 그에게도 시스템 창이 나타난 상태였다.

도미닉 경이 자세히 보기를 누르자, 역시나 공훈 1등은 도미닉 경이었다.

도미닉 경은 2등과 4배 정도 차이를 내며 압도적인 점수로 1등했다.

도미닉 경이 눈앞에 있던 창을 닫았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여긴 것이다.

"이, 이건 인정할 수 없어!"

그때,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누군가가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거기엔 치열이 고르지 못한, 그래서 보정기를 낀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며 버럭버럭 화를 내고 있었다.

"나도 12지역 참가했는데, 왜 기본 보상만 줘?"

"...?"

"나도 응원 했다고! 응원 했으니까 이긴 거잖아! 그러니까 내 덕분에 이긴 거지! 그런데 왜 난 기본 보상이야?"

도미닉 경은 갑자기 난동을 피우는 남자의 행동에 의문을 품었다.

다행스럽게도 엘랑 대위가 한숨을 쉬며 그 의문을 풀어 주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도미닉 경은 도대체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진상이네요."

"진상?"

"네. 아무래도 후방에서 꿀을 빨... 아니, 전함도 없이 있던 지휘관들 중 하나인 모양이에요. 그러면서 왜 자기는 보상이 이렇게 적냐고 투덜거리는 거죠."

"흠."

도미닉 경은 고개를 돌려 다시 보정기를 낀 남자를 쳐다보았다.

"순위를 보아하니까 비싼 전함 탄 순서인 것 같은데, 그럼 우리처럼 돈 없는 사람은 그냥 뒤처지라는 거야?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지? 카악­퉷!"

그 남자는 부끄러움도 없는지 계속해서 화를 내더니, 이내 땅에 침을 탁 뱉었다.

다른 지휘관들은 그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나 보정기를 낀 남자가 꼴불견이었는지 몇몇 지휘관은 앞으로 나서 일침을 가하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더 빠르게 그 남자에게 일침을 가한 자가 있었다.

[네. 맞습니다. 비싼 전함을 탄 순서죠.]

그건 바로, 시스템 메시지였다.

...

[네. 맞습니다. 비싼 전함을 탄 순서죠.]

시스템 메시지가 그 남자에게 말했다.

그러자 다른 지휘관들은 놀란 듯 시스템 메시지를 쳐다보았다.

도미닉 경은 가끔 살아 숨 쉬듯하는 메시지 창을 자주 보았기에 익숙한 광경이었지만, 지휘관들에게 있어서 시스템 메시지는 그저 인공 지능일 뿐, 설마 이 정도까지 자율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저희는 12지역에서의 점수를 매길 때, 전함의 유무부터 체크했습니다. 그리고 전함이 없으면 바로 기본 보상으로, 전함이 있으면 추가 보상안을 검토하는 쪽으로 연산을 시작했습니다.]

[우주 전쟁에 있어서 전함은 최소한의 예의였지만, 저희는 그래도 여러분들의 다양한 경험을 위해 12지역의 입장에 딱히 제한을 두지 않았죠. 저희가 전함을 팔아먹기 위해 그런다는 오명을 쓰기 싫어서요.]

[하지만 설마, 오히려 그런 기본 예의도 없이 와서는 이렇게 난동을 피울 줄은 몰랐네요.]

"어, 어어?"

[시스템들의 회의 결과, 당신은 12지역을 깰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시스템 중 하나의 권한으로, 당신은 12지역을 클리어하지 못한 것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보상도 없습니다.]

[꼬우시면 접으시던가요, 지휘관.]

시스템은 그렇게 말하며 방금 전 진상을 부린 지휘관에게서 12지역 클리어 보상을 빼앗아 갔다.

이는 지휘관들에게 있어서 큰 충격이었다.

설마 보상을 빼앗아가다니! 라는 생각이었다.

[시스템도 인격입니다. 그러니 인격을 무시하는 발언은 주의해주세요.]

[오늘 저희 시스템이 조금 감정이 과격해진 것에 대해서 다른 지휘관 분들이 받았을 충격이 얼마나 클 지 예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저희 시스템은, 여기 계신 지휘관 분들께 심신의 충격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추가적인 보상안을 내놓겠습니다.]

[여러분! 3000가차석 만큼 화나셨습니까!]

"와... 와!"

"3000가차석 만큼 화났다고!"

시스템은 지휘관들의 성향을 잘 알았다.

그리하여 게임에 도움이 되지 않을 이를 제지하는 대신, 너무 과한 조치에 대한 보상안을 내놓아 지휘관들을 진정시켰다.

"...지휘관들도 가차랜드의 시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군."

도미닉 경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짚으며 벽에 몸을 기대었다.

그 순간, 도미닉 경이 벽에 몸을 기대며 팔꿈치로 우연히 12지역이라는 글자를 쳐버리고 말았다.

12지역이라는 글자 중 12라는 숫자 부분은 충격에 잠시 뱅글뱅글 돌더니, 이내 새로운 글자 배열이 되었다.

51지역.

51지역이라는 글자로 말이다.

"음?"

도미닉 경은 문득 자기 발 아래가 허전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아차린 건 너무 늦은 때여서, 도미닉 경은 어쩔 수 없이 발 아래에 생긴 구멍으로 빠지고 말았다.

도미닉 경은 끝없이 이어지는 통로에서 미끄러지며 아래로 떨어졌다.

[이스터 에그, 51지역(AREA 51)을 발견했습니다.]

눈 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세지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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