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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14화 (502/528)

〈 414화 〉 [413화]이면세계 12지역

* * *

'페럴란트의 영광'호는 착실하게 적들을 불태우기 위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소모형 캐쉬템들을 가득 실은 지휘관의 전함들은 도미닉 경의 전함 주변을 오가며 적당히 오와 열을 맞추고 있었다.

"이번에 도미닉 경을 고용한 것이 진짜 신의 한 수네요."

["그러니까. 어떻게 도미닉 경 같은 4성... 아니지, 오늘만큼은 5성인가. 아무튼 5성 캐릭터를 고용한 거야?"]

"운이 좋았죠."

엘랑 대위가 개인 무전망을 통해 다른 지휘관과 대화했다.

같은 길드 소속의 지휘관이었다.

클랜과는 다르게 길드는 마음만 맞으면 누구라도 만들 수 있고 누구라도 가입할 수 있었기에 엘랑 대위가 길드에 가입한 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뭐, 덕분에 12지역을 깰 수 있을 것 같으니 다행이야. 역시 베타 테스트의 공략조라 이건가."]

"그렇게 말하니까 오글거리네요."

엘랑 대위는 통신망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칭찬에 손발이 오글거림을 느꼈다.

사실, 엘랑 대위는 가차랜드 외부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원래부터 유명했던 사람은 아니고, 가차랜드를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기행을 벌이거나, 혹은 이런저런 캐릭터들의 효율성등을 알려주며 이름을 제법 알렸다.

물론 그런 정보들의 대다수는 엘랑 대위의 놀라운 행운에서 비롯되는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4성인 도미닉 경이 저렇게나 대단하다니."]

통신망 너머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4성도 저 정도인데, 5성이나 초월 등급이라는 6성은 도대체 어떤 식일까?"]

엘랑 대위는 동료 지휘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까지 지휘관들이 고용할 수 있는 상한선은 4성까지.

가차랜드를 만든 본사에서는 본격적으로 게임이 런칭되면 5성, 혹은 그 이상도 고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했으나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었다.

이는 베타 테스트 때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이 기자들에게 했던 말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현재로선 도미닉 경이 가장 강한 느낌이긴 해요."

["글쎄. 난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동료 지휘관은 엘랑 대위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이 뽑을 수 있는 고용 카드 중 4성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제외하고도 몇 명 더 있었다.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추가된 4성도 제법 되는 편이었고.

도미닉 경은 가장 기본이 되는 최초의 카드 풀에서만큼은 최고의 카드라고 할 수 있었으나, 새로운 캐릭터들이 잔뜩 추가된 지금에 와서는 글쎄. 고개를 까딱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도미닉 경의 진정한 강함을 보지 못해서 그래요."

엘랑 대위는 동료 지휘관에게 도미닉 경의 강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일단... 불사에 가까워요. 게다가 기본적으로 스탯이 높은 편이구요. 그리고 그리고­"

["아. 알았어, 알았어."]

동료 지휘관은 엘랑 대위의 말에 귀가 아프다는 듯 말을 끊었다.

사실, 동료 지휘관이 엘랑 대위의 말을 끊은 건 고작 귀가 아프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곧 교전이 일어날 것 같아. 그러니까 이제 개인적인 통신은 그만두자고."]

"...네."

["좋아. 이제 끊는다?"]

동료 지휘관은 그 말과 함께 통신을 끊었다.

그러나 엘랑 대위는 동료 지휘관이 통신을 끊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대신 엘랑 대위는 전함의 전방을 바라보았다.

행성과 행성의 궤도에 있는 방어 기지에서 속속들이 나오는 적들의 전함들을 말이다.

"...이래서 내가 가차랜드를 끊을 수가 없다니까."

엘랑 대위는 수천 대의 전함들을 바라보며 소름이 오소소 오르는 것을 느꼈다.

["전 함대, 모두 현재 자리에서 대기. 다시 한번 전파한다.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현재 자리에서 대기."]

"아."

엘랑 대위는 아군 측 지휘 본부에서 온 통신을 듣고 바로 전함을 제자리에 멈춰 섰다.

구식 전함의 곳곳에서 전함을 구동시키고 있던 용병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곧, 전투가 시작될 것이었으니까.

...

"어째서 상대가 저런 식으로 진을 짠 건지 모르겠군."

도미닉 경은 상대편의 진영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상대편의 진형은 가운데를 비워 놓은 채 좌익과 우익에 모든 힘을 실은 형태였다.

그에 반해 도미닉 경이 속한 진형은 밀집 진형이었는데, 안 그래도 오밀조밀하게 뭉쳐 규모가 작아 보이는 상황에서 수적 차이 때문에 더 초라해 보였다.

"아무래도 나를 의식하는 건가?"

도미닉 경은 이런 형태의 진형을 짠 이유가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도미닉 경을 피해 다른 전함들을 먼저 상대하겠다는 뜻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모르겠군, 모르겠어."

도미닉 경은 하나 남은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도미닉 경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적들의 전함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도 움직여야겠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전방으로 향했다.

전쟁은 고요하게 시작되었다.

...

'페럴란트의 영광'호는 가장 선두에 서서 적진의 중앙으로 향했다.

적진의 중앙은 텅 비어 있어 마치 함정처럼 보였지만, 도미닉 경은 오히려 함정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래야 적들의 이목을 자기에게 집중시킬 수 있을 테니까.

그게 바로 탱커의 역할이었고, 그게 바로 도미닉 경이 여기 있는 이유였다.

그러나 바보처럼 그냥 맞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페럴란트의 영광호는 처음에는 직진하다가 이내 머리를 왼쪽으로 45도 틀더니, 그대로 주포를 발사했다.

다른 전함이었더라면 완전히 정지한 이후에 발사해야 안전했겠지만 페럴란트의 영광은 매우 비싼 함선이었다.

그 말은, 이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페럴란트의 영광이 쏘아낸 에너지 포는 다시금 적의 함선 수십 대를 고철더미로 만들었다.

아니, 아마 조금 더 피해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에너지 포의 가운데에 있던 함선 하나는 에너지 포의 막강한 공격력에 완전히 증발해 버리기까지 했으니까.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압도적인 위력!

그러나 상대편의 대처도 만만치 않았다.

적의 모든 함선들이 페럴란트의 영광 하나만 보고 주포를 쏴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 예상했듯, 페럴란트의 영광은 보통 방어력을 가진 함선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비싼만큼 튼튼하기도 했거니와 도미닉 경의 특성 [탱커]와 특수 능력 [기수]의 영향으로 피해가 감소되고, 무엇보다도 페럴란트의 영광이 가진 특별한 기능이 있었으니까.

"이걸 쓸 때가 온 것 같군."

도미닉 경은 가볍게 버튼 하나를 눌렀다.

그러자 페럴란트의 영광호의 전면에 꽃잎과 같은 보호막이 펼쳐졌다.

보호막은 어느 정도의 피해를 막아 내더니, 이내 깜빡거리며 몇몇 공격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페럴란트의 영광호가 피해를 받는 일은 없었다.

보호막은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모든 공격을 막아 내는 대신 본체가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은 흘러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최신 전함에 걸맞은 뛰어난 기술.

도미닉 경은 그렇게 점점 더 적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아군들을 이끌면서 말이다.

...

"으, 세상에. 이게 가능하다고?"

엘랑 대위는 황당한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도미닉 경을 따라갔다.

그리고 엘랑 대위가 탄 전함 옆으로 적들의 공격이 날아왔다.

원래대로라면 전함이 터지고도 남았을 피해였지만, 엘랑 대위의 전함은 살아남았다.

바로 도미닉 경의 특수 기술 [기수] 덕분이었다.

도미닉 경의 기술로 15%라는 무시무시한 피해를 경감시킨 덕분에 아주 미약한 내구도만 남고 살아남은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다음 공격에 완파될 것이 분명한 상황.

그러나 도미닉 경의 함선인 페럴란트의 영광호는 여기에서도 빛을 발했다.

도미닉 경이 페럴란트의 영광호에 실어둔 야전 수리 기지로 인해 주변의 전함들은 초당 2의 내구도가 자동으로 수리되고 있었다.

이는 제대로 된 수리에 비해서는 부족한 수치였지만, 적들의 공세를 조금 더 막아 내기엔 충분했다.

도미닉 경의 광역 피해 감소 효과와 수리 효과, 그리고 통신 방해 및 빔 무기 방해 입자들로 인해 엘랑 대위는 거의 일당 백의 전사나 다름없었다.

150대의 전함이 5000대의 전함을 밀고 들어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현실로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양도, 질도 밀리는 상황에서!

하지만 엘랑 대위는 그런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하나라도 더 적의 전함을 줄여야 했으니까.

적의 전함을 마구 불태워 눈길을 끌어야, 적의 뒤통수를 아주 맛깔나게 때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엘랑 대위는 히죽 웃었다.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엘랑 대위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실패했던 12지역을 마침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느꼈다.

"제발, 전멸은 바라지도 않아. 요충지를 점령하는 것도 어렵다는 걸 알아. 그러니까..."

엘랑 대위는 저 멀리 숨어 돌아가는 함대가 있을 만할 곳을 바라보았다.

"제발, 다른 조건이라도 성공 시켜줬으면...?"

그때였다.

엘랑 대위는 문득, 적의 행성에서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엘랑 대위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엘랑 대위의 눈동자가 빠르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이 미사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전함만큼이나 커다란 미사일.

엘랑 대위는 문득 적들이 왜 이런 이상한 진형을 짰는지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모두 이거를 위해서였다고?

엘랑 대위는 이 느린 시간 속에서 미사일의 경로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리고 저 미사일이 도미닉 경이 탄 페럴란트의 영광호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험­"

엘랑 대위는 재빨리 개인 통신으로 도미닉 경에게 위험하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미사일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이미 페럴란트의 영광호에는 미사일의 탄두 부분이 박힌 상태였다.

엘랑 대위는 페럴란트의 영광호를 파고드는 미사일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페럴란트의 영광호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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