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1화 〉 [410화]이면세계 12지역
* * *
도미닉 경은 내친김에 함대 면허까지 한 번에 통과했다.
페럴란트의 영광 호는 풀 옵션으로 만들어졌기에 항로를 관리하는 인공 지능이 따로 있었고, 도미닉 경은 손 하나 까닥할 것 없이 바로 면허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물론 수동 조작도 보긴 했으나, 비행선 면허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함대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이후 도미닉 경은 우주 전쟁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전수받은 뒤에야 다시 엘랑 대위와 만날 수 있었다.
"도미닉 경! 어서 와요. 준비는 다 끝나셨어요?"
"그렇소."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가보도록 할까요?"
엘랑 대위는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의 동의를 구했다.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을 데리고 이면세계 스토리 모드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엘랑 대위가 부른 여러 사람들이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스즈키, 릴리, 리 뿐만 아니라 도미닉 경이 모르는 딜러들과 지원가들 몇몇이 있었다.
"여긴 이번에 12지역을 같이 깰 인원이에요."
엘랑 대위가 도미닉 경에게 이들을 소개했다.
도미닉 경이 슬쩍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반대편에서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일단 들어가기 전에 작전을 좀 알고 싶은데."
시가를 물고 있는 마초적인 근육질의 남자가 손을 들었다.
그는 가슴을 풀어헤친 장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대충 보더라도 굉장히 험악한 뱃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저번처럼 어리버리하게 전멸하기보단, 일단 작전을 세우는 것이 좋을 것 같지 않나?"
"그러니까."
코르셋을 쫙 조여 몸매를 한껏 강조한 여자가 근육질의 남자의 말에 동조했다.
그녀도 머리에 장교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허리춤에는 레이저 권총이 있었다.
"저 둘은 용병단에서 온 사람들인데, 지금까지 저희 파티에서 유일하게 전함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에요."
엘랑 대위가 도미닉 경의 귀에다가 작게 속삭였다.
도미닉 경은 문득 용병단이란 클랜이 있었나 생각해 보다가, 알파 테스트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클랜 중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아마 적당한 돈을 받고 용병으로 뛰어 준다는 컨셉이었던가.
"두 사람이 돈을 모아 전함 한 척을 샀다고 해요. 덕분에 둘 다 3성 취급이더라구요."
"그렇구려."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일단 작전을 들어 보고 싶은데."
"물론이에요."
엘랑 대위는 두 사람의 말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작전을 말했다.
"작전은 간단해요. 도미닉 경이 돌진해 어그로를 끌면, 저희가 정리한다. 끝. 쉽죠?"
"뭐?"
마초적인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아무리 잘나신 도미닉 경이라지만, 우주 전쟁은 기존의 스탯과는 달라.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여성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아무래도 이 두 사람은 도미닉 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도미닉 경이라면 가능할 거예요."
그러나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을 믿었다.
도미닉 경이 가진 특수 기술, [기수]와 [시네마틱]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는 탓이었다.
"흠."
근육질의 남성이 엘랑 대위의 자신감에 홀린 듯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좋아. 한 번 믿어보지."
남성은 그렇게 말하며 시가를 땅바닥에 버린 뒤, 구두 뒷굽으로 비벼 불을 껐다.
"그럼 나머지 분들도 이 작전에 동의하시는 거죠?"
엘랑 대위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모인 이들은 사실 모두 용병단에서 파견나온 이들이었다.
엘랑 대위가 나름 부유해진 자금으로 용병들을 고용했다.
그리고 이들 중 가장 성급이 높고 경험이 많은 이가 바로 근육질의 남성이었고, 그다음으로 경험이 많은 이가 바로 코르셋을 입은 여성이었다.
그러니 이 둘의 결정은 곧 나머지 전체의 결정이었다.
"좋아요. 그럼 일단 12지역으로 이동합시다."
엘랑 대위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12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때, 문득 도미닉 경은 이번 12지역의 기믹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승리 조건에 대해 듣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승리 조건에 대해서 듣지 못했군."
도미닉 경은 잠시 엘랑 대위가 들어간 포탈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털어냈다.
"직접 해 보면 알겠지."
그렇게 말한 도미닉 경은 포탈로 걸어 들어갔다.
...
[12지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2지역은 우주를 기반으로 한 곳입니다.]
[당신은 다음과 같은 목표 중 하나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1.적의 섬멸]
[2.적의 지휘 본부 파괴]
[3.요충지 전체를 30분 동안 점령]
[4.적의 불가사의 '행성 간 탄도 미사일 발사대' 파괴]
[패배 트리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아군의 섬멸]
[2.아군의 지휘 본부 파괴]
[3.요충지 전체를 빼앗긴 채 30분 경과]
[4.아군의 불가사의 '워프 게이트' 파괴]
[목표중 하나라도 달성하는 순간, 당신은 12지역을 클리어하게 됩니다.]
[행운을 빕니다, 함장님.]
...
환한 빛과 함께 도미닉 경은 우주 공간에 있는 한 우주 정거장 로비에 서 있었다.
그곳에는 엘랑 대위와 용병들, 그리고 다른 지휘관들이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곧바로 엘랑 대위에게 다가 갔다.
"사람이 좀 많구려."
도미닉 경이 엘랑 대위에게 말했다.
"12지역은 협동 모드니까요... 아."
엘랑 대위는 그제야 도미닉 경에게 12지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까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으, 미안해요. 12지역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엘랑 대위는 급한 대로 지금이라도 설명을 시작했다.
12지역은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의 목적은 방금 전 목적에 나온 것 중 하나를 성공하는 것이었다.
협동 모드인 만큼 상대의 난이도는 아군의 수에 비례했으며, 목적 중 하나만 성공하면 모두가 승리하는 방식이었다.
겉으로만 보기엔 그다지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임무였지만...
"적으로 나오는 상대가... 너무 강해서 말이에요."
엘랑 대위는 그렇게 말하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12지역은 일단 참여를 했다고 하면 다른 이가 목표를 달성해도 같이 승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12지역은 지휘관의 숫자에 따라 그 난이도가 달라지는 기믹이 있었다.
그 말인 즉, 그냥 꿀을 빨기 위해 아무것도 없이 들어온 지휘관들도 난이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소리였다.
"가장 싼 함선을 끌고 오는 건 그래도 양반이죠. 그래도 그들은 함선이라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엘랑 대위는 로비에 있는 이들을 흘낏 바라보았다.
그리고 여기 있는 이들 중 절반 이상이 함선조차 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저렇게 함선이 없는 이들이 문제죠."
엘랑 대위는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괜히 다른 지휘관에게 들리게끔 말했다가 신고라도 당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1분 남았습니다.]
"아. 이제 곧 시작하겠네요."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과 함께 남은 카운트 다운을 바라보았다.
이제 저 카운트 다운이 끝나면, 본 경기가 시작될 것이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도미닉 경 되십니까?"
그때, 도미닉 경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도미닉 경은 지휘관 중 하나라고 생각했으나, 오답이었다.
"그, 저는 이 정류장을 관리하는 행정부 직원입니다만..."
행정부 직원이라고 스스로 밝힌 이는 곤란한 표정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그, 도미닉 경의 함선이 너무 커서 말입니다. 우주 정거장의 도크에서 출발하기엔 너무 크지 뭡니까. 그래서 말인데..."
행정부 직원이 도미닉 경에게 제안했다.
"워프 게이트에서 소환되는 형식으로 나오시는 것이 어떠신지..."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한 행정부 직원을 쳐다보았다.
...
[전쟁이 시작됩니다! 꼭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함장님.]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우주 정거장에서 수많은 전함이 발진했다.
대개 100m급이었으며, 50m급이나 200m급도 가끔 보였다.
이 정도가 지금 지휘관들의 수준에서 살 수 있는 가장 큰 전함들이었다.
물론, 조금 더 큰 전함들도 존재했다.
엘랑 대위가 탄 용병단의 함선, '납작한 뒤통수'호가 바로 그 예였다.
용병단 답게 화끈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이 거대한 함선은 300m급 전함으로 현재 12지역에서는 가장 큰 전함이었다.
물론 약간의 방산비리로 인해 내구도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일단 가장 큰 전함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시작부터 마음에 안 드는데."
그러나 엘랑 대위는 그런 자잘한 상황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우주 전쟁에선 크기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압도적인 수적 차이 앞에선 크기는 그저 얼마나 잘 맞느냐일 뿐이었다.
아군의 전함은 대략 300. 적의 전함은 대충 봐도 5000 이상.
그렇다고 해서 크기에서 완전히 우위를 점했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상대방에게는 무려 500m급 전함이 있었으니까.
"...이번 판도 지는 건가?"
엘랑 대위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엘랑 대위의 속을 더욱 뒤집어 놓으려는 듯, 적진에서 500m급 전함이 앞으로 전진하더니 공개 통신으로 모든 함대에게 항복을 종용했다.
["너흰 이길 수 없다! 질적으로도, 수적으로도 이길 가능성은 0이니, 당장 항복하길 바란다! 항복하면 최대한 적은 피해로 돌아가게끔 해주겠다!"]
500m급 전함은 앞으로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가까웠는지 500m급 전함은 모든 함선의 무기 사거리 안에 들어올 정도였다.
["...그냥 포기하고 리 할래요?"]
아군 통신망에 그런 절망적인 내용이 흘러나왔다.
그만큼 상대와 아군간의 전세는 명확했고, 아군의 사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도 희망 한 줄기는 피어나는 법.
["항복하라! 항복하면... 음?"]
500m급 전함의 함장은 문득 워프 게이트에서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다고 느꼈다.
["저게 뭐지?"]
500m급 전함의 함장이 그 반짝임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 목을 앞으로 쭉 뺐다.
...그리고 그게 그 함장의 마지막이었다.
[5성 우주 전함, '페럴란트의 영광'호가 차원을 뚫고 도착했습니다!]
[[기수] 효과로 모든 아군에게 13.5%의 피해 감소가 적용됩니다!]
[[시네마틱] 효과로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립니다!]
워프 게이트에서 나온 1.2km에 달하는 금속의 창이, 500m급 전함을 꿰뚫어 버렸으니까.
500m급 전함은 폭발과 함께 두 동강이 났지만, 페럴란트의 영광은 멀쩡했다.
아니, 피해는 있었다.
선두에 달린 충각에 약간의 흠집이 간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전장은 침묵에 잠겼다.
['페럴란트의 영광'호의 효과로, 전장 전체에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좋군요!]
...아마도 이 메시지로 인해, 두 배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