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08화 (496/528)

〈 408화 〉 [407화]첫 고용

* * *

손녀 도미니아 경과 소소한 행복을 누린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의 손을 잡고 다시 큰길로 돌아왔다.

"하뿌. 나 졸려..."

도미니아 경은 단 것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졸리다며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집에 가도록 하자꾸나."

"웅."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이 더 이상 돌아다닐 체력이 없다고 판단, 이내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포탈을 통해 가차랜드의 중심부로 이동한 뒤, 바로 집으로 가면 되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도미닉 경은, 이내 다시 새근새근 잠이 든 도미니아 경을 안아 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어서 와."

거실에는 도미니카 경이 차 한 잔을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스킨도 없이 그냥 '왼쪽☞'이라고 적힌 기본적인 티셔츠만 입은 채 말이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아 경을 방에 조용히 눕힌 뒤, 다시 거실로 나와 도미니카 경에게 물었다.

"주군은 어디 갔소?"

"과자 사러 시내에. 방금 나갔으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도미니카 경은 그렇게 말하며 설탕을 잔뜩 넣은 홍차를 홀짝였다.

"흠."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을 듣고는 거실의 소파에 몸을 파묻듯 앉았다.

도미닉 경은 그제야 피곤함이 몰려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과하게 몸을 쓴 탓에 피곤하던 육신이 아드레날린과 당분의 영향으로 잠시 물러났다가 둘 다 사라지자 피곤함이 다시 해일처럼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피곤하구려."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말하자면 좀 기오."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이 피곤하다는 말에 놀란 눈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이 아는 한 가차랜드에서 가장 체력이 강한 사람이었고, 또 그만큼 정신력이 강해 피곤함과는 거리가 가장 먼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피곤하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오는 길에 미래에서 온 내 조카를 만났는데, 그 조카와 한 판 거하게 싸운 게 전부요."

"조카라니, 꽤 강했나 봐?"

"동급이었소."

"4성?"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말에 그 조카라는 인물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아무리 도미닉 경과 같은 성급이었다지만, 도미닉 경을 이토록 피곤하게 만든 건 굉장한 업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도미니카 경은 이름 모를 조카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도미닉 경 앞으로 연락이 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 참, 네 앞으로 연락이 하나 왔어."

"어디서 말이오?"

"탱커 노조."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탱커 노조에 가입한 이후 제대로 된 활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혹시 활동에 관한 문제요?"

"뭐, 비슷하긴 해."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의 말대로 활동에 관한 문제는 맞았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지원에 대한 요청이었어."

"지원에 대한 요청?"

"응."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 앞에 카드 하나를 건넸다.

그것은 카드 팩 교환소에서 파는 고용 카드였는데, 카드의 앞면에는 도미닉 경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성급이 기록되어 있었고, 뒷면에는 도미닉 경에 대한 간략한 스탯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것은...?"

"탱커 노조를 통해 도미닉 경에게 지원요청이 들어왔어."

지원요청이라.

도미닉 경은 고용 카드로 고용되는 건 처음이었다.

저번에 엘랑 대위를 위해 무료로 고용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고용된 건 처음이었다.

도미닉 경의 카드가 시중에 적게 풀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도미닉 경의 카드 밸류가 너무 높은 나머지, 중요한 순간에 쓰려고 다들 아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누군가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는지 도미닉 경을 고용한 것이었다.

"고용한 사람은 누구요?"

"엘랑 대위."

"엘랑 대위가?"

도미닉 경은 얼마 전까지의 엘랑 대위를 생각해 보았다.

엘랑 대위는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지 않았던가.

그런 엘랑 대위가 도미닉 경 같은 고급 인력을?

도미닉 경은 이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초반에 도미닉 경의 카드를 뽑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 생각대로, 엘랑 대위는 초창기에 도미닉 경의 강함을 확인하자마자 거의 전 재산을 투자해 도미닉 경의 카드를 긁어모으는 데 전념했다.

물론 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도미닉 경의 카드는 정말 극악한 확률로 나오는 4성 중에서도 극악한 확률로 뽑혔다.

이는 시스템이 원래 카드 풀의 비율을 감안 해 산출한결과였다.

결국 몇 번의 '투자'가 실패로 끝난 이후에야 최근 들어서 도미닉 경의 고용 카드 몇 장을 손에 쥘 수 있었던 엘랑 대위.

그런 엘랑 대위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도미닉 경을 호출했다.

도미닉 경은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흠.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불렀으니 가긴 해야겠지."

"내가 생각하기엔, 스토리 모드에서 막힌 것 같아. 이면세계의 난이도는 숫자가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지니까."

"과연."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나름 엘랑 대위가 호출한 이유를 추측하며 잠깐 잡담을 나눴다.

잠깐의 잡담 이후, 도미닉 경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나가게?"

"고용한 사람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않소."

"그래도 피곤하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다고는 해도, 룰이 먼저요. 내가 하겠다고 서명했으니 당연히 해야 할 뿐이오."

도미닉 경은 검은 양복과 한 계약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도미닉 경은 말없이 스킨을 챙겼다.

"아 참, 엘랑 대위 쪽에서 이왕이면 [강습 지휘관] 스킨으로 와달라고 하더라. 아니면 자기 쪽에서 기본 스킨 하나를 대여해주겠다고 했어."

"...스킨도 지정 가능하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 여기엔 반드시 그렇게 해 달라고 적혀 있어."

도미닉 경은 문득 입으려고 했던 신화 급 스킨을 다시 옷걸이에 걸쳐 놓고 강습 지휘관 스킨으로 갈아입었다.

...

"별로 마음에 안 드네요."

엘랑 대위가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었다.

도미닉 경은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엘랑 대위는 어째서인지 한 손에 금반지를 여덟 개씩 양손에 열여섯 개를 끼고 있었고, 목에는 주렁주렁 금 목걸이와 다이아 목걸이가 걸려 있었으며, 어깨에는 모피 코트가 걸쳐져 있었다.

심지어 얼굴엔 도트로 된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그 모습이 조금 꼴불견이라고 여겼다.

"도대체 그 꼴은 뭐요?"

도미닉 경이 엘랑 대위에게 말했다.

"현질했어요."

엘랑 대위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번에 적금 하나가 만기가 되어서, 목돈이 들어왔거든요. 그 김에 조금 플렉스 해 버렸지 뭐예요?"

엘랑 대위는 그렇게 말하며 양손에 끼운 열여섯 개의 반지를 자랑하듯 들어 올렸다.

"...뭐, 행복해 보이니 됐소."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에게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도무지 계속 볼 수 없을 정도로 꼴불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날 고용했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오?"

"아."

그제야 엘랑 대위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면세계 12지역에서 막혔어요."

"?"

도미닉 경은 앞뒤 자르고 설명하는 엘랑 대위의 화법에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엘랑 대위는 자기가 너무 말을 생략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조금 더 설명을 곁들였다.

"그러니까, 12지역을 뚫으려고 50번 넘게 시도를 하는데, 아무래도 탱커가 없어서인지 깰 수가 없어서요."

"탱커가 없어서라니, 도대체 어떤 지역이길래 그러오?"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흥미가 생겼는지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아무래도 탱커가 중요한 미션이죠."

"탱커가 중요하다라."

"한 방 한 방이 승부의 갈림길이 되거든요. 사실, 이 이전에 4성 딜러를 두어 명 써본 적이 있지만 2성 딜러들과 크게 효율이 차이가 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탱커들을 더 투입할 때 효율이 증가했죠."

엘랑 대위는 그렇게 말하며 탱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어요. 아, 탱커가 진짜 효율성으로는 최고구나. 탱커부터 일단 편성하고 봐야겠구나.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도미닉 경에게 연락을 드린 거예요."

"그렇게 말하니, 더더욱 이번 미션에 대한 정보가 궁금해지는구려."

도미닉 경은 엘랑 대위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12지역의 컨셉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탱커가 그리 중요한 거요?"

"음."

엘랑 대위는 도미닉 경의 말에 잠시 진중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도미닉 경에게 건넸다.

"받으세요."

"?"

도미닉 경은 무의식적으로 엘랑 대위가 건넨 물건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꽤 높은 등급의 스킨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래도 이번 전투는 컨셉에 맞게끔 의상을 맞추고 싶었지만... 역시 그 의상도 어울리지는 않네요."

엘랑 대위는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 경에게 한 번 스킨을 입어보라는 듯 손짓했다.

"한 번 입어보세요."

도미닉 경은 그런 엘랑 대위를 이상하게 쳐다보면서도, 이내 스킨을 갈아입었다.

그러자 도미닉 경은, 장교 모자와 장교복을 입은 채 한쪽 눈을 사이보그틱하게 개조시킨 상태가 되었다.

그 한쪽 눈이란, 평소에 안대를 끼고 있던 쪽이었다.

"역시, 이런 옷도 잘 어울리네요."

엘랑 대위가 도미닉 경에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이게 다 뭐요?"

도미닉 경이 새로운 의상에 당황하며 엘랑 대위에게 되물었다.

"이번 12지역에 대한 컨셉이요."

엘랑 대위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번 12지역은, 우주 전쟁이 기믹이거든요."

엘랑 대위의 말에 도미닉 경은 왜 딜러들의 성급이 중요하지 않은지에 대해서 깨달았다.

우주 전함끼리의 싸움이라면, 전함의 등급이 중요하지 내부에 있는 딜러의 성급이 중요하지는 않을 테니까.

* * *

0