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9화 〉 [408화]첫 고용
* * *
"우주 전쟁?"
도미닉 경이 다시금 엘랑 대위에게 되물었다.
"우주라는 것이, 저 위에 있는 것들을 말하는 거요?"
"네."
도미닉 경은 우주라는 것이 정확히는 몰랐지만, 개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위키에서 무작위 검색을 통해 한 번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곳에서 전쟁이라니, 어떤 느낌일지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는구려."
"뭐랄까, 물속에서 싸우는 느낌이더라구요. 아, 물론 이건 밖에서 싸울 때의 일이구요, 전함 내부에는 중력장치가 있어서 여기 와 크게 차이가 없을 거예요."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에게 우주 전쟁에 대해서 설명했다.
"직접 경험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소만..."
"아쉽게도 제가 가진 고용 카드가 넉넉한 편이 아니라서요."
엘랑 대위는 곤란한 듯 도미닉 경에게 양해를 구했다.
가차랜드의 고용 카드는 꽤 사용 규칙이 빡빡한 편이라 아무리 연습을 위해서 쓴다고 해도 반드시 1장은 쓰게 되어 있었다.
엘랑 대위가 최근 목돈을 만진 것은 사실이었으나, 도미닉 경과 같은 4성 카드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시중에 풀린 게 거의 없는 상태.
그런 희귀한 4성 카드를 고작 연습 한 번에 갈아넣기엔 너무 과했다.
"하지만 비슷한 연습을 할 수 있는 곳은 있죠."
"?"
"따라오세요."
엘랑 대위는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을 어디론가 이끌었다.
...
도미닉 경과 엘랑 대위는 한참 동안 걸음을 옮겨 어느 한 곳에 도착했다.
"바로 여기예요."
"여긴...?"
가차랜드의 외곽, 황무지의 초입부에 위치한 미래 지향적인 건축물.
도미닉 경은 이 깔끔한 듯하면서도 무언가 덕지덕지 연결된 거대한 건축물들을 올려다보았다.
총 세 개의 건물이 하나로 이어진 듯한 모습의 건축물.
가운데 있는 건물은 셋 중 가장 거대했는데, 거대한 송수신기 다발이 건물의 옥상에서 돌아가고 있었고, 웬만한 건축물만한 실린더 수십 개가 뜨거운 증기를 내뿜으며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으며, 건물의 앞에 있는 광장에는 철근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지구본이 있었다.
왼쪽에는 높디높은 톱니바퀴의 탑이 있었는데, 자기부상 열차가 지나다니는 층이 있을 정도로 큰 건축물이었다.
이 건축물의 꼭대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해 보이는 망원경이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고, 망원경의 축이 살짝씩 움직일 때마다 아랫쪽에 있는 수천, 수만 개의 톱니바퀴가 일제히 움직이며 계산된 값을 중간에 있는 건축물로 전달하고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셋 중 가장 이질적이었는데, 건축물의 옥상에는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책 모양 조형물이 펼쳐져 있었고, 그 조형물의 펼쳐진 페이지에는 동공이 X자로 표시된 눈 모양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 아래로는 둥둥 떠다니는 층계가 있었는데, 층계들은 제각각 서로 부딪치지 않는 궤도로 돌며 매 번 층이 바뀌고 있었다.
"여긴 대체 어디오?"
도미닉 경이 고개를 갸웃했다.
"가차랜드에 이런 대단한 건축물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말이오."
"이상하네요. 도미닉 경이라면 여길 알 거로 생각했는데."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여기가 바로 연맹의 클랜 본부예요."
"연맹?"
도미닉 경은 연맹이라는 클랜 이름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이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해냈다.
과거 가차랜드 스토리 모드 3지역에서 만났던 딕 트레이시란 자가 속한 곳이 바로 연맹이이었다.
도미닉 경이 기억하기로, 연맹은 군국주의적인 느낌에 SF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클랜이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에 클랜 본부만 봤을 땐 그런 모양이었다.
"이제야 알 것 같군. 그나저나 여긴 왜 온 거요?"
"그야, 도미닉 경이 우주 전쟁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엘랑 대위는 당연한 것을 물어본다는 것처럼 말했다.
"연맹은 우주 전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클랜이니까요."
"과연."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이 만나 본 연맹 출신 인물들은 지휘관 계열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내가 우주 전쟁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도와줄 거요?"
"도미닉 경이 우주 전쟁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해 줄 사람들을 구했어요."
엘랑 대위는 저번 주에 술집에서 만났다가 의기투합한 한 캐릭터를 떠올렸다.
"오늘은 그 사람들에게 간단한 시뮬레이션을 받고, 내일이나 모레에 제대로 12지역을 시도해보려고 해요."
"과연."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계획이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도미닉 경이 약식으로 교육받는다고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나마 쓸 만할 정도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선 꼬박 하루가 필요할 것이었다.
"모두 이해했소. 잠깐, 그렇다면 날 가르쳐 주겠다는 사람은 누구요?"
"잠시만요. 곧 온다고 했는데... 아. 마침 오네요."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도미닉 경이 아는 사람 둘이 있었는데, 바로 이반 스트렐치와 예카테리나였다.
"세상에, 오랜만이오."
도미닉 경은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설마 도미닉 경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사람이 이 두 사람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게 말이야."
이반 스트렐치가 오랜만에 만난 것이 어색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예카테리나는 스트렐치만큼 도미닉 경과 친분이 없었기에 그저 가만히 있었다.
"잘 지내셨소?"
도미닉 경이 이반 스트렐치에게 말을 걸자, 이반 스트렐치는 성실하게 답했다.
"뭐, 잘 지냈지. 조만간 결혼도 할 예정이고."
"결혼이라니? 누구와 말이오?"
"그..."
스트렐치는 도미닉 경의 물음에 힐끗 예카테리나를 보았다.
예카테리나는 스트렐치의 시선을 의식한 듯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도미닉 경은 스트렐치의 곁눈질을 통해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세상에, 둘이 결혼한다는 말이오?"
"맞아."
스트렐치는 부끄럽다는 듯 볼을 긁적였다.
"그나저나, 둘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었소? 어째서?"
"그게 말이지..."
스트렐치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성좌 백수의 거인과 촉수의 탐구자가 오랜 싸움 끝에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부터, 그 결과 두 클랜이 통합되어 연맹으로 재탄생되었다는 말까지.
스트렐치는 말주변이 없는 남자였기에 말이 두서없이 길었으나 그 긴말을 요약하자면 위의 내용이 끝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이해가 가는구려."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튼, 결혼 축하하오. 언제 결혼하는지 알려 준다면, 최대한 참석하려고 노력하겠소."
"나, 나중에 알려주지. 그, 오늘은 배우러 온 거지, 회포를 풀러 온 것이 아니니까."
"아."
스트렐치는 도미닉 경의 말을 듣고는 이대로 가다간 끝이 없겠다 싶었는지, 대화의 방향을 바꾸며 원래의 주제로 돌아왔다.
"잊을 뻔했소. 하마터면 하루를 그냥 날릴 뻔했군."
도미닉 경은 스트렐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훈련하게 되는 거요?"
도미닉 경은 이제 앞으로 배울 우주 전쟁에 관한 훈련에 관심을 가졌다.
"사실, 어떤 식의 전쟁이냐에 따라 다르지."
스트렐치가 말을 꺼냈다.
"우주 전쟁이라고 해도 행성 내부에서 싸우는 건 가차랜드와 크게 다를 바 없거든."
"홈 플래닛 류예요."
스트렐치의 말에 엘랑 대위가 말했다.
"홈 플래닛?"
"함대전이요."
"흠."
엘랑 대위의 말에 스트렐치가 고민에 빠졌다.
잠시 생각하던 스트렐치는 이내 도미닉 경과 엘랑 대위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함대전은 우리의 주력은 아니야. 우린 강습과 점령이 주특기라서 말이지. 하지만 기본기 정도는 알고 있지."
함장이 죽을 경우, 함선의 지휘권을 양도받을 수도 있어서 말이야. 라고 스트렐치가 말했다.
"그 기본 정도면 충분하오."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했다.
"고작 며칠로 기본 이상을 하겠다는 게 이상한 일이지. 안 그렇소?"
"그건 또 맞아."
스트렐치는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함선은 가지고 있나? 아니지, 함대 면허는 가지고 있어?"
"함선? 함대 면허?"
도미닉 경은 스트렐치의 말에 반문했다.
"뭐야, 함선도 없고, 함대 면허도 없어? 그러면서 무슨 함대전을 하겠다고"
도미닉 경은 스트렐치의 말에 고개를 돌려 엘랑 대위를 바라보았다.
"저도 그런 건 처음 듣는데요."
엘랑 대위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당연하지. 자네는 지휘관 아닌가. 외부에서 온 지휘관들은 기본적으로 탈 것 면허를 모두 소지한 것으로 친다고."
스트렐치의 말에 도미닉 경은 그제야 엘랑 대위가 면허에 대해서 몰랐는지를 알아차렸다.
엘랑 대위는 정말 면허가 필요 없었기에 면허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끙. 그렇다면 연습도 할 수 없는데 말이지..."
스트렐치가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행성 내부에서 벌어지는 전투라면 면허따위는 필요 없어도 되겠지만, 우주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투라면 반드시 면허와 개인 함선은 있어야 했다.
수리 비용이 막대한 우주 전함들의 특성상, 렌탈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뭘 망설여?"
그때, 예카테리나가 도미닉 경과 스트렐치, 그리고 엘랑 대위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돈으로 해결하면 되지."
"돈으로? 아니, 수백만 가차석은 들 텐데?"
"뭘 걱정해?"
예카테리나는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가차랜드 최고 부자 중 하나가 여기 있는데."
도미닉 경은 예카테리나의 말에 문득 자기 자산을 생각해냈다.
확실히, 우주 전함 하나 정도 만들어도 끄덕 없을 만큼의 재산이 존재했다.
"과연."
"건조 시간 가속까지 합하면 적어도 50만 가차석은 더 들 거야."
"그 정도는 있소."
"그래? 그럼,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내느냐, 아니면 실리를 얻느냐인데..."
스트렐치는 도미닉 경에게 충분한 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기가 아는 전함 건조 업체 몇 곳을 알려주었다.
그때, 도미닉 경은 문득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도미닉 경이 시선을 느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엘랑 대위가 도미닉 경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오?"
"...진짜 부자셨네요?"
"그럼 가짜 부자인 줄 알았소?"
도미닉 경의 말에 엘랑 대위는 갑자기 진짜 부자 앞에 선 졸부처럼 부끄러워졌다.
그러고는, 은근슬쩍 모피 코트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엘랑 대위는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