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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12화 (500/528)

〈 412화 〉 [411화]이면세계 12지역

* * *

도미닉 경의 충각 공격은 너무나도 성공적이어서 전장 전체에 침묵을 가져왔다.

방금 전까지 항복을 종용하던 목소리도, 전함도 없이 참가한 양심 없는 지휘관에 대한 욕설도 없었다.

그저 부서진 전함의 잔해와 그 전함을 부순 초 거대 전함 '페럴란트의 영광'호 만이 고고하게 전장의 중심에서 시선을 모을 뿐이었다.

"맙소사."

누군가가 마침내 이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말을 내뱉었다.

물론, 그마저도 제대로 된 말이 아니라 그저 감탄사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만큼 도미닉 경과 '페럴란트의 영광'의 등장은 충격적이었으니까.

그러나 페럴란트의 영광은 아직 멀었다는 듯, 계속해서 전장을 지배할 여러 가지 것들을 선보였다.

[도미닉 경의 특수 기술 [기수]의 효과로 지금부터 전장 전체에 있는 모든 아군에게 13.5%의 피해 감소 효과가 적용됩니다!]

[정정! 도미닉 경이 현재 4성이 아닌 5성으로 참전했으므로, 15%의 피해 감소 효과가 적용됩니다!]

페럴란트의 영광 호에서 의문의 파장이 흘러나와 전장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그 파장은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도미닉 경과 같이 싸우는 지휘관들은 문득 버프창에 피해 감소 아이콘이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페럴란트의 영광 호에 여러 개의 커다란 휘장이 펄럭이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페럴란트를 상징하는 갈색 배경에 하얀 갈까마귀와 주목이 그려진 거대한 휘장이었는데, 아무래도 깃발 대신인 것 같았다.

이 피해 감소 효과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도미닉 경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듯 계속해서 무언가를 내뿜기 시작했다.

[통신 방해 입자가 살포되었습니다. 전장의 모든 통신이 단절됩니다. 단, 아군은 페럴란트의 영광호의 와이파이를 통해 서로 통신할 수 있습니다.]

[빔 코팅 플레어가 살포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전장의 일부 지역에서 빔 무기를 전혀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무인기 편대 알파, 델타, 인디고가 출동합니다. 현대 다른 편대들은 대기 중에 있습니다.]

[페럴란트의 영광호의 주포가 55.04% 충전되었습니다.]

[도미닉 경이 수송용 공간을 야전 수리 기지로 정했습니다. 지금부터 페럴란트의 영광호에 가까이 있는 함선들은 초당 2의 내구도가 수리됩니다.]

[인공 지능 주방장이 고생하시는 모든 지휘관을 위해 딸기 초코 도넛을 제공합니다!]

정말 끝도 없이 이어지는 원맨쇼!

도미닉 경의 함선 '페럴란트의 영광'은 비싼 값을 주고 풀 옵션으로 계약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 계속해서 자기 기능을 뽐내고 또 뽐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주포를 충전하기 위해 시간을 끄는 것이었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하나하나가 치명타처럼 보였다.

[주포가 100.00% 충전되었습니다. 이제 발사 가능합니다.]

마침내 이 모든 옵션을 발동시킨 이유가 전장에 나올 준비가 끝났다.

페럴란트의 영광 호에 달린 주포는 충전이 끝나자마자 바로 발사가 되었다.

처음엔 모여 있던 에너지가 싸악 사라지는 것 같더니, 이내 기다란 포신을 통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에너지는 적진을 향해 올곧게 나아가고 있었고, 그 끝에는 수십 대의 전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발사된 에너지가 미처 대비하지 못한 전함들에게 닿았을 때­

전장에는, 팝콘을 튀기듯 토독거리는 불꽃놀이가 벌어졌다.

...

"이건 도대체..."

대항군의 제독 중 하나는 방금 전 발사된 포에 놀라 삐그덕댔다.

그만큼 페럴란트의 영광호가 쏜 에너지 포는 강력했고, 또 강렬했다.

"제독님! 보고 들어왔습니다! 현재 완파 5대! 대파 2대! 중파 17대! 그 외에 자잘한 피해를 입은 함선이 120여 대입니다!"

합치면 거의 140~150여 대에 달하는 엄청난 피해.

대항군의 전함 수는 5000여 대.

그중 150여 대가 잡혔으니, 수치상으로는 고작 3%.

수치상으로 보면 고작 이 정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독은 실제 피해는 이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았다.

특히나 병사들의 사기에 엄청난 피해가 있다는 것도 말이다.

도미닉 경은 우주 전쟁을 처음 겪어보는 사람이었으나, 그는 본능적으로 다른 이들을 위축시키는 법을 알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먹히는 것은, 바로 기선제압이었다.

가장 강력한 한 방으로 상대방의 전의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지금 도미닉 경이 행한 행동이었다.

물론, 기선제압만으로는 위축시키기가 쉽지 않다.

어설픈 기선제압은 오히려 상대방의 반발만을 불러올 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도미닉 경은 더 이 기선제압을 위해 좀 더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

그것이 바로 아군에게 들어가는 막대한 양의 버프였다.

나는 무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너희 수가 얼마나 많든, 우리에겐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도미닉 경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대항군 제독은 그 메시지를 정확하게 캐치한 사람이었다.

"...아군의 사기는 어떻지?"

"엉망입니다."

대항군 제독의 말에 부관이 대답했다.

"수적 우세도 잊은 채, 그저 상대방의 위세에 겁을 먹고 있습니다."

"그래?"

대항군 제독은 부관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퇴각한다."

"퇴각이라뇨?"

부관이 대항군 제독에게 되물었다.

"이대로라면 이기더라도 피해가 너무 커. 그러니까 함정을 좀 파자고."

"함정 말입니까?"

"그래."

대항군 제독은 대항군들이 있는 행성을 바라보았다.

정확하게는, 그곳에 있는 수백 ㎢ 규모의 한 시설을 보았다.

전함만한 미사일을 탑재하는, 거대한 군사 시설을.

...

페럴란트의 영광호가 다시금 주포를 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을 때,적들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적들의 퇴각은 일사불란했지만, 아무래도 퇴각인 만큼 조금 어수선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거 참, 꽤 재미있군."

그리고 이 순간, 도미닉 경은 첫 번째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직접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싸우는 건 조금 다른 느낌인데."

도미닉 경은 직접적인 싸움에 익숙한 이였다.

기본적으로 도미닉 경은 검과 방패를 들고 전방에 나서는 전사요, 기사였고, 거미 전차나 비행선을 타기는 했지만, 그다지 크게 즐기지는 않았다.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행복한 전투란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피와 살이 튈 정도로 격렬하게 싸우는 것이었지, 이기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번만큼은 조금 달랐다.

정확하게는, 이 우주 전함으로 싸우는 것은 거미 전차나 비행선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거미 전차와 비행선까지는 전장에 직접 참여한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우주 전함의 싸움은 마치... 그저 제 3자의 입장으로 다른 이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버튼 하나에 수십 대의 전함이 박살 나고, 버튼 하나에 수백 대의 무인 전투기가 움직이며, 버튼 하나에 전장의 통신이 마비되고, 무기의 일부가 무력화된다.

그야말로, 신의 처지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는 듯한...

"...자주 할 것은 못 되겠군."

도미닉 경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묘한 고양감을 털어내었다.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이러한 전투는 굉장히 재밌기는 했으나, 반대로 도미닉 경은 이 상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밌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

그러나 도미닉 경의 성격을 보면 이 말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미닉 경은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자기에게 부여된 규칙을 잘 지키는, 고지식한 성격의 사람.

그리고 도미닉 경은 기사이자 전사다.

그 말인 즉, 이렇게 뒤에서 싸우는 것보다는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피와 살이 튀는 전투를 더욱 선호한다는 뜻이었다.

또한 이런 전투는 도미닉 경의 기사도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버튼 한 번에 수십, 수백 대의 전함을 박살 내고 수천, 수만 명의 인원을 죽일 수 있다면, 그건 학살자의 길이지 어찌 기사의 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번 일이 끝나면, 전함은 창고에 둬야겠군... 음?"

["도미닉 경? 들리세요?"]

그때였다.

엘랑 대위가 도미닉 경에게 통신을 보냈다.

"잘 들리오."

["아, 다행이다. 방금 전까지 와이파이를 끈 상태인 것도 모르고 계속 연락이 안 된다고 그러고 있었지 뭐예요."]

5G라고 적혀 있는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라고 엘랑 대위가 말했다.

"무슨 일로 호출하셨소?"

["아. 맞다. 지금 사령부에서 지휘관들에게 일제히 명령을 하달했어요."]

"무슨 명령 말이오?"

["적진을 향해 돌격하래요."]

"?"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한 번 이긴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아군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아군은 고작 300여 명이었고, 적군은 거의 5000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어이가 없는 말이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들어 보면 이해하실 거예요."]

그렇게 말한 엘랑 대위는 바로 다음 말을 꺼냈다.

["화전양면 전술이죠."]

"화전양면 전술?"

도미닉 경은 처음 듣는 전술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엘랑 대위가 설명해 주길 기다렸으나, 엘랑 대위는 수상하게 웃을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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