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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13화 (501/528)

〈 413화 〉 [412화]이면세계 12지역

* * *

화전양면 전술.

앞에서는 평화를 말하면서, 뒤에서는 전쟁을 준비하는 전술.

상대방을 방심하게 해 더 큰 피해를 주는, 기본 중의 기본 전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미닉 경은 화전양면 전술에 대해서 몰랐는데, 그 이유는 도미닉 경의 주적들이 마족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족에겐 협상 따위 통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 건네기 전에, 정수리에 도끼 하나를 더 선물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만일 도미닉 경이 귀족 출신의 기사였다면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겠지만, 도미닉 경은 농노 출신의 기사였다.

전술에는 문외한이었다.

"화전양면 전술이 도대체 뭐요?"

도미닉 경은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엘랑 대위에게 화전양면 전술에 대해서 물었다.

["이해하면 간단해요."]

엘랑 대위는 당당하게 화전양면 전술에 대해서 설명했다.

["앞에선 모두 불태우고, 뒤에선 전부 죽이는 거죠. 화형시키고, 전부 죽인다. 그래서 화전이에요."]

"...?"

도미닉 경은 그게 맞나 싶었지만 일단 엘랑 대위도 명목상 지휘관이었기에 전술에 대해선 도미닉 경보다 더 잘 알 거로 생각해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양면은 뭐요?"

["그건 쌍방을 의미하는 거예요. 앞뒤로 친다는 뜻이죠. 아까 말했듯이 앞에선 불태우고, 뒤에선 전부 죽이는 전법이니까요."]

"아하."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엘랑 대위의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돌격하는 것과 화전양면 전술이 무슨 상관이오?"

["그야, 우리가 앞에서 모두 불태워야 하니까요?"]

엘랑 대위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도미닉 경은 갑자기 자신감이 넘치는 엘랑 대위를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갑자기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불리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오."

["그런가요?"]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희망을 봐서 그럴지도 모르죠."]

엘랑 대위는 여기서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도미닉 경이 없었으면 또 한 번 허무하게 졌을 테지만, 이번에는 도미닉 경이 있으니까요. 그것도 무려 5성이나 되는 도미닉 경이!"]

엘랑 대위가 흥분한 듯 소리쳤다.

["그래서인지 지금 지휘관들이 지갑을 열고 있어요.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다들 필사적으로 이것저것 사고 있더라구요."]

"물건을 산다니?"

["저희같은 지휘관들은 시나리오 내부에서 물건을 살 수도 있으니까요. 평소엔 수수료가 붙어서 잘 안 하지만 그래도 이럴 땐 쓸 만한 편이죠."]

엘랑 대위는 잠시 워프 게이트 쪽을 바라보라고 말했다.

도미닉 경이 워프 게이트 쪽을 바라보자, 그곳에서는 자그마한 수송선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 수가 자그마치 수백 대였는데, 도미닉 경은 그 수가 현재 남아 있는 전함의 수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모든 지휘관이 물건을 사기 시작한 거요?"

["네. 대부분 일시적인 버프를 주는 물건들이긴 하지만 유용하죠."]

지휘관들이 산 물건들은 대부분 소모품이었다.

엔진을 일시적으로 과부하시킬 수 있는 것들이나, 순간적으로 부스터의 출력을 높이는 식의 소모품부터 빔 병기를 사용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한 화약 무기까지, 지휘관들마다 제각기 성향마다 물건을 사고 있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었다.

전함을 산 지휘관들은 하나같이 승부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그 누구보다 앞에 서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12지역 전투는 그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했다.

이번 전투로 12지역을 넘어 선두를 유지할지, 아니면 후발주자들에게 따라잡힐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지휘관들은 필사적으로 물건을 샀다.

지금은 돈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돈은 또 벌면 되지만, 이런 기회는 흔히 오지 않을 테니까.

그들에게 필요한 건 기회였지, 돈이 아니었다.

...

대항군 지휘 본부.

"적들의 동태는 어떠한가?"

대항군 총사령관이 방금 배에서 내린 대항군 제독에게 물었다.

"일단 보급을 먼저 하는 모양이더군요. 저들의 처지에서는 원정이 되는 셈이니, 아무래도 보급 문제가 최우선 사항이었나 봅니다."

"과연."

대항군 총사령관은 제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독의 말대로, 총사령관이 보고 있는 보고서에는 지휘관들이 보급을 시작했다는 첩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이상하군."

"무엇이 말입니까?"

"이상할 정도로 보급이 많아."

대항군 총사령관은 첩보로 알아낸 적들의 수송선의 숫자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수송선이 워프 게이트를 오간 횟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상할 정도로 높은 숫자가 기입되어 있었다.

"전투하는데, 이렇게 보급을 많이 할 필요가 뭐가 있지?"

대항군 총사령관은 종이에서 눈을 떼고 홀로그램 창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현재 우주 전장의 모습이 간략하게 표시되어 있었는데, 총사령관은 그중 가장 눈에 띄는 하나를 손가락으로 터치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페럴란트의 영광'호가 클로즈 업 되었다.

"이렇게나 강력한 전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저렇게 과하게 보급하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단 말이지..."

그렇게 말한 대항군 총사령관은 탁자를 손가락으로 리드미컬하게 탁탁지며 생각에 잠겼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대항군 총사령관은 옆에 있는 제독에게 지금 상황에 대해서 조언을 구했다.

그러나 제독이라고 해서 마땅한 답이 있겠는가.

설마 저들이 외부에서 온 존재들이라 시나리오 내에서 캐쉬템을 사서 이 지역을 깨려고 한다는 사실을 그 누가 알겠는가?

제독은 추측이라도 해볼까 하다가, 그냥 정직하게 답하기로 하였다.

"모르겠습니다."

"역시 그런가."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제독은 홀로그램 창에 뜬 '페럴란트의 영광'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는 가장 우선적으로 저 함선을 제거해야 합니다. 저 함선이 적들의 중심이요, 정신적 기둥이니 말입니다."

"그건 어떻게 아는가?"

"다른 함선들이 저 함선을 중심으로 모였기 때문입니다."

제독은 그렇게 말하며 대항군 총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아마 저 전함이 바로 적들의 기함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과연. 적들은 총사령관까지 전방에 나와 있다는 뜻인가."

총사령관은 제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는 대항군 총사령관의 오판이었다.

도미닉 경 측 총사령관은 여전히 그들의 지휘 본부에 있었고, 전장에 있는 건 그저 일개 시민이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사실을 알 길이 없는 대항군들은 적들의 총사령관이 직접 전장에 나와 있다고 생각했다.

"예로부터 전투를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적의 우두머리를 잡는 일이지... 이거 오히려 일이 쉬워질 수도 있겠군."

총사령관은 그렇게 말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 생각엔 행성 간 탄도 미사일로 요격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행성 간 탄도 미사일로?"

"네."

제독은 총사령관에게 대항군 측 최고의 무기를 꺼내자고 제안했다.

"알다시피, 행성 간 탄도 미사일은 제대로 맞을 경우 행성의 절반이 날아갈 정도로 강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기함이라고 해도 버틸 가능성은 낮습니다."

"...다른 방법은?"

"있기야 하겠습니다만, 제가 잠깐 겪어 본 바로는 저희의 모든 전함들이 일제히 포격을 해야 겨우 박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항군 제독은 오랫동안 이 행성을 지키는 우주 해군으로 근무해 왔다.

그만큼 많은 전함들을 봐 왔기에 도미닉 경이 탄 '페럴란트의 영광'호가 얼마나 강한지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확실히 행성 간 탄도 미사일 한 방이 더 싸게 먹히겠군."

"그렇습니다."

대항군 총사령관은 그렇게 말하며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제독의 말을 수락했다.

"좋네. 행성 간 탄도 미사일 사용을 승인하네."

그러면서 총사령관은 제독에게 자기 목걸이를 벗어 건네주었다.

아니, 그것은 리모컨이었다.

특별한 조작 이후 버튼을 누르면 바로 행성 간 탄도 미사일이 발사될 수 있도록 하는 리모컨.

원래대로라면 절차를 따라야 하겠지만, 어째서인지 본국과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었기에 이런 행동이 용인되었다.

물론, 본국과 연락이 두절된 이유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차원의 뒤틀림 때문이었다.

"...반드시 성공 시키겠습니다."

제독은 총사령관에게 그 목걸이를 받으며 경례를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총사령관의 방을 나가, 다시 자기 기함으로 돌아갔다.

행성 간 탄도 미사일이라면 반드시 페럴란트의 영광을 부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

워프 게이트에서 나온 마지막 수송선이 도착했다.

["아, 마침내 제 거가 왔네요."]

"뭘 시킨 거요?"

["SF틱한 광선검이요. 혹시나 백병전을 할 일이 생길까 싶어서요."]

광선검은 멋있잖아요? 라고 엘랑 대위가 중얼거렸다.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전장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우주 공간에서, 도미닉 경은 저 멀리 은은히 빛나는 둥근 행성을 보았다.

마치 검은 배경에 합성이라도 한 것처럼 존재하는 행성의 존재에, 도미닉 경은 잠시 넋을 잃었다.

"이런 것도 페럴란트에 있었더라면 알 수 없었겠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이 신비한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 말대로 가차랜드가 아니었더라면, 도미닉 경이 이런 신비한 풍경을 볼일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도미닉 경! 이제 곧 출발한다고 해요! 시작부터 전력으로 간다고 했으니, 바로 전진하시면 돼요!"]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통신에 정신이 돌아왔다.

"그러겠소."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10초 후, A 구역에 있는 모든 함선들은 출항을 준비해주시길 바랍니다.]

아군 지휘 본부에서 명령이 하달되었다.

10초 후, 150여 척에 달하는 전함들이 행성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도미닉 경의 페럴란트의 영광호가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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